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이란 무엇인가 : 오자키 테츠야
아름다움이나 완성도를 추구하는 아티스트는 분명 존재하지만, 현대미술의 창작기법이 뒤샹의 말처럼 '항상 선택하는 일'이며, 아름다움은 뒤샹 적 원리에 따라 배척되어야 한다. 한편, 완성도는 높을수록 좋기 마련이다. 때문에 여기에서 고려해야 할 동기에는 해당될 수 없다. 물론 기술의 편차는 있기 마련이기에. 제작이 끝난 작품의 완성도를 비교하고 우열을 가릴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감상자가 판단하는 것이며, 작가라면 누구나 베스트를 목표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완성도는 창작의 전제이지 창작의 동기는 아니다. 금욕적인 언명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뒤샹에게도 '취미'가 있었던 것이 확실하다.
<샘>만 해도, 일부 변기 마니아(?)를 제외하면, 누구에게라도 악취미처럼 보일 것이다.
악취미도 취미라는 말이 억지스럽게 들린다면 본인은 '좋은 취미든 나쁜 취미든'이라고 단언했지만, 그의 대표 작 (그녀의 독신자들에 의해 발가벗겨진 신부, 조차도, 일명 (큰 유리))는 어떨까?
작품 하단에 보이는 '독신자 기계' 초콜릿 연마기와 물레방아에 대해, 화가이자 미술사가인 존 골딩은 '부정하기 어려운 우아함을 지녔다고 평했다. 이것은 완성도까지를 포함한 평가라 생각한다. 1931년, (큰 유리)가 운반 도중 깨지고 말았다. 복구에 나섰던 뒤샹은 크게 활을 그린 듯 갈라진 균열의 모양이 마음에 들었고, 훗날 "보면 볼수록, 이 균열이 좋아진다."라며, "나는 이것을 '레디메이드'의 의도라 부르고 싶다. 나는 이 의도를 존중한다."라고 했다. 우연성, 혹은 '레 디메이드의 의도'가 가져온 결과라고는 해도, 이것은 취미에 해당한다 봐야 하지 않을까? 우발적으로 생긴 균열의 형태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가마의 온도와 유약의 변수에 의해 뜻 하지 않은 요변이 생긴 도자기의 아름다움마저 사랑하는. 동양 도공의 마음과도 상통한다고 여길 수도 있다.
아름다움을 포함해야 한다면 첫 번째 동기 새로운 시각: 감각의 추구가 적합하다. 감각적인 임팩트에 도움이 되는 아름다움은 당연히 있을 수 있다. 아티스트는 임팩트를 만들기 위해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편이 이치에 맞을 것이고. 천하의 뒤샹 도 이 정도는 용서해 줄 듯하다.
작품 감상의 프로세스란?
노파심에 반복하지만, 순수하게 한 가지의 동기만으로 완성되는 작품은 거의 없다. 대게의 모든 작품은 일곱 가지 동기 전부는 아니더라도, 여러 동기를 갖고 있다. 창작의 여러 가지 동기는 '임팩트, 콘셉트, 레이어의 레이어를 늘리고 두텁게 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 레이어는 문자 그대로 작품의 매력을 겹겹으로 중층 시킴과 동시에, 감상자가 작품을 감상하고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현대미술을 본다 즉, 듣는다, 체험한다는 것은 어떤 행위인지, 여기에서 도식적으로 이야기해 보려 한다.
감상자가 작품을 접한다. 평범한 작품이 아니라면, 가장 먼저 임팩트가 있을 것이다. 속된 말로 선빵이다. 다음으로 감상자는, 작품을 구성하는 요소들에서 무언가를 연상하거나 상기하거나 상상하기도 한다. 현대미술 작품이 상상력을 자극한다'라는 말은 바로 이 뜻이며, 레이어 란 한마디로 말해 '연상한 일. 또한 것, 들'의 총체를 말한다. 역사적인 대사건, 수학 공식, 꼴 보기 싫은 상사. 개나 고양이, 유령. 어릴 적 좋아했던 것들, 그날의 점심, 사회 문제. 인터넷을 달렸던 사건, 예전에 읽은 소설, 언젠가 들었던 사랑 노래. 유명한 건축, 다른 아트 작품 등. 삼라만상이 그 어떤 것이 될 수 있다. 머리에 떠오른 그 연상들, 즉 복수의 레이어를 정리하고 골라내고 선택한 후. 선택한 것들끼리 연결한다. 그리고 그 결과로 생기는 새로운 연상으로부터 창작의 동기나 콘셉트를 추측한다. 뛰어난 작품은 이중 삼중의 레이어를 형성하고 있어, 연상 자체를 풍성하게 한다.
납득되는 콘셉트가 떠오르고, 임팩트 등과 어우러져 '멋지다.!'라는 생각이 들게 되면, 뇌의 보수계가 활성화되어 쾌감을 느끼게 된다. 뭔지 잘 모르겠다거나 재미없다는 생각이 들면, 보수계가 억제되어 불쾌감을 느끼게 된다. 뒤샹이나 움베르토 에코가 말하는 '열린 작품'은, 이 처럼 감상자가 작품을 받아들이고 해석함으로써 비로소 '문을 닫는다. 이것이 이상적인 현대미술의 감상법이다.
당연히 무엇을 연상하는지, 어떤 콘셉트가 떠오르는지는 사람에 따라 제각각이다. 연상이란, 외부로부터의 자극이 개인의 신체나 신경계에 작용하여 방대한 기억의 뭉치를 검색해, 자극과 일치하는 특정한 정보를 발견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인생 경험도, 축적된 기억의 질이나 양도 사람마다 완전히 다르다. 좋아하는 음식과 싫어하는 음식이 있고, 연애 상대가 사람마다 다르 듯이, 예술 작품에 대한 평가는 천차만별이다. 현대미술뿐만 아니라, 예술 표현,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절대적인 평가는 원리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비평가들은 AI로 대체되기 전에 모두 폐업해야 할 것이다. 보리스 그 로이스와 같은 뛰어난 비평가라 해도 예외 일 순 없다.
생각해 보면, 비평가 란 극한 직업이고 그들은 대담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의 경험에 비추어 사물을 평가하고 판단한다.
경험이 작가에 비해 적으면 평가를 그르칠지도 모른다. 그리고 경험이 적다는 것을, 작가를 포함한 경험이 많은 사람들에게 들켜 버릴지도 모른다. 그 혹은 그녀는 그러한 리스크를 알면서도 자신이 전지전능한 존재라는 듯이 자신 있게 글을 쓴다. 혹은 자신 넘치게 씀으로써, 리스크를 의식해 생길 수 있는 불안을 불식시키고자 애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자신의 지식과 경험의 총체를, 그리고 타인도 추측할 수 있는 데이터를 만천하에 공개한다. 이것을 '대담'이라 하지 않으면 뭐라 부를 수 있을까.
현대미술 작품의 감상이란, 그 시점에서의 자신의, 그때까지의 인생 경험 전부를 쥐고 작품과 마주하는 행위이며, 반대로 자신의 그릇이 어느 정도인지 측정되어 버리는 시험처럼 잔해 한 체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 후에 냉소적으로 돌변할지, 반성하고 노력하면서 경협의 폭과 두께를 넓힐 것인지는 감상자의 선택이다. 이는 비평가를 포함한 전문가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동기의 정도와 달성도를 수치화하다
작품을 감상하면서 일급 가지 창작 동기를 참조하면, 다양한 연상이 보다 잘 떠오르게 된다. 임팩트의 한판 승부인지. 미디엄의 가능성을 되어있다고 생각되는지를 백분율로 평가해 보자. 여기에서는 각 동기의 감상자, 즉 당신의 관심 정도나, 표현의 좋고 싫음도 넣어 판단한다. 가령 새로운 감각의 창출이 목표였던 것 같은데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듯하니 40%, 나는 미디엄과 제도에 대해서는 흥미가 없으니 0%, 정치의식이 있다는 것은 알겠지만 작품이 내포하는 주장에는 찬성할 수 없어서 10%, 세계 인식에 대해서는 잘 모르니까 0%, 나와 세계는 내게도 관심이 큰 주제라서 100%, 에로스와 타나토스는 기분 나쁜 표현이라서 0%. 등과 같은 방식이다. 이것을 앞의 계산 결과와 곱해보면, 새로운 감 각은 5점 만점에 2점, 미디엄은 0점, 제도도 0점, 액추얼리티는 0.5점. 세계 인식은 0점, 나와 세계는 4점, 에로스와 타나토스는 0점이 된다. 이밖에, 특별 항목으로 '작품의 완성도와 보조선'을 추가해도 좋다. 완성도는 그렇다 쳐도, 보조선에 관해서는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보조 선이란, 작품의 이해를 위해 아티스트가 의도한 장치와도 같은 것이다. 작품이 보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해, 거기에는 '읽히기 위한 적절한 기교'가 있어야만 한다. 전부 드러내 보이면, 대놓고 친 장난 같아 재미가 없다. 지나치게 난해해 바늘구명 하나 들어갈 틈도 없다면, 대부분의 사람이 이해하지 못한다. '열린 작 꿈의 문은 어느 정도까지 열어 놓아야 할까? 완전 개방도 꼭꼭 단아도 안 된다면, 얼마만큼의 각도가 적당할까?
이 질문의 답은. 물론 만드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되도록 문턱을 낮추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는 사람만 알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저 아무 생각도 없는 작가도 있을 것이다. 그런 한 편, 감상자의 읽기 능력'은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기 때문에, 문이 꽤 열려 있어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람, 얼마 안 열려 있는데도 안으로 쑥 들어가는 사람 등, 여러 가지 경우가 일어날 수 있다. 실은 복수의 보조선을 그어, 서로 다른 독해력을 지닌 감상자가 각자에게 맞게 대응하여도 록 만들어진 것이 이상적이긴 하다.
마지막으로 산출된 수치를 레이더 차트, 거미줄 그래프 화 한다. 이렇게 하면, 작품의 특징이나 자신의 취향을 가시화하는데 도움이 된다. 숫자를 모으면 아티스트의 경향도 보이게 될 것이고, 여러 명의 작가의 공통점이나 차이점도 밝혀질 것이다. 번거롭다면, 각 동기의 점수를 가산해. 합계 점수를 내도 좋다. 단, 점수가 많은 쪽이 뛰어난 것은 아니다. 차트의 형태, 즉 어떤 동기가 돌출되어 점수가 높은가를 보는 편이, 작가의 기호나 성향을 파악하는데 훨씬 중요하다. 서로 비숫한 작가를 비교할 때만, 합계 점수의 차이가 의미를 갖게 된다. 처음에 매긴 점수가 다르다 싶으면 나중에 수정해도 된다. 누군가의 심정을 참작할 필요도 없으며, 글재주 없다는 비웃음을 받을 일도 없다. 무엇보다도. 친구나 연인과 전시를 보러 짜 을 때. 작품이나 작가를 칭찬하거나 평풍으로 서로의 채점을 비교해 보는 일은 꽤나 즐거운 오락거리가 될 것이다. 엑셀 등의 표 계산 소프트를 사용하면 간단하겠지만. 손으로 쓴 차트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제프쿤스 (벌룬 독)
1989년 이후에 제작된 작품을 구체적으로 채점을 시도했다.
우선은 제프 쿤스의 <벌룬 독> (1994~200). 트위스트 벌문, 즐길 속한 풍선을 비틀어 만든 개 모양의 조각 시리즈로, 거울처럼 반짝이는 스테인리스 스틸 위에 반투명으로 컬러 코팅을 한 것이다. 높이는 3m 이상. 시리즈 중 하나인 벌룬 독:오렌지는 2013년 11월의 뉴욕 크리 스티 경매에서 5,840만 달러(약 680억 원)에 낙찰돼, 당시 생존 작가 사상 최고가를 기록하며 화제가 되었다.
미국에서는 놀이공원이나 해안의 야외 매점 등에서 파는 어린이 장난감이다. 그것을 쿤스는 고체의 딱딱한 소재로 거대화해, 조각 작품으로 탄생시켰다.
제프쿤스는 "이 작품은 축하의 의미와 어린 시절, 그리고 색과 단순함에 대한 메시지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트로이의 목마이기도 하지요. 아트 작품 전체에 대한 트로이 목마요."
이어서 단토는 "쿤스의 최고 걸작이라는 의견도 가능할 것이다. "라고 조심스레 말을 돌리면서도 높게 평가하고 있다
앞서 말했듯. 단토는 같은 논고에 '뒤샹에서 워홀을 거처 쿤스에 이르는 현대미술의 컨셉추얼 한 발전은 '갈릴레오에서 뉴턴을 거쳐 아인슈타인에 이르는 과학의 진보와도 같은 것'이라고 쓴 바 있다.
제리 솔츠는 "고전적인 기마상에 미국 완구업체 인 토이저러스 디스플레이를 더한 뒤 둘로 나눈 것 같다."며, '플라톤적인 관점과 욕정에 사로잡힌 감각의 중간지점'이라고 평했다.
짧은 리뷰의 마지막에는 "너무도 완벽하기에, 흐트러짐 없는 영원의 상태로 존재하고 있다. 이 작품을 내성적 숭고 라 부르고자 한다."라는 말로 극찬했다.
제프 쿤스 자신이나 전문가의 코멘트도 고려해 새로운 감각은 5점.
미디엄과 제도는 각각 4점으로 하자.
이렇게나 크고 반짝반짝한 풍선 개는 본 적이 없을뿐더러, 조각의 끝을 보여줬다는 견해도 있기 때문이다.
크기와 외형의 현란함은 글로벌 자본주의나 버블 경제를 반영한 듯 도 하니 액추얼리티와 세계 인식은 각 3점.
아티스트 자신이 어린 시절을 언급했으므로 나와 세계는 4점.
솔츠의 '욕정에 사로잡힌 감각'이라 는 표현에 경의를 표해 에로스와 타나토스도 4점.
100명이 넘는 스태프를 거느린 공방에서 제작하고 있다 하니, 특별 칸의 완성도는 만점인 5점이 좋을 듯하다.
8개 항목의 합계 점수는 40점 만점에 32점이 된다.
이것을 100점 만점으로 환산하면 80점.
상당한 고득점이지만, 중요한 것은 합계 점수가 아니라 꺾인 선 그래프의 형태다.
이어, 달성도에 대한 개인적 평가를 백분율로 매겨본다.
거대 조각은 이 작품 외에도 존재하며, 개인적으로 장난감처럼 보이는 작품을 좋아하지 않으니, 새로운 감각은 60%.
미디엄의 탐구는 이 정도라면 어떤 아티스트라도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으니 50%.
고전적 기마상 이라고는 하나 사실갑이 부족하고, 뒤샹 이후의 :컨셉추얼 한 발전'은 그다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기에, 제도는 30%.
버블 경제는 반영되었다지만, 비판은 담겨있지 않아 보여. 액추앨리티 0%.
장 보드리야르의 소비사회의 신화와 구조나 시물라크르와 시물라시&. 의 영향이 느껴지지만, 새삼스럽다는 느낌도 강하기에. 세계 인식은 20%.
작가의 어린 시절에 딱히 공감은 가지 않지만, 입지 흐뭇한 마음은 드니까, 나와 세계는 50%.
계속 지켜보고 있다 한들 욕정에 사로잡히거나 피안의 계로 빨려드는 느낌은 없으니, 에로스와 타나토스는 30%.
완성도는 대단하다고 생각하나 새로운 감각 이외의 콘셉트는 잘 모르겠으므로, 보조선 분량만큼만 감점시켜 50%.
추정한 아티스트의 동기와 각각의 퍼센티지를 곱해 만들어 본 레이더 차트가 위에 게시된 것과 같다.
평가 차이는 당연히 사람마다 다르다.
데미안 허스트의 <분리된 엄마와 아이>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발표.
YBAs(영 브리티시 아티스트) 중에서도 가장 논란거리였던 작품이다.
허스트는 이 작품을 포합 한 창작 활발 해부도나 살아있던 동물을 작품의 소재로 삼았던 리처드 세라나 야니스 쿠넬리스 등의 계보를 잇고 있으며, (엄마와 아이)라는 제목에서 (성모자상)이라는 고전적 아이콘이 연상되어 5점.
광우병이 배경인지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대량생산. 대량소비 사회의 먹거리 문제까지는 생각이 미치는 부분은, 액츄얼리티 5점.
무신론과 유물론이라는 배경은 그런대로 괜찮아 보지만, 그리 진귀하지는 않기에, 세계 인식은 3점.
가축과 함께 생활하며. 그 젖이나 고기로 자라난 서양 사회의 역사를 반영하고 있으므로, 나와 세계는 4점.
에로스와 타나토스는 확실하게 5점.
완성도는, 이 또한 꽤 볼만하다 생각되므로 5점. 저자는 그로데스크 한 것을 싫어하지는 않으니, 새로운 감각은 100%.
미디엄에 대해서도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만, 저자 자신이 시카고의 과학박물관에서 사고사 한 흑인 남녀의 사체를 슬라이스 한 "플라스티네이션"을 본 적이 있기 때문에 80%.
제도에 대한 언급은, 이 작품에 있어서는 그다지 중요하다고는 생각되지 않으므로 60%.
액츄얼리티는 80%
세계 인식은 50%
나와 세계는 80%
에로스. 타나토스. 성성은 두말없이 100%.
완성도 높다고는 생각하지만, 그 후 포르말린이 밖으로 새어 나갔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조금 감점해서 80%.
데미안 허스트는 제프 쿤스와 함께 대중 평가에 있어 호불호가 극명히 갈리는 아티스트다. 두 아티스트는 작품 가격 또한 다른 동시대 아티스트들에 비해 월등히 비싸며, 한때는 유럽과 미국을 각각 대표하는 작가로 간주되기도 했다. 전 세계의 슈퍼 컬렉터가 둘의 작품을 서로 빼앗듯 사재기하고 있다는 사실은, 앞서부터 지금까지 쓴 그대로다. 프랑스에 이슬람 정권이 들어선다는 설정으로, 과격화된 종교, 경제 격차, 비관용 등으로 분단된 현대사회를 예언했다고 평가되는 소설 복종을 쓴 작가는, 전작 지도와 영토의 앞머리에 이 둘을 등장시키기도 했다. 허스트를 사탄만큼 싫어하는 사람이나 동물 애호가라면, 전혀 다른 평가를 내릴 것이고, 아트월드 안에 있는 사람이 채점한다면, 누구라도 대략 이런 형태가 될 것이 틀림없다. 때문에 허스트, 쿤스, 무라카미 작가가 팔리는 것이다.
.* 플라스티네이션: 사체를 부패하지 않게 방부 처리하여 보존하는 방법 중 하나
후루하시 테이지 ( S/N)
덤 타입은 1984년 교토 시립예술대학의 학생을 중심으로 결성된 아티스트 그룹이다.
다카타니 시로, 코야마다 토오루, 부부 드 라 마드렌느, 다카미네 타다스, 이케다 료지 등을 배출했다. 대부분의 창작 작업이 멤버 간의 위아래 계층 없이 협동 작업으로 이뤄지지만. (S/N)은 예외적으로 그룹의 리더인 후루하시 테이지의 주도하에 제작됐다. 계기는 후루하시의 HIV 감염과, 이를 다른 멤버에게 알리게 되면서였다. 유작이 이작 품이 상파울루에서 한창 상연되던 1995년 10월, 후루하시는 면역 결핍으로 인한 패협증으로 세상을 뜬다. 향년 35세였다.
타이틀은 오디오 용어인 'SN비', 즉 '시그널 대 노이즈 비(t)'에서 유래했다. 세기말의 병으로 여겨졌던 에이즈를 둘러싼 상황이 주제 중 하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정상인에 대비되는 장애인. 백인에 대비되는 유색인종, 이성애에 대비되는 동성애. 남성에 대비되는 여성. 일반인에 대비되는 성매매업 종사자. 감상자에 대비되는 예술가 등의 마이너리티가, 사회적으로 노이즈'라 여겨지고 있는 실태를 드러내는 내용이다. 대화극, 댄스, 영상, 조명. 전자음악 등을 구사하며. 후루하시 본인에 의한 드래그 퀸 립싱크나, 부부드라 마드렌느에 의한 스트립 퍼포먼스 등도 포함되었다.
덧붙이자면, 차기작 (OR)(1997)은 후루하 시를 잃은 멤버 각자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창작한. 이른바 상중에 있는 슬픔을 웅집해 담은 복상의 산물이라 부를 만한 작품이다.
강렬한 조명과 음향, 달려오던 퍼포머가 갑자기 멈춰 서며, 직립부동인 채 무대 안쪽으로 쓰러지는 연기 등의 임팩트로, 새로운 감각은 5점.
라이브 영상이나 즉흥적이고 다큐멘터리적인 대화를 담은 구성도 훌륭해, 미디엄은 4점.
키치적 카바레 문화 등을 의식한 드래그 신 등으로. 제도도 4점.
미국 우익 정치인들의 에이즈 감염자의 차별에 대한 반 발에 그치지 않고, 마이너리티에 대한 차별 전반을 주제로 하고 있어. 액추얼리티는 5점.
미셸 푸코의 동성애와 생존의 미학 등이 인용되었으며 세계 인식은 4점.
후루하시 개인의 문제가 관객에게 공유되고. 사회의 실태까지 폭로되었기에, 나와 세계는 5점. 당시만 해도 불치병으로 여겨졌던 AIDS가 주요 주제 중 하나이니, 에로스와 타나토스는 4점
완성도는 5점 전반적으로 강렬하지만, 댄스가 다소 약해. 새로운 감각은 80%.
영역을 아우르는 퍼포먼스는 당시만 해도 드물었기에. 미디엄도 80%.
제도에 대한 언급은 그다지 강해 보이지 않으므로 60%.
액추얼리티는 만점, 즉 100%
세계 인식은 그렇게 획기적이지는 않아서 60%. 나와 계는 액추얼리티와 마찬가지로 100%.
에로스와 타나토스는, 정치적 사회적인 테마 쪽이 보다 인상적이었던 탓에 60%.
완성도는 상당히 높지만. 퍼포머의 연기가 다소 아쉬 있기에 80%.
이 작품의 차트 또한 면적이 크고, 바깥쪽과 안쪽의 꺾인 선 모양이 비슷하다.
혹시 몰라 다시 한번 강조해 두지만. 위의 수치는 모두 상대적인 평가일 뿐이다. 합계 접수는 같은 경향의 작품을 찾아내거나 그것들을 서로 비교할 때 사용 된다.
현대미술 작품의 가치는 누가 결정하는가?
그런데, 작품의 가치를 정하는 것은 누구일까?
시스템 안의 현대미술에 대해서는 이미 이야기했다. 작품의 가치는 협의 의해 아트월드가 결정한다. 그러나 이것으로 충분할까?
아트월드는 예술이론의 상황이나, '제시되는 대상(아트 작품)을 어느 정도 이해할 준비가 된 멤버들로 이루어진 한 무리의 사람들'이다. 전자는 추상적이고, 후자는 구체적이다. 하지만 양쪽 모두 극소수의 사람들이나 그들이 공유하는 세계관이라는 점에서, 폐쇄적이고 엘리트적이다. 그러나 그 상식적인 해석은 깨지기 시작했다.
감상자가 자신의 능력에 따라 스스로를 해방하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시스템 안에서도 그러하니, 시스템에 의존하지 않는 아트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현대에 있어서 아트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개개인의 아트 러버들이다. 지금까지는 이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아트계에 만연한 '아는 사람밖에 알 수 없다'는 체념, 혹은 '아는 사람만 알면 된다'는 엘리트 의식이 그 주된 원인으로, 많은 아트러버에게는 감상을 위한 방법론이주 어지지 않았다.
'취향'이나 '직감' 이외에는 전문가의 평가나 일반적인 해설에 기댈 수밖에 없다. 때문에. 누구나가 워홀이나 바스키아에게 고마워하고, 일부를 제외하면 진가를 알지도 못하면서,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으면서 거금을 투척하고 우쭐 댄다. 현대미술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는 벌어지지 않은 채, 시장만 비대해져 가는 상황은 지극히 불건전하다.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금융시장에 있어 투자자의 행동을 '미인 투표'에 비유했다.
전문 투자가는 백명의 사진에서 최고의 미녀 여섯 명을 뽑는 등의 흔한 현상 공모 참여자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상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그 투표에 참여한 사람 전체의 평균적인 기호에 가장 가까운 사람을 선택한 인물입니다. 따라서 각각의 참여자는 자신이 가장 미인이라고 생각하는 얼굴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참여자들이 좋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은 얼굴을 선택하지 않으 면 안되며 되며, 다른 참여자들도 똑같은 시점으로 그 문제에 임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판단으로 누가 정말로 최고의 미인인가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며, 수은 평균적인 의견으로 봤을 때 누가 미인이라고 판단될 것인가를 가능하는 문제조차 아닙니다.
아트에 투표하게 될 일은 금융에 비하면 월등히 적지만,
투표 행동의 실정은 거의 같다.
'섹스와 죽음에 바친 미술관' MONA의 데이비드 일시와 같은 특수 사례를 제외하면, 슈퍼 컬렉터들도 거의 비슷할 것이다. 투자 목적의 컬렉터가 그처럼 행동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많은 아티스트가 바라듯, 아티스트나 작품을 향한 사랑유 표하기 위해 작품을 구입하는 것이라면, 아니 구입 같은 건 하지 않더라도 아티스트나 작품에 대해 되도록 많이 알고자 한다면, 그리고 타인에게 의지하지 않으면서 아트의 가치를 스스로 결정하길 바란다면 미인 투표'하는 투자가와는 다른 행동이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감상을 위한 리터러시 교육을 하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읽고 쓰는 능력은 사실 누구에게나 이미 갖춰져 있다. 예술 전반의 감상에 있어서 리터러시는 감상자의 인생 경험을 말한다. 사물을 평가하는 데에는 자신의 경험 총체에 비추어 보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평가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견문을 넓히고, 지식을 늘리고, 인생 경험을 쌓는 것이 유일무이한 방법이다.
작품의 감상에는 예술 이론이나 현대미술사 지식이 필요할까?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 '지식'의 내용이다. 보편적으로 작품의 감상 에는 현대미술 이론이나 현대미술사에 대한 지식이 필수로 여겨진다.로 어 의 말처럼 예술 이론의 상항이나. 현대미술사의 지식'이야말로 아트월드의 정체성이며, 그 지식을 익히지 않으면 가치판단을 할 수 없다.
'한 무리의 사람들'은 그 지식을. 적어도 어느 정도 이해할 준비가 된 사람들을 가리킨다.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들은, 그 시점에서 자격이 없는 것으로 간주된다. 현대미술은 문턱이 높다'는 말이 나오는 까닭이다.
작품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큐레이터나 컬렉터, 비평가와 같은 구체적인 업계 사람들이다. 그들이 개개의 현대미술 작품을 보장한다는 셈인데, 그런 의미라면, 현대미술은 왕과 왕녀가 기사 칭호를 수여하는 기사도와 닮았다. 하지만. '왕의 머리가 비정상이라면., 자기 자신의 말에게 기사 칭호를 수여할지 도 모른다는 이 비판의 핵심은 어디에 있을까?
큐레이터나 컬렉터, 비평가들의 예술 이론의 상황이나, 현대미술사의 지식' 파악이 충분하지 않다는 말이 된다. 즉 '한 무리의 사람들'을 신용하지 않고. 능력이 떨어지는 '왕'이 기사 칭호를 남발하는 사태를 경계하고 있다.
앤디 워홀의 (브릴로 박스)를 만난 이후 '현대미술이란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해 왔다.
안이한 포퓰리즘에 빠지지 않았던 성실한 이론가로서, 그것은 당연한 윤리적 자세라고 생각한다. 보증의 남발은 필연 적으로 작품의 질 저하와 아트계 전체의 지반 침하를 초래할 것이다.
목표로 해야 할 것은 민주제 이행이다.
민주제에 있어 예술 이론의 상황이나, 미술사의 지 식'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작가를 비롯한 현대미술의 프라이머리 플레이어들이 미술사를 배우고, 필요한 지식을 익히는 것은 당연하며, 의무라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감상자에게 그 의무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작품에 '제도에 대한 언급과 이의'라는 창작 동기가 담겨있을 수 있고, 감상자가 그것을 분벌할 수 있다면 유용하겠지만,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다. 즉 감상자가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이 또한 거듭 말하지만, 세계의 디스토피아화가 진행되고 있는 오늘날, 현대미술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동시대의 세계정세나. 그것을 초래한 역사(현대미술사가 아닌 세계사)의 지식이 훨씬 중요하다. 아티스트는 '탄광 속 카나리아'로서 디스토피아화 가 진행되는 시대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자신의 문제의식을 작품에 담아내고 있다. 때문에 액추앨리티 역사, 현대미술 이외의 문화예술, 과학이나 철학 등에 관한 작가와 관련된 지식을 갖추어 두면, 작품의 해독은 현격히 재미가 있어진다. '제도에 관한 언급과 이의'라는 동기는 일곱 가지 중 하나에 불 과하다고 하지만 아트사의 지식이 있으면 사실 매우 즐겁다.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더라도, 알면 즐거움이 더해질 것은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