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봄이 오면 앞다투어 활짝 피어나는 형형색색의 꽃들에 정신을 빼앗기곤 한다. 따뜻한 봄에 꽃망울을 터트려 개화하고, 무더운 여름이면 꽃잎이 떨어진 자리에 파릇한 잎이 울창하게 자라나고, 더위가 가시고 하늘이 높아지는 가을에 열매를 맺은 뒤 다시 수수한 모습으로 돌아가 겨울을 나는 식물의 한살이는 흔히 인간의 생애 주기에 비유되기도 한다. 하지만 식물마다 꽃이 피는 시기가 다른데, 흔히 생각하는 따뜻한 날씨의 늦봄이 아니라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초봄에 개화하는 매화,개나리,진달래 등이 있다. 이런 식물들은 다른 식물과 달리 '저온단일' 조건 하에서 꽃을 피우기 때문에 늦가을에 꽃봉오리를 만들고, 새싹을 품은 겨울눈과 함께 혹독한 겨울 추위를 견딘 후에야 아름답게 꽃을 피운다.
이런 식물들 중에서는 아예 온실에서 재배하면 꽃을 피우지 못하는 것들도 있다. 겨울종 밀과 보리가 대표적인 예인데, 겨울종 밀과 보리는 저온단일 조건, 즉 춥고 해가 짧은 겨울 시기를 거치지 않으면 개화하지 않고, 당연히 열매도 맺지 않아 밀이나 보리 낱알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이 식물들의 개화를 유도하기 위해 일정 기간 저온처리를 해주는 것을 생물학에서 '춘화처리'라고 한다. '봄이 되게 한다'는 뜻이다.
'춘화'라는 말뜻을 곱씹어 보면, 자연적으로는 춥고 해가 짧은 겨울이 춘화처리를 하여 밀과 보리를 열매 맺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개화를 유도하는 것이 따뜻한 봄이 아니라 혹독한 겨울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식물처럼 사람도 일생에서 돌아오지 않을 단 한번의 꽃피는 시기가 저마다 다를 것이다. 그리고 매서운 겨울을 견디고 꿋꿋이 피어나는 꽃은 온실 속의 꽃과는 차원이 다른 깊은 빛과 향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어떤 이들에게는, 혹독한 겨울과 같은 시련만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기도 한다. 보리나 밀 이삭처럼 말이다. 때로는 일평생을 따뜻한 온실 속에서 살아와 그린 듯 아름답게 피어난 이들의 삶이 부러울 때도 있다. 하지만 사과나무가 배나무를 부러워해서 무엇하며, 수선화가 해바라기를 부러워해서 무엇할 것인가? 태어나길 사과나무로, 수선화로 태어난 것을 부러워해서 어찌할 것인가? 하물며 나는 화려한 꽃도, 달콤한 과즙도 없는 보리로 태어난 것이다.
우리도 삶을 살아가며 매 순간이 따뜻한 온실 같지 않을 때가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보리 이삭처럼, 때로는 추운 겨울같은 시간들이 나의 개화를, 그리고 결실을 유도하는 춘화처리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살아가면 좋겠다.
사실 이미 눈치챘을 수도 있지만, 이는 교훈적인 글을 빙자한 나에게 쓰는 글이기도 하다. 남에게 쓰는 글에서는 세상 다 깨달은 척 하면서도, 사실 그 모든 것은 내가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 내가 듣길 바랐던 말이었던 것이다. 우리 각자는 모두 흔들리며 피는 꽃이라 되뇌이면서도, 매서운 추위와 바람 속에 홀로 꽃을 피우는 매화를 동경하면서도, 나는 항상 내가 꽃은 커녕 서늘하고 건조한 땅에 자리잡은 잡초같이 느껴지곤 했다. 산들바람에도 골백번씩 흔들리는 내가 과거의, 그리고 미래의 나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이 바로 이런 종류의 말이 아니었을까. 부러워해서 무엇하냐고. 내가 나의 겨울을 나의 봄이 되게 만들어야한다고.
그것을 깨닫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오래 묵혀둔 이 글을 완성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