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영혼을 구원한다 1

by 문경화

글을 읽는 당신은 충분히 사랑받은 사람인가? 배가 부르고 등이 따숩도록 충분히 사랑받은 기억이 있는가?


나는 누군가 나를 안아준 기억이 없다. 기억할 수 있는 아주 어렸을 때까지 기억을 떠올려 봐도... 아기였을 때야 누군가 안아주었겠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한 번도 '잘했다, 예쁘다.' 같은 말로 등을 토닥여준 이도 없었다.


핑계 같지만 어쩌면 그래서... 나 스스로를 사랑하기까지 오래 걸렸는지 모르겠다. 받아본 적이 없어서 '나' 스스로 사랑해도 된다는 걸 몰랐다. 어린 영혼에게 애정 부족은 채워지지 않는 큰 구멍과 결핍을 만들었고, 그 결핍은 스스로를 미워하게 만들었다. 세상이나 자기 자신을 부정적으로 보게 만들었고 타인의 애정과 인정을 몹시 갈구하면서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길 위에 나서자 언제든 누군가 나타나 나를 안아주었다. 틈만 나면 두 팔 벌려 안아주고 토닥여주고 발 벗고 나서 도와주었다. '어? 다들 왜 이러지?' 처음엔 어리둥절했고 다음엔 의심했고 그다음엔 내가 쌓아둔 벽을 두드려 보았다. 단단해 보여 안심하면서도 안절부절못하던 나는 깜짝 놀랐다. 나도 몰랐던 빛과 밝음과 사랑이 그 틈새로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인도. 혼자 하는 첫 장기여행. 긴장을 못 풀고 바들바들 떨며 버스로 네팔에서 인도 바라나시 가는 길이었다. 옆자리에 앉은 네팔 남자와 뒷자리 가족이 오렌지도 주고 비스킷도 나눠줘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그런데 문제는 오전에 출발한 버스가 자정이 다 되어 바라나시에 도착했다는 것이다. 초보여행자라 뭘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을 못 내리고 가방끈만 만지작거리고 있을 때, 옆자리에 앉았던 네팔 남자가 다가왔다. 자신이 숙소가 몰려있는 곳까지 데려다줄 테니 오토릭샤를 함께 타자고 했다. 자신은 군인이라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데려다주겠다는 것도 무서웠다.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나는 늘 삶으로부터 도망쳐 다녔다. 도대체 뭐로부터 도망치는 건지도 모르면서 늘 삶에 회의적이었다. 허무와 두려움. 부정과 염세... 그 모든 게 다 내 것이었다. 그래서 여행길에 올랐을 때 이게 마지막이라는 압박감이 있었다. '날자, 날자, 한 번만 날아오르자.' 그 마음은 결정을 내릴 때마다 '에이 죽기밖에 더 하겠어? 한번 해보자!'라고 도전하게 만들었다.


그 첫 관문이었던 바라나시. 나는 네팔 남자와 오토릭샤를 탔다. 그는 너무나 신사답게 숙소까지 잡아주고 혹시 문제가 생기면 연락하라며 연락처를 주고 갔다. 또 한 번은 어느 동네에서 새벽 3시에 버스터미널에 떨어진 적이 있다. 내가 가려는 목적지까지 가려면 버스를 한 번 더 타야 하는데 그 터미널에는 그곳으로 가는 버스가 없다고 했다. 주위로 모여든 인도인들이 기차로 가야 한다며, 기차역은 여기서 멀다고 했다. 그때 젊은 남자 하나가 다가오더니 자신이 오토바이로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새벽에 어떤 미친 여자가 처음 본 남자의 오토바이를 탈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나는 그 '미친 여자'였다. 큰 배낭을 둘러메고 오토바이 뒤에 올라타자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말리던 현지인들. 다행히도 그는 진짜 기차역까지 나를 데려다주었다. 기차역에 도착하자 마침 목적지까지 가는 기차가 들어왔고 도와준 그에게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부랴부랴 기차에 올랐었다.


또 한 번은 남인도에서 인도 부유층들이 여름 피서지로 이용하는 동네에 도착했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이름이 이뻐 들렸던 곳인데 나처럼 가난한 배낭여행자가 묵을 숙소는 없었다. 일루피에도 벌벌 떠는 가난한 여행자에게 수백 루피가 넘는 펜션은 그림의 떡이었다. 그렇게 숙소를 못 구하고 버스터미널에 다시 갔더니 버스는 이미 끊긴 상태였다. 다시 허름한 숙소를 찾아 돌아다니다 길에서 만난 핀란드 남자. 그는 내 얘기를 듣더니 자신의 숙소에 머물라고 했다. 자신은 교사로 재직 중인데 방학 동안 피서로 온 거라 좋은 숙소에 머물고 있다며 침대도 하나 더 있고 밥도 맛있다고 했다. 미친 나는 부유층들의 피서지가 궁금해 또 그를 따라갔다. 펜션까지 오토릭샤로도 한참 먼 곳이었다. 양쪽으로 나무가 늘어선 길을 따라 들어가자 커피나무가 정원에 조경수로 심어져 있고 인공호수도 있는 곳이었다. 인도 여행 중 가장 좋은 숙소였다. 그곳 정원에서 인도인들은 스탠딩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그동안 내가 봐왔던 사리와는 차원이 다른 사리를 입은 여자들이 샴페인 잔을 돌리고 있었다. 화려한 금은보화가 둘러진 몸에선 진한 향수 냄새가 났다. 거기서 묵은 이틀은 인도를 다시 생각해보게 했다. 인도를 가난하다고 인식하는 건 내가 가난한 곳만 가고, 부자들은 내가 닿을 수 없는 곳에 살기 때문이었다. 인도의 한 단면 밖에 블 수 없으면서 그동안 판단해 왔다는 걸 깨닫게 해 준 숙소였다. 어쨌든 식사는 원하는 시간에 테라스에 차려졌고 커피는 커피 농장을 산책하며 마실 수 있었다. 이 모든 경험이 내가 그 핀란드 남자를 따라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경험은 인도에 머문 일 년 동안 셀 수 없이 일어났다. 다람살라에서 혼자 산책하다 티베트 남자를 만나 아주 외딴곳에 있는 초등학교를 구경했던 일, 레에서 고도가 높은 사원에 혼자 갔다 윈숭이에게 공격받자 한 남자가 나타나 도와주고 살구를 나눠먹으며 내려왔던 일, 오르차에서 그 지역 주지 아들 결혼식에 참석해 인도 부자의 요란한 결혼식을 봤던 일, 리시케시에서 힌디 사두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움막에 갔다가 하시시를 피워대는 대여섯 사두들 틈에서 짜이를 얻어마셨던 일. 셀 수도 없이 일어났던 경험과 경험들...


어쩌면 결과가 나빴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언제나 좋은 경험만 겪었다. 두려움에 벌벌 떨던 내가 뻔뻔하게 모험을 가장할수록 멋진 경험이 나를 둘러쌌다. 그래서... 전 우주가 나를 돕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부정적이고 염세적이었던 사람 맞나 싶게, 전 우주가 나를 지켜주고 사랑해주고 있다는 생각에 감사 기도가 절로 나왔다. 사랑받고 자라지 못한 내가 사실은 충분히 사랑받을만하고, 충분히 사랑받았다는 것을 알게 하려고 전 우주가 역모하는 느낌이었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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