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가끔, 무모한 계산법을 따릅니다.

목동이라는 낯선 숲으로 걸어가는 나의 다짐

by Oh Hye In

책가방 뒷주머니를 정리하다가 꼬깃하게 접힌 종이 몇 장을 발견했습니다.영어 단어 시험지였습니다. 15개 중에 맞힌 건 하나, 많아야 둘. 나머지는 전부 빗방울처럼 동그라미 없이 흘러내린 백지의 비였습니다.


나는 아이를 붙잡고 훈계를 시작했습니다. 문득, 아이가 대답합니다.

“나만 그런 거 아니야. 다른 애들도 다 비슷해. 괜찮아. 안 죽어.”


맞는 말입니다. 단어 시험 하나로 인생이 결정되는 것는 아니지요...하지만 아이의 말에서 시험보다 더 많은 것이 무너져 있다는 것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이 아이가 잃어가고 있는 것은 단지 점수가 아니었습니다. 무언가를 끝까지 해보려는 용기, 집념, 삶의 태도같은 것들이 모래처럼 빠져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들더군요.


요즘 아이의 말끝에는 종종 거친 표현이 붙습니다.

“겁나 짜증”, “왜 시비야” “야!김OO!!(동생이름)”같은 말들이, 툭툭 일상에 섞여 들어옵니다. 놀랍게도 아이가 친구들이랑 대화할 때 보니, 동네 아이들이 똑같은 말투로 목청높여 싸움인지 대화인지 모를 소통을 하고있었지요.

방과후 수업은 도망가기 좋은 시간이 되었고, 어른의 통제에서 벗어난 사각지대에서 아이들끼리 지내는 시간들이 생겨났습니다. 급기야 엄마에게 말도 없이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편의점과 인형뽑기방을 전전하다 어렵게 아이를 찾았던 적도 있었지요.


나는 그 요상한(!) 변화를, 어느 날 문득 알아차렸습니다. 이건 공부의 문제가 아니라, 아이를 둘러싼 환경의 공기가 달라졌다는 신호라는 것을. 말의 온도, 놀이의 방향, 하루를 쓰는 방식까지, 조금씩 다른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것을.


그날 밤, 나는 오래도록 잠들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몇주 뒤, 조용히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더랬지요.


통장에 찍힌 숫자를 들여다보다 긴 한숨을 내쉽니다.

지금의 집보다 비싼 학군지로 무리해서 집을 구하느라 새로 받은 대출이자에 월세까지하면 대략 주거지출만 100만 원.


그 차가운 숫자 위로 '미칠 것 같다'는 말이 파도처럼 밀려옵니다. 계산기를 아무리 두드려봐도 정답이 나오지 않는 이 뺄셈의 문제 앞에서, 나는 덜컥 계약서에 도장을 찍어버린 것이지요.


남들이 보면 무모하다 손가락질할지도 모를 선택. 하지만 나는 이것을 '불안'이라 부르지 않고 '모험'이라 부르기로 했습니다.


어느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학군지'와 '비학군지'를 가르는 것은 화려한 학원 간판이나 일타 강사의 목소리가 아니라, 아이들이 마시는 '공기의 성분'이 다르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친구들이 만나서 스마트폰 게임 속 레벨을 자랑하는 대신, 서로의 꿈에 대해 서툴게나마 이야기를 나누는 곳. 시험 기간에 텅 빈 독서실이 아니라, 치열하게 책장을 넘기는 친구들의 뒷모습을 보며 "아, 나도 앉아 있어야 하는구나"를 본능적으로 배우는 곳.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그 '공기'를 선물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학원을 열 개씩 보내줄 능력은 내게 없습니다. 하지만 "힘들지? 그래도 같이 해보자"며 아이의 책상 맡을 지키는 치열한 사랑을 택하고 싶었습니다. 영상 속 선생님의 말처럼, 꿈이 없는 무기력함이 전염병처럼 번지는 곳에서 우리 아이들이 표류하게 두고 싶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나는 아이들에게 '성적표'가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를 가르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숙제 하나를 끝내기 위해 밤늦도록 끙끙대는 친구의 성실함을, 지각하지 않기 위해 땀 흘려 뛰어가는 친구의 책임감을, 그 건강한 긴장감을 아이들의 피부에 입혀주고 싶었습니다.


정말 그런지는 두고봐야겠지요. 저는 경험주의자인만큼, 두눈과 피부로 확인하고도 싶습니다. 학군지에 대한 이야기들은 신화일까요, 아닐까요?


그래서 나는 무리해서라도 떠납니다.


비싼 사교육비 대신, 엄마인 내가 아이들의 가장 든든한 러닝메이트가 되어주기로 결심하면서요. 비록 지갑은 얇아질지언정, 아이들과 함께 도서관을 거닐고 문제집을 채점하며 나누는 대화의 밀도는 더 단단해질 것입니다. 남들과 비교하며 우리를 갉아먹지 않고, 치열하게 노력하는 사람들 틈에서 "나도 꽤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건강한 욕망을 품게 하는 것. 그것이 내가 이 무모한 이사를 감행하는 진짜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주거비 100만 원은 집값이 아니라, 우리 가족이 함께 겪어낼 성장의 수업료일지도 모릅니다.


흔들리는 나뭇가지 위에서도 새가 노래할 수 있는 건, 나뭇가지가 튼튼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날개를 믿기 때문이라지요. 나는 나의 날개를, 그리고 우리 두 아들의 날개를 믿어보려 합니다. 불안 대신 설렘을, 한숨 대신 심호흡을 채워 넣으며.


우리는 이제, 목동이라는 새로운 숲으로 걸어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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