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2024년 11월에, 남편이 귀촌을 했다. 5년 전에 사놓은 집터에 아담한 집을 지었다. 서울살이 할 때는 평수가 작은 집에서 살았던 터에 주방의 크기가 협소했다. 김치라도 할라치면 좁은 공간은 더 좁게 느껴져 '좁음'에 대한 스트레스가 하늘을 치솟았다. 그러다 보니 차츰차츰 김치를 사 먹는 주부가 되어버렸다. 컨테이너 한채만 달랑 있던 곳에 증축 리모델링을 할 때 내 요구는 딱 한 가지였다. 크게! 더 크게!
'좁다'는 것이 너무 불편한 나와는 다르게 둘이 살 건데 넓으면 뭐 해!라는 의견을 갖고 있는 남편과 살짝 충돌도 있었다. 최종적으로 내 의견을 받아 준 남편의 배려 덕분에 정말 크게, 방 한 칸을 더 만들 수 있었다. 집 짓는 아저씨들이 '사모님, 이 방 다 지어 놓으면 너무 커요!' 라며 만류하는 것도 귀담아듣지 않았다. 끝까지 고집을 부려 나의 '크게!'의 뜻을 관철시켰다. 다 짓고 나니 정말 방이 컸다. '정말 크네!' 안도의 깊은숨을 몰아쉬며 자유를 만끽했다. 나는 드디어 좁음 안에서 느껴야 했던 짜증, 좁음이 주던 불편함, 좁음에서 느끼던 가난함에서 도망치는 데 성공했다. 그 방에 장롱, 화장대, 와이드 서랍장, 문갑, 5단 서랍장, 침대와 같은 새 가구들을 마음껏 들여놓았다. 미니멀리스트의 삶도 좋지만 소유하는 기쁨을 잔뜩 누리며 즐겼다. 넓은 방에 놓인 장롱들을 볼 때마다 나의 안목에 감탄하면서 말이다.
'오늘의 집' 웹 사이트에 올라온 예쁜 주방들을 보고 또 보다가 우리 집 분위기와 잘 맞는 주방을 발견해 똑같이 제작을 의뢰했다. 나는 마음에 쏙 드는 넓은 주방에서 다시 김치를 담그기 시작했다. 절인 배추와 파를 스테인리스 대야에서 버무리면서 '바로 이거지!' 하며 좁은 집에서 살았던 답답함의 한을 풀었다. 남편에게도 큰 책상과 꽤 넓은 맞춤 책꽂이를 선물했다. 둘이 살면서 넓으면 뭐 해! 하던 남편도 큰 책상과 넓은 책꽂이를 내심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다. 그래서 덩달아 더 행복해진다.
남편과 나는 처음 집을 짓는 것이어서 시행착오도 참 많았지만 이 집이 참 마음에 든다. 아직은 버리고 비워야 하는 미니멀리스트의 삶보다 소유의 삶에서 더 행복을 느끼는 나를 존중하면서 사랑할 것이다.
언젠가는...
소유의 삶의 무대에서 내려와야 할 때가 있겠지 하며,
'미니멀리즘'을 삶 전체에 접목한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고 있는 박건우의 <나는 미니멀 유목민입니다>를 읽으며 커피 한 잔을 마신다.
"보통 삶의 터전에는 없어도 그만인 물건과 있어도 안 쓰는 물건이 가득하다. 수입의 일부는 없어도 그만인 물건을 사는 데 쓰고, 또 일부는 물건을 수납, 유지하는 물건을 사는 데 쓴다. '필요 최소주의 미니멀리즘'은 이런 소비를 멀리하고 충동 소비 욕구를 억제한다. 미니멀리스트가 충동구매를 했다면 단지 구매 시기를 앞당겼을 뿐이지 즉흥성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미니멀리스트는 기준이 철벽같이 확고하고 기준대로만 지출하므로 자본주의가 놓은 소비 패턴의 덫에 걸려들지 않는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감당하지 못할 지출을 저지르고 메우는 악순환이 없어졌다. 실로 여유 그 자체다. 적당한 경제 활동을 해나가는 이상 어지간한 핑계로도 돈이 없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