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미국 미술 : 리사 필립스
페미니즘
페미니스트의 활동은 1970년대의 가장 의미 있는 발전 중 하나였다. 사회 전체적으로도 그렇지만, 페미니스트 수요는 남성과 동등한 위상을 요구하는 힘을 여성에게 부여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1970년 여성의 임금은 남성의 절반에 불과했고, 불법 임신 중절 수술로 해마다 수천 명의 여성이 사망했으며, 이혼법은 '수컷의 특권' 위주로 씨어 있었고, 아이비리그 대학 대부분은 여전히 여학생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여성해방 운동은 1968년 남성 지배적인 학생 운동에 대한 반작용이 행동으로 바뀌면서 갑작스레 활기를 띠게 되었다.
(전국 조직인 '민주사회 학생연합' 집회에서 여성의 권리를 강령에 포함할 것을 요구한 두 여성이 토마토 세례를 받은 사건이 계기가 되었다).
1970년대 중반에 이르자 그러한 행동주의와 남녀평등 의식의 고조가 급속도로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냈다.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한 행동의 일환으로 1976년 수 세기 동안 여성이 이문 성취를 확인하기 위해 로스앤젤레스 카운티미술관에서 '여성 미술가 1550-1950 '이라는 대형 전시를 기획이 이루어진다.
1970년대에 미국 전역의 여성 미술가들은 자신들의 코업 화랑과 공동체를 조성했다. 이 중에는 뉴욕 소호에 있는 A.I.R. 화랑, 시카고의 아르테미
시아, 미니애폴리스의 W.A.R.M., 로스앤젤레스의 '여성의 건물'이 있다.
특화된 잡지들이 창간되었고, 대학미술협회 산하 분과로 행동주의 그룹인 여성미술가 대의원회 가 신설되었다.
캘리포니아의 학교들이 여성프로 그램들을 찌는 데 앞장섰으며, 1974년에 이르자 미국 전역의 1,000개가 넘는 단과대학과 대학교에 여성학 강좌가 개설되었다.
미술계에서의 성차별주의(그리고 인종 차벌주의)에 반대하는 시위를 주도한 미술노동자연합에 임시 분과가 있었는데, 이들은 1970년 휘트니미술관 앞에서 해마다 열리는 '휘트니 애뉴얼' 전에 참여하는 여성 작가를 기존의 전체 전시 작가들의 5퍼센트에서 크게 늘려줄 것을 요구하며 시위를 열었다.
그 결과 이듬해에는 그 수가 22 퍼센트로 늘었다. '예술에서의 여성'이라는 또 다른 그룹은 1971년 극소수의 여성만이 뉴욕 화상들에 의해 대표 작가들로 선택되고, 2년마다 열리는 코크란 비엔날레 같은 중요한 미술제에 여성 작가 참여가 없는 점에 대해서도 항의했다.
이와 유사한 '로스앤젤레스 여성미술가위원회'라는 그룹은 1970년 로스앤젤레스 카운티미술관의 대형 전시인 '미술과 테크놀로지에 여성이 한 명도 포함되지 않은 점을 항의했다. 전국의 큐레이터들은, 예컨대 '작품의 가치' 같은 용어들이 과연 객관적인 것인지, 혹은 가부장적으로 정의된 것은 아닌지 새삼 의문을 던지며 자신들의 선택과 평가 기준을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기성 미술 제도권에서는 이러한 페미니스트들의 압박에 대응하기 위해 통계적으로 나타날 정도의 가시적 성과를 어느 정도 보여주었다. 또 전시와 영구 소장 작가 중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도 곧바로 20퍼센트에서 25퍼센트 수준으로 올랐지만, 이 비율은 지금도 거의 변하지 않은 상태다.
그렇지만 1970년대 페미니스트 활동으로 축적된 효과는 단순 평가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하다. 70년대 말에 이르자 여성들은 예술계에서 독자적인 후원 시스템을 갖추었고, 그간의 기준으로 여겨진 남성 편향적 역사를 수정하기 시작했다. 또한 그들의 작업이 너무 '여성적'이라는, 그때까지의 부정적인 평가를 힘과 자긍심의 원천으로 바꾸면서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아울러 이 전까지 서구 백인 남성의 기준에 따른 '질적 가치'에 대한 새로운 평가 기준을 정립하는 것과 동시에 미국 미술의 문호를 비서구적, 비백인적, 비남성적 전통들에 개방하는 데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여성해방 운동에서 표면화된 상당수의 정치적 쟁점들은 많은 미술가에 의해 미학적 탐구의 대상이 되었다. 성 역할 전도, 성별 스테레오타입, 가사 활동, 여성의 성적 형상들이 미술의 주제로 등장했다. 여성에 의한 미술을 특징짓는 데 있어 특정한 '여성적' 속성을 변별해 낼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오랜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적어도 두 가지, 즉 (에바헤세의 작품에서 이미 보았던) 부드러움과 여성의 성적 형상들에 은유적으로 관련된 "중핵적' 이미지가 여성적 속성에 포함된다는 본질주의적 관점에는 동의했다.
하나 윌키
계층화 오브제 시리즈
S.O.S Starification Object Series
1974-82
혼합 매체
102.9x147.3cm
개인 소장
전통적인 여성 수공업 기법과 재료는 곤 고급 미술의 원료가 되었다. 바느질, 컬트, 직조법, 아플리케, 스텐실 기법, 실루엣 그리기. 도자기 칠 같은 활동들이 미술 제작 용어가 되었다.
여성들의 장식 공예는 미리엄 샤피로와 주디 시카고의 '여성의 집' 프로젝트에서 찬사를 받았다.
이 프로젝트에서 모든 가사노동은 많은 여성 작가들이 폐허가 된 집에 채워 넣어 창조한 미술품을 통해 새로이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다. 수공예와 가사는 훗날 주디 시카고의 페미니스트 걸작인 (디너파티)에서 다시 진면목을 발휘했다.
이 작품은 39개의 세라믹 접시들이 놓인 대형 삼각형 테이블로 각 접시는 위대한 역사적, 신화적, 문화적 여성 인사들을 기념하는 채색된 입술 형상으로 장식되어 있다.
미리엄 샤피로와 세리 브로디
인형의 집 Dollhouse '
여성의 집(Womanhouse)"
중에서.
1972
혼합 매체
202 6x208 3x21.6cm
스미스소니언미술관, 워싱턴 D.C
주디 시카고
디너파티 The Dinner Party
1974-79
채색 법랑과 바느질
1463x1463x91.4cm
브루클린미술관
자의식에 문득 페미니스트 미술가들의 첫 번째 물결은 1970년대 미술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이들의 영향력은 지금까지 여운을 남기고 있다.
미술가들이 현재 매달리고 있는 많은 쟁점이 이미 이들에게서 게시된 것 들이다.
섹슈얼리티, 정치, 성 역할, 성폭력, 일인칭 비디오. 자서전, 퍼포먼스 등과 관련된 미술은 페미니스트 운동에 참여한 작가들이 작품에서 적극적으로 표출하려던 내용이자 형식이었고, 이들의 노력은 현재 페미니스트 미술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내리는 데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극단적인 모더니즘에 대한 비평과 대안 적인 문화 형태들이 나타나는데 새 지평을 연 것은 특히 여성과 소수 인종 작가들의 미술 작품, 저술, 영화, 비평이었다.
그들은 사장되거나 사지가 절단된 전통들을 복구했고, 창작과 경험에 있어서 '성과 인종에 기반을 둔 주관성'의 형태들을 탐구하는 데 역점을 두었으며, 표준화된 규범들에 한정되는 것을 거부했다.
패턴과 장식 미술
여성 작가들이 수공예를 활용하면서 1970년대의 주요한 미술 경향 중 하나인 'P+D', 즉 '패턴과 장식 '이라고 알려진 운동을 배양시켰다. 이 운동은 다양한 수공예 전통에 직접 의존하면서 회화적인 평평한 꽃문양과 추상적인 장식을 선호했다.
초기에 이 양식을 실천한 사람들 가운데 미리엄 샤피로는 여성의 가사 영역을 예우하는 직물, 벽지, 꽃 디자인을 사용했다. 미니멀리즘과 비슷하게 패턴 회화 역시 전면을 커버하는 올 오버구성에 한 가지 모티프를 반복하는 방식을 위주로, 중첩된 격자형 구조를 많이 활용했다.
그러나 작품에 기용된 모티프는 환원적 이거나 기하학적인 것 과는 거리가 멀었고, 아라베스크 개념에 가까웠다
패턴 화가들은 남녀 할 것 없이 비평가 클레먼트 그린버그가 말한 엘리트적이고 청교도적인 관점을 거부했다. 그린버그는 일찍이 회화가 단지 "장식에 머물면 추상 미술은 공허함에 빠지게 되며 정말로 '기계적인' 미술이 된다."라고 경고한 바 있다. 이 같은 독단적인 주장을 배격하고 장식적, 공예적 요소를 포용한 패턴 회화는 극동에서부터 켈트, 토착 미국인, 이슬람 전통에 이르는 반교서구적이고 반주류에 해당하는 많은 전통에 열려 있었다.
리 모턴, 외 같은 작가들은 다문화적 출처들, 발효위계적 형상, 본능적이고 서사적이며 개인적인 내용의 작품으로 남성 지배적인 서구 고급 미술에 도전했다.
리모컨
약초가 독이 되기도 한다
The Plant That Heals May Akso Poison
1974
나무에 셀라스틱, 반짝이, 물감
116.8x162.6x10.2cm
개인 소장
김 맥코넬
강력한 Formidable 1981
자르고 꿰맨 침대 시트에 아크릴릭
247,8x328,9cm
휘트니미술관, 뉴욕
미술과 공예를 분리하던 과거의 위계는 포일과 반짝이, 밝게 채색된 플라스틱으로 만든 조각으로 뉴욕 차이나타운 같은 소수민족의 중심지로 뛰어 들어간 토머스 레니건 슈잇 같은 직물 패션을 '회화' 작품으로 그와 비슷한 미술가들에 의해 무너졌다.
민속적인 미술과 순수 미술에서 벗어난 미술에서 보이는 반복과 패턴화에 호감을 느낀 시카고 미술가 로저 브라운은 자신의 구상적 이미지를 최면을 거는 듯한 전면적인 패턴화에 종속시켰다.
시카고는 1950년대의 몬스터 로스터'ㅡ 기획된 '메이드 인시카고'라는 개관적인 순회전을 통해 전국적으로 이목을 끌었다. 에드 파슈케, 로저 브라운, 짐 너트, 칼 워섬, 글래디스 닐슨을 비롯한 작가들은 독특하며 도전적인 비주류 미술을 창조하기 위해 원시적이고 훈련받지 않은 비순수 미술, 거리 미술, 만화책에서 작품의 원천을 찾았다. 시카고 형상주의 작가로 불리던 이들은 종종 충격적인 색채 배합, 블랙 유머, 생경하고 왜곡되거나 사디즘적인 주제들을 사용하면서 70년대 다른 지역에서도 전개되던 '추함의 숭배' 혹은 '나쁜 그림 '에 지역 나름의 기여를 했다. 이들 시카고 미술가가 보여준 지역 양식과 문화에 대한 인식은 당시 다원주의 양상의 일부라 할 수 있다.
60년대 후반에 미니멀리즘에서 개념주의로 전환한 솔 르윗은 이제 실내건축으로 변형된 대형 벽 드로잉에 주목했다.
숙련된 조수들이 제작할 수 있도록 '선에서 점으로, 점에서 면으로 ' 같은 단순한 지시에 기초해 만든 벽 드로잉들은 시각적 혼란을 야기해 종종 현란하고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패턴 회화와 패턴화는 미술과 연관된 분야에서도 반향을 일으켰다.
토머스 레니건 슈잇
생명의 양식 Panis Angelcaus 1970-87
성체 안치기(해효로 콜). 촛대
제단 보와 혼합 매체 설치
2 1x1.8x1,1m
그로닝거미술관, 네덜란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