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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 MIN Jul 03. 2024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 삶

인스타그램 없이 산다는 것

"해외 생활 인스타에 많이 올려줘! 대리 만족 하게."라는 말을 지인 혹은 친구들에게 여러 번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 그럴게."라고 웃으며 답했지만 속으로는 답을 알 수 없는 몇 가지 의문들이 떠올랐다. '근데, 꼭 나의 삶을 남에게 보여주고 공유해야 하는 걸까'라는 하늘에 뜬 뭉게구름 같은 잡을 수 없지만 거기 있다고 믿는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떠돌기 시작했다.


친구들 사이에서 인스타그램의 열풍이 분 건, 내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2015-16년쯤부터였던 것 같다. 막 수능을 치고 난 후, 고3의 자유를 만끽하려고 할 때 그 즘에 인스타그램도 함께 유행을 타기 시작했다. 사진을 올리고 친구들과 공유해 보라는 슬로건은 페이스북과 비슷한 듯했지만 '사진'만으로도 나의 개성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좀 더 간단하고 접근성이 쉬웠던 것 같다. 인스타그램이 본격적인 유행을 타기 시작하며 그리고 이제는 모두의 손에 '스마트폰' 하나를 쥐고 살아가는 세상이 되어가며 너나 할 것 없이 인스타그램의 계정을 만들곤 했다.


내가 인스타그램의 계정을 만들었던 이유는 사실상 인스타그램이 가지고 있던 앱의 취지와  아주 잘 맞아떨어졌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최대한 짧은 시간을 들여 픽셀 몇 조각들로 나의 인생을 보여줄 수 있다." 그리고 그 마음 저편에 어둡게 깔려있는 진정한 속마음은 '나는 이 경험을 하고 있지만 너는 하지 못하지'라는 경험을 기반으로 한 상대적인 우월감을 얻고자 하는 마음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든 자기가 이뤄낸 성취나 성과 혹은 경험에 대해 자랑하고 싶어 한다. 남들에게 내가 이만큼 멋있고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게 지극히 정상의 마음이다.


하지만 인스타그램은 그런 정상의 마음가짐을 극단적인 마음가짐으로 바꾸는데 강력하게 동조하는 것 같다. 내가 지금 당장 자랑할만한 성과, 성취, 경험을 못 이뤘다면 단시간에 돈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물질이라도 자랑을 하고 싶게 만든다. 그리고 주객이 전도되어, 나의 인생에 보여줄 만한 것이 있다면 인스타그램에 공유하는 것이 아닌 인스타그램에 공유하기 위해 나의 인생에 보여줄 만한 것을 적극적으로 찾고 만든다는 것이다. 어느 순간 내 인생에 일어나는 모든 일의 원인과 결과는 '인스타그램'으로 시작하고 끝이 난다.


인스타그램에 대한 또 다른 나의 생각은 이러했다. 인스타그램은 팔로우만으로도 서로에게 메시지를 보낼 수 있어 휴대폰 번호가 필요한 다른 메신저 앱들보다는 상대적으로 가볍고 캐주얼하기 때문에 나에게도 딱 그런 정도의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주로 나에게 메시지를 보내곤 했다. 하지만, 정말로 나의 인생에 필요한 관계들이라면 내가 인스타 계정을 지워도 다른 메시지 앱으로 나에게 연락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면, 그냥 거기까지인 관계들이 아닐까. 그리고 나의 모든 일상을 다 공유하면, 나중에 우리가 물리적으로 만났을 때 말할 이야기보따리가 줄어드는 거 아닐까? 우리는 단 한 번도 눈맞춤하며 이야기한 적 없는데 너는 나의 인생을 알고 나는 너의 인생을 다 안다면 우리는 더 이상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는 건 아닐까?


인스타그램이 물리적으로 가까이에 있지 않은 관계를 계속 이어준다는 점은 장점이 될 수도 있지만 나는 물리적으로 가까이 있는 관계들에게만 집중하고 싶었다. 물리적으로 나의 주변에 있는 모든 관계에만 집중하고 싶었다. 눈 맞춤을 할 수 있는 사람들, 친구들, 지인들 그리고 '현재'라는 시간 역시. 이곳, 지금 여기에서,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자연 그리고 모든 것에. 현재와 나를 연결하고 싶은 욕망이 마구 들끓었다.


인스타그램이 없는 삶에서는 여행을 가게 되면 나중에 인스타그램에 공유할 사진을 찍는데 집착해 어디서 찍어야 인생샷을 건질 수 있을까를 고민하지 않고, 지금 여기 이 멋진 풍경을 보며 들숨, 날숨을 내쉬고 있는 나에게 집중하고 열심히 지저귐을 내며 살아가는 새들을 듣고 언제나 우리를 변함없이 안겨주는 푸른 하늘을 한 번 더 보는데, 그런 것들에게 집중하곤 한다.






- When you gonna take it? 언제 찍을 거예요?


- Sometimes I don't. If I like a moment, for me personally, I don't like to have the distraction of the camara. I just want to stay in it.

가끔은 안 찍을 때도 있어. 개인적으로 어떤 아름다운 순간이 좋으면 카메라로 방해하고 싶지 않거든.

그냥 그 순간에 머물고 싶어.


- Stay in it?

순간에 머문다고요?


- Yeah, right there, right here.

그래, 바로 저기 그리고 여기에.


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영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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