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세 엄마와 35세 아들의 이야기
엄마의 환갑이었다.
벌써 60이라니. 건강하게 살 날이 20년도 남지 않았다는게 실감이 나지 않는다.
나는 매 해마다 엄마에게 금을 선물했는데, 이번 생일은 다음 사업준비로 바빠 금은방에 가지 못해
작은 상품권을 자체 제작했다.
사업준비하랴, 상품권 디자인하랴, 식당 예약하랴, 인쇄해서 코팅하랴... 나는 효자임이 틀림 없다.
(보통 효자는 이렇게 가끔하는것에 대해 생색은 내지 않는다. )
그렇게 생일 파티를 마치고 헤어진 후에
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뭐하고있어?"
"그냥 니 아빠랑 집에있지."
"그럼 나와. 한 잔 더 하게. 아까 다들 술을 안마셔서 아쉽더라고."
"그래, 어디로 갈까?"
간단히 엄마와 집 앞 술집에서 만나
엄마와 나의 사라져가는 젊음에 대해 이야기했다.
"엄마, 벌써 환갑이네. 이제 더 몸생각하셔."
내 말에 엄마는 쓰게 웃었다.
"그러고싶지. 그런데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너희들에게 손 안벌리지."
아직도 매일 일하는 우리엄마, 평생을 자영업으로 두 아들을 키워온 우리 엄마
차라리 직장인이었다면 퇴근이 있을텐데
자영업은 키가 154도 안되는 작은 중년 여성에게 하루 12시간 이상의 노동을 35년간 시키고 있었다.
"아니야 엄마... 올 해 사업만 마무리 잘 되면 이제 생활비 줄 수 있을 것 같아."
"너도 힘들게 돈 벌어서 써야지 어떻게 다 주고사니? 아직은 엄마도 움직일 수 있어서 괜찮다."
"엄마. 지금 일 하다가 나중에 치료비로 더 나갈 것 같아서 그래. 쓰는 돈의 총량은 비슷해."
평생 자영업을 해온 아들과 엄마의 대화는
늘 이렇게 사랑한다, 고맙다는 말보다는 돈을 아껴라, 또 아끼는 방법에 대한 기능적인 대화가 주를 이룬다.
그래도 위로는 해주고싶은 아들의 마음에
"봐, 난 내가 이렇게 빠르게 성공할 줄 몰랐어. 버킷리스트에는 1억 모으는게 30살이라고 적어놨는데 24살에 이뤘고,
엄마 아빠를 부양할 충분한 능력이 되는것은 사오십이 되어서나 가능할까 싶었는데 서른 다섯인 지금 그 순간이 코앞이야.
이 정도 사업가가 될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다 엄마가 돈 쓰는 법의 기틀을 알려줘서 그래."
스스로 다 컸다고 말하는 아들의 말에 엄마는 또 쓰게 웃음짓는다.
"그래서 더 안쓰럽지. 23살때부터 사업을 해왔으니...그 어린 몸으로."
"그래도 좋은 것도 많아. 전에 금수저 애들이랑 시비가 한번 붙었거든? 지 아버지가 나보다 돈도 많고, 지도 용돈을 몇백 받는다는거야. 그러면서 까불더라고.
그래서 내가 '내가 지금 가처분 소득이 너보다 훨씬 높고, 네 아버지 나이 되면 네 아버지만큼 돈이 많을테니 네 걱정이나 하고 내 앞에서 까불지말라'고.
젊은 나이에 소득과 소비에 대한 결정권이 있다는건 엄청 좋은 일이지.
그래도 좀 아쉬운건... 이제 35살이잖아. 몸의 전성기가 끝난걸 느껴.
이젠 반짝반짝 빛나는 20대의 열정, 삶의 주인공이 나고 세상이 날 주목하고 배려하는게 느껴졌는데
그 낭만의 시대엔 이제 내가 없다는것도 느껴져.
그 시대는 이제 나의 후배들이 빛을 사방에 뿌려대며 살고있지.
난 이제 뭐랄까... 그런것보단 중년의 노련미와 자본력으로 살아간달까... 회복력도 예전같지 않고.
그게 좀 아쉽긴 하네. 청춘에 좀 놀아볼걸."
23살에 가난과 부양이 무거워 사업을 시작 할 때도, 35살에 육체의 노쇠함과 시대의 교체를 느끼는 것도.
엄마는 그게 안타까워.
마치.. 언젠가 빨리 사라질 것만 같아."
엄마의 말이 뭔가 훅 와닿았다. 맞다. 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무엇이든 좀 빨리 느끼는 편인가?
짠, 엄마와 빨간 복분자를 입에 흘려넣는다.
"걱정하지 마시오. 오래 살아. 나도 오래 살테니까. 살다보면 좋은 날이 옵니다."
"그래, 오늘도 참 좋다. 아들 덕분에."
그 후로도 이런 저런 대화를 했는데
술을 많이 마셔서 기억이 나질 않는다.
성큼 다가온 나의 삶, 나의 나이, 그리고 지나가고 있는 나의 젊음이 아쉽다.
그리고 분명 젊었을텐데 정신없이 아들을 부양하고 살다보니
늙어버린 엄마의 세월도 아쉽다.
늘 감사하고 사랑하는 우리엄마
내가 조금 더 마음을 깎는 노력으로 사업을 영위하여
삶을 편히 연장시켜 드리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