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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꼬마 Mar 01. 2024

24. 마라톤 나갔다가도 구급차를 타는 팔자.

선한 사마리아인 법.

타고난 몸치지만, 마라톤을 입문한 지는 어느새 한 4년쯤 되었다. '이렇게 살다가는 안 되겠다'는 자각이 들어 밖에 나가 냅다 달리기 시작한 게 그 시작이었다. 달리기를 일부러 해 본 것이 서른 넘어서 처음이었지만 누군가와 경쟁을 할 필요도 없고 그냥 나는 내 속도대로 맞춰 발걸음을 옮기면 된다는 것 자체가 매력적이었다. 처음 달리기를 시작하던 때 두세 번은 쉬어야 겨우 올라갔던 혜화로터리에서 서울과학고, 성북동으로 넘어가는 가파른 오르막길이 어느 순간부터 한 번에 올라갈 수 있게 되고, 올라간 속도 그대로 달리기를 이어나갈 수 있게 되던 날의 뿌듯함이란.


아주 소규모의 인원이지만 의국 사람들과 가끔 만나 달리기 하는 모임도 있다. 일명 '이달'(Emergency medicine 달리기의 준말). 달리기를 하다 보니 점점 달릴 수 있는 거리가 늘면서 이제 하프마라톤 대회도 가끔 나갔고, 올 4월에는 인생 버킷리스트였던 풀코스 마라톤에 도전한다. 아무 생각 없이 팔다리를 움직이기만 하는 일이 잡념을 잊게 하는 데 참 좋아서, 여러 사람에게 추천하고 다닌다. 여행지에 가서도 달리기를 할 준비를 해서 간다. 아침 햇살이 비칠 때 달리기를 하며 낯선 풍경을 맞이하고, 서서히 깨어나는 도시를 마주하는 일은 퍽 낭만적이다. 대단한 관광 명소는 아니면 어떤가, 달리며 내 눈에 담은 그날 그 도시의 아침을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매력적인데


그날은 두 번의 하프마라톤 경험 이후, 세 번째 하프마라톤을 도전하던 날이었다. 초여름의 아침은 벌써부터 햇볕이 뜨겁고 쨍하니 더웠다. 그전 마라톤 대회와 같은 코스여서 익숙하기는 했지만 훨씬 힘들게 느껴지는 날이었다. 달리면서 스스로를 가스라이팅했다. 자, 이 1km만 뛰고 싫으면 언제든지 집으로 가는 거야, 저 다리까지만 가고 못 하겠으면 언제든지 집으로 가면 되는 거야. 그렇게 가다 보면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급수대가 나와 목을 축일 수 있고, 내가 뭘 하는 것도 아닌데 온 세상이 막 다 나를 응원해 준다. 조금씩 힘이 나기 시작한다. 미리 담아 온 신나는 음악들을 들으면 어느새 반환점이 나온다. 그때를 넘기면 나의 러너스 하이가 온다. 한 11-14km 지점이 나의 러너스 하이인데, 그때는 그냥 보이지 않는 손인지 발인지가 나를 둥실둥실 띄워서 달리게 만드는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 든다. 하지만 15km 지점부터는 그 마법 같은 순간은 끝나고, 1km 1km가 그렇게 길 수가 없다. 18km 지점부터는 이제까지 해온 것이 너무 아까워져서, 딱 3km만 참자고 겨우 다리를 옮기는 수준이다. 이 애송이 마라토너가 그렇게 스스로를 어르고 달래면서 달리던 중에, 19km 지점쯤에 누군가 풀숲에 쓰러진 것이 보였다.


우리 엄마 나이대 정도 되려나. 쓰러져 있는데 의식은 있으신 것 같고. 어쩔까. 뭔지는 알아야지. 주변에 마라톤 주최 측 도우미분들이 계셔서 여쭤보았다. 이 분 왜 이러시나요. 어지럼증이라고 하셨다. 더럭 겁이 났다. 어지럼증이야말로 내가 응급실에서 만났을 때 가장 어려워하고 뭐가 나올지 모든 검사들이 다 나올 때까지 긴장하게 만드는 주 증상의 양대 산맥 아니었던가. 어지럼증과 기운 없음! 이 짧은 말 안에 감별해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특히 어지러워서 걷지 못하는 수준이라면, 소뇌 경색 등 촌각을 다투는 병까지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상황인데, 우리 이러고 있어도 되는 것 맞나. 많이 더운 날이라 의료인이 아닌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열탈진 정도로 생각하셨던 것 같다. 더워서 지쳐서 쓰러지셨나 보다, 할 수 있지. 구급차는 불러서 곧 이송을 한다고는 하는데, 가던 길을 가려고 하다가 발길이 떼어지지 않았다. 내가 누군가, 이 구역 최고의 오지라퍼 아니겠는가. 우리 엄마 생각이 나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엄마가 이런 상황에 처해있을 때라면, 도와주기를 바라지 않을까?


저 응급의학과 전문읜데요, 구급차 올 때까지 제가 좀 봐도 될까요?


주최 측 입장에서도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흔쾌히 그럼 좀 봐달라고 하셨다. 풀숲. 갖고 있는 도구는 나의 머릿속에 든 지식과 내 몸 하나. 그쪽에서도 흔쾌히 그럼 좀 봐달라고 하시더라. 검진 자체가 쉽지는 않았지만, 많이 당황스러우신 와중에도 최선을 다해서 문진과 검진에 협조해 주셨다. 의식은 명료하고, 말씀도 대답 잘하시고, 지남력도 오케이. 팔다리 근력이나 감각 괜찮고. 상황을 들어보니 지난주 뫼니에르 진단을 받으셨는데 돌부리 걸리면서 휙 어지럼증이 급격히 유발. 고혈압이나 당뇨, 고지혈증 등의 과거력은 없음. 갑작스러운 체위변화에 따른 어지럼증 중 제일 흔한 것은 이석증. 원래 제대로 검진하려면 '프렌첼 글라스'라는 안경을 쓰고, 환자의 주시를 억제한 상태에서 이리저리 체위를 변화시키며 안진이 유발되는지를 확인해야 하는데, 지금은 나안 검진밖에는 할 수 없었다. 나안 검진으로는 두드러지게 유발되는 안진은 없었고, 청력은 한쪽이 약간 떨어져 있었는데 뫼니에르 진단을 받았던 때와 비교해서 더 심해지지는 않았다고 하신다. 일단 제1 의심 진단은 이석증. 머리보다는 일단 귀 쪽의 문제가 더 가능성은 높겠지만, 검진부터 제대로 하기가 어려우니 빨리 병원으로 이송하고 증상을 조절하며 필요한 검사들을 하셔야겠다는 판단이었다. 다행히 처음보다는 많이 좋아지셨는지, 걸으실 수 있는 상태였고, 걸음걸이가 한쪽으로 쏠리거나 휘청거리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 사이 구급차가 왔다. 처음 환자를 진찰한 의사의 소견을 전달해 주는 것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에, 구급차에 동승했다. 보호자분에게 연락을 드리고 상황을 설명하고 병원으로 오시도록 전화드렸다.  


아뿔싸. 가장 가까운 병원에 갔는데 신경과/이비인후과 백업이 안 되어 환자 진료가 불가하다는 답변. 환자의 댁 근처를 알아보고, 이전 내가 근무했던 곳이 있어 그곳에 있는 후배에게 이런 환자 진료가 되는지를 물어봤다. 안 된다고 하면 119쪽에 도움을 요청할 생각이었다. 다행히 진료가 가능하단다. 전화를 받은 후배가 한 마디 덧붙였다.


선생님, 왜 마라톤까지 가서 거기서 그러고 계세요.


몰라 인마. 내가 그렇지 뭐.


환자분도 그렇지만 보호자분도 상당히 침착하고 차분한 분이셨다. 상황을 설명드리고 먼저 갔던 병원에서 진료가 불가해 댁 인근의 병원 중 진료 가능한 곳을 말씀드렸다. 119를 불러 이송하는 것을 고려했었지만, 환자분이 자차로 이송하시는 것에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판단하여 바로 병원으로 가시도록 당부했고, 특히 병력 중  돌부리에 걸리면서 휘청거리신 상황을 꼭 말씀하시도록 당부드렸다. 내가 그 상황에 놓였다면, 내가 그 당사자나 보호자였다면 이렇게 차분하기 어려웠을 텐데 다행이었다. 그 병원까지는 다른 일정도 있었고, 보호자 1인만 출입이 가능했던 상황이기에 따라가지 않았다. 대신 이송한 병원에서 처음 본 의사 소견이 필요하거나 하면 연락하시라고 말씀드렸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완주했냐는 아버지의 연락이 왔다. 왜 못했는지 말씀드리자 잘했다고 말씀하셨다. 의외였다. 나의 오지랖을 지탄하실 줄 알았는데. '선한 사마리아인 법'을 아시는가. 생명이 위급한 응급환자를 구조한 사람이 환자가 살아나지 못했을 때, 아무리 선한 사마리아인 법이 있다고 하지만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그것을 어떻게 증명하며) '사망'에 대한 '형사책임'은 '감면'을 받지 완벽한 면책을 받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그리고 아버지는 뒤늦게 한 마디 덧붙이셨다. 같은 성별이었는지, 그리고 네가 환자를 볼 때 누군가 네 곁에서 같이 있었냐고. 주최 측 관계자분이 한 분 같이 있었다. 누군가 참관하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성별일 때 성추행이나 절도 등으로 물에 빠진 사람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하는 식의 일이 생긴 전례가 있다고, 조심해야 한다고 하셨다. 소름이 쫙 돋는 느낌이었다. 나 운 좋았구나. 대부분의 다른 의사 선배들은 그랬다. 무모했다, 너 운 좋았다고.


하지만 그 순간으로 내가 돌아갔더라도, 아마 나는 다른 선택을 했을 것 같지는 않다. 내가, 내 가족이 비슷한 일을 겪게 되었을 때 누군가 선뜻 도움의 손길을 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선의가 돌고 돌 수 있는 세상이기를 바라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지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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