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밖에서는 낙수, 안에서는 천덕꾸러기.
조롱을 끌어안고, 비난에 입을 맞춰.
밖에서는 낙수, 안에서는 천덕꾸러기.
전공과목이 뭐냐는 물음에 소아응급이라고 하면, 생소하게 느끼면서도 일단 저 사람은 두 가지 기피 키워드를 함께 갖고 있으니 돈 보고 의사 한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는 경향들이 있다. 뭐 나도 사람인데, 돈 안 볼 리가 있나. 기왕에 돈 벌 거, 내가 잘하는 걸로 벌고 싶고, 희소가치 있는 전공이니까 붙어 있으면 빛 볼 날 있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도 있었고. 그래, 그래도 나를 버티게 했던 건 '뽕'이었다고. 지금 이 순간 이 병원 전체에서 응급실에 온 소아 환자 나보다 잘 보는 사람 없다는 자부심. 적어도 이 세상에 쓸모 있는 일 하고 있다는 믿음. 적어도 내가 진료 보는 타임에는 무지성으로 검사 긁고 마냥 기다리는 게 아니라, 열심히 물어보고 정성껏 만져보고, 필요한 검사 필요할 때 하면서 적절하게 증상 조절도 함께 해 주며 기다릴 수 있다는 것. 아주 소소하지만 적어도 나는 아는 아주 작은 차이가 있다는 것, 뭐 그런 것들이었다.
참 순진했던 생각이었다.
밖에서도, 안에서도 존중받기 참 어려운 길을 내가 가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낙수, 낙수 거리는 이야기를 들었다.
증원하면, 인기 과 못 간 애들이 자연스럽게 뭐라도 하려고 이런 '낙수'전공도 하지 않겠느냐고. 어떤 과도 골라 갈 수 있던 내 성적표를 무색하게 했고, 소신껏 일하고 어제보다 오늘 내 실력이 나아짐에 기뻐하던 나의 자부심에 먹칠을 했다. 아무 곳도 못 간 '떨거지'들이나 하는 일 취급을 받았다. 자조적으로 낙수에 낙수, 나는 그럼 더블낙수냐. 한 때는 중환자까지 꿈꿨으니 트리플 될 뻔했네, 고맙다. 자조하다가도 그 말이 어느 순간 참 듣기 싫었다. 물론 힘들었지만, 내가 그래도 지옥 문턱까지 가서 멱살 잡고 끌어 온 생명이 얼만데. 그 순간의 기쁨 하나로 하루 한 달 1년도 버텼다. 아 그때 나 좀 멋있었지. 그래, 나는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야. 그렇게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면서 또 다른 생명줄을 단단히 붙들던 날들, 그날의 애환들을 그렇게 '낙수'라는 단어 하나로 치부해 버리는 게 싫었다. 돈 벌려고 의사 된 건 맞지만, 그래도 그것만 보고 살지는 않았다. 이 일을 할 수 있는 건 지독한 오지랖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끼어들어서 그 사람의 삶을 바꿀 수 있다면 기꺼이 하겠다는 그런 마음. 그런데 그걸 바보 등신 취급을 하고 있어서, 내 자존감도 알게 모르게 박살이 나고 있다.
언젠가 함께 일했던 인턴 친구가 참 마음에 들어서, 아낌없이 칭찬을 해 주고 있었는데, 다른 인턴 친구가 그러더라.
너 그럼 소아과나 해.
아무 생각 없이 한 말이었단 것도 알고, 그랬기에 더 잔인한 말이란 것도 알고 있다. 소아과 '나' 하라는 말이 그리 쉽게 나오는 것은, 요즘 친구들은 어떤 과가 흥하고 망하는지를 엄청나게 잘 알고 있기 때문이고, 바닥 밑 지하실도 안 보이는 이 일을 당연히 안 하려고 하는 걸 모두가 알기 때문이었겠지만. 씁쓸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그 친구를 혼낸 들, 뭐가 달라질까.
한동안은 그래도 이 일을 계속한다면, 아무도 하지 않기에 품귀 현상을 빚을 것이고, 희소가치가 생길 테니 내 몸값도 오르겠다는 희망회로를 돌렸었다. 하지만 소아는 수가 자체가 낮기도 하고, 응급실에 오는 환아들에게 성인만큼 많은 검사를 하지 않다 보니, 말 그대로 식소사번. 품은 많이 들지만 아무도 그것에 대해서 가치를 매기지 않기에, 돈이 안 된다. 똑같은 수의 환자를 봐도 수익을 반도 못 내는 상황인데, 병원이 땅 파서 장사하는 것도 아닌데 얼마나 더 지원을 해주려고 하겠는가. 집행부에서는 이미 '당신들이 얼마나 파~격적인 대우를 받고 있는지는 아시냐'라고 대하는 판이었고, 담담히 나는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받아쳤지만 들으신 것 같지는 않았다.
같은 부서 내에서라고 딱히 존중을 하나, 글쎄 잘 모르겠다. 없으면 안 되니까 돌리기는 돌리는데, 그다지 수익이 나지도 않고, 그저 윗분들 당직 설 거 대신 서 주는 사람 취급하는 느낌이랄까. 아무리 그래도 응급실이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업무분장이 어떻게 되고 상황이 바뀌면 공지를 하는 등의 일련의 일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다는 느낌이다. 너네 돈 많이 받으니까(교수들보다) 이 정도는 해도 되지?라는 걸로만 보이는데, 안에서도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으니 일할 맛 참 안 난다. 안이고 밖이고, 요즘 느끼는 감정의 키워드는 모멸감이다. 성인응급에 비해서 짠 페이를 내가 왜 굳이 감수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다가도 그래도 내가 이 일 자체는 참 잘 맞는데, 하고 다시 마음을 잡는다. 그리고 얼마 전에 빚을 다 갚고 나서 비싼 반지를 하나 샀는데 근무하며 화가 날 때마다 들여다보고 왼손의 흑염룡을 잠재운다. 참자, 긁어놓은 카드값이 있잖니.
아이는 아프고, 죄가 없으며, 나는 이 일을 하면서 급여를 받는 직장인이니 일은 제대로 해야 한다는 걸 나도 안다. 또 하루의 당직을 무사히 넘기면 쉬는 날이고, 또다시 모멸감과 현타와, 그래도 일은 해야 한다는 이성이 맞서 싸우면서 하루의 당직을 또 서겠지. 또. 그렇게 하루를 넘기겠지. 그런데 언제까지 넘길까. 언제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