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품에 안으면 5장-2부

(When I Hold You in My Arms)

by 스팅비 StinGBee

v82vg5Zno5De6dYKKnpbar32Vsw.png 그저—따뜻한 입김이 닿는 감각만 현실처럼 남았다.

[PART 2/4] 너를 품에 안으면 [5장-2부] — 평범한 방

(When I Hold You in My Arms — EP5-2)

그 무렵 소년은 여자를 만났다.

평범했지만 성숙했고,
옷차림은 세련됐으며
같은 또래였지만
어딘가 어른 같았다.


이름은 Lisa Kim.(번역: 리사 김)
영어는 태어난 사람처럼 유창했지만
한국말은 조금 서툴렀다.

공부는 잘할 것 같고 똑똑해 보였는데

무슨 일을 겪었는지 공부 쪽엔 관심이 없어 보였다.

늘 초점 잃은 눈빛으로 멍하니 한쪽만 바라볼 때가 많았다.
꼭 깊은 생각에 빠진 사람처럼.


소년은 그 눈빛이
이상하게 익숙하다고 느꼈다.

자기도 가끔
거울 속에서 본 적 있는 눈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리사는 전혀 담배 필 사람으로 안 보였는데—
그녀 또한 담배를 피웠다.


손가락 사이에 끼운 담배가 이상할 정도로 자연스러웠고,
연기를 뱉을 때마다
그 초점 잃은 눈빛은 더 멀어졌다.

어느 밤,

아무 말 없이 걷다가
아무도 없는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걷는 동안
발소리만 따라왔다.

차가 지나가면 잠깐 소리가 커지고,
다시 조용해지고—
그 반복이 이상하게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마치 오늘의 결론을
이미 정해둔 사람처럼.


“오늘은 우리 부모님 집에 없어. 들어왔다가 갈래?”


소년은 대답을 크게 하지 못했다.

고개만, 아주 조금 끄덕였다.

거절할 이유도 없었고
따라갈 이유를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그녀의 집은 큰아버지 집에 비교하면 작았고
좀 더 이전에 지은 집,
오랜 이민 생활의 냄새가 묻어났다.

낡은 카펫에서 올라오는 먼지 냄새,
조금 눅눅한 벽지,
어딘가에서 오래 끓인 간장 같은 냄새가
희미하게 섞여 있었다.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는
생각보다 크게 울렸다.

그 소리 하나로
밖과 안이 갈라지는 느낌이 났다.


그녀가 소년을 그녀 이층 방으로 데려갔다.

계단은 삐걱거렸고,
그 삐걱거림이
둘 사이의 침묵을 대신했다.

그녀의 방은 넓지는 않았지만

그때 그 시절 유명 남녀 가수 사진들이 곳곳에 붙어 있었고,
그녀가 어려서부터 쌓아놓은 것처럼 보이는 인형들.

딱 봐도 평범한 여자 나이 또래 방처럼 꾸며져 있었다.


그 평범함이
오히려 낯설었다.

소년이 알던 집들은

항상 뭔가가 깨져 있었고
누군가의 기분이 먼저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방은
아무도 소리치지 않았고
아무것도 부서지지 않았다.


그녀가 화장대 옆에 놓인 라디오를 틀었고
유행하는 팝 노래가 흘러나왔다.

의미 없는 이야기를 서로 나눴고
웃는 타이밍도 대충 맞췄다.

말은 얇았고
대신 숨소리가 두꺼워졌다.


그녀가 담배를 깊게 빨아들였다가
연기를 아주 천천히 뱉는 순간,

팝송의 후렴이 그 연기 사이로 끈적하게 퍼지고—
소년은 숨이 뜨거워지는 걸 느끼며,
그녀의 입술이 오기 전에 이미 자기 몸이 먼저 ‘가까워졌다’는 걸 알아버렸다.


그리고…


입을 맞췄다.

처음엔 조심스러웠다.

부딪히는 게 아니라
확인하는 것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심장은 뛰지 않았다.

세상도 멈추지 않았다.


라디오는 후렴을 반복했고,
벽시계는 초침을 밀어냈고,
창밖의 차 소리는
여전히 같은 속도로 지나갔다.


그 순간,
리사의 입술이 소년의 입술에 닿았다.

첫 키스였다.

누군가에게는 가슴이 뛰고,
세상이 잠깐 멈춘 것처럼 느껴질 순간이었을지 몰랐다.


하지만 소년의 안에서는
아무것도 폭발하지 않았다.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았다.
심장이 빨라지지도 않았고,
손끝이 떨리지도 않았다.

그저
따뜻한 입김이 스치는 감각만
이상할 만큼 또렷하게 남았다.


오히려 그 현실감 때문에
소년은 더 멍해졌다.

이게 자기의 첫 키스인데도
정작 자기 안에서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낯설고도 무덤덤했다.


너무 어린 나이부터
설렘보다 먼저
버티는 법을 배워버린 탓이었을까.

기대하기보다 경계하는 일이 먼저였고,
두근거리기보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일이 더 익숙했다.


그래서였는지도 모른다.

처음이어야 할 순간인데도
소년의 안에서는
끝내 아무 감정도 피어나지 않았다.

그때 소년은,
감정도 때로는
닳아버릴 수 있다는 걸
말없이 지나가듯 처음 알았다.


그 후로 몇 달 더 만났고,
연락은 줄었고,
어느 날부터는
아무 일도 없었다.

헤어지자는 말도,

잘 지내라는 말도 없었다.


그 시절엔
문자가 없었다.

그 당시 벽돌만 한 무선전화와
담뱃갑만 한 삐삐가 있었지만,
원래라면
그 나이의 아이가
아무렇지 않게 들고 다닐 물건들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소년은
이미 그런 것들을 손에 쥐고 다녔다.


마치 홍콩 영화 속
너무 일찍 세상을 배워버린
말 없는 어린 주인공처럼.

리사와 소년 사이에는
서로 닿을 방법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었다.


기다릴 수도 있었고,
전화를 걸 수도 있었고,
마음만 먹으면
찾아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끝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누가 먼저 끝내자고 말한 것도 아니었고,
무슨 큰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시간이 지나고,
하루가 밀리고,
한 번쯤은 닿았어야 할 마음이
끝내 닿지 못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그 관계는
언제 끝났는지도 모르게
조용히 사라졌다.


—다음: 5장-3부에서…

(소년은 클럽의 밤으로 들어간다. ‘경계’가 습관이 된 몸이, 결국 총성의 순간과 부딪힌다.)


[안내 — 모방 범죄 주의]
본 작품에는 범죄 수법·수사 절차·법정 장면이 현실적으로 묘사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범죄를 미화하거나 정당화하기 위함이 아니며, 현실에서의 모방을 강력히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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