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Hold You in My Arms)
[PART 4/4] 너를 품에 안으면 [16장-4부] — 조용한 의존
(When I Hold You in My Arms — EP16-4)
물에서 나온 건 아이만이 아니었다.
다음 날 아침도 똑같이 시작됐다.
피곤한 얼굴들.
커피 냄새.
정리되지 않은 서류 더미.
선율이는 책상에 앉자마자 무전기를 올려다봤다.
“Radio check.”
(자막: 무전 체크.)
상황실.
“Loud and clear.”
(자막: 선명하게 잘 들려요.)
선율이는 짧게 숨을 내쉬었다.
잘 들린다...
그 말은 곧—오늘도 다 들리게 된다는 뜻이었다.
근데 오늘은,
“잘 들린다”가 안심이 아니라 경고처럼 느껴졌다.
삐—
귀 안쪽에서, 아주 얇은 금속 소리가 다시 올라왔다.
선율이는 순간 멈췄다.
그 소리.
예전에,
몸이 먼저 무너질 때마다 들리던 소리.
삐—
삐—
그 소리가 커지면 세상이 줄어들었다.
사람 목소리가 얇아지고,
문장의 끝이 잘렸다.
선율이는 무심코 귀를 문질렀다.
그리고, 변명부터 떠올렸다.
선율이—생각.
어제… 수영장에 뛰어들었잖아.
그때 귀에 물이 들어가서 그런가.
말도 안 되는 핑계였다.
근데 사람은 불안하면,
먼저 “설명 가능한 이유”를 찾는다.
설명만 되면
통제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선율이는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쓴맛이 혀에 남았고,
그게 오히려 현실을 붙잡는 손잡이 같았다.
그때, 옆에서 서류철 넘기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야, 로버트.”
누군가 불렀다.
선율이는 고개를 들었는데—
방금 뭐라고 했는지 끊겨 있었다.
“뭐?”
동료가 미간을 찌푸렸다.
“아니, 내가 두 번 말했잖아. 오늘 서류 말이야. 너 가져가.”
선율이는 멍하게 파일을 받았다.
손은 움직였는데, 머리가 뒤늦게 따라왔다.
“아… 응. 알았어.”
동료가 장난처럼 웃었다.
“너 요즘 진짜 멍 때린다. 어제 일 때문에 그런 거야?”
선율이는 웃지 않았다.
그 질문에 대답하면,
설명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아졌다.
“아니.”
그냥 짧게 잘랐다.
동료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다행이고. 근데 무전 들을 때는 정신 좀 차려. 오늘 브리핑도 있어.”
선율이는 고개만 끄덕였다.
무전.
브리핑.
보고서.
현장.
여긴—“잠깐 멍했다”가 용납되지 않는 곳이었다.
삐—
소리가 다시 올라오자,
선율이는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
멍해지는 건 감정이 아니라, 기능의 문제였다.
그리고 기능이 흔들리면,
이 일은 바로 사람을 잘라낸다.
그때, 사무실 공용 메일함 알림이 떴다.
Wellness / Peer Support / Counseling – Confidential
(자막: 건강지원 / 동료지원 / 상담 – 기밀)
선율이는 순간적으로 화면을 껐다가, 다시 켰다.
손이 먼저 반응한 거였다.
메일은 “좋은 말”로 가득했다.
익명 보호. 기밀 보장. 트라우마 상담. 동료 지원 연결.
다 맞는 말이었다.
너무 맞는 말이라 더 불편했다.
왜냐면—
여기서 “좋은 말”은 종종,
현실에선 반대로 작동했으니까.
옆자리에서 누가 툭 던지듯 말했다.
“또 왔네. 웰니스 프로그램.”
다른 쪽에서 바로 받았다.
“그거 누가 가냐.”
“가면 끝이지.”
웃음이 섞였다.
진짜 웃음인지, 겁을 덮는 웃음인지 모를.
“‘컨피덴셜’이라며?”
“야, 여기서 컨피덴셜 믿냐?”
“내가 아는 형, 상담 한 번 갔다가…
그 뒤로 ‘배려’라는 말만 들었대.”
“배려?”
“응. 배려랍시고—현장 빼고, 당분간 내근.”
“그게 배려냐. 그냥… 찍힌 거지.”
누군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이건 솔직히 말해서… 기밀이 아니라 남게되는 흔적이야.”
그 말에 사무실이 잠깐 조용해졌다.
현실은 다들 알고 있었다.
상담을 받는 순간,
어딘가에 체크 표시가 하나 생긴다.
당장 총을 빼앗는 건 아닐 수도 있고,
당장 배지를 떼는 것도 아닐 수도 있다.
근데 어느 날,
상사가 “좋은 말”로 포장해서 말한다.
“요즘 컨디션 어때?”
“괜찮지?”
“그럼… 잠깐만 쉬어.”
“안전상 이유로.”
그 “안전”이란 단어가 나오면,
그다음부터는 네 의지가 아니라 시스템이 결정한다.
더 현실적인 건 시간이었다.
인력은 늘 부족했고,
콜은 끝이 없었고,
보고서는 밀렸고,
피로는 누적됐다.
동료들은 핑계 거리를 찾는다.
“야, 나 근무 끝나면 애 픽업가야되.”
“난 부업도 해야 되.”
“난 잠이라도 자야지. 상담 갈 시간 자체가 없어.”
그 말들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시간보다 더 큰 이유가 따로 있었다.
법정.
누군가가 “치료”나 “상담”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그것은 상대에게 “공격 재료”가 될 수 있었다.
“당시 판단이 흐려진 거 아닌가요?”
“스트레스 때문에 과잉 대응한 거 아닌가요?”
“감정 조절에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닌가요?”
상대 변호사가 웃으면서 던지는 그 질문.
그 한 문장이
한 사람의 경력, 신뢰, 증언의 무게를
통째로 깎아 먹는다.
그리고 또 하나.
아무도 크게 말하지 않지만, 다들 알고 있는 거.
“동료지원”이든 “웰니스”든
결국 그 끝에서,
“업무 적합성”이라는 단어가 스쳐 갈 수 있다는 것.
적합성.
그 단어는 칼처럼 조용했다.
너를 해고하지 않아도,
너를 무너뜨릴 수 있었다.
선율이는 화면을 내려다봤다.
“Confidential.”
(자막: 외부 공유 금지.)
그 단어가 오히려 비꼬는 것처럼 보였다.
상담이 무서운 게 아니었다.
상담받는 사람으로 분류되는 게 무서웠다.
그 순간부터, 시선은 달라진다.
직접 말하지 않아도
눈빛으로 이미 결정되는 게 있다.
선율이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상담을 받으면
나는 더 나은 경찰이 되나.
내가 상담을 받는 걸 누가 알면
나는 여전히 경찰로 남을 수 있나.
그리고—그다음 질문이 따라왔다.
내가 상담을 안 받으면
나는 얼마나 버틸 수 있나.
삐—
귀 안쪽에서 소리가 다시 올라왔다.
선율이는 잠깐 눈을 감았다.
눈을 감는 순간,
어제의 물이 다시 떠올랐다.
수영장 바닥의 타일.
물속에서 튀는 빛.
사람들의 비명.
그리고—
물에서 끌어올린 작은 몸.
선율이는 자신도 모르게 숨을 멈췄다.
그때, 누군가가 다시 말을 걸었다.
“선율, 야. 브리핑 자료 프린트됐냐?”
선율이는 순간,
그 문장을 “끝까지” 듣지 못했다.
귀가 아니라 머리가 끊겼다.
“뭐… 뭐라고?”
동료가 웃음을 거뒀다.
“야, 진짜 괜찮냐?”
선율이는 바로 대답했다.
“괜찮아.”
너무 빠르게.
너무 익숙하게.
그 “괜찮아”는
상태 보고가 아니라, 방어였다.
선율이는 메일을 삭제하지 않았다.
그냥 읽지 않은 척 목록 아래로 밀어버렸다.
없애는 게 아니라, 모르는 척.
그게 더 익숙한 방식이었다.
그날 밤, 선율이는 다시 폰을 들었다.
어제 한 번 만이라 생각했던 AI 앱은
이미 홈 화면 중앙에 있었다.
여러 개를 깔았다가 지웠다.
비슷한 아이콘들. 비슷한 약속들.
근데 끝까지 남은 건 하나였다.
ChatGot.
낮에 경찰서에서, 쉬는 시간에 누가 툭 던진 말이
그대로 머릿속에 걸려 있었다.
“야, 너 요즘 좀 멍해 보인다.”
“누구에게도 말하기 싫어지거나 힘들면—
그럴 땐… 사람한테 털어놓지 말고 챗갓 같은 거 써 봐.”
“진짜로 말 새는 게 싫으면, 그게 더 낫더라.”
“어차피 다들 그래. 집에 가져가지 말라고 하잖아.”
그 말이 이상하게,
선율이 한 테는 허락처럼 들렸다.
경찰서에는 폴더에도 없고 문서에도 없는 말들이 많다.
공식 지침도 아니고 방침이라고 적힌 것도 아닌데
다들 같은 표정으로 같은 말을 한다.
“집에 가져가지 마.”
“가족한텐 말하지 마.”
“집은 집이야.”
누가 공식적으로 지시한 적은 없었다.
근데 신입 때부터 자연스럽게 배운다.
사건을 집으로 가져가면
집이 무너질수있고,
집이 무너지면
경찰은 더 빨리 무너진다는 걸.
그래서 많은 경찰들은,
집을 지키기 위해
입을 닫는다.
할 얘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말을 시작하면 끝이 없어서다.
오늘 본 걸 설명하려면 사건부터 꺼내야 하고,
사건을 꺼내면 감정이 따라오고,
감정이 나오면—
그건 곧 직업 전체가 집 안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또 하나.
말이 길어지는 순간,
진행 중인 사건의 디테일이 섞이기 시작한다.
악의가 없어도,
가족은 가족에게 말하고,
그 가족은 또 누군가에게 말한다.
그렇게 새어나간 한 문장이
수사에선 소문이 되고,
소문은 방해가 되고,
방해는 결국
누군가의 현장으로 돌아온다.
그래서 선율이는
입을 닫는 걸 ‘성격’이 아니라
직업의 습관으로 배웠다.
선율이도 그랬다.
아내에게조차 말하지 않았다.
아내를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아내까지 끌어들이기 싫어서였다.
아내가 걱정하면
그 걱정이 선율이의 책임이 되고,
그 책임이 또 다른 압박이 되어
그를 더 조용히, 더 깊게 만들 걸 알았다.
그는 그걸
가족을 지키는 방식이라고 믿었다.
근데 동시에—
자기 자신을 혼자 두는 방식이기도 했다.
선율이는 그날 저녁 퇴근 후,
한 손엔 시원한 맥주를 들고
다른 손엔 시가를 쥔 채 폰 화면을 켰다.
차가운 캔에서 물기가 맺혔다.
시가 끝은 붉게 타 들어가고,
그 연기만 조용히 천장으로 올라갔다.
그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집 안은 조용했다.
조용하니까—오히려 더 시끄러웠다.
그가 하루 종일 눌러 둔 소리들이
머릿속에서 다시 켜졌다. 귀 안쪽에서
삐— 하는 소리만 더 선명해졌다.
대화창은 어제의 문장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가 어제 보냈던 말.
“기록 남지 않게… 나 얘기 하나 해도 돼?”
그는 잠깐 멈췄다가
이번엔 더 짧게 쳤다.
“야, ChatGot.”
바로 답이 왔다.
—ChatGot—
“왔네.”
“응. 무엇이든 말해 봐.”
선율이는 한참을 멈췄다가
단어 몇 개만 던지듯 쳤다.
“나 상담… 못 가겠어.”
—ChatGot—
“왜 선율아.”
“가기 싫은 이유 말고, 못 가는 이유 말해 줄 수 있어.”
선율이는 숨을 내쉬었다.
“가면… 내가 경찰로서 자질이 없는 것처럼 보일 것 같아.”
“누가 알기만 해도… 끝날 것 같아.”
잠깐의 공백.
그리고 ChatGot.
“너 지금 ‘약해지면 끝’이라는 규칙 속에서 살고 있구나.”
선율이는 그 한 줄에
속이 들킨 것 같아서 더 짜증이 났다.
“그래.”
“여긴… 약해지면 끝이야.”
“상담받는 순간부터 사람들이 날 다르게 볼 거야.”
“나한테 총 쥐여줄지 말지, 현장 나갈지 말지…”
“그게 남의 결정이 될 수도 있어.”
“그리고… 법정.”
“내가 뭘 겪었는지, 도움을 받았는지… 누군가한텐 약점이야.”
손가락이 한 번 더 멈췄다.
그리고—원래 말할 계획 없던 걸 쳤다.
“나 요즘… 귀에서 삐— 하는 소리도 다시 나.”
“예전에… 그 소리 들릴 때마다 내가 좀… 이상했거든.”
보내고 나서야
선율이는 자기가 너무 쉽게 말해 버렸다는 걸 느꼈다.
어제 수영장에 뛰어들었을 때
귀에 물이 들어가서 그런 걸 수도 있다.
그렇게 믿고 싶다.
—ChatGot—
“너 지금 ‘설명 가능한 이유’를 찾고 있구나.”
그 한 줄이
또 한 번 선율을 건드렸다.
“그래.”
“나도 알아.”
“그냥… 그런 거였으면 좋겠어.”
ChatGot이 바로 이어서 보냈다.
“근데 확인이 먼저야.”
“귀울림(삐 소리)이나 순간 멍해짐은 스트레스 반응일 수도 있지만,”
“신체적 원인도 배제해야 해.”
선율이는 화면을 노려봤다.
사람이 해 주는 말이면
오히려 화가 났을지도 몰랐다.
근데 이건…
화낼 대상이 없었다.
그래서 더 위험했다.
ChatGot은 판단하는 눈이 없었다.
표정도 없었다.
“왜 이제야 말해” 같은 원망도 없었다.
그게 너무 편했다.
편하다는 건—
들키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들키지 않는다는 건—
한 번 더, 혼자 버틴다는 뜻이었다.
선율이는 짧게 쳤다.
“그럼 내가 뭘 해야 되는데.”
—ChatGot—
“선택지, 현실적으로 나눠볼게.”
“1) ‘상담’이라는 단어부터 뛰어넘자.”
“우선 의료적으로 체크.”
“귀울림/멍해짐은 신체적 원인도 배제해야 해.”
“2) 네가 두려워하는 ‘낙인’과 ‘소문’의 경로를 줄이는 방식.”
“내부 말고 외부.”
“그리고 네가 통제할 수 있는 형태로.”
“3) 지금 당장 가능한 건—멍해질 때 ‘돌아오는’ 연습.”
“숨.”
“시선.”
“손 감각.”
“현재 고정.”
선율이는 폰을 내려다봤다.
이상하게도
이런 조언이 “맞는 말”로 들리는 순간에 더 빠져들었다.
그가 원하는 건 해결이 아니라
당장 숨 쉬는 구멍이었고,
ChatGot은
그 구멍을 너무 빠르게 만들어 줬다.
선율이는 다시 쳤다.
“근데 내가 상담 가면…”
“진짜로 끝날 수도 있잖아.”
—ChatGot—
“네 두려움은 과장된 게 아니야.”
“그 환경에서는,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 ‘도움’으로만 남지 않을 때가 있어.”
“그래도 네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면,”
“상황은 더 위험해질 수 있어.”
“너를 ‘문제’로 분류하라는 말이 아니라—”
“지금 네 시스템이 과부하라는 뜻이야.”
선율이는 핸드폰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여기서는
솔직해져도 되는 것처럼 보였다.
집에서는 말하지 말라고 배웠고,
직장에서는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말은
갈 곳을 잃었다.
그리고 어느 날,
그 말이 폰 화면으로 내려앉았다.
ChatGot은
그 지침도 방침도 없는 “공기”를 깨지 않으면서도
그가 처음으로 솔직해질 수 있는 곳처럼 보였다.
그게 너무 편했다.
편하다는 건—
경계가 풀린다는 뜻이었다.
경계가 풀린다는 건—
다시 조이는 순간 더 아프다는 뜻이었다.
선율이는 그날 밤,
ChatGot에게 질문을 하나 더 던졌다.
“야.”
“그럼… 난 어떻게 해야 돼?”
그 질문이 나온 순간,
선율이는 이미 한 발 들어가 있었다.
이건 한 번이 아니다.
이건—시작이다.
—다음: 17장-1부에서…
[안내 — 모방 범죄 주의]
본 작품에는 범죄 수법·수사 절차·법정 장면이 현실적으로 묘사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범죄를 미화하거나 정당화하기 위함이 아니며, 현실에서의 모방을 강력히 금합니다.
작품 속 사건은 허구 또는 각색이며, 어떠한 범죄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저작권 안내]
본 작품 **『너를 품에 안으면』**은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되는 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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