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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월 whalemoon May 16. 2024

우울증이 다시 오려고 할 때

그림자 속의 우울 괴물이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너무 잘 지내는 것 같아서 염탐 나왔어." 라며 우울 괴물이 안부를 전했다.


 한동안 우울한 감정을 느끼지 못하며 지냈다. 스트레스도 크게 받지 않았다. 아니, 받지 않았다기보다 받지 않으려 노력했다. 크고 작은 일들에 신경 쓰지 않았고 좋은 게 좋은 거고 나쁜 건 괜찮아지겠지,라는 생각으로 살고 있었다. 슬픔을 마주하면 우울이 돋아날까 봐 슬픔이라는 감정도 피해 다니려 했다. 2년 전만 해도 확신의 F로 살던 나는 선택적으로 T로 변했다. 90% 이상 F였던 사람이 51% T가 되고 지금은 70% 정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남에게 갖던 관심을 끊고, 나와 내 가족만 신경 쓰기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타인의 감정이나 상황에 무뎌졌다. 엄청난 오지라퍼였던 나는 타인의 상황을 나에게 이입하여 같이 힘들어했는데, 흔히 말하는 T의 사고방식으로 살기 시작하니 확실히 스트레스가 줄어든 것 같았다.


 아마 나는 나를 중심으로 살기보다, 주변 상황을 많이 바라보고 신경 쓰다 보니 그로 인해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갇혀서 살아왔던 것 같았다.


 올해 잠깐 회사를 다시 다니면서 안 그래도 심했던 불면증은 더욱 심해졌다. 업무의 양은 많고 쉴 시간이 없으니 집중하는 것도 힘들었다. 규칙적인 식사가 어렵다 보니 신체에 제대로 된 에너지 공급도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연봉을 올리고 입사를 했고, 주말 출근 등으로 나쁘지 않은 월급을 받았다. 실업급여를 제외한다면 9개월 만에 돈을 벌었다. 돈을 벌지 않는 동안 남편의 눈치를 아예 보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테지. 돈을 다시 벌기 시작하면서 우리 집에 여유가 생길 것 같았다. 남편과 나의 월급을 합치면 먹고 싶은 것도 다 먹고 해외여행도 자주 다닐 수 있을 정도는 됐다. 하지만 난 두 달도 다니지 못하고 회사를 그만뒀고, 지금은 강아지의 투병으로 회사를 다니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최종적으로 약 1,500만 원 정도 병원비가 지출될 예정이라(이미 500만 원 이상 지출이 있었다.)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인데, 언제 악화될지 알 수 없어서 24시간 붙어있어야 한다.


 자발적으로 집 밖을 나가지 않는 상황과 지금의 상황은 다르다. 반려동물과 함께 움직일 수 있는 것에는 제한이 있다. 최근 자주 가던 도서관도 가지 못하고, 몇 달 전부터 보고 싶어서 예매하려고 했던 영화와 뮤지컬도 보러 갈 수 없다. 정말 손꼽아 기다리던 것들인데 모두 즐길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그렇다고 해서 아픈 강아지를 원망할 수는 없고, 그것들은 다음 기회에 다시 접하면 된다. 병원도 미용실도 없지만, 그건 남편이 쉬는 일정을 맞춰서 움직이면 된다. 비록 6월 초까지 일주일에 5번 약 1시간에서 1시간 반 걸리는 곳으로 진료를 받으러 가고 3-4시간 대기 후에 또다시 1시간 이상 걸려서 집에 돌아와야 하지만, 그 3-4시간 대기하는 동안 난 글도 쓸 수 있고 책도 읽을 수 있다.


 선택해야 할 것들이 늘어났고, 고민하고 결정해야 할 것들이 늘어났다. 원체 생각을 멈추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단순히 생각만 하는 것과 결정을 해야 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내 결정이 내 주변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더욱 고민할 수밖에 없다. 답을 내기 어려운 문제들이 많아 어떤 것부터 처리해야 할지 계속 고민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고민하고 다시 생각하다가 4시가 다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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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에 잠이 들어도, 4시에 잠이 들어도, 6시에 잠이 들어도 늦어도 7시 반 전에는 일어나야 한다. 교통편이 좋지 않아 남편을 출근시켜야 하고 강아지 산책이나 밥, 약 등도 챙겨야 해서 늦잠을 잘 수 없다. 낮잠을 자게 되면 또다시 밤잠을 설치기 때문에 낮잠도 잘 수 없다.


 내 그림자 속에 살고 있는 우울 괴물이 최근 들어 계속 나오려는 것 같았다. 인기척이라고 해야 할까. 보이지도 않는 존재에 인기척이라는 말이 웃기긴 하지만, 멍하니 있다 보면 문득 그림자 속의 괴물이 보이는 것 같았다. 애써 외면했고 "괜찮아!"라며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하지만 새벽까지 잠 못 이루고 스탠드가 켜진 책상에 앉아서 무언가 끄적이는 나를 보고 결국 그 녀석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내 안부를 물었고 난 억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지금은 겨우 고개만 내민 수준이지만 조만간 내 그림자를 잠식할 것 같다. 우울 괴물과 동거하는 것은 익숙하고 눈앞에 나타나더라도 금방 다시 돌려보낼 수 있지만, 이번엔 조금 오래 걸릴 것 같아서 지레 겁을 먹게 된다.


 짜증이 늘었고 예민해졌고 아무것도 아닌 것에 화가 나려고 한다. 지금 현재의 상황들이 내 잘못으로 벌어진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방법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만약 내가 새벽 3시까지 근무하는 그 회사를 계속해서 다녔더라면, 아이의 질병도 바로 알지 못했을 거고 치료를 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내가 여전히 남들에게 오지랖을 부리고 다녔더라면 나는 지금 더 힘들었을 것이다. 내가 지금 원하는 것을 다 하고 지낸다면 돌보아야 할 것들을 돌보지 못해 분명 후회했을 것이다.


 어떻게든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려 노력한다. 우울을 즐기는 것도 우울을 이기는 하나의 방법이지만, 안타깝게도 난 지금 우울 괴물과 놀아줄 시간이 없다. 내 그림자의 일부를 먹어버리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이번만큼은 아주 잠깐만 있다가 돌아가줘. 내가 너에게 모두 잠식되어 버리면 모든 것이 무너질 거야. 30년을 넘게 함께 해왔는데 이런 부탁은 들어줄 수 있겠지.


 오늘은 우울 괴물과 맞서야 하는 나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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