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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월 whalemoon Sep 13. 2023

정리를 못 하는 게 내 잘못은 아니지

의심할 여지없는 성인 ADHD

 평소에도 내가 성인 ADHD라고 의심하고 있었다.


 '독서' 외에는 사실상 집중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고 '멀티'가 된다며 좋아했던 건 그저 한 번에 한 가지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요새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게임도 하느라 서재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는데 분명 깨끗하게 치웠던 책상이, 그리고 방바닥이 도무지 견딜 수 없을 만큼 어질러져 있다. 원래도 정리정돈을 잘하지 못한다. 특히 사용한 물건을 제자리에 두는 4살짜리 유치원생도 할 법한 아주 간단한 습관조차 들이지 못했다. 마치 백화점이나 아웃렛 같은 곳에 있는 세일 품목 매대처럼 늘 무언가 쌓여있지만, 그래도 색별로 사이즈별로 그들만의 자리가 있는 것처럼 나도 이런 혼돈 안에서 나름의 질서가 있다며 자위하고 있었다.


 물론 주변에서는 엉망진창인 내 책상이나 생활공간을 보면서 한숨을 쉬기도 하고 제발 치우라는 말이나 혹은 그들이 직접 치워주는 행동(이러면 내가 물건을 찾지 못한다는 큰 단점이 있다.)을 하기도 하는데 마치 도르마무 같은 상황에 결국 그들도 포기해 버린다.

(* 도르마무 : 마블 코믹스에 등장하는 우주적 존재로 보통 "계속 똑같은 상황을 무한 반복해서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으로 쓰였다.)


 그나마 최근에는 정돈된 모습이 나를 기분 좋게 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집안 곳곳을 하루에 한 곳씩 천천히 정리하고 있다. 다만 아직 손이 닿지 않은 곳은 여전히 엉망이고 정리를 하더라도 2-3일도 버티지 못하고 예전과 비슷한 모습으로 되돌아간다.


 심지어 이 글조차도 서재 정리를 하다 말고 댐을 방류하듯 머릿속에 차오른 생각 때문에 책상 위에 가득 쌓인 것들을 옆으로 대충 밀어 두고 쓰기 시작했다. 책상으로 부족해 바닥까지 이것저것 쌓여있지만, 한 곳을 5분 이상 치우지 못하는 나는 성인 ADHD다.


맥주캔은 새벽에 게임하면서 방치해둔 건데, 스피커가 쓰러진 건 방금 이 사진을 보고 알았다.


 3주 전, 다니던 정신과에서 ADHD 검사를 받아보려 했는데 최근 다시 심해진 우울증과 공황으로 인해 다음번으로 미뤄졌다. 4월 이후로 오랜만에 방문이었는데 '괜찮아졌나 보다.'라고 선생님은 생각했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나에게 본인이 그냥 봐도 ADHD가 맞는 것 같지만, 우울증이 심할 때 나타나는 증상은 ADHD와 유사한 점이 많으므로 조금 괜찮아지면 그때 검사를 해보자고 권했다.

 그런데 나는 그냥 의심할 여지 없는 성인 ADHD다. 이런 걸 보고 안 봐도 비디오라고 하지 않을까?


 최근에 책을 거의 15권 이상 구매했는데 1, 2층 서재(복층 빌라라 그렇지 부잣집이 절대 아니다!)가 모두 엉망이고 책꽂이에 아무거나 마구잡이로 넣어둔 바람에 막상 책을 정리할 곳이 없어서 역시나 바닥에 방치해 뒀었다. 마치 당장 내일 이사를 가기 위해 내 물건 몇 가지를 쌓아뒀다고 말해도 '그렇구나.'라고 고개를 끄덕일 법한 공간.


 마음이나 머리가, 그러니까 '나'라는 존재가 어지러워서 공간도 어지러운 것인지, 아니면 공간이 어지럽기 때문에 '내'가 어지러운 것인지 알지 못한다. 다만 분명한 건 서재에 발 딛기조차 힘들어 까치발을 들고 들어와야 한다는 것이, 가로 폭이 160cm나 되는 책상에 팔 하나 제대로 올릴 공간이 없다는 것이 지금 글을 쓸 게 아니라 당장 청소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오늘의 정리, 혹은 청소가 얼마나 걸릴지 과연 끝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오늘은 근사한 저녁을 차릴 계획이기 때문에 장을 봐놨다) 잠들기 전에 깨끗한 서재에서 일기를 쓸 수 있기를 스스로에게 부탁해 본다.


 그런데 뭐, 적당히 깨끗해도 괜찮잖아?


* 표지 이미지 : Pexels/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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