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웍에 우선순위를 두고 달려봅시다.

(1) 첫번째 부캐: 학생 & 연구자

by Oh Hye In

블로프트(Bloft)는 제가 새로 만든 형용사예요. ‘사실은 힘들어 죽겠는데 괜찮은 척 하면서 일을 계속 하고, 마치 실험실 쥐처럼 스트레스에도 무감각하게 반응한다’는 뜻이죠. 저는 지난 7년동안 매일 블로프트한 생활을 했어요. - 티나 페이 (작가 겸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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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유클리드로부터 직접 수학을 배우던 이집트 왕 프톨레마이오스는 그의 강의를 도통 이해할 수가 없던 어느 날, 스승인 유클리드에게 조심스럽게 제안을 했다고 하지요.

“이보게, 기하학을 더 쉽고, 빠르게 배울 방법은 없는가?”

아마도 여러 정무로 바빴던 왕은 초단기 속성 과외를 통해 기하학을 배우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왕이 요구하는 대로 해줬더라면 유클리드는 어쩌면 돈과 명예 얻었 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나... 유클리드는 대답하죠. “폐하.. 기하학에는 왕도(Royal Road)가 없습니다.”

이런.. 단호박도 이런 단호박이 없습니다. 학문의 길에는 편안한 길이란 없으며 왕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는 그의 가르침은 이후 다른 철학자의 기록에 의해 후세에 오래오래 전해지게 되었지요. 그가 언급한 왕도는 기원전 5세기 무렵, 페르시아 왕 다리우스가 건설한 길을 뜻합니다. 이집트와 그리스에 이르기까지 광대했던 제국을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만든 교통망으로서, 왕명을 전하는 전령들이 이 길을 1주일 만에 달렸다고 하니 얼마나 빠른 길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지름길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대학자의 말이 역시나 옳은 것 같습니다. 대학원에서의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면 결국 꾀를 내서는 공부가 되지 않는 것 같더군요. 끊임없이 직면하고, 계속 부서졌다 다시 세우는 지난한 과정들을 통해 한걸음 한걸음 발전하는 것 같아요.

대학원 과정 동안에는 방대한 양의 리딩을 소화해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그것이 영어원서인 경우는 부담이 더 심해지기 마련이지요. 통계는 또 어떻구요. 마음을 먹고 공부를 하기 시작하면 공부량이 정말 많아서 끝이 없다는 느낌에 절망에 빠지게 됩니다. 그런데 또 공부를 얕고 대강 하기 시작하면 또 그만큼 여유로운(?) 생활도 없는 것이 대학원 생활이지요. 여러분, 부디 공부에는 왕도가 없다는 절대 진리를 머리와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정도를 걸으시길 바랍니다. 결국 졸업할 때, 언젠가는 해야하는 공부를 미루거나, 피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코스웍은 매우 중요합니다. 코스웍이 여러분의 이후 여러분 대학원 생활의 질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예요. 물론, 200페이지 중 100페이지만 발췌독을 해도 리뷰페이퍼는 쓸 수 있어요. 능력의 60%정도만 가동해도 어찌어찌 종강은 올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 다시 강조할께요. 교수님께서 200페이지 리딩을 시키셨다면 되도록 성실하게 그 리딩을 완수해 가시기를 바랍니다. 원서를 통째로 읽어오라 했다면, 절망스럽지만 밤잠을 줄이며 해가셔야 합니다. 그래야 성장해요. 정말로 자기 것이 됩니다. 코스웍을 하고, 수업을 밀도있게 참여하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이 과정을 시작한 이상, 여러분은 학생으로서의 자기 역할에 충실한 것이 최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결국 우리는 지식개인사업자(?)가 되어야 하는데, 실력이 없으면 언젠가는 결국 그 부분을 채워내야 합니다. 두번, 세번 일하지 말고, 시간을 아껴봅시다.


공부하고, 과제를 해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세요. 필요하다면 일정기간 혹은 잠깐이라도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시스템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공부를 할 수 있는 “시간과 장소”를 확보하기 위해 절실하게 노력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일차적인 목표인 ‘성공적 수료’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 그냥 수료가 아닙니다. 성공적 수료를 하셔야 합니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하냐구요? 코스웍, 수업이 의무적인 것 같고, 형식적인 것 같 고, 도움이 안 되는 것처럼 여겨지고, 때로는 집중할 수 없어 회피하고 싶을 때도 있겠지만. 수료 이후에 “헤매임”을 최소화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4학기의 코스웍 시간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어 소화시키는 것 뿐임을 깨달았기 때문이지요. (제가 참 오래 헤맸거든요...; 그리고 나중에 깨닫습니다. 성공적 수료는 모든 일정의 첫번째 단계에 불과했음을...)


저는 학기 중에 둘째를 낳았습니다. 박사 3학기였고, 예정일이 11월인 상황이었어요. 마침 제왕절개를 해서 아이 낳는 날짜를 조정할 수 있었는데, 공백을 최소화 하기 위해 전공오후 수업을 듣고, 다음날 아침에 아이를 꺼냈(!)지요. 그렇게 2주 양해를 구하고 3주차에 복귀를 했습니다. 아이를 낳은 날 저녁, 마취에서 깨어나고, 젖몸살을 앓고, 마약성 진통제를 마구 눌러가면서도 다음주 리뷰페이퍼를 쓰기 위해 노트북을 열던 순간이 아직도 선하게 떠오릅니다. 그렇게 치열하게 사는게 디폴트였던 삶이었어요.

수업은 두 번 빠지게 되었지만 결국 모든 학우들과 똑같은 날 똑같은 시간에 과제를 올리고, 공백을 메꾸기 위해 다른 친구들보다 발제를 한 번 더 했던 것 같습니다. 교수님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하실때까지. 지금 생각하면 과도할 정도로 독하게 수업에 임했던 것 같아요.


엄마 학생을 배려하는 것이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문화였다면 그렇게 까지 나 자신을 증명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됐을텐데 하는 생각도 들지만... 당시에는 체력과 상황이 따라준 덕분에 그렇게까지 해낼 수 있었던 시간에 대해 후회는 없습니다. 그렇게까지 절실하게 공부에 매달려봤다는 의미니까요.

그렇게 절실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중에는 14개월 차이의 갓난쟁이 두 아들래미를 키우느라 체력적 소모가 왔고, 돌봄공백이 생기면서... 생각했던 것의 60-70% 정도밖에 달성하지 못했던 것이, 혹시나 긴 수료기간의 원인은 아니었을까 생각해보게 되며 후회가 남더라구요.


그러니 여러분, 생에 다신 없을 시간, 최선을 다해 뜨거워져보시길 바랍니다 ^^ 후배님들은 저같은 아쉬움을 남기지 않기를 진심으로, 간절하게 바랍니다. 코스웍 기간 동안만큼은 학교 수업을 일단 최고의 우선순위로 두십시오. 시간이 너무 없는 날은 결국은 아침잠을 줄이고, 저녁잠을 줄이며, 밥 먹을 시간도 없이 피폐한 시간을 보내게 될 수도 있겠지요. 코스웍 과정은 어쩔 수 없이 빡빡하고 힘들 수밖에 없는 시간들임을 그냥 인정하고, 받아들이는게 필요합니다. 왕도가 없는 거라고 생각하면서요. 함께 공부를 시작한 동기들도 다 똑같은 상황일거예요. 조금 힘들겠지만 2년의 시간을 꽉 차게 보낸다면, 수료를 하고 나서의 방황과 고통은 오히려 훨씬 줄어들것이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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