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면 나는 늘 ‘문학’을 동경했다. 1965년 11월에 창간된 <여학생>이라는 월간 여학생 잡지가 있다. 중학교 시절 그 잡지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여학생>은 창간 당시에는 A5판으로 발행되었으나 1981년 1월호부터 B5판으로 변경하여 발행되었다. 꿈과 지혜를 길러주는 명작 및 위인들의 발자취, 10대의 여성 생활에 필요한 지혜가 담겨있었다. 1990년 11월 재정난으로 폐간되며 아쉽게도 여학생들 곁을 떠났다.
<여학생> 잡지의 뒷부분에는 독자들의 사연이 실렸다. 글을 잘 쓰는 방법을 묻는 이들에게 글 좀 써본 사람들이 해주는 대답이 있다. '필사! 필사를 해보세요. 필사!' 나는 필사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중학생 시절부터 마음에 와닿는 사연들이 있으면 그 글을 그대로 따라 적었다. 마치 받는 이라도 있듯이 예쁜 꽃무늬 편지지에 필사해서 더 예쁜 봉투에 담아 차곡차곡 모아두었었다. 어떤 날은 그 사연의 주인공이라도 된 듯 착각하면서 눈물을 훌쩍이기도 했으니··‘너는 문학소녀였구나!’라고 추억 속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런 나는 어른이 되었고, 어느 날 문득 나 자신이 초라하고 무력하게 느껴졌다. 머리카락에는 흰 눈이 내렸고, 얼굴에는 주름살이라는 세월 흔적도 생겼다. 이제 선뜻 말하고 싶지 않은 나이가 되어버렸고, 친구들을 놀러 오라고 초대하고 싶지 않은 집에서 살고 있고, 막말을 의식 없이 던지는 청소부들 속에서 나도 그들처럼 청소를 업으로 삼으면서 살고 있다.
어쩌다, 이렇게 형편없는 어른, 노인이 되어버린 걸까.
그때 나는 내가 뭘 잘못했을까 생각했다.
대학생 때 더 열심히 하지 않은 게 잘못이었을까?
그때 수녀원에 간 것이 잘못된 선택이었을까?
그때 이 남자, 남편과 결혼한 것이 잘못이었을까?
학습지 교사 일을 좀 더 버티어야만 했던 걸까?
학습지 교사일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해보려 했던 게 잘못이었을까?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잘못이 없었다.
물론 내 인생에는 실수와 방황과 오류가 있었지만, 그건 삶에 있을 수 있는 시행착오가 아닌가. 아무 잘못 없는 내가 왜 이렇게 초라함을 느껴야 하는지 알고 싶었다.
그때부터이다. 다시 책을 읽고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취미로 읽은 게 아니라 정말 왜 내가 나를 초라하게 생각하면서 살고 있는지가 궁금해서 읽었다.
나는 왜 나를 초라하게 생각하는가에 대하여.
나는 왜 부자가 아닌가에 대하여.
나는 왜 아무것도 아닌가에 대하여.
궁금증을 해소해 가며 내가 내린 최종 결론은 ‘내가 나 자신으로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나를 초라하게 생각하면서 살고 있었다.
세상이 나의 존재를 무가치하게 여길지라도, 내가 나를 존중하고 나로서 당당하게 살아간다면 나는 나로서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거였다.
문학은 이렇게 다시 나를 다시 살리고 있다.
쇼펜하우어는 말한다.
“물고기는 물에 있어야, 새는 공중에 있어야, 두더지는 땅속에 있어야만 행복하다.”
그럼 나는 어디에 있어야 행복할까?
“모든 인생은 고통이다.”라는 쇼펜하우어의 말에 진하게 공감할 수 있는 나이와 경험이 쌓인 나는 과연 어디에 있어야 행복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이제 주저없이 말할 수 있다.
“나는 문학 속에 있을 때 행복하다.”
쇼펜하우어는 언제 어디서나 자기 자신만으로 행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기 자신으로 행복하기 위해서는“온전히 혼자 있어 보라.”고도 그는 말한다.
남편 혼자 귀촌하고 난 요즘 온전히 혼자 있는 시간이 참 많아졌다. 혼자 있는 시간을 문학으로 꽉꽉 채운다. 쇼펜하우어, 니체도 혼자만의 시간에 초대한다. 그들은 언제든 어디서든 나의 초대에 응해준다. 그래서 나는 혼자 있는 시간에 문학과 함께 있다. 함께 하는 문학은 혼자로 설 수 있는 지혜를 준다.
쇼펜하우어 문학이‘하루하루는 하나의 인생이다’라는 진리를 가르쳐 주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는 연속적인 것이 아니라 단절된 것이다. 과거는 지나가서 없는 것이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아서 없는 것이다. 오직 있는 것은 현재이고 우리는 오직 현재만을 살뿐이다.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본문 중에서
현재만이 진실이다!
이 진실을 잊지 말고 오늘을 즐기면서 내가 나 자신으로 행복하게 살자.
이렇게 문학 속에서 내가 나를 왜 초라하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풀었고, 내가 나를 초라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까지도 찾았으니 오늘 하루 인생은 성공한 인생이다. 그러면 됐다.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