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일, 아니 매 순간 놀란다. 지구는 어쩌면 이렇게 아름다운가! 찬란하고 황홀해서 미치고 팔짝 뛰겠다. 그리고 동시에 다시 한번 깜짝 놀란다. 세계는 어쩌면 이렇게 잔인한가! 전쟁, 피와 쇠와 모래바람의 살육, 극악무도한 인간의 광기와 욕망이 미치도록 무섭다.
인도 북부 스리나가르는 하우스보트로 유명한 곳이다.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일 때 영국 사람들이 여름 휴가지로 쉬다 가던 아름다운 호수 도시. 물 위에 배로 만든 집들이 떠 있고. 호수에 인공적으로 만든 밭엔 야채가 주렁주렁 달려있다. 또 니샤트 박, 살리마르 박 같은 무굴시대 정원이 경이롭게 빛나고 있고 알프스를 닮은 소남막, 굴막 등의 초원이 융단처럼 정갈한 곳... 아름다움이 흘러넘치는 곳이다.
그러나 이곳은 심각한 분쟁지역이다. 인도와 파키스탄 분리 독립 때, 힌두교도 왕이 이슬람 지역인 캐슈미르를 인도로 영입했고 그 결과 이 지역 주민들은 여전히 독립을 주장하며 테러를 일으킨다. 시내 곳곳에 총을 찬 군인이 돌아다니고 남자들을 멈춰 세운 후 신분증을 보여 달라고 하는 일이 잦다.
인도를 여행하다 스리나가르에 도착하면 다른 나라에 온 듯한 분위기에 놀란다. 호기심으로 가득 차 호구조사부터 시작하는 인도인들과 다르게 무척 경직돼 있는 스리나가르 사람들. 잦은 분쟁으로 긴장감이 삶에 배어 있기도 하고, 종교 탓일 수도 있다. 거리엔 음악이 흐르지 않고, 가게는 깨끗하며, 구걸하는 이도 거의 없고 남녀 모두 키가 크고 피부는 하얀 서아시아 사람들 외형이다. 심지어 이름도 '스위트'인 인도 디저트와 다르게 빵과 짜이마저 짠맛이 지배적인 스리나가르.
나는 유명한 달(Dal) 호수가 아닌 시내에 근접한 랄 초크 근처 하우스보트에 머물렀다. 작은 배 시카라를 타고 매일 호수를 건너 다니는 대신 스스로 걸어 다닐 수 있는 곳에 숙소를 잡았다. 내가 묵은 숙소는 외국인 여행자가 거의 오지 않는 오지 같은 숙소였다. 가끔 인도 단체여행객이나 묵을 뿐, 실은 그마저도 거의 없었다. 그곳에 머문 한 달 동안 거의 대부분 내가 유일한 손님이었다.
그 하우스보트에는 택시운전사인 큰 형 부부와 그들의 아이들 소피아와 아딥, 손님 호객을 맡고 있는 둘째 동생, 그리고 살림을 맡고 있는 막내 여동생 사비나... 이렇게 여섯 명이 살고 있었다. 사비나가 큰 오빠 부인을 바비라고 부르는 걸 듣고 나도 그녀를 바비라 부르기 시작했다. 처음 일주일 정도, 그들은 나를 경계했다. 빨래를 널러 하우스보트 지붕 위로 올라가는 나를 어디선가 몰래 지켜보는 식이었다. 게다가 큰형과 둘째 형은 동양 여자에 대한 호기심으로 며칠 나에게 추파를 던지기도 했다.
보통의 여행자처럼 바쁘게 구경 다니지 않고 산책만 하거나 낮에 잠깐 나갔다 금방 들어오는 나를 그들은 이상하게 여기는 눈치였다. 그러다 일주일쯤 지나자 자기들 식사 시간에 부르기 시작했고 차 마시는 시간엔 소금 넣은 짜이를 줬다. 달디 단 짜이 대신 담백한 짜이 같은 그들은 그렇게 천천히 나를 받아들여줬다.
바비는 큰 키에 덩치가 크고 잘 웃지 않는 여자였다. 오래 머물며 밥을 얻어먹게 되자 나도 빵이며 과일을 사다 날랐는데, 하루는 빵을 한가득 사 오자 또 돈을 많이 쓴다며 바비가 화를 냈다. 내가 구석에 가 무릎 꿇고 손을 들고 있자 식구들 모두 배를 잡고 웃었고 화내던 바비마저 고개를 뒤로 젖히며 웃었다. 그 뒤로 그녀는 나를 시장에도 데려가고 친척 집에도 데려가고 이웃에게 소개하기도 했다. 하루는 머리가 아프다고 하자 몸짓으로 자기 무릎에 누우라고 한 뒤, 이마를 꾹꾹 눌러주었다. 그녀 무릎에 누워 하우스보트 창문 사이로 올려다본 하늘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리고 소피아와 아딥은 초등학생이었는데 처음엔 나만 보면 숨다가 어느 순간부터 학교 다녀오면 나부터 찾았다. 함께 공기놀이도 하고 줄넘기도 하고... 하루는 갑장스런 태풍으로 하우스보트가 뱅글뱅글 돌다가 떠내려갔던 적이 있다. 마침 집에 어른이 아무도 없던 날이었는데 아딥이 내 이름을 목놓아 부르며 내가 탄 하우스보트에 무슨 일이 생길까 걱정하며 울었던 게 생각난다.
하지만 내가 그곳에 한 달이나 머물렀던 건 사비나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사비나는 막 스무 살이 된 여자였다. 벌써 스스로 늙었다고 말하던 스무 살 청춘. 몇 년째 학교도 가지 않고 집에서 밥하고 빨래하고 텔레비전만 보던 어린 여자 애. 가끔 해 질 녘에 가까운 이웃집에 놀러 가면서도 스카프로 얼굴을 꽁꽁 가리던 그녀는 입만 열면 죽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다. 2년 전 약혼했다는 남자 사진을 보여주며 수줍게 웃기도 했지만 대부분 그녀는 우울해했다. 내가 보기에 그녀의 우울증은 깊었다.
내게 사비나는 오빠 집에서 살림만 하다 다시 결혼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남자의 집에 가 살림만 할 무슬림 여성으로 보였다. 인권도, 사랑도, 꿈도, 자기 인생도 막연한 무슬림 여성의 한 단면처럼 보였다. 물론 자기 세계를 확장해 가는 여성도 있겠지만 내가 만난 대부분의 무슬림 여성들은 종교와 가족, 사회의 이름 아래 살았다. 설령 결혼한 여자가 가정 내에서 목소리가 크다 해도 그건 울타리 안에서만 해당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건 단지 무슬림 여성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많은 아시아 여성들에게도 해당하는 일이었다.
나는 사비나가 자꾸 눈에 밟혔다. 마음대로 여행 다니고, 공부나 일도 어느 정도 마음껏 할 수 있고, 진로 때문에 친구들과 술 마시다 고주망태가 되어 길에 쓰러지기도 하고, 연애하다 실컷 헤어질 수 있는 내 보통의 삶이 그녀에게는 당연하지 않다는 게... 자꾸 미안했다. 내가 미안할 일이 아니라 해도 자꾸 마음이 쓰였다. 수다라도 떨고 등이라도 쓸어주며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할 수 있는 게 그것 말고 딱히 아무것도 없어서...
스리나가르를 떠나기 이틀 전 사비나가 내 방으로 들어와 안에서 문을 잠갔다. 그리고 그녀가 부탁했다. 자신의 사진을 찍어달라고... 사비나는 몸을 꽁꽁 가렸던 옷을 벗고 몸매가 드러나는 청바지와 짧은 셔츠를 입었다. 또 짧은 치마와 액세서리를 걸친 채 머리카락을 풀어헤치고 요염하게 카메라를 응시했다. 그때 카메라 앵글로 마주쳤던 사비나의 그 눈빛, 잊히지가 않는다. 그 짧은 순간, 그녀는 무엇을 욕망했을까?
나는 그날 바로 필름을 현상해 사비나에게 사진을 갖다 바쳤다. 그녀는 오랫동안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잠깐 알 수 없는 미소를 짓더니 자기 방 액자 뒤에 사진을 숨겨놓고 콧노래 부르며 부엌으로 돌아갔다.
전쟁을 일으키는 자들, 민족이나 정권을 없애기 위해 의자에 앉아 미사일을 쏘는 자들... 그들이 한 번이라도 길게 세계를 떠돌았다면 전쟁을 일으킬 생각 따위 하지 않으리라 확신한다. 이념, 종교, 민족주의, 자본, 하나의 숫자가 아니라 그들이 총을 겨누는 그곳에 사람이 산다. 무수한 사비나와 바비들이 산다. 소피아와 아딥 같은 아이들이 산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열심히 사는 평범한 남자들이 산다. 그들은 숫자가 아니다. 그들은 이념이 다른 민족주의자 덩어리가 아니다.
여행하며 현지인과 개인적 관계를 맺고,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을 애정하게 되면 알게 된다. 그들도 부서지기 쉬운 뼈와 살로 된 연약한 한 인간이라는 것을... 사랑과 꿈을 찾아 지구를 헤매는 영혼의 순례자라는 것을... 전쟁을 일으키는 자들이 제발 알았으면 좋겠다. 양을 치고 차를 마시고 일용할 양식을 구하기 위해 하루를 사는 무수한 사람들이 저곳에 있다는 것을... 그 사람들도 죽음이 아니라 삶을 원한다는 것을, 간절히...
언젠가 내 발길이 다시 인도로 향한다면 스리나가르에 다시 가고 싶다. 사비나를 다시 만나고 싶다. 그녀가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기를... 그녀가 결혼해 아이도 낳고, 살아갈 어떤 이유를 찾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