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유에서든 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마.
"잘 지냈어요? 어떻게 지냈어요?"
2주에 한번.
매주 토요일에 듣는 이 질문.
병원 대기실에서 뻔한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기 위해 미리 생각을 한다.
'내 지난 2주는 어땠지?'
매번 딱히 기억에 남는 것은 없다. 내 뇌에는 해마가 존재하지 않는 건지 기억력이 영 꽝이다.
일기를 써야 하나, 라는 생각을 하지만 게으른 나는 일기도 제대로 쓰지 않는다.
매년 초에 시작한 다이어리는 2달을 넘기지 못하고 그저 상자에 차곡차곡 쌓여간다.
선생님과의 상담에서는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오고 간다.
최근 하고 있는 게임 이야기나 좋아하는 예능 프로그램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보고 있는 책이나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뇌과학이나 우울증에 관심이 많아서 관련된 책과 다큐멘터리를 많이 보고 선생님은 내가 추천해주는 것들을 보시기도 한다. 지난 상담에서 추천한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거기에 대한 코멘트도 주신다.
이렇게 아무런 이야기나 하고 있다 보면 지난 2주간의 내 기분들이 생각이 난다.
좋았던 기분, 좋지 않았던 기분, 너무나도 평범했던 기분.
선생님은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준다. 나는 걱정 어린 대답과 괜찮다는 대답을 들으면서 나아지는 기분을 느낀다. 눈물이 울컥할 때도 있고 이렇게 주절주절 떠드는 이야기들을 1시간이고 2시간이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내 주변엔 다행스럽게도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이 많다. 옆사람도 있고 친구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기에, 너무 가까이 있기에, 나를 너무나도 잘 알기에 하지 못하는 이야기도 많다. 위로가 서툰 사람도 있고 위로가 익숙한 사람도 있다.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듣고 토닥여주고 안아주고 눈물을 닦아주고 같이 화를 내주고 내 감정을 다독여준다.
그들과의 대화는 나를 안정되게 만들어주지만, 내 감정은 다시 소용돌이치면서 격해지게 만들기도 한다.
내가 병원에 가서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는 이유는 안정감이다.
사실 코로나가 시작되고 선생님을 만나기 시작했기에, 아직도 마스크 안에 감춰진 선생님의 얼굴을 알지 못한다. 내가 볼 수 있는 선생님의 모습은 안경 속의 눈뿐이다. 하지만 선생님은 나에게 있어서 괜찮다고 느낄 수 있는 창구와도 같다.
언젠가, 상담 중에 내가 느끼는 분노에 대한 말을 한 적이 있다. 정말 극심한 분노를 느껴서 스스로가 괴물인가 싶어질 정도였는데 선생님은 그게 당연한 감정이라고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고 답해줬다.
지금의 나는 피해자다. 내게 상처를 주는 모든 것들에 대해 나는 피해자의 입장이다. 내 스스로 나를 증오하게 되는 상황을 만든 것에 대한 피해자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니다. 이 말을 깨닫기 까지, 스스로에게 이 말을 해주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남들에게는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해주는 사람이면서 스스로에게 '내 잘못이 아니야.'라고 100번 말해도 잘 받아들이지를 못하던 나는 이제 없다.
나는 내 잘못이 아닌 것을 알고 있다. 스스로를 원망하고 미워할 필요가 없다. 나는 잘 살고 있고, 잘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니까 오늘도 잘 지내보자. 오늘도 스스로 토닥토닥해주자.
선생님의 말은 그저 'OO씨 잘못이 아니에요. 누구나 그런 상황에 놓이면 그럴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신기할 정도로 대단할 정도로 굉장히 잘 버티고 있어요.'였지만 이 짧은 말에서 나는 이렇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 몇 마디에서 비롯된 내 생각은 나를 아껴주게 만든다.
길지 않은 상담을 마치고 인사를 하고 나와서 다음 상담 예약을 잡는다. 어릴 적부터 병원이라면 치가 떨렸던 사람인데, 이상하게 이곳은 마음이 편하다. 2주 뒤에 만날 선생님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