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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꼬마 Mar 01. 2024

21. 그놈의 열, 열, 열!

보호자들의 fever phobia에 대해 하고 싶은 말

응급실에 소아 환자가 오는 가장 흔한 주소가 바로 열. 열에 대해서는 우리나라 보호자들이 강박적일만큼 공포심이 있다. 119 상황센터에서 일해봐도 소아 보호자들의 주된 문의가 발열인데, 열이 안 떨어지니 어떻게 해야 하나는 질문이 정말 많았다. 구급대원님 선에서 해결이 안 되는 경우 나에게 자문을 구하는데, 대부분 말씀드린다. 아직 열이 바로 떨어질 시기도 아니고, 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이것이 큰 병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니 컨디션이 많이 처지거나 경련을 하는 등의 상황이 아니면 좀 지켜보셨으면 한다고. 

응급실에 오는 아이들 중, 솔직히 여전히 이해가 전혀 안 되는 건 발열 24시간도 되지 않아서 열이 나고, 떨어지지 않는다고 응급실에 오는 경우다. 개인적으로 8세 미만, 야간이나 공휴일의 38도 이상의 발열을 응급증상으로 분류해놓은 것에 대해서도 반대한다. 소아의 발열은 대부분이 자연 치유되는 바이러스 감염이며, 7일 이내 호전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3개월 미만의 어린 환아들이나, 아니면 면역억제 상태의 환아(암환자나 자가면역 질환으로 스테로이드 복용 등) 등이 아닌, 건강한 아이들이라면 굳이 열 나자마자 응급실을 찾을 이유는 없다. 보호자의 조급한 마음을 달래려고 응급실을 찾는 것이지, 아이에게 그렇게 바람직한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 

발열에 대해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 몇 가지를 얘기해볼까.

1) 해열제를 먹였는데 떨어지지 않아요.

해열제에 대한 반응 여부는 환아의 중증도와는 무관하며, 초기(만 3일 이내)에는 발열이 쉽게 호전이 없을 수 있습니다. 해열제를 먹였다고 해서 한번에 발열이 다 정상체온으로 호전되지 않는 경우도 많으니, 조금만 여유를 갖고 생각해주세요. 

2) 열이 40도를 넘으면 뇌 손상이 온다던데요.

가장 흔한 낭설입니다. 제발 이 원 출처가 누구인지 궁금한 마음입니다. 뇌의 발열조절 중추마저 다 퍼져버리는 온도는 42도인데, 이건 약간 물이 99도에서는 끓지 않고 100도에서 끓는 것과 같아요. 40도라도, 아이가 크게 처지지 않고 잘 먹고 컨디션이 나쁘지 않다면 뇌 손상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2)의 질문에 이어, 이전에 발열로 뇌 손상이나 청력이나 시력 잃으신 분을 봤다고 걱정하시는 분들께도 덧붙이자면, 그건 열성경련 이후, 아마도 세균성 뇌수막염 등의 상황이 아니었을까요. 발열 자체만으로 뇌나 청력, 시력의 손상을 일으키지는 않습니다.

3) 열경련하면 책임지실건가요?

죄송합니다. 열성경련은 어느 누구도 예측을 할 수가 없어요. 6개월에서 5세까지 환아에서 흔한 질병이지만, 어려운 부분이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점입니다. 경련을 하게 된다면 오시면 됩니다. 하지만 여기서 열 경련의 확률을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 

4) 수액 맞아야 열 떨어지는데요.

나왔다. 응급실에서 가장 힘든 말. 발열로 인해 체내 수분소실이 평소보다 높아지는 것은 맞는데, 경구섭취 가능한 아이라면 충분히 평소보다 수분섭취 시켜주시면서 보면 됩니다. 주사 잡기도 어려운 아이를 굳이 힘들게 할 이유도 없고, 수액을 맞아야 열이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일시적으로 해열제를 같이 써서 떨어지게 할 수는 있지만, 약효가 끝나면 다시 오릅니다. 영양의 기본은 경구영양입니다. 입으로 먹을 수 있으면 먹는 게 가장 좋아요.

5) 항생제 주셔야 하는 것 아닌가요?

아니요. 세균감염이 의심되는 상황에서 쓰는 것이 항생제입니다. 대부분 바이러스 감염에서 항생제를 먹인다고 빨리 낫지 않아요. 항생제는 세균을 죽이는 것입니다. 애초에 세균감염이 아닌데, 항생제를 먹인다고 감염이 호전될까요? 먹으니까 빨리 낫더라는 말씀은, 아마 나을 때가 되어서 나은 것일 겁니다. 

열이 나고, 힘들어하는 아이를 보는 부모님의 마음은 많이 아프겠지만 조금은 침착하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응급실이라는 곳은 사실 환아에게 썩 쾌적한 곳도 아니며, 정말 응급증상으로 내원하는 환아들이 경증 환아들 때문에 치료를 받는 속도가 느려지거나 주의가 분산되는 일들도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밤에 열이 나면 응급실부터 갈 일은 아니고, 환아가 많이 처지고 못 먹고 소변량도 반 이하로 줄 만큼 늘어지거나, 경련을 하거나, 발열과 함께 호흡곤란이 있거나 하는 등의 증상이라면 오시라. 하지만 컨디션이 나쁘지 않은 건강한 아이의 발열이라면, 조금은 더 여유있게 지켜봐주시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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