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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월 Oct 27. 2021

오늘 퇴사를 했다.

퇴사를 결정하게 만드는 사람들.

오늘 퇴사를 했다.

출근한 지 한 시간 정도 됐을 때 트렁크에 있던 캠핑 박스에 모든 짐을 때려 넣고 나왔다. 내 행동에 직원들이 당황했지만, 내가 우선이기에 모른 척하고 뒤돌아서서 집으로 향했다.


이제 '전'직장이 되어버린 그 회사는 처음부터 이상했다. 옳지 않은 형태로 돌아가고 있었고,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었다. 연봉을 줄여가면서 그저 가깝다는 이유 하나로 입사한 이 회사는 나에게 결국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줬고 더 이상 나에게 나쁜 기억을 만들어주고 싶지 않아서 미련 없이 나왔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인생을 살면서 '자유'를 갈망하지만 '자유'라고 해서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그저 '민폐'라고 생각했다. 내가 생각하는 '자유'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즐기는 것이었다. 회사 생활은 특히나 더욱 중요했고, 그래서 나는 워커 홀릭이 되었다. 내 업무를 다 끝내고 타인의 업무를 도와주고 없는 일도 찾아서 했다.


마케터로 들어간 이번 회사에서 내 주 업무는 홈페이지 제작과 SNS, 그리고 영상편집이었다. 그러나 어느샌가 나는 회사의 인테리어를 하고 있었고 경매 입찰 공고 등을 찾아보거나 국가에서 진행하는 지원서들의 서류를 작성하고 있었다. 좋게 생각해서 모두 다 내 업무와 관련이 있을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일을 했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기존에 모두 진행했던 일이었고 그렇기에 나는 더 열심히 했다.


유통회사이다 보니 야간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많고, 출근을 하면 사무실에는 야간근무자들이 먹은 음식의 흔적들이 설거지가 되지 않은 빈 그릇과 냄새로 날 맞이했다.


다만 나는 출근하자마자 업무를 진행하지 않고 식사를 하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그 식사에 참여하지 않았다. 출근을 하면 우선 컴퓨터를 켜고 간단한 업무를 한 뒤에 담배를 피우던 커피를 마시던 하는 게 내 업무의 시작이었다.


내가 여태까지 그 식사에 참여하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을까.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나는 오늘 그 식사에 참여를 하기로 했다. 전자레인지 용기에 라면을 넣고 꺼내서 의자에 막 앉은 그때. 한 직원이 화를 내며 들어왔다. 그러고는 나에게 모욕적인 말들을 쏟기 시작했다. 최소한 기본은 하라며, 도대체 뭐 하는 짓이냐며. 나 때문에 열 받아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다고 했다. 순간 당황했다. 다른 직원은 이미 라면을 먹고 있었지만 그 화는 나에게만 쏟아졌다.


우선 업무 시간이지만 라면을 먹으려고 한 내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해 사과를 했다. 남들이 다 그런다고 나도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였으니까. 죄송하다고 말을 한 후에도 장대비가 쏟아지듯 그런 말들을 들어야 했다. 체감상 3분 남짓 되는 언어폭력을 들었다. 해장하려고 회사에 왔냐고 말을 하면서 기본적인 것에 대해 자꾸 운운하는데, 정작 그 사람은 술을 먹은 다음 날 회사에 나오지 않은 적도 있는 사람이었다.


한참의 언어폭력이 진행된 후 화를 내며 나가버렸다. 머리가 멍해졌다. 내가 저런 말들을 고스란히 들어야 할 정도로 큰 잘못을 했는지 의문이 생겼다. 그리고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다. 매번 그런 행동을 했었더라면, 혹은 내 일을 다 미뤄놓고 노는 사람이었다면, 그래도 그런 식의 모욕을 받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결국 라면은 다 버리고 자리에 앉아서 업무를 하기 시작했다. 컴퓨터를 붙들고 영상을 보는 데 자꾸 억울하고 서러워서 계속 눈물이 나왔다. 한 시간 정도 울다가 이건 정말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친한 직원에게 나랑 왜 친한지 이유를 묻고, 타 직원이랑은 왜 그렇게 안 지내는지 물었다던 그 사람. 도대체 나를 어떻게 보고 있기에 그러한 행동을 했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짐을 싸기 시작했다. 겨우 5개월 남짓 일을 했지만, 내 짐은 꽤나 많았다. 가방에 도무지 들어가지 않아 차의 트렁크를 열었고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텅 비어있는 캠핑 박스가 보였다. 모니터, 키보드, 필기도구 등등을 다 집어넣었다.


나를 말리던 직원들도 그렇게 까지 단호하게 짐을 싸는 모습을 보고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이 회사가 얼마나 부조리했는지 다들 알기에 떠난다고 하는 나를 붙잡을 수 없다고 했다. 짐을 다 싸서 트렁크에 넣고 그 사람을 찾아갔다. 그만두겠다고 이야기했다.


물론 업무시간에 라면을 먹겠다고 한 내가 잘못인 건 알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식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것은 아닌 거 같다고. 다른 사람들에겐 그렇게 하지 않으면서 왜 나에게만 그랬냐고 묻자, 그들은 명분이 있다고 했다. 그 명분이란 게 도대체 어떤 것일까. 그렇다 치고 그 사람의 언어 그대로 '빡쳐서 일이 손에 안 잡힐 정도.'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하자 자기도 사람이라 감정적이고, 그 감정을 나한테 뱉었다고 했다. 아 나는 그 사람에게 감정 쓰레기통이었던 걸까?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런 감정을 그렇게 표현할 수 있었던 건지 아직도 이해가 되질 않는다.


난 그런 식으로 취급받는 건 기분 나쁘고 억울하다. 그래서 지금 그런 같잖은 일 때문에 한 시간 동안이나 울고 있는 나도 어이가 없다. 나랑 왜 친한지 물어보는 것도 기분이 나쁘다. 벌레처럼 해충처럼 취급하는 거? 내가 이런 사람 되려고 여기서 일 한 게 아니니 가겠다.라고 말하고 나와버렸다.


회사를 뒤로하고 나오는 차 안에서 목이 쉬어라 소리를 지르며 울었다. 최근 우울증이 심각해지고 있던 상황에서 나에게 휘발유를 부어버린 것 같았다. 집으로 가지 않고 곧장 병원으로 향했다. 원래 내 상담 예약은 토요일이었지만 내 마음을 보듬어줄 필요가 있었다.


결론적으로 역시나 그 상담은 나에게 위로가 되었다. 사실 정신과는 마음이 아픈 나도 가야 하지만, 남에게 상처를 주는 그 사람이 우선적으로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근무하는 동안 갑작스레 퇴사를 한 사람이 나를 포함해 3명이 있었다. 그중 1명은 다시 돌아왔지만, 나는 다시 돌아가지 않을 예정이다. 그리고 그들 모두 그 사람과의 문제로 퇴사를 했다. 그렇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는 게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 사람을 안고 가는 회사도 문제가 있다.


국가에서 고용사업으로 회사에 월급을 지원한다. 그게 내 자리다. 다만 회사는 그 돈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받지 않은 척한다. 국가 지원비가 나오기 시작하면 연봉을 올려주겠다고 했고, 나는 그 돈이 나왔음을 전해받았으나 대표는 나오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한다.


회사 곳곳에 설치된 CCTV로 직원들을 감시한다. 왜 자리를 비웠는지, 점심시간엔 어떤 행동을 하는지, 그리고 메신저나 전화를 통해 직원들에게 행동 교정을 요구한다. 그건 엄연한 개인정보 침해와도 같다.


추가 근무를 시키고 수당을 주지 않는다. 근로계약서를 제대로 작성한 직원도 몇 없다. 올해 초 설립된 회사이지만 이미 그만두고 나간 사람이 너무나도 많다.


보통 새로운 회사에 입사를 할 때는 그 회사를 보고 입사하지만, 퇴사를 하는 경우에는 사람에게 질려서 퇴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회사에는 질리게 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다. 겉으론 하하호호 웃으면서 위하는 척 하지만, 알고 보면 뒤에서 분란을 조장하고 그 분란으로 남들이 고통받으면 즐거워하는 소시오패스 같은 사람도 있다. 갑작스러운 급발진으로 모든 직원들이 피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본인의 라인이라고 두고 있는 대표도 있다.


이 회사가 앞으로 얼마나 갈지 짐작을 하지 못하겠다. 정작 일 열심히 하고 잘하는 직원들에 대해 야박한 평가를 내리면서 입만 살아서 아부하는 직원들에게 관대한 회사.


갑작스레 퇴사를 했지만 속이 시원하다. 직장 내 괴롭힘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는 지금, 이런 모욕들도 모두 그러한 괴롭힘이라는 것을 그들은 평생 알지 못하겠지만 나는 또 하나를 깨닫고 퇴사를 했다.


열악한 환경에서, 옳지 못한 행동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속에서,

어제까지 열심히 일했으니 그동안 고생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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