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할머니의 용돈

by 월하연

토요일, 무려 민족 대명절인 추석 당일이었다. 코로나와 아빠의 근무가 겹치면서 우리 가족이 추석에 시골 할머니 댁에 못 내려가고 집에서 보낸 지도 벌써 몇 해째가 되었다. 명절 연휴라고 해도 가족들은 각자 일정이 있어 흩어지고, 명절 음식이나 두둑한 용돈도 없으니 전혀 즐겁거나 기대되지 않는 건 말할 것도 없었다. 오히려 남들 다 노는 명절 연휴에도 일하러 가야 한다는 사실이 더 서럽게만 느껴졌다.


나는 스무 살이 되고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과외와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기 시작했다.특히 과외는 2년 넘게 쉬지 않고 하고 있는데, 거의 매일같이 과외를 하다 보니 때때로 버겁고 지치기도 했다. 학생들의 성적에 대한 책임감과 부담감도 컸고, 과외에 할애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정작 내 공부에 오롯이 집중하지 못하는 것에 회의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학비를 벌기 위해서는 과외를 그만둘 수도 없었다. 언제까지고 이렇게 남의 공부만 가르칠 수는 없다는 생각에, 마냥 감사한 마음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던 처음의 마음과는 많이 달라진 나 자신을 문득문득 발견하게 되었다.


그날도 추석이었지만 여느 날과 다를 바 없는 토요일, 그러니까 과외 두 개를 하는 날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버스를 타고 1시간 가까이 걸리는 첫 번째 과외 장소로 향했다. 추석 당일에도 일하는 나도 나지만 추석 당일에도 공부를 해야 하는 고등학생은 오죽하겠는가, 학생도, 나도 기진맥진한 상태로 두 시간 반 짜리 첫 번째 과외가 끝이 났다.


중간에 시간이 붕 뜬 탓에 근처 카페에서 시간을 때우며 끼니도 대충 해결했다. 평소에는 이 시간에 다음 과외 준비를 하거나 책을 읽었는데, 그날은 무엇도 하기가 싫고 시간은 유난히 안 갔다. 연휴 동안 여행을 떠난 친구들의 SNS나 보고 있자니 괜히 심사가 뒤틀리는 것 같았다. 누구는 부모님 덕, 조상님 덕 잘 봐서 학비 걱정 없이 학교 다니고, 용돈도 두둑이 받고, 연휴에는 해외여행도 잘만 다니는데 나만 꽃다운 청춘에 왜 이러고 있을까? 하는 불만이 쌓여만 갔다. 설상가상으로 공휴일이라 버스 배차 간격이 너무 길어 다음 과외에도 조금 늦고 말았다.


두 번째로 과외 하는 학생의 집 근처에는 개천이 있었는데, 이번 여름 태풍이 지나가며 학생이 살고 있던 빌라가 침수 피해를 입어 당분간 근처에 살고 계신 할머니 댁에서 수업하고 있었다. 학생의 할머니께서는 항상 내게 잘해주시고, 간식도 매번 두 명이 먹기 과할 정도로 많이 준비해 주셨다. 추석 당일에 집을 방문한 것이 불편하실 법도 한데 그날도 커피며 과일을 한상 가득 차려놓고 맞아 주셨다. 하지만 내가 이미 지친 상태여서 그런가, 그날은 유독 그런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빨리 끝내고 집에 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전날 잠이 부족해 자꾸 졸음이 쏟아지고, 컨디션이 별로여서인지 준비가 소홀해서인지 실수도 잦고.. 이러면 안 되는데, 여러모로 엉망이었다. 겨우겨우 10시간 같은 3시간 수업이 끝나고 나니 이미 창밖은 깜깜해진 밤이었다. 천근만근인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가려고 나서는데, 학생의 할머니께서 따라 나와 나를 붙잡으셨다.


“선생님, 이거...”


그리고 손에 뭔가를 쥐어 주셨다. 꼬깃꼬깃 작게 접은 흰 봉투였다.


“이거, 명절인데 교통비라도 하시라고.. 너무 적게 넣어서 부끄럽네, 원, 그냥 할머니가 주는 거다 생각하고 받아요.”


뭐라 사양할 틈도 없이 손에 봉투를 꼭 쥐어 주시고 몇 번이고 너무 적어서 부끄럽다고 하셨던 할머니. 손녀뻘인 나에게 항상 ‘선생님’이라고 깍듯하게 불러 주시고, 내가 밤중에 집에 돌아갈 때면 늘 사양해도 대문까지 나와 배웅해주시던 분이었다. 부모님도, 친할머니도 챙겨 주지 않는 명절 용돈을 과외 학생의 할머니께 받게 될 줄이야, 오랜만에 받아 보는 따뜻한 온정에 생소한 감정이 밀려왔다.


동시에 도리어 내가 더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정작 나는 넘치는 대접을 받고도 시간만 채우기에 급급했던게 아닐까? 나도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누군가에게 과외를 받는 입장인 학생이었는데 말이다.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이 손녀를 향한 것인지, 손녀를 가르치는 나에게 향한 것인지, 둘 다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왜인지 모를 묘한 감정과 무거운 마음에 한참을 그 자리에서 발을 떼지 못했다.


깜깜한 어둠을 뚫고 달리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누군가를 가르치며 돈을 벌고 있다고는 하나 ‘어른’과도, ‘선생님’과도 거리가 한참 먼 사람 같다는 생각을 했다. 방향 잃은 원망과 자기연민만 쏟아내고 있던 내게, 할머니가 쥐어주신 용돈은 내가 인생을 살아가며 다시금 그런 감정에 사로잡힐 때 때때로 다시 떠오를 것이다. 이렇게 묵직하게 내 마음속에 박혀, 다시 또 처음의 마음을 떠올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씩씩하게 살아 나가게 할 것이라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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