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향한 45일간의 일정이 끝나고 매일 대성당 주변에서 놀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지나가는 말로 포르투갈 길도 있다고 했다. 하긴 유럽 사람들 중에는 자기 집에서 출발했다는 사람도 간혹 있었으니 포르투갈 길이라고 왜 없겠는가! 한참 '걷기'의 매력에 빠져 있던 때라 무작정 포르투갈 길을 걷기로 했다. 지도도 아무 정보도 없이!
이정표에 '포르투갈'이라고 써진 방향으로 몇 시간 걷자 한적한 시골이 나왔다. 기찻길 옆 마을 쪽으로 내려가자 레스토랑이 하나 있었다. 그 앞에 쪼그려 앉아 다리를 주무르고 있을 때, 가족 순례단이 나타나 너도 오늘 이 마을에 묵을 거냐고 물었다. 이 레스토랑에 알베르게 열쇠가 있다며... 그 말은 이 마을에 알베르게가 있다는 뜻이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그들을 따라갔다. 작고 깔끔한 알베르게. 부엌도 어찌나 깨끗한지 무슨 요리를 만들어도 맛있을 것 같았다. 순례자 가족은 짐만 풀고 레스토랑으로 식사하러 나가고, 나는 일기도 쓰고 노래도 부르고 수프를 끓여 먹으며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했다.
다음 날부터는 오직 감각에 의지해 걸었다. 양 갈래 길에선 화살표가 어느 방향에서 산티아고를 가리킬지 곰곰 따져보고 길을 선택했고 대부분 좋은 선택이었다. 하루에도 수 십, 수 백명의 순례자를 만나는 프랑스 길과 달리 포르투갈 길은 하루에 한 두 사람 만나거나 하루 종일 혼자였다. 또 포르투갈 길은 풍경도 왠지 더 낡게 느껴졌다. 그게 심한 아날로그인 내게는 완벽 그 자체였다. 길에 순례자가 없으니 알베르게 침대 맡을 걱정도 없고 나는 최대한 길에서 놀기 시작했다. 걷다가 힘들면 우비를 깔고 낮잠도 자고, 나무 그늘 밑이나 돌담 위에서 바게트 빵과 물을 먹고 마셨다. 영혼이 배불렀다. 이렇게 행복해도 될까... 싶을 만큼 미치도록 좋았다. 가슴께가 아파서 꾹 눌러줘야 할 만큼...
포르투까지 걷고 포르투가 워낙 예뻐 5일을 머물렀다. 이제 걷는 여행은 그만두고 관광을 해 볼까 하고 버스를 타고 리스본으로 갔다. 관광안내소에서 소개받은 리스본 유명 관광지를 며칠 둘러보는데... 졸리고 우울했다.
시골길을 걸을 땐 내가 어떤 옷을 입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인지가 중요했다. 그런데 도심 한가운데 있으니 내 몰골이 한심해 보여 자꾸 옷 가게 주변을 어슬렁거리게 됐다. 또 바게트 빵 하나로도 황제의 만찬이 부럽지 않았던 숲 속과 다르게 일본, 중국, 이탈리아, 아랍, 이집트... 식당도 다양하고 마트마다 먹을 것이 산처럼 쌓여 있는데도 입 맛이 없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당시 내 몸과 마음이 깨끗해져 있었기 때문인지 도시인들의 화와 분노가 너무 강하게 느껴졌다. 몸만 닿아도 째려보거나 혹은 주변에 무관심한 채 자기 세계 안에 머무는 사람들... 까닭 없이 소리 지르거나 이쪽으로 달려갔다 저쪽으로 달려가는 사람들.... 끝없이 쇼핑하고 끝없이 먹어 치우며 자신을 소모하고 소비하는 사람들... 심지어 누군가 내 에너지에 빨대를 꽂고 빨아먹는 느낌까지 들었다. 걷는 두 달 동안 자연 속에서 한 번도 지루하지 않았던 것과 다르게 볼 것, 놀 것 많은 대도시에서 지루해 죽을 것만 같았다. 하긴 포르투갈 보다 더 바쁜 서울에서 몇 년 살고 있을 때였으니, 내가 병들지 않을 수 없었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리스본에 머무는 동안 좋았던 건 트램을 타고 바람을 가르며 시내를 돌아다니는 거였다. 파두(포르투갈 전통 음악) CD 몇 개 사고 포르투로 다시 돌아갔다. 더 이상 포르투에도 머물고 싶지 않아 노란 화살표를 찾아 시내를 벗어났다. 거의 뛰다시피 걸어 도시를 벗어나 자연 안에 깃들자 그제야 숨이 쉬어졌다. 숲 속 너른 바위에 앉아 바게트 빵을 먹고 물을 한 모금 마시자 행복해서 가슴이 바르르 떨렸다. 알베르게에 들어가 순례자들과 수다를 떨자 사람이 보였다. 여럿이서 냄비 두 개로 불편하고 빠르게 요리를 해 먹고 알베르게 마당에서 해 지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아, 나 살아있구나. 자연 속에 들어가 살아야겠구나. 자연 속에 들어가 불편하게, 감히 세포 하나하나 살아서 살아야겠구나.' 결심하게 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