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이팅게일 Dec 29. 2023

불친절한 간호사가 되었다(3)

열정만 가득했던 나이팅게일 선서, 그리고 실습

나이팅게일 선서와 실습


2학년의 끝에는 나이팅게일 선서를 했다.

간호사로 살아감에 있어 그녀의 정신을 이어받아 의료행위를 하겠다는 선서.

별 것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의외로 가슴 벅찬 행사였다.

별 것 아닌 내가 뭐라도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당시에는 이런 기도도 했던 것 같다.

'나의 간호를 받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게, 그런 간호사가 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나의 간호를 받는 사람들의 안녕을 위하여 헌신하겠습니다'

나이팅게일 선서문에 있던 문구와 함께 임상에 실습을 나가는 나의 포부를 담은 기도였다.

거창한 포부 같아 보이지만 그래도 선서식을 하는 동안만큼은 다들 비슷하게는 생각하지 않았을까?

간호사라는 세계에 발을 이제야 딛는 학생들이 할법한 포부라 생각한다.

그렇게 3학년 봄이 찾아왔다.


3월 봄 나의 첫 실습이 시작되었다. 요양병동에서 진행되는 2주간의 실습.

나의 첫 임상실습은 가지런히 정리된 학교 실습실과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변이 가득한 기저귀를 보는 게 역겨웠고 관장을 하다 안되면 다른 관장을 시도하는 선생님들의 모습,

환자의 소변줄을 새롭게 삽관하는 장면은 깔끔한 실습실에서 연습했던 것과는 딴판이었다.

나는 한순간도 나서지 못하고 한 걸음 뒤에서 지켜만 보았고 선생님이 나를 찾지 않음에 안도했다.


그렇게 첫 실습을 하면서 충격을 받았다.

학교에서 배웠던 간호사는 전문가이며 이론적으로 환자의 상태를 사정하고 멋지게 의사와 소통하는 모습을 상상했었다.

그러나 내가 본 간호사는 그저 힘들고 어렵고, 더러운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물론 이 생각은 실습을 하면서 바뀌게 되었다.)

지금에서야 생각해 보면 참 무지했었다.

학생간호사니까 전체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어미 따라다니는 아기새처럼 실습하는 게 보통이기는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간호술기 부분을 좀 더 숙련하고 기본간호 공부를 꼼꼼히 했더라면 그렇게 소극적이게 행동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애초에 학생간호사에게는 어려운 업무를 맡기지 않기에 기본만 잘 숙지했다면 잘 해내었을 업무들이었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그러지 못했고 더 잘해볼 생각도 안 했었다. 그저 시간이 빨리 가기를, 나를 찾지 않기를 바랐었다.


열정 가득했던 포부는 어디에도 없고 피곤에 삼켜진 학생이 그냥 병원에 나와있었다.

'나의 간호를 받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게, 그런 간호사가 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기도는 거창했지만 나는 내 기도와는 반대되게 행동했다.

이때부터 나는 불친절한 간호사의 떡잎이었을지도 모른다.





작가의 이전글 불친절한 간호사가 되었다(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