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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월 whalemoon Oct 21. 2021

회사에서 무서운 사람이 되어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무서워해주세요.

 올해 5월 말부터 다니기 시작한 회사에서 나는 막내다. 나랑 동갑인 직원이 3명이 더 있지만 굳이 생일까지 따지자면 제일 막내다. 입사도 가장 늦게 했다. 어쩐지 인맥으로 이루어진 회사에 정식으로 면접을 보고 들어온 사람도 없는 회사.


 나는 좀 재수 없지만 동안이다. 30대 중반이 코앞이지만 아직도 대학생 정도로 보여서 신분증 검사도 자주 하고 나보다 어린 사람들이 나에게 반말을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번 회사에서도 처음엔 갓 대학을 졸업한 사람인 줄 알았다고 했다.


 왜 동안 이야기까지 나왔느냐, 하면은 내가 입사하던 날 차를 끌고 나름 단정한 옷으로 치마바지와 셔츠를 입고 출근을 했다. 당시 내 머리는 단발 정도의 전체 탈색 머리. 내 첫인상은 '어린 여자애가 차를 끌고 짧은 치마에 탈색한 상태로 면접을 보러 왔다.' 였다고 한다. 키도 작은 편이 아니고 엉덩이가 큰 편이라 치마바지가 더 짧아보였던 모양이다.


 어쨌든 지금은 동갑 직원들과 친해져서 사적으로 만남도 갖고 취미생활을 즐기기도 하는 사이가 되었지만, 나와 대화를 하는 몇몇 직원을 제외하고 말을 섞지 않은 직원이나 회사의 대표님에게 나는 무서운 사람으로 인식된다고 한다. 말을 걸기 힘들고 싫은 소리를 하지 못하겠고 그런 상태라고 한다.


양치기 작가님의 약치기 그림.

 나는 계속해서 휴학을 반복하지만 법대생이다. 대표님도 법대 출신이다. 그런데 나는 계속 공부를 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현재 진행 중인 고소건이나 주변 지인들이 노동법(특히 근로 기준법)에 대해서도 많이 상담을 하기 때문에 법이 개정되는 경우에는 관련 기사들을 찾아보고 변경되는 법률을 읽으면서 내 지식을 업데이트한다. 그러다 보니 면접 때 '워라벨이 제일 중요하다.'라고 말하며 연봉을 깎고 들어온 나에게 말도 안 되는 연차 적용이나, 휴일 출근 등을 얘기하는 대표님에게 조목조목 따져가면서 말했던 것이 아마 크게 자리하지 않았나 싶다.


 나는 마케팅일을 한다. 주로 홈페이지를 만들거나 유튜브를 촬영하고 편집하거나 SNS 관리를 하고, 어쩌다 보니 나라장터, 업체 공고, 경매 같은 일도 하고 있다. 최근 회사 내에 인테리어를 다시 하는 데 건설회사를 다녔었고 인테리어를 좋아하다는 이유로 도면을 그리기도 했다. (이쯤 되면 내가 하는 업무가 정확하게 뭔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내가 제시하는 무엇인가에 대해서 대표님은 90% 이상 OK를 하셨고 그게 내가 업무를 잘해서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내가 무서워서 그랬던 것 같다.


 나는 워커홀릭이다. 일을 좋아하고 일을 잘하는 편이다. 손도 빨라서 몇 달 동안 전임자가 만들었다던 회사의 공식 홈페이지를 싹 초기화시키고 다시 만들기 시작해서 3일 만에 끝냈다. 그리고 후회했다. 분명 지난 글에서 '다음번 회사에서는 적당히 하자.'라고 다짐했지만, 2주에서 한 달 생각한 작업을 3일 만에 끝내버렸으니 나에게 업무가 쏟아지는 건 당연지사.



 내가 다니는 회사는 유통 회사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방문이 잦다. 하지만 나는 마케팅 부서라서 회사의 주 업무인 매입매출과는 관련이 없다. 그래서 회사 내에 상주하는 사무직원들을 제외하고는 말을 섞을 시간도 이유도 없다. 그중 유난히 나에게 말도 많이 걸어주시고 관심사가 비슷해서 대화를 많이 하는 분이 계신데, 그 분과의 대화에서 나의 이미지를 추가로 알게 되었다. 나는 일명 '노란 머리'로 불리고 있으며, 말을 걸기 무섭고 표정이 늘 심각하다. 약간 '양아치'같은 느낌이라고 한다. 난 원래 잘 웃지 않고(웃긴 이야기 들어도 잘 웃지 않는 편이다.) 몸에 타투도 여러 개 있다. 내가 입사하던 당시는 반팔 차림이다 보니 어린 나이의 여자아이가 노랗다 못해서 하얀색에 가까운 탈색 머리를 하고 몸에는 타투를 여러 개 하고 다니면서 담배를 피운다? 충분히 좋지 못한 시선으로 나를 봤을 거라고 예상했고 그 예상은 역시나 확신이 되었다.


 하지만 그들이 나를 어떤 시선으로 보던 나는 신경 쓰지 않는다. "계속 그렇게 봐달라고 해주세요."라고 말했다. 내 나이도 알지 못하고 심지어 내 이름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하루에 30명이 넘게 왔다 갔다 하고 4대 보험에 14명이 올라가 있는 회사지만 내 번호를 아는 사람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나는 내가 맡은 업무를 착실하게 해내고 있고, 내 업무에 만족하며 일을 하고 있다. 나에 대해 알지 못하면서 뒤에서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 굳이 내 시간과 감정을 낭비해가면서 좋은 모습을 보여줄 필요는 없다. 내 업무는 성과로 보이고 있고 나와 대화를 나누는 직원들은 모두 나를 좋아한다. 그들에게 "OO이 그런 애 아니에요!"라고 100번 말해도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회사에서 무서운 사람, 불편한 사람, 어려운 사람이 되었지만 나는 오히려 너무 좋다. 누군가는 그래도 회사에 다니면서 사람들과 소통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회사는 공적인 공간이다.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면 되는 거고, 내 업무와 관련해서 소통이 필요할 때 그 소통이 문제가 없으면 되는 공간이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 모습 그대로 근무를 하고 싶다. 이 회사에 얼마나 근무할지 아무도 모르는 거지만 또 입사 1주년 기념으로 사직서를 줄지도 모르지만 그때까진 계속 이 모습으로 날 봐줬으면 좋겠다. 내가 사실은 나쁘지 않은 사람이라던지, 양아치가 아니라던지, 무섭지 않은 사람이라던지 그런 건 중요하지 않으니까. 다음에 또 이직을 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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