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에 사는 어떤 사람들은 여행자가 오면 그를 극진히 대접한 후, 밤새도록 그의 여행 이야기를 듣는다고 한다. 방금 전까지 길 위에 있었던 여행자의 낯선 이야기를 듣는 방식으로 그들도 세상을 여행한다고 한다.
나도 남들의 세계여행 이야기를 듣고 싶다. 아직 가보지 못한 수많은 비밀의 화원을 알고 싶고, 그들이 경험으로 만난 세계를 음미하고 싶다. 그래서 가게 한 편에 여행사진을 붙여놓았다. 내가 여행을 좋아한다는 정보를 알리고 손님들이 쉽게 여행 이야기를 풀어놓게 하기 위해서다.
요즘처럼 여행이 흔한 시대에는 수십 개국을 가본 사람도 흔하고, 외국여행 가는 게 분기행사인 사람도 흔하다. 하지만 어느 날 그들을 관찰하다 느낀 게, 외톨이 여행자가 흔하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길 위를 떠돌 때 만난 여행자들은 대부분 혼자였는데 그 많던 방랑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어느 날 부부가 와 식사를 주문한 후 아내 되는 분이 물었다. "혹시 이 사진 사장님이세요? 산티아고 순례길 다녀오셨어요?" "네. 좀 시간이 흘렀지만 저입니다." "혼자 다녀오셨어요?" "네... 저는 혼자 다녀서..." 그때부터 시작된 그녀의 방언... 안 무섭냐, 대단하다, 나도 가고 싶다, 부럽다, 내 버킷리스트가 산티아고길 순례하는 거다, 남편이 안 가준다.... "혼자 가시면 되잖아요?" 내가 묻자 "무서워서 혼자 어떻게 가요! 남편에게 같이 가자고 조르는데 무릎 아프다고 같이 안 가줘요. 죽기 전에 꼭 가고 싶은데..."
말 끝을 흐리며 그녀는 남편을 쳐다봤다. 남편은 허공을 쳐다봤다. 그리고 이어진 그녀의 이야기들... "제주에 내려 가 살고 있어요. 한달살이... 뭐 이런 거로는 제주 진짜 좋죠. 갈 곳도 많고 먹을 것도 많고... 근데 이게 삶이 되면 달라요. 집까지 짓고 살다 보니 쉽게 옮길 수도 없고... 제주는 말 그대로 섬이에요. 육지 사는 지인들이 놀러 와 고기파티 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피곤해서 점점 사람들 초대를 안 하니까... 사람이 섬이 돼요. 만날 사람이 없어요. 섬 원주민들은 우리 같은 외지 사람을 외국인처럼 대해요. 기본 예의는 지키지만 절대 자기들 안에 안 끼워줘요. 그렇다고 우리가 사람 만나려고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닐 수도 없고 맨날 가족하고만 얘기해요. 사람 만나려고 좀 나가보기도 했는데 결국 상처만 받고... 갱년기까지 심하게 와 마음이 너무 힘들어요.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재미있는 것도 없고, 몸은 너무 아프고..."
그녀는 딱 보기에도 우울해 보였다. 삶의 총기가 사라지고 난 자리에 허무만이 그녀를 갉아먹고 있는 얼굴이었다. "남편분이 같이 안 가주시면 한 번만 용기를 내서 혼자 떠나보세요. 길 위에 혼자 다니는 여행자 진짜 많아요. 그리고 여성여행자도 많아서 친구가 될 수도 있고요. 그리고 생각으로는 무서운데 막상 해보면 혼자 하는 여행이 진짜 진짜 재미있어요. 너무 좋아서 심장이 입 밖으로 나올 정도로...."
우울증이 심해 보여서, 그녀가 한 번만 자기 동굴 바깥으로 나가봤으면 좋겠어서, 혼자 하는 여행이 얼마나 재밌는지 알려주고 싶어서, 구구절절 혼자 하는 여행의 가치에 대해 읊조렸지만... 그녀의 눈은 말했다. 혼자 길 위에 나서는 일은 없으리라는 것을...
"내 버킷리스트인데... 죽기 전에..." 내 여행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녀의 어깨가 쓸쓸했다. '혼자'가 무섭다는 그 뜻을 깊이 들여다보면 결국 죽는 게 무섭다는 뜻이다.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에, 죽음에 가까운 허무 쪽에 남아 깜깜해지고 있는 그녀의 생.
가게에 오는 많은 사람들이 내 여행 사진을 보고 꼭 한 마디씩 한다. "혼자 여행하셨어요?" "우와, 대단해요. 멋지다" 나는 내 안의 질문들 때문에 몰아치듯 길로 나서게 됐고 그게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었다. 오히려 20년씩 한 직장에 장기근속하는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었다. 떠돌고 노는 거 누가 못하랴, 일상을 계속 똑같이 사는 게 힘들지. 그런데 요새 부쩍 젊은 날의 내가... 허름한 숙소에서 자고, 길에서 아무거나 먹고, 낯선 사람과 금방 친구가 되고, 겁도 없이 히말라야를 혼자 걷고, 아무나 따라가 새로운 모험을 했던 내가... 대단했었다는 생각이 든다. 돈이 있었거나 시간이 있었더라도 내 안에 갈증과 질문이 없었다면 나도 길 위에 나설 생각은 못 했으리라. 그리고 아마 혼자 하는 여행이 그렇게 가슴 뻑적지근하게 재밌고 환상적인지, 모국어로 꿈꾸는 게 얼마나 편한 일인지 절대 몰랐을 거다. 히말라야 같던 그 깊은 고독과 마주할 용기도 못 냈을 테고...
그녀의 남편은 "나는 안 가. 무릎 아프게 그런 델 왜 가!"라고 쐐기를 박았다. 함께 사는 이가 버킷리스트라는데도 같이 가줄 수 없는, 결혼이라는 이름의 외로움.
에드워드 호퍼의 '바다가 보이는 방' 그림이 생각난다. 방 문만 열면... 바로 바다가 있고 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바다의 푸른 냄새가 코 속으로, 뇌 속으로 들어와 내가 곧 바다가 되는 방. 다른 세계로 가는 입구 같은 방... 떠나고 싶지만 스스로를 가두는 자신의 '생각' 때문에 떠나지 못하는 그녀에게 그 방 열쇠를 쥐어주고 싶다. 그녀가 사막이 되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