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언니 이야기

by 문경화

연희언니. 그녀 이름을 알기까지 2년이 걸렸다.


그녀는 내 최고 단골이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다. 하지만 포장만 해 가다가 가게에서 식사하기까지 2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녀 남편은 자신이 암에 걸리자 그녀 동생이 사는 시골로 내려와 집을 지었다. 남자, 오직 자신의 취향대로... 음악을 듣기 위해 오디오를 집 안 곳곳과 지붕 처마 밑에도 설치하고, 수집해 온 수십대의 카메라로 2층을 꾸미고, 골프채와 여행 기념품들로 현관을 장식하고, 침실은 작게 욕실은 아주 크고 넓게 만들었다. 집 안 어디에도 그녀, 여자의 색깔이나 취향이나 취미는 없었다. 심지어 부엌마저도...


그런데 집을 짓고 얼마 안 되어 그녀 남편은 돌아가셨다. 모든 걸 오직 남편에게만 의지해 온 그녀는 혼자 덩그러니 남아 오래 슬퍼했다. 오래 울었고 오래 아파했다. 그녀 남편의 취향만 남은 집에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다. 낯가림이 심하고 새로운 걸 극도로 거부하기에 다른 삶을 산다는 건 상상도 되지 않았다.


오디오에는 거미줄이 쳐지고 카메라에는 먼지가 쌓여갔다. 그녀는 남편의 집에서 잠들지 못했다. 밤엔 잠이 안 왔고 낮엔 정신이 몽롱했다. 텔레비전 소음 속에 꾸벅꾸벅 조는 게 다였다. 약을 처방받아먹기 시작했지만 두세 시간 자면 푹 자는 거였다. 다행히 남편의 연금이 나와 부족하지 않게 생활할 수 있어 그녀는 조심히 집 근처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다 얼굴이 익숙해진 카페와 식당에 가 앉아있는 게 유일한 취미가 되었다. 그러나 가게에 손님이 많거나 남자들이 많으면 돌아서 나오고 한가한 시간에 다시 들어갔다.


항상 김밥을 포장해 가는 그녀. 어느 날 내가 가게에서 식사할 것을 권유했다. 다른 손님이 아무도 없을 때를 골라. 커피 한 잔 드리고 싶다며 앉아서 식사한 후 커피 드시고 가라고 꼬셨다. 그녀의 흔들리는 눈빛에 집요하게 눈동자를 맞추자 그녀는 결심한 듯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그날 이후 자주 혼자 와서 식사를 한다. 바쁘지 않을 때는 내가 이런저런 말을 걸고 그러면 그녀는 자기 얘기를 조금씩 풀어놓는다.


하루는 식사 대접을 하고 싶다고 그녀에게 말했다. 둘이는 어색해할까 봐 주변 가게 언니들 둘과 나까지 넷이서 식사를 하자고 했다. 흔쾌히 고개를 끄덕인 그녀. 가게 메뉴 대신 겨울 쌈배추를 씻고, 갈치속젓을 준비하고, 나물을 무치고, 김치콩나물국을 끓이고, 돼지고기 주물럭을 볶았다. 각각 다 다른 식성대로 연희언니에게는 커피를, 다른 언니들에겐 각각 맥주와 음료를 대접하고 넷이서 유리잔을 기울였다.


나는 연희언니에게 밥을 먹이고 싶었다. 도란도란 여럿이서 침을 묻혀가며 먹는 밥상.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나고 별 것 아닌 이야기에 입 속을 헤 벌리며 웃는 그런 밥상. 동네 사람 흉도 보고 요즘 도는 소문도 이야기하고, 고기 한 점 숟가락에 얹어주고 잘 먹는 음식 접시는 앞으로 밀어주며... 잠을 잘 못 자서 늘 머리가 아프다는 그녀가 하루라도 많이 웃고 잘 먹고 잘 자길 바랐다.


안다. 나처럼 낯선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좋아하는 사람은 절대 그녀의 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집 주변만 이어폰을 꽂고 산책하는 그녀에게 세계일주를 꿈꾸는 나는 다른 행성 사람일 것이다. 몸이 불편해서 여행을 갈 수 없거나, 정말 형편이 안되거나, 성격상 여행 따위 꿈꾸지도 않는 사람도 세상에는 많을 것이다. 그런 이들에게 자꾸 여행을 가라는 건 말도 안 되는 오만과 독선일 테지.


때로 나는 이분법적 판단으로 사람들이 자기 우물에서 못 벗어나는 게 답답해 보일 때가 있다. 인정한다. 그리고 이게 위험한 발상이라는 걸 알고 나도 다른 우물 안에 있다는 걸 알기에 그 순간 어리석음을 자각하고 조용히 사과한다. 어쩌면 타인이 안쓰럽다거나 응원해주고 싶다는 건 순전히 착각일 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그들의 뼈와 살이 있고, 그들이 설정한 세계가 있으며, 그 바깥이 궁금하지 않고 벗어날 필요도 느끼지 않으며 불편하지 않을지도 모르니까.


모든 이를 설득하려는 건 아니다. 그런 욕망은 꿈꾸지 않는다. 사람마다 누구나 자기가 선택한 삶을 사는 것이고 뭐가 더 낫다고 할 것도 없기 때문에... 그럼에도 내가 여행을 강조하고 구원 운운하며 내 얘기를 떠벌리는 이유는 나 같은 결의 사람 때문이다.


마음 따라 몸이 따라다니는 삶이 답답하고, 세계는 자주 이해할 수 없으며, 태어났으니까 살기는 하지만 왜? 무엇을? 같은 질문에 잠을 이루지 못해 본 사람들... 시시때때로 허무하기도 하고 누군가 간절히 그립지만 또 딱히 떠오르는 얼굴은 없으며,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가 매우 어려운 그런 결의 사람들...


그런 결의 사람들은 한 번쯤 길로 나서봤으면 좋겠다. 예수가 광야에서 굶주림과 추위에도 진리를 찾고, 부처가 안락한 왕궁을 나와 스승을 찾아 떠돌며 진리를 찾아 헤맸듯... 우리도 우리 자신만의 진리를 위해 한번쯤 떠돌 필요가 있지 않을까? 진리란 그들이 찾은 것처럼 대단하거나 엄청난 것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 소박하고 가벼운 농담 같은 것일 확률이 높다. 하지만 길 위에 나서 그 농담을 알아듣는 자는 웃게 되고 살게 된다.


나는 연희언니에게 아무 주장도 하지 않는다. 뭘 바꿔보라고 조언하지도 않는다. 그냥 한 번씩 따뜻한 밥을 먹이고 싶을 뿐이다. 그것이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기에...


"왜 무탄트들은 깨닫지 못할까요? 내가 부른 노래가 단 한 사람이라도 행복하게 해 준다면, 그것은 훌륭한 일이라는 것을. 단 한 사람이라도 도울 수 있다면, 그것은 좋은 일입니다. 어쨌든 한 번에 한 사람밖에는 도울 수 없으니까요."


내가 좋아하는 책 <무탄트 메시지>에 나오는 구절이다. 나도 한 사람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여행 이야기를 하고 음식을 만든다. 떠날 수 있는 사람에게는 여행 이야기를, 떠나지 않지만 맛있게 먹는 게 치유인 사람에게는 음식을... 한 번에 한 사람씩.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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