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이 글을 쓰는가?

by Oh Hye In

대학원에는 남성들만큼이나 여성들이 많습니다. 비율은 반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특히 박사과정 같은 경우는 학부-석사를 ‘다이렉트’로 졸업하고 바로 오는 젊은 20대 친구들보다는 직장 등 사회경험을 하거나, 때론 사회부조리를 온 몸으로 겪은 상태에서 열정에 불타올라 오는 경우들이 종종 있기 때문에 연령주기상, 30대에 걸쳐있는 학생들이 상당합니다. 자연스럽게 생애주기상 결혼과 출산, 육아를 경험하는 비율이 높고, 저처럼 ‘엄마’라는 정체성을 획득한 상태에서 공부를 해나가는 학우 들이 상당히 많지요.


눈치 채셨겠지만, 나는 공부하는 엄마입니다. 싱글일 때도 대학원에 있었고, ‘엄마’가 된 이후에도 대학원 생활을 해보았지요. 여러 일을 해 본 결과 지식노동자로 사는 것이 적성에 맞는다는 생각에 다시 학교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 삶에 정말 놀라운 일이 일어나고 말았어요. 제 열정은 크게 변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없던 석사시절과 아이가 태어난 박사시절의 생활은 질적으로 엄청난 차이가 나더군요. 시간적으로, 체력적으로, 정서적으로 인생의 극단을 마주하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캡처y.JPG 아이는 참 사랑스럽지만... 공부하는 엄마들에게는 방해꾼이 되는 경우가 자주 있지요


저는 박사과정을 하며 다양한 어려움을 경험했습니다. 한창 생산적 활동을 해야 할 시기에 책상에 앉아 있게 되어 느끼는 경제적 압박도 어려움 중 하나였지만, 그보다 더 크게 힘들었던 것은 그런 물질적인 것이 아닌 다양한 정서적 압박이었습니다.

문화적으로 배제되는 상황들이 발생했고, 왜곡된 인식과 싸워야했으며, 꼬리표처럼 죄책감을 달고 다니는 나날들이 이어졌어요. 때때로 학교나 사회는 엄마들의 공부와 연구를 상당히 개인적인 문제라고 생각하고, 개인화해버립니다. 공부할만한 사람들이 와서 공부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박사씩(!)이나 하는 여성들은 경제적으로 여유롭고, 좋은 시댁을 만나 이해받고, 일명 팔자(!)가 좋은 여자라고 생각하는 인식들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들의 연구성과가 조금 헐거우면 ‘애 엄마가 그렇지 뭐~’, '취미로 공부하는 거 아니었어?'라고 치부해버리고, 이들의 연구성과가 좋으면 ‘독.한.년.’이라 소리없는 비난을 합니다.

어쨌든 이런 인식 속에서, 경제적으로 여유롭지도 않고, 공부가 가진 가치에 대해 인정받지 못하는 환경 속에서 ‘감히’ 공부를 시작한 여성들은 추가적으로 감당하게 되는 모든 어려움을 ‘내가 선택했으니.. 결국 내가 감당해야하는’ 것으로 받아들이 고, 묵묵하게 싸웁니다. 상처받고 쓰러지고 아파하면서도 말이죠.


저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혼자 많은 것들을 감당하고 씩씩한 척 했어요. 그러다 몸도 마음도 지쳐버리는 시기가 오고야 맙니다. 괴로운 시간들을 보내게 되지요. 만일 저 혼자 괴로웠다면, 제 개인의 문제라고 생각하며 어쩌면 많은 것들을 포기해버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몇몇 사람들을 만나면서 이상하게도 이런 증상, 이런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저 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제가 다녔던 학교 안에는 수많은 엄마 대학원생들이 있었는데, 모여서 대화를 나누면 항상 같은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분위기가 생겨났어요. 같이 울고, 공감하고, 위로하는 시간들 속에서 깨달음이 왔습니다.



ee.JPG 수유실 부족으로 화장실에서 수유, 유축하는 공부하는 엄마들, 이를 위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던 선배 엄마들. (출처: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블로그 https://blogs.ilda

‘아..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었구나. 이건 구조의 문제일 수 있겠구나..!’


수적으로 상당히 많은 수에도 불구하고, 엄마 대학원생들의 이야기는 많이 가려져 있었어요. 다 저처럼 ‘나의 선택’을 탓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하고 힘겹게 각개 전투를 하고 있었던 것이죠. 많은 여성 박사, 여성 교수들이 세상에 쏟아져 나옵니다. 흡사 아름다운 백조와 같은 모습이지요. 빛나고, 우아하고, 아름답습니다.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뛰어넘어 결국 해내고야 마는 그녀들의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찬사를 보내죠.

그런데 여기서 핵심은 이겁니다. 여러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 생각은 하지만, 어떤 어려움이 얼마나 있었을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왔는지, 혼자 해결했는지 아니면 다른 대안을 찾았던 것인지. 놀라울만큼 그 ‘어려움’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야말로 학교나 사회는 아름다운 결과와 외양에만 집중하느라, 이 열정적인 백조가 물에 뜨기 위해 얼마나 발버둥쳐왔는지, 어떤 것들을 희생하고 감수해왔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어요. 고되게 공부해왔던 여성 당사자들 스스로도 졸업과 함께 미운 오리새끼 같았던 지난시절을 머릿속에서 휘발시켜버리는 것 같습니다. 아니. 어쩌면 졸업 이후에 또 다른 사회적 어려움을 만나 투쟁하느라.. 과거에 머물러 있을 시간이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공부하는 엄마들은 온갖 사적 자원들을 총동원해 치열하게 살아갑니다. 그래요. 어쩌면, 학교에서는 학생으로서의 정체성이 가장 중요한 것이 맞고, 절대다수 소비 자인 20대 학부생과 싱글 대학원생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류가 아닌 것이 맞아요. 그렇지만 조금 더 ‘인권’ 차원에서 생각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똑같이 등록금을 내며 공부하는 학생이예요. 그렇다면 학생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들을 누려야하겠죠?

가령, 장애학생들은 학업을 충분히 수행하는데 있어 그들이 가진 ‘장애’가 어려움이 되는 경우, 학교는 ‘장애’가 어려움이 되지 않도록 여러 조치를 위할 의무가 있습니다. 도서관에 휠체어가 다닐 수 있도록 하고, 청각장애 학생을 위해 수업을 필사 해주는 도우미 학생을 붙여주며, 장애학우가 주차할 수 있도록 주차공간도 구비해놓지요. 장애지원센터를 만들어 다양한 정보를 제공, 어려움을 해결해주기도 합니다.


자, 그럼 다시 공부하는 엄마들로 돌아와봅니다. 엄마 대학원생들 역시 학생으로 서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들이 존재해요.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수 있어야 하고,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받아야 합니다. 엄마 대학원생들은 학업을 충분히 수행하는데 있어 그들이 가진 ‘아이’가 어려움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학교는 ‘아이’가 어려움이 되지 않도록 여러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어요. 도서관에 아이를 동반할 수 있도록 하고, 공부하는 엄마들을 위해 수유실이나 학내 키즈카페를 마련하며, 아이를 급하게 맡기고 논문을 쓸 수 있도록 환경을 제공하고, 임산부가 주차할 수 있도록 넓은 주차공간도 구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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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공부하는 엄마들을 위한 PG이 다양한 MIT 대학교 . (우)시카고대학 부모학생 지원센터의 전경(출처: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블로그)



이게 굉장히 이상(ideal)적이고, 이상한(weird) 요구라는 생각이 드나요?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해외의 우수대학들에서는 우리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이런 일들이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공부하는 엄마들의 다양성을 인정 하고, 그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말이지요.

하아. 그렇지만 여기는 한국이지요. 세계에서 우수한 100개의 대학을 꼽았을 때 우리나라 대학은 1개가 겨우 들어갈까 말까 하는 상황입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무턱대고 너무 많은 것을 바라다보면, 제가 졸업하고 당신이 졸업할 때까지도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을지도 모르지요.

그래서 저는 스스로 내면의 타협을 했습니다.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만 하기보다는, 일단은 막 공부를 시작한 여러분이 어떤 어려움이 몰려올지 알지 못한다는 전제 하에, 일단은 슬기로운 공부하는 엄마로 살아가는 다양한 생활의 팁(Tip)을 전수해 드리려고 합니다. 어쨌거나 생존하고 봐야하는 거니까요. 결국은 개인적인 대응방식 을 알려드리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들긴 하지만 어쩌겠어요. 일단은 살고 봅시다.

공부하는 엄마들이 새롭게 얻게 되는 타이틀 혹은 부캐로는 정말 다양한 것들이 있을 겁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크게 세 가지만 집중적으로 공략해보기로 하겠습니다.

공부하는 학생으로서의 정체성, 일을 하는 지식노동자로서의 정체성, 그리고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의 정체성이 바로 그것이지요. 이러한 정체성을 가지고 어떻게 생활했는지, 얼마나 헤맸는지, 그리고 덜 헤매기 위해서는 어떤 Tip들을 사용하면 될지에 대해서 말이지요.

그렇지만 종종 여러분께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정상적인 것으로 인식되는 수많은 방식들이 “정답”은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요. 공부하는 엄마잖아요. 계속 질문하고, 묻고, 이상하게 여기고, 새로운 길을 찾아보는 겁니다. 그러다보면 내 딸이 공부하는 엄마가 될 때 즈음에는, 세상이 한 뼘 더 나아져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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