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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율 whalemoon Jul 22. 2024

새벽이 좋아서 불면증

나는 야광별인가

 처음 불면증이 시작된 건 중학교 무렵인 것 같다. 아니 그 전일수도 있다. 맞벌이하는 부모님은 출장이나 야근이 많았다. 나는 외동딸이었고 부모님이 집에 오기 전에 혼자서 잠자리에 드는 것이 일상이었다. 작은 인기척에 뒤척이다 깨어나고, 잦은 부모님의 싸움에 잠을 이루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부모님의 이혼 이후 조부모님과 살면서도 작은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깨기를 반복했으니, 어쩌면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불면증 증세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새벽 3-4시가 되어야 겨우 잠에 들던 나는, 여전히 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 수면제를 먹어도 마찬가지고 피곤에 푹 젖어서 잠에 들어도 작은 소리, 불빛, 움직임에 잠이 깬다. 한번 잠이 깨고 나면 다시 잠들기까지 1-2시간은 기본으로 걸린다.


 하루에 3시간씩 자는 걸 며칠 반복하고 나면 모든 신체와 정신이 정지해 버리는 느낌이라 전원 버튼을 꺼버린 로봇처럼 낮에 급격하게 잠에 빠진다. 잠에 들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면 알람을 맞춰두지만, 자꾸 미루고 미루며 2-3시간 정도 잠을 잔다. 낮잠을 자게 되면 유난히 깨어나는 게 힘들다. 오히려 몸이 더 무거운 느낌이고, 그런 날은 해가 뜰 때쯤에야 밤잠을 잘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낮잠을 자지 않으려 노력한다.


 고등학생, 그리고 20대 초반의 시절에는 잠이 오지 않는 고즈넉한 새벽을 즐겼다. 다세대 주택에 살던 학창 시절에는 문을 열고 나가면 엄마가 깨버릴까 봐 1.5층 정도 되는 높이의 창문을 넘어 MP3에 담긴 노래를 들으며 한없이 걷던 적도 있고, 그게 여의치 않으면 창문에 걸터앉아 새벽 공기를 한껏 들이마셨다. 유학 시절에는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았기 때문에 오랜 시간 걷고, 또 걷고, 아침 해가 뜰 때까지 걸어 다녔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위험한 행동이었지만 순전히 운이 좋았던 건지, 아니면 내가 거주하던 곳이 치안이 괜찮았던 건지 아무 일도 없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처음엔 집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오래 만나지 못한 지인들을 만났고, 밤새 술을 먹기 일쑤였다. 집은 교통편이 좋지 않은 외곽에 있다 보니 첫차를 타고 졸면서 들어가기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심각한 우울증이 찾아왔고 집에 엄마가 있을 때는 방 밖으로도 나가지 않는 은둔 생활을 했다. 하지만 그 은둔 생활 중에도 방에 있는 베란다 문을 활짝 열고 새벽 공기를 실컷 마시는 것을 잊지는 않았다. 도시에서 시골 쪽으로 이사를 간 상황이라 공기도 좋았고, 작은 베란다에 누워 별을 보는 것도 좋아했다.



 아침, 점심, 저녁, 새벽의 시간 중에 새벽 2-3시쯤을 가장 좋아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부지런해지는 아침은 나를 게으르게 만드는 것 같아서 싫었고, 삼삼오오 모여 점심을 먹으러 나오거나 장을 보러 가는 등,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는 점심도 싫었고, 퇴근 후 약속을 잡거나 시끄러운 공간에 모여 술을 먹고 저녁을 먹는 저녁시간도 싫었다. 새벽 2-3시는 많은 사람들이 잠든 고요한 시간이었고, 그 시간에 혼자 있는듯한 기분을 아꼈다. 그 시간이 너무 소중했기에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직장인이 되고, 야근을 하고, 회사 일에 지쳐 집에 돌아오고, 집안일을 하고, 공부를 하다 보니 새벽 2-3시를 잊고 살았다. 그저 1분이라도 더 자기 위해 억지로 눈을 감고 이부자리에 누워 시간을 보냈다. 소중한 것을 잊었다. 잃은 것이 아니라 잊었고, 다시 기억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지금은 항상 옆자리에 누워서 누구보다도 속 편하게 잘 자는 사람과 함께한다. 정말 머리만 닿으면 바로 잘 수 있고, 낮잠을 5시간을 자도 저녁 식사 후에 다시 잠을 잘 수 있는 그 점이 부럽다. 내가 잠을 이루지 못하고 한참을 뒤척이거나, 새벽 내내 화장실, 테라스, 서재, 부엌을 왔다 갔다 해도 전혀 깨지 않고 자는 모습을 보며 다행라고 생각했다. 그가 나처럼 예민했다면, 혹은 불면증이었다면 나는 다시 2-3시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했을 테니.


 사정상 지금은 일을 하지 않고 집에 있기 때문에 그가 출근한 시간부터 퇴근하기 전 까지는 오롯이 내 시간이다. 그 시간에 청소를 하기도 하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글을 쓰고, 강아지들을 돌보고, 직장을 구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멀뚱멀뚱 누워 무의미하게 흘려보낸다. 해가 떠있는 시간에 집에 있는 나는 그저 무기력하다. 할 일들을 모두 그의 퇴근시간 직전으로 미뤄놓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콘서타를 먹고 움직이려 해 봐도, 커피를 연거푸 마셔도 머리는 멍하고 의욕도 생기지 않는다. 잠을 자지 못한 탓인가 고민해 봤지만, 밤 10시가 다 되어가는 이 시간의 내가 더 또렷하다.


 불면증의 원인이 무엇일지, 정말 내가 잠을 자는 것을 좋아하는지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사실 원인은 아직까지 찾지 못했다. 자려고 누우면 생각이 많아서 그 마인드맵 같은 생각 때문일 수도 있겠다. 어쩌다 한번 생각을 하지 못할 정도로 만취하는 날은 눕자마자 잠드는데 그게 단순히 술 때문인지, 아니면 생각을 못해서인지 생각하다가 그만 생각하기로 했다. 잠이 오지 않을 때는 굳이 잠을 자려하지 않는다. 잠이라는 건 그저 졸음이 오니 숨을 쉬듯 당연하게 행동하는 것이 아닐까. ‘자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지만 잠을 자기 위해 노력을 하지는 않는다. 물론 이 노력 저 노력 다해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기에 포기했다. 생각해 보면 잠을 자는 행위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낮이 후회가 되어, 시간을 조금 더 가치 있게 써보고자 밤이고 새벽이고 눈을 뜨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해가 뜬 낮에 나를 충전해 마치 천장에 붙이던 야광별처럼 밤이나 새벽에 반짝 빛나고 꺼져버리는 것일까. 나에게 있어 ‘잠’이라는 것은 여전히 알 수 없다.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필수적인 건지 아닌지. 사람이 오래 건강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잠’이라고 하는데 잠이라는 행위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포기하는 게 맞는 것인지, 억지로라도 잠을 청해야 하는 것인지.


 오늘도 이런저런 생각들로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할 것 같다. 3시쯤 잠이 들고, 5시 반쯤 강아지가 물 먹으러 가는 소리에 깨고, 7시쯤 다시 잠들었다가, 7시 반쯤 남편의 출근준비 소리에 잠을 깨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또 멍하니 무의미한 영상들을 그저 넘긴다. 오늘은 그래도 의미 있는 행동을 하자고 마음을 먹고 아침부터 공포영화를 봤다. 첫 번째 영화를 보며 우동을 먹고, 집안일을 조금 하다가 두 번째 영화를 보고 나니 점심시간을 놓쳤다. 애매한 시간에 밥을 먹으면 저녁 먹을 때 불편해서 결국 굶기로 했다. 1층 서재에 있는 책들을 2층으로 옮기려고 잔뜩 꺼내놓고는 책상 앞에 앉아 또 멍하니 있었다.


 사실, 하루쯤은 꿈도 꾸지 않고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8시간쯤 푹 자보고 싶다. 물 달라고 깨우는 강아지도, 출근 준비하는 남편도, 연신 울리는 핸드폰도 모두 없는 곳에서 가장 편한 나체의 상태로 누워 움직임 없이 그렇게 꿀잠을 경험하고 나면, 나도 잠이라는 걸 좋아하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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