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율 whalemoon Feb 18. 2021

Netfilx 시리즈 소셜 딜레마, SNS의 이면

보는 내내 핸드폰을 멀리 두느라 힘들었다.

최근 취준생(이라 쓰고 백수)이 된 이후로 집에서 시간이 날 때마다 책과 영상들을 많이 보려고 한다.

현재 구독하는 OTT 서비스는 넷플릭스와 왓챠를 이용하고 있는데 평소에 다큐멘터리를 좋아하다 보니 넷플릭스를 자주 보고 있다.


전에부터 보려고 찜 해놨던 <소셜 딜레마 ; The Social Dilemma>.


전현직 SNS 플랫폼의 직원들이 나와서 SNS의 이면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그리고 요즘 핫 하다는 클럽하우스까지 웬만한 SNS는 전부 하고 있다.

가끔 이골이 나서 SNS를 지울까 몇 번 고민도 했었지만 직업이 마케터인 이상 SNS를 그만둘 수는 없었다.

내 계정으로 로그인되어있는 PC나 스마트폰, 그리고 아이패드는 내가 보는 정보들을 수집하고 그 정보에 맞는 광고들을 계속해서 노출한다.


가끔 '아 오늘 멍멍이들 밥 사야지'라고 혼잣말을 한 뒤 SNS에 접속했을 때 '반려동물 용품'에 대한 광고가 떠서 내 음성 정보까지 모두 수집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든 적도 있다.


SNS를 활용한 영화는 많이 나온다. 조금 오래된 미국 드라마이지만 <가십걸> 같은 경우도 따지고 보면 SNS를 통해 뉴욕 상류층과 그 주변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해서 공유하고 존 조 주연의 <서치>도 SNS를 통해 실종된 딸을 찾는다. 그 외에도 <디스커넥트>, <소셜 포비아>, <더 서클> 등도 SNS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고 그 내용이 긍정적이지는 않다.


스마트폰이 처음 보급되기 시작했던 2008-2009년. 트위터로 시작한 SNS는 신세계였다.

140자 안에서 내 생각을 세상에 얘기하고 팔로우 시스템으로 전 세계에 친구들을 만들어간다. 생각보다 일찍 1만 팔로워를 달성하고 열심히 트위터에 빠져있었지만 난 돌연 트위터 계정을 폭파했다.


주변에서는 만 팔로워가 넘었는데 왜 계정을 삭제했냐고 물었지만, 난 내 정보가 노출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흔히 SNS라 불리는 서비스들이 나오기 전에도 내 사생활이나 내 생각을 올릴 수 있는 공간은 꽤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시작했던 PC통신(난 유니텔 유저였다). 세이클럽, 다모임, 아이러브스쿨, 프리챌, 싸이월드, 버디버디에서 제공했던 미니홈피까지.


특히 싸이월드엔 굉장히 많은 도토리를 사용했고 용돈이 넉넉하지 않았던 중, 고등학생 때는 도토리를 생일 선물로 주고받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다가 오늘의 유머나 디시인사이드 같은 사이트까지 이용하면서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내 이야기를 적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에 굉장히 신기했고 매력을 느꼈고 열심히 활동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신상이 털렸다.


그 당시에는 흔히 '구글링'이라고 부르는 검색시스템이 지금처럼 제한이 없던 시기라 내가 사용하던 ID나 본명으로 검색하면 나에 대한 정보가 마구 쏟아져 나왔다. 12살부터 동일한 ID를 사용하던 나는 내 집 주소까지 노출이 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어떤 이유에서 신상이 털리기 시작했는지는 기억이 나지를 않는다. 아마 한 연예인에 대한 글을 쓰면서 그에 대응하는 한 유저가 파 해치기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은 다행히(?) 구글링에 제약이 많이 생겨서 예전만큼 일명 '신상 털기'가 쉽지는 않다. 하지만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세상이다. 모니터 앞에 앉아서 전 세계 사람들의 정보를 구할 수 있다.


SNS는 그러한 '신상 털기'에 최적화되어있다. 트위터는 익명이나 비공개 계정으로 활동하는 사람이 많지만 인스타그램이나 특히 페이스북의 경우에는 '지인들과 내 이야기를 나눈다.'라는 느낌이 강했기에 아무렇지 않게 개인의 일상을 공유하는 일들이 빈번해졌고, 그로 인한 범죄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네이버 웹툰 중에 '살人스타그램'이라는 웹툰이 있다. 시즌2의 경우는 조금 다르지만 시즌1을 보면 SNS를 통해 피해자의 위치를 파악하고 피해자를 집요하게 좇는다. 나는 아무런 생각 없이 공유한 내 일상이, 좋아요나 팔로워를 위해 올린 개인적인 이야기들, 혹은 조작된 이야기들이 그 개인을 어둠 속으로 밀어 넣는다.


SNS에 사진을 업데이트하고 좋아요나 덧글이 잘 달리지 않아 좌절감을 느끼고 자존감이 낮아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타인의 SNS를 보면서 '쟤는 좋은 곳에서 좋은 것만 먹네. 난 왜 이러지?'라고 상대방과 비교하며 자신을 아프게 하는 경우도 많다.


나 같은 경우도 중고등학교 동창들의 SNS를 보면서 '이 친구는 성공했구나. 나는 왜 제자리걸음이지?'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런데 SNS는 그런 공간이다.

SNS에 내가 불행하다고 올리는 사람은 드물다. 오늘 하루가 너무 엿같았고 퇴근하고 들어온 집에 어질러진 물건들을 보면서 '왜 나는 쉴 수 없는 건가' 생각하며 지저분한 집을 찍어 올리는 경우는 드물다. 지저분한 그 물건들을 한쪽으로 밀어내고 급조하여 행복한 척 일상을 공유하기도 한다.

스마트폰 보급이 늘어나면서 SNS를 하는 사람들도 당연히 늘어나고 각자의 의견들이 초단위로 쏟아져 나온다. 그리고 나와 맞지 않는 의견들이라며 배척하거나 혹은 그럴싸한 가짜 뉴스에 혹하기도 한다.


SNS는 단면적인 세상을 보여준다. 조작하기도 쉽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흡수한 내 정보를 이용해 내가 흥미 있을만한 정보들을 보여주고 그것을 믿게 만든다.


지금도 신문을 보고 있지만, 한동안 '중립'이라는 것을 지키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하던 그때는 신문도 진보와 보수 모두 구독해서 보고 있었다. 하나의 같은 사건을 두고 진보와 보수는 다른 이야기를 했다. 같은 공간임에도 프레임에 담긴 사진은 극명한 차이를 보였고 그에 따른 기사 역시 정반대의 이야기를 한다.


"어느 곳에도 진실은 없구나."


그 이후로 무엇을 보던 중립적인 입장에서 보려고 노력한다. 페이스북, 유튜브에 쏟아지는 가짜 뉴스들을 구별해낼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그러기 위해 부단히 도 노력을 했지만 그 노력은 지금 나에게 쏟아지는 정보와 거짓 속에서 판단을 할 수 있는 재능을 선물해줬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는 내내 SNS를 지워버릴까 하는 생각과 동시에 자꾸 SNS에 접속하고 싶다는 상반된 생각이 공존했다. 결론적으로 나는 SNS를 지우지 않았고, 어제도 오늘도 열심히 하고 있다. 다만 팔로우하던 페이스북의 페이지들을 정리하고, 알람들을 꺼버렸다.

눈을 뜨자마자 침대 구석에서 충전 중인 핸드폰을 들고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일은 한동안 고칠 수 없을 테지만 나를 위해서 조금은 줄여봐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A4용지에 글까지 끄적여가며 본 이 다큐멘터리는 이미 예상하고 있던 이야기를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무언가를 생각할 수 있게 해 줬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인 <소셜 딜레마>이지만 이 다큐멘터리가 나에게 추천된 이유도 AI가 수집한 내 정보로 내가 좋아할 만한 소재를 추천했다는 것에서 좀 웃기기는 하지만 이 AI의 정보 수집, 그리고 그로 인해 나에게 보여주는 각종 이미지, 글, 영상을 비롯한 광고들을 판별하는 능력은 내가 스스로 키워야 한다.


부디, AI에게 지배당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기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