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까지 엉망이라고?
첫 출판을 진행한 책은 POD였고 어제 드디어 받아볼 수 있었다. epub 형식의 전자책도 함께 발행했다. 연말이라 약속이 많아 읽어보지 못하다가 오늘 아침, 종이책은 고이 모셔두고 전자책을 읽었다. 평소 내 글을 다시 읽으면서 ‘나 글을 꽤 잘 쓰네’라던가 ‘문장이 단순해서 좋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출판된 내 글은 정말 ‘엉망진창’이라는 단어로만 표현할 수 있었다.
문장도 엉망이고 오탈자도 눈에 보였다. 뜬금없이 들어간 괄호도 눈에 거슬렸다. 분명 원고를 다시 읽으면서 수정을 했고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나 엉망일 수 있나 싶었다. 내 글뿐 아니라 함께 작업에 참가한 다른 작가님들 문장도 당시엔 괜찮았는데 책으로 읽어보니 띄어쓰기나 문장의 어색함들이 눈에 보였다. 스스로에게 너무나 큰 실망을 하게 됐다.
오랫동안 바라던 버킷리스트였고 그저 책을 출판하는데 급급해서 제대로 퇴고를 하지 않은 탓이었다. 원래의 나는 손으로 글을 쓰고, 그것을 컴퓨터로 옮기면서 다시 읽어보고, 다 옮긴 뒤에 또 읽어보고 하던 사람이었는데 PC로 글을 쓰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많은 과정이 생략된 탓인 것 같았다. 15-20년 전은 내가 글을 가장 많이 쓰던 시기였다. 당시 영화제작을 전공하고 싶어 했고, 시나리오나 간단한 스토리, 일기, 편지 등 적어도 하루에 1개 이상의 글을 썼다. 그때도 PC가 있었지만(그 당시엔 심지어 컴퓨터 중독 수준이었다) 손으로 글을 먼저 적는 습관이 있었다. 당시에 작성했던 글을 몇 개 찾아 읽고는 고등학생 시절의 나보다도 못한 수준의 글을 출판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POD방식이라 원고를 교체할 수는 있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다. 엉망인 첫 작품을 고이 모셔두고 앞으로 내 글쓰기의 표본으로 삼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열정이 넘쳐흐른다고 생각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게으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고등학생 시절의 내가 더 갈망했구나.
이 글도 손으로 끄적이다가 머릿속에 있는 말들은 많은데 그걸 다 쓰기가 힘들어 결국 PC앞에 앉아 키보드로 작성을 하고 있다. 그래도 초안이라도 작성해 놨으니 오늘의 나는 한 걸음 나간 거로 생각해 보자. 최근에 막 종료된 글쓰기 모임이 있고, 1월 초부터 새로 시작하는 글쓰기 모임도 있다. 이 글들도 공동작가로 함께 책이 출판될 예정이다. 모니터나 스마트폰 화면이 아니라 정말 인쇄를 해서 파란 펜을 들고 하나하나 읽어가며 고치고 또 고치는 퇴고의 과정을 거쳐야 할 것 같다. 최근 종료된 모임의 경우 안타깝게도 퇴고 기한을 놓쳐버렸다. 왜 부지런하지 못했고 내 글에 대해 자만하고 있었던 걸까.
글을 써보겠다고 비싼 돈을 주고 프로그램을 구매했다. ‘Scrivener’라고 작가들이 많이 쓰는 프로그램이라고 했다. 프로그램은 Microsoft나 한컴오피스보다 글을 쓰기에 괜찮은 것 같아 초반에는 열심히 글을 썼다. 지금의 나는 역시나 이 프로그램을 기억에서 지우고 있었다. 브런치에 바로 글을 쓰고 있는데 어제 접수한 인터넷 기사님에게 연락이 왔다. 속도가 자꾸 떨어져서 A/S 신청을 했고 원격 조정을 위해 인터넷을 잠시 끊겠다고 했다. 그 연락을 받고 나서야 나는 프로그램을 열었다.
글쓰기는 엉덩이 싸움이라고 생각한다. 집중력이 약한 나는 좋아하는 일을 할 때에만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데 글 쓸 때는 집중력이 오래가지 못한다. ‘글 쓰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가?’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봤지만 난 분명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 다만 ADHD인 나는 머리에 떠오르는 많은 생각들과 싸우느라 글 쓰는 걸 힘들어하는 것 같다고 결론을 내렸다. 오늘은 콘서타를 한 알 먹고 글을 쓰고 있다. 확실히 잡생각은 줄어들었는데 처음부터 여기까지 읽어보면 계속 다른 생각들을 하고는 있는 것 같다. 어쨌든 첫 출판을 통해 많은 것을 깨닫게 됐다. 두 번째, 세 번째 책을 써내고 나면 미처 지금도 알지 못한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그리고 책을 계속 써내기 위해서 게으름을 떨칠 필요가 있다는 건 가장 중요한 사실이다.
내 첫 책의 문장은 잘 읽히지 않았고, 같은 문장을 두 번씩 읽기도 했다. 가독성이 좋은 책을 선호하고 그런 책을 쓰고 싶었는데 지인들에게 ‘출판’되었다고 자랑한 과거의 내가 너무나도 부끄럽다. 이런 식으로 글을 쓰니 브런치 공모전에서는 당연히 탈락이라는 결과를 맞이했겠지.
어제 공모전 당선자들이 공개됐다. 그 글들을 읽으며 어떤 사람이 대상을 받는 것인지 도움을 받아야겠다. 그래도 다행인 건 예전의 나였다면, 한없이 약한 자존감에 스스로를 원망만 하고 다시 시작하기 어려웠을 텐데 지금의 나는 스스로를 다독일 수 있게 됐다. ‘지금 이런 실수들을 발견했으니, 다음번엔 잘해보자!’라며 다시 일어설 수 있다. 무너진 것도 아니고, 넘어진 것도 아니다. 그저 한 발 더 나아가기 위해 잘못된 점들을 알게 된 거고 그로 인해 나는 더 발전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꾸준함’을 먼저 노력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