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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꼬마 Feb 28. 2024

1. 들어가는 말.

농담 같지만, 노키즈존 비대면 소아응급실을 상상하며. 

이야기를 좋아한다. 내 이야기를 하는 것도 좋아하고, 남이 사는 이야기를 듣는 것도 좋아한다. 말이란 것은 입 밖에 내면 날아가버리기에 글로 남겨서 간직하고 싶었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낯을 약간 가리기는 하지만 말도 많고 수다스러운 성격이라(MBTI 검사를 해보니 INFP에서 최근은 ENFP로 바뀌었더라), 짧게 해시태그 남기고 시크하게 맺음을 해야 하는 인스타그램에도 길게 길게 글을 쓰는 '인알못'이었는데, 이 글들을 지인들이 생각보다 많이 좋아해 주었다. 글을 써 보라는 이야기를 몇 년 넘게 적잖이 들었지만, 본격적으로 이렇게 쓰기까지는 꽤 많은 고민이 있었다.


우선, 스스로에 대한 자신이 없었다. 응급의학과 전문의로는 이제 겨우 7년 차, 소아응급은 이제 6년 차라 경력이 그리 길다고까지는 할 수 없는 나 같은 사람이 책을 써 봐도 될까, 속된 말로 '너 뭐 돼?'라는 의문이 나 스스로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분과가 처음 생길 때 그야말로 소아응급의 불모지에서 개척하신 수많은 선배님들도 계시고, 열심히 학회활동이나 연구에 매진하시는 대가들이 즐비한데, 논문 한 줄 쓰는 게 힘들었고 연구는 관심도 없는 나 같은 사람도 써도 되나, 하는 걱정이 컸다. 그렇잖나, 나는 그냥 어디선가 응급실에서 소아 환자들을 보는 그저 평범한 의사 1일뿐인데 내가 이 분야를 다 아는 것처럼, SNS에 올리던 잡문도 아니고 책으로 엮어서 낸다는 게 조금 건방져 보이지 않을까 저어했다. 하지만  글을 쓰겠다고 뛰어든 계기는 또 의외로 단순했다. 퇴사한 지 오래된 직장의 동료가, 우연히 마주친 버스 정류장에서 나에게 "선생님 글 써! 선생님 글 재밌어!"라는 한 마디를 건네주었던 것이 불을 붙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따로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가들의 이야기는 그들 몫으로 남겨두고, 나는 내 이야기를 써 보자고 마음먹었다. 현장에서 팔 걷어붙이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나 같은 사람이 하는, 조금 날것 냄새가 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대단한 사명감이 있거나, 뛰어난 재능이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냥, 내가 잘하는 일 잘하고 싶어서 이 바닥에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었다.

 

글을 읽고 쓰는 것은 좋아하지만 정제된 생각과 정돈된 말을 쓰기보다는 의식의 흐름에 따른 잡문, 그나마도 비속어나 밈, ‘짤방’에 의존한 것들이 많았던 것 같다. 나는 얼마나 많은 감정과 상황을 그저 그렇게 짧게 줄여버리기만 하며 살아왔는지 새삼 반성하며, 꽁꽁 뭉쳐둔 감정의 실타래를 하나하나 나의 언어로 풀어보았다. 그리 대단하지 않은, 나 같은 보통 사람들도 하는 소아응급 이야기, 병원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좀 더 친숙하고 재미있게 다가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냥 읽고 나서 "아, 이런 사람들도 하는구나." 하셨으면 좋겠다. 그것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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