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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꼬마 Mar 05. 2024

25. 밖에서는 낙수, 안에서는 천덕꾸러기.

조롱을 끌어안고, 비난에 입을 맞춰.

밖에서는 낙수, 안에서는 천덕꾸러기.


전공과목이 뭐냐는 물음에 소아응급이라고 하면, 생소하게 느끼면서도 일단 저 사람은 두 가지 기피 키워드를 함께 갖고 있으니 돈 보고 의사 한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는 경향들이 있다. 뭐 나도 사람인데, 돈 안 볼 리가 있나. 기왕에 돈 벌 거, 내가 잘하는 걸로 벌고 싶고, 희소가치 있는 전공이니까 붙어 있으면 빛 볼 날 있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도 있었고. 그래, 그래도 나를 버티게 했던 건 '뽕'이었다고. 지금 이 순간 이 병원 전체에서 응급실에 온 소아 환자 나보다 잘 보는 사람 없다는 자부심. 적어도 이 세상에 쓸모 있는 일 하고 있다는 믿음. 적어도 내가 진료 보는 타임에는 무지성으로 검사 긁고 마냥 기다리는 게 아니라, 열심히 물어보고 정성껏 만져보고, 필요한 검사 필요할 때 하면서 적절하게 증상 조절도 함께 해 주며 기다릴 수 있다는 것. 아주 소소하지만 적어도 나는 아는 아주 작은 차이가 있다는 것, 뭐 그런 것들이었다.


참 순진했던 생각이었다.

밖에서도, 안에서도 존중받기 참 어려운 길을 내가 가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낙수, 낙수 거리는 이야기를 들었다.

증원하면, 인기 과 못 간 애들이 자연스럽게 뭐라도 하려고 이런 '낙수'전공도 하지 않겠느냐고. 어떤 과도 골라 갈 수 있던 내 성적표를 무색하게 했고, 소신껏 일하고 어제보다 오늘 내 실력이 나아짐에 기뻐하던 나의 자부심에 먹칠을 했다. 아무 곳도 못 간 '떨거지'들이나 하는 일 취급을 받았다. 자조적으로 낙수에 낙수, 나는 그럼 더블낙수냐. 한 때는 중환자까지 꿈꿨으니 트리플 될 뻔했네, 고맙다. 자조하다가도 그 말이 어느 순간 참 듣기 싫었다. 물론 힘들었지만, 내가 그래도 지옥 문까지 가서 멱살 잡고 끌어 온 생명이 얼만데. 그 순간의 기쁨 하나로 하루 한 달 1년도 버텼다. 아 그때 나 좀 멋있었지. 그래, 나는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야. 그렇게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면서 또 다른 생명줄을 단단히 붙들던 날들, 그날의 애환들을 그렇게 '낙수'라는 단어 하나로 치부해 버리는 게 싫었다. 돈 벌려고 의사 된 건 맞지만, 그래도 그것만 보고 살지는 않았다. 이 일을 할 수 있는 건 지독한 오지랖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끼어들어서 그 사람의 삶을 바꿀 수 있다면 기꺼이 하겠다는 그런 마음. 그런데 그걸 바보 등신 취급을 하고 있어서, 내 자존감도 알게 모르게 박살이 나고 있다.


언젠가 함께 일했던 인턴 친구가 참 마음에 들어서, 아낌없이 칭찬을 해 주고 있었는데, 다른 인턴 친구가 그러더라.


너 그럼 소아과나 해.


아무 생각 없이 한 말이었단 것도 알고, 그랬기에 더 잔인한 말이란 것도 알고 있다. 소아과 '나' 하라는 말이 그리 쉽게 나오는 것은, 요즘 친구들은 어떤 과가 흥하고 망하는지를 엄청나게 알고 있기 때문이고, 바닥 지하실도 보이는 일을 당연히 하려고 하는 모두가 알기 때문이었겠지만. 씁쓸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친구를 혼낸 들, 뭐가 달라질까.


한동안은 그래도 이 일을 계속한다면, 아무도 하지 않기에 품귀 현상을 빚을 것이고, 희소가치가 생길 테니 내 몸값도 오르겠다는 희망회로를 돌렸었다. 하지만 소아는 수가 자체가 낮기도 하고, 응급실에 오는 환아들에게 성인만큼 많은 검사를 하지 않다 보니, 말 그대로 식소사번. 품은 많이 들지만 아무도 그것에 대해서 가치를 매기지 않기에, 돈이 안 된다. 똑같은 수의 환자를 봐도 수익을 반도 못 내는 상황인데, 병원이 땅 파서 장사하는 것도 아닌데 얼마나 더 지원을 해주려고 하겠는가. 집행부에서는 이미 '당신들이 얼마나 파~격적인 대우를 받고 있는지는 아시냐'라고 대하는 판이었고, 담담히 나는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받아쳤지만 들으신 것 같지는 않았다.


같은 부서 내에서라고 딱히 존중을 하나, 글쎄 잘 모르겠다. 없으면 안 되니까 돌리기는 돌리는데, 그다지 수익이 나지도 않고, 그저 윗분들 당직 설 거 대신 서 주는 사람 취급하는 느낌이랄까. 아무리 그래도 응급실이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업무분장이 어떻게 되고 상황이 바뀌면 공지를 하는 등의 일련의 일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다는 느낌이다. 너네 돈 많이 받으니까(교수들보다) 이 정도는 해도 되지?라는 걸로만 보이는데, 안에서도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으니 일할 맛 참 안 난다. 안이고 밖이고, 요즘 느끼는 감정의 키워드는 모멸감이다. 성인응급에 비해서 짠 페이를 내가 왜 굳이 감수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다가도 그래도 내가 이 일 자체는 참 잘 맞는데, 하고 다시 마음을 잡는다. 그리고 얼마 전에 빚을 다 갚고 나서 비싼 반지를 하나 샀는데 근무하며 화가 날 때마다 들여다보고 왼손의 흑염룡을 잠재운다. 참자, 긁어놓은 카드값이 있잖니.


아이는 아프고, 죄가 없으며, 나는 이 일을 하면서 급여를 받는 직장인이니 일은 제대로 해야 한다는 걸 나도 안다. 하루의 당직을 무사히 넘기면 쉬는 날이고, 또다시 모멸감과 현타와, 그래도 일은 해야 한다는 이성이 맞서 싸우면서 하루의 당직을 서겠지. 또. 그렇게 하루를 넘기겠지. 그런데 언제까지 넘길까. 언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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