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뒤통수 칠까 두려운 병.
장 중첩증(intussuception) 이라는 병이 있다. 장과 장 사이가 말려들어가는 병으로, 선행하는 장염이 있는 경우도 많고 소아에서 대부분 원인은 불명확함. 성인이라면 종양을 의심해 봐야 하는데, 어쨌든 소아에서 이 장 중첩증을 놓치게 되면 큰일이다. 진단만 되면 해결은 쉽다. 항문으로 공기를 쭉쭉 주입해서 장과 장 사이를 펴 주는 것이라서, 시술도 비교적 간단한다. (하지만 이 글을 쓰는 요즈음, 과연 간단한지 모르겠다. 소아 영상의학과 및 시술 중 생길 수 있는 장 천공시 소아 외과의 백업이 되어야 하는데 두 가지가 다 갖춰진 병원들이 점점 사라져가기에.)
문제는 이 병을 처음부터 의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전형적인 증상은 반복적인 보챔과 젤리같은 색의 혈변과 구토라는데, 문제는 책대로 아파주지 않고 이 3대 증상이 한번에 다 나타나는 경우가 드물다. 그냥 이상하게 아이가 자꾸 심하게 보채서 오거나, 혈변을 봐서 오거나, 구토를 심하게 많이 하는 식으로 나타난다. 특히 앞의 두 경우일 때는 정말 반드시 집에 보내기 전에 적어도 이 아이가 장 중첩증은 아니라는 확신을 갖고 보내야 한다.
진단은 초음파다. 내가 수련받은 병원과 이후에 발령받았던 곳은 소아전문응급센터라 항상 응급실 진료실 옆에 초음파가 구비되어 있었다. 의심 증상으로 오는 아이들을 나는, 보통 바로 눕혀서 초음파를 보면서 문진을 해서 최대한 시간을 아꼈다. 장중첩증 정도는 나같은 초보의 눈에도 쉽게 잘 보이기 때문이다. 딱 도넛처럼 생긴 말려들어간 장의 모습이 보이면, 영상의학과와 바로 상의해서 시술을 했다. 24시간 내 재발 가능성이 있어 입원을 시키기도 하고, 여의치 않으면 2시간 경과관찰 후 2시간 뒤 식이진행 후 귀가하는 식으로 진료했다.
전형적인 증상이 아닌 것으로 올 때가 종종 있었는데, 역시 한 번 겪어보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놓치지 않으려고 초음파를 열심히 볼 수 밖에 없어진다. 전공의 시절 이상하게 기운 없다고 데려온 아이였는데, 구토는 1번, 배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했다는데 복부 촉진은 정상, 장음도 정상, 복부 엑스레이 사진도 의심소견은 없었고 혈액검사 결과도 모두 정상인데 이상하게 처져서 설마하고 대 본 초음파에서 보였다. 아주 선명한 target sign(도넛모양으로 장이 말려들어간 소견!) ! 검사 결과가 좋으니 집에 가라고 했다가는 큰일 날 뻔했다. 환아는 다행히 성공적으로 공기정복술 시행 후에 퇴원했다. 그 이후 이상하게 기운없다는 애들은 다 초음파를 보고 집에 보내는 게 내 습관이었다.
부족한 점을 채우고자 연수강좌들을 열심히 들었다. 전공의 시절 기운없는 장중첩증 환아를 보고 난 뒤 신청했던 초음파 연수강좌에서도 비슷하게, 전형적인 장염 증상이었는데 장중첩증, 기운 없는데 장중첩증, 이런 케이스들을 연달아 보여줬다. 세상에, 이렇게나 다양한 증상들이라니. 다들 충수돌기염(appendicitis, 흔히 말하는 맹장염)이 천의 얼굴이라고들 하는데 장 중첩증도 만만찮은걸?
잊을 만하면 한번쯤 돌아오는 그런 비전형적인 케이스가 있기에, 초음파를 대 보는 습관이 몇 년 전 또 한 번 나를 살려냈었다. 119에서 수용 문의가 왔다. 내원 직전에 밥 먹다 한번 크게 토하고는 세 살짜리 애가 기력이 없이 잠만 자려고 한다고. 뭘까, 일단은 오시라고 했다. 내원해서 보니 혈당도 정상, 복부 검진도 정상. 복통도 호소한 적 없음. 기력이 없다니, 설마 너도냐. 초음파를 바로 대었더니 그 아이도 장 중첩증이었다.
기운이 없다는 주소는 사실 의사들이 굉장히 난감해하는 증상인데, 그럴만한 것이 기운이 없을 이유가 얼마나 많으며, 그걸 어떻게 다 밝혀낼 것인가 가닥을 잡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소아는 더하고. 보호자의 주관을 얼마나 내가 믿어야하는지도 가늠하기 쉽지 않다. 기운이 없다는데 진료실 사방팔방을 뛰어다니는 경우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고민한 적도 많다. 그렇기에 자칫하면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는 기운 없이 처진다는 이야기로부터 장 중첩증을 진단해낸 나 자신은 제법 멋있는 것이다. 스스로 뿌듯해했다. 초진을 보며 썩 난감해하던 인턴이 나를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래 임마, 나야 나.
가끔 생각한다. 내가 초음파를 대지 않고 보낸 아이들, 잘 살아 있는 거겠지? 그러길 바란다. 열심히 대 봐야지. 놓치지 않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