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불러!

이—개 @#$%!… 그래도 앞으로 나가는 이유

by 스팅비 StinGBee

이—개 @#$%!…

나는 원래 금요일부터 월요일까지 푹 쉬려고 했다.

근데 어젯밤에 전화가 울렸다.

오래전부터 잘 알고 지내는 동료였다.

그리고 오늘이 밸런타인데이이다.

남들에겐 약속 있는 날이고,

나한텐 쉬는 날이어야 하는 날이다.

그래서 친구들 전화가 오면 전부 거절했다.


“야, 한 잔 하자.”

“싫어.”

“얼굴 좀 보자.”

“싫어.”


핑계도 길게 안 댔다.

그냥… 귀찮았다.

이번에 모처럼 쉬는 날엔 그냥 혼자서 쌩쑈를 하면서 푹 쉬고 싶었다.

이미 머릿속엔 계획이 있었다.

냉장고에 맥주 몇 캔.

혼자만의 파티.

누구랑 떠드는 소리 없이, 조용히.

오래간만에 미뤄두고 못 봤던 한국 드라마도 보면서 브런치도 편하게 할 겸^^


근데 그걸 한 방에 엎어버린 놈이 있다.

그 녀석 이름은 딘누엔(가명)이다.

월남 사람이고 경찰이 된 지 30년을 달려가는 베테랑 중에서도 베테랑이다.


여긴 월남 커뮤니티가 한국 커뮤니티보다 훨씬 커서 그 나라 방송국도 여러 개나 된다.

한인 방송국은 하나도 없고 심지어 라디오 채널도 없다.

그런 걸 볼 땐 그들이 너무 부럽다.

딘누엔은 월남 방송국 채널에 매주 고정출연해서 시청자들에게 범죄예방 프로그램에

사건사고 등을 매번 1시간 분량으로 진행한다.


사적으로 만나는 친구들 전화 와서 술 한잔하자는 건 다 뿌리쳤는데

모처럼 혼자 파티나 하면서 쉬려고 했는데

이놈 새끼가 내 흥을 한순간에 다 엎어버렸다.


전화기 너머로 딘누엔이 말했다.

“야. 내일 저녁부터 자정까지 나와줘. 완전 무장하고.”
“대형 교회 행사다. 경호도 해야 되고… VIP들 온다.”

“정치인부터 연예인까지, 베트남에서 이름 있는 사람들 다 온대.

내가 굳이 말 안 해도… 어떻게들 하고 오는지 너는 알지.”

“행사 내내 내 옆에 있어줘. 너도 소개해줄게.”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속으로 욕이 나왔다.

“야! 이—개 썅! @#$%!...”

(물론 속으로.)


하필 내일… 내가 쉬려고 마음먹은 딱 그날에.

근데 더 문제는, 내가 이 부탁을 쉽게 거절 못 한다는 거다.


밸런타인데이도 밸런타인데이인데, 구정까지 겹쳤다.

안 봐도 축제는 커질 것이고, 사람은 더 몰리고, 나는 더 바빠지는 구조란 걸 안다.


딘누엔 부탁을 내가 쉽게 거절 못 하는 이유도 사실 따로 있다.

내가 신참 때였다.
내가 누구한테 “도와주세요” 손 벌리기 전에—
같은 나라 사람도 아닌데,
그냥 같은 동양계라는 이유 하나로 먼저 다가와서 도와준 게 딘누엔이었다.


나는 원래 혼자 해결하려는 타입이다.
도움이 필요해도, 사실 절실히 필요해도—겉으로 내색을 잘 못 한다.
괜한 똥고집 때문에.
누구한테 손 벌리는 게 자존심 상하기도 하고, 쪽팔리고...
괜히 “내가 약한 사람”처럼 보일까 봐 혼자서 끙끙거리는 걸 알아봤는지...


내 속을 훤히 들여다보듯이,
내가 뭘 필요로 하는지 족집게처럼 알아냈다.

말 한두 마디, 표정 하나 보고도
“너 지금 이거 필요하지?” 하고 이미 준비해 놓는 타입.

그리고 사람을 포섭할 줄 안다.
여러 사람을 묶어서 움직이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딱… 정치인 타입이다.


이 친구는 경찰이지만 정치에 굉장히 관심이 많고 꿈을 품는 친구다.

3년 전 지역 Constable로 출마했다.


그때도 “좀 도와달라”는 말에, 아무것도 모르고 뛰어들었다.
그리고 선거 기간 내내—진짜 말 그대로 개고생 했다.

지금 생각하면 딱 하나다.
다시는, 절대로, 그런 일에 발도 들이고 싶지 않다.


결과는 “똑” 하고 떨어졌다.^^

난 괜히 그 대가로 여기저기 얼굴만 팔렸고. ㅜㅜ


매번 만날 때마다 딘누엔은 서로 나라는 달라도 같은 동양 사람들끼리 뭉쳐야 된다고 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더 큰 뜻이 있는 듯하다.

뭔가 한이 맺힌 사람이랄까.

그가 처음 신참 때 이야기를 해주었다.


나름 규모가 큰 지역을 담당하는 경찰서에서 일했었다.

관할 면적만 따져도, 최소 서울의 세 배는 되는 곳이었다.

동양계는 진급하는 걸 못 봤다고 했다.


그도 거기서 처음 목숨 걸어가며 5년을 개같이 일하면서 진급은커녕

가장 위험하고 어려운 일만 도맡아 했어야 됐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 그는 그쪽 지역으로 다시 돌아가

이번엔 경찰 그 지역 청장? 쪽으로 가서 바꾸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출마를 한 것이고,

떨어졌어도 다시 이번에 시도할 것 같다.

지금 미국은 중간선거로 시끄러워지고 있다. 그도 슬슬 다시 제선을 준비하는 듯 보인다.

그 친구의 낙선으로 난 얼굴만 팔렸지만 이 친구의 대가는 훨씬 더 크다.


돈 엄청 날리고

계란 노른자 같은 자리에서 밀려나

멀리 떨어져 있는 원치 않는 빌딩으로

한국말로 좌천? 당했다?


솔직히 경찰은 정치에 개입하면 안 된다는 건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근데 현실은 내가 보기엔 다 bull shit!이다. (한마디로 “까는 소리 말아라!” 수준.)

내가 지금까지 본 인간들 중에,
위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정치에 발을 담그든지, 아니면 아예 노골적으로 한다.

겉으로는 “중립”을 말하면서,
속으로는 예산, 인사, 홍보, 표가 움직이는 쪽으로 몸이 간다.

위로 갈수록 더 그렇다.


그건 개인의 신념이라기보다, 그 자리를 유지하려면 필연적으로 붙는 구조 같아 보인다.

그래서 나는 그 판에는 더더욱 발을 담그고 싶지 않다.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건 현실적인 선택뿐이다. 이런 행사 경호(오프듀티) 같은 일.

오프듀티는 시간당 보통 50불~100불(한화로 대략 7만~14만 원대), 어떤 건 150불(한화로 20만 원대)까지도 간다.


작년까지 경찰 오토바이로 부업을 했을 땐 1시간도 안 되는 장례식 에스코트는 한 번에 300불(한화로 40만 원대).

하루에 4번까지 한 적이 있었고

유명 연예인 Mark Wahlberg 왔을 때는 3일간 같이 동행하면서 받은 액수가 꽤 됐었다.


총 6대로 부서장님과 에스코트를 했었는데

한 사람당 팁만 천 불(한화로 140만 원대) 건네주었고

직접 본 Mark Wahlberg는 생각보다 꽤 괜찮은 사람(내가 좋아하는 배우이기도 하고^^)이었다.

대화를 몇 번 해보니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란 걸 알았다.


그가 떠나면서 했던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It was an honor and a pleasure to be with such fine gentlemen. I look forward to seeing you again—very soon. And when that time comes, please be by my side again. Please be safe out there!”

(자막: 이렇게 훌륭한 신사분들과 함께할 수 있어 영광이었고 즐거웠습니다. 다음에 꼭 다시 뵙겠습니다. 그때도 꼭 제 옆에 있어 주십시오. 그리고 밖에서는 안전하게 다니세요!)

사진은 내가 찍어줬다. 원래는 같이 찍었어야 했다. 근데 그날 내 안의 쿨병이 발병해서 “난 괜찮아. 너네만 찍어.” 하고 사라짐. (그리고 5분 뒤 혼자 후회함) ㅜㅜ

왼쪽이 내가 가장 신뢰하면서 존경하는 우리 부서장님!^^ 나머지 둘은 경력이 화려한 동료 선배님들

부서장님께 브런치에 서장님 얼굴 팔겠다 했더니 두말 없이 오케이!^^


계속 경찰 오토바이를 타고 싶었다.

보통 한대가 고속도로 진입입구를 막고 두대는 고속도를 막아선다. 그때 나머지는 싸이렌을 켜고 질주를 할 때는 속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내가 제일로 존경하고 좋아하는 부서장님이...

그는 부서장이면서 오토바이를 타는 게 취미이면서 어려서부터 타왔고

미국에서 방영한 1977-1983 드라마 CHiPs에서도 빌런으로 등장해서

오토바이 추격당하는 신을 찍었을 정도로 오토바이에 푹 빠져 있던 사람이었다.


그가 오토바이 순찰대와 경호대 총 관리 하는 인물이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암선고로 쉬게 되면서

나는 이런저런 이유로 생각이 복잡해져서인지

어느 날 하루에 4번 고속도로에서 사고당할 뻔하고 그만두게 되었다.


그 이후로는 오프듀티 부업을 ‘돈과 재미’로 한다기보다, ‘현실’로 하게 되었다.

경찰 기본연금은 지역마다 다 다르겠지만 8만~9만 달러(약 ₁억 1,550만~1억 2,995만 원).

근데 미국에선 세금 떼고 이런저런 인슈런스, 401k 떼어가면

현실적으로 가져가는 건 훨씬 적어진다.

거기다 싱글이거나 애가 없으면 더 떼어가는 느낌이다.


나는 정치엔 관심 없이 나간다.
이참에 돈이나 벌어서, 점점 어려워져 가고 있는 내가 운영하는 가게에 보탤 생각으로 나간다.

가게는 20년 정도 했다. 규모도 나름 꽤 큰 편이다.
예전엔 정말 괜찮았다. 그런데 요즘은 많이 힘들다.


나만 나쁜 건 아니다.
요즘 미국에서 자영업 하는 분들 대부분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게, 이제는 현실이 되어버렸다.

주위에선 “그래도 너는 경찰 수입이 있으니 낫지”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건 잘 몰라서 하는 소리로 들릴 뿐이다.


가게가 이 규모로 돌아가는 이상, 그 말은 위로가 아니라 그냥 숫자를 모르는 얘기다.

워낙 큰 규모로 하다 보니 고정비가 버티질 못할 정도로 곤두박질치기 일보직전까지 가고 있다.
한 달 렌트비만 거의 3만 불, 한화로 4천만 원대다.

그래서 결국 이런 자리라도 나가게 된다.

돈도 돈이지만, 누엔의 부탁도 있고, 솔직히 다양한 사람들 보면서 잠깐 잊고 싶어서다.


이런 행사에 참여할 때마다 늘 딱 하나 부러우면서 부끄러운 게 있다면

왜 미주에 사는(특히 이 지역 한인들) 타 아시안들처럼 똘똘 뭉치지 못하는 점이다.

이들의 행사에는 꼭 빠지지 않는 게 있다.

“홍보”이다.


늘 이 지역 영향력 있는 정치인들이나 유명 인사들이 참석한다.

난 월남 커뮤니티나 그들보다 훨씬 규모가 큰 중국 커뮤니티가 그들에게 얼마나 되는 뒷돈으로 챙겨주는지 관심 없다. 그러나 그들은 겉으로는 선을 지키면서 각자의 커뮤니티를 키워간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행정 쪽이나 경찰들로부터 빠르게 도움을 받는다.


한국 커뮤니티는 정반대로 굴러간다.

한국 교민들을 욕하거나 나쁘게 포장하려는 건 아니다.

단, 이런 행사 때 보면 너무 차이가 크게 나는 게 왠지 서럽고 안타깝다.

한국 커뮤니티는 뭉치기는커녕 서로 자기 살 뜯어먹는 식을 자주 보게 된다.

누가 잘되면 배가 아파서인지.

직접 본인들과 관계가 없다고 생각되면 모른 척하는 게 기본이 된다.

보통 마음 통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술판만 벌리고 마는 쪽이다.


이러다 갑자기 난감한 일이 터지던지 불행한 사고를 당하면

그때서야 경찰들을 찾기 시작한다.

그러면 어떤 경찰이 적극적으로 나서겠나?

어느 한인 몇몇 분이 어려운 시간 내고 직접 사비를 들여서

지역 경찰 간부급 사람들을 어렵게 모임을 가져보려 했었다.

결과는 참담했다.

단 3명 참석했다.


그중 한 간부가

“너희 정말 도움 필요하고, 커뮤니티를 올바르고 건강한 쪽으로 가고 싶은 게 맞아?”
그는 불쾌감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떠난 적도 있었다.

그 장면이 아직도 좀 남아 있다.
부끄럽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고,
한편으론—뭐랄까—서럽다.


그리고 오늘 나는,
밸런타인데이 겸 구정 축제 한가운데서
총을 찬 채로 그 생각을 또 할 것이다.

딘누엔은 오늘도 사람들 사이를 빠르게 누비며
누구를 만나며 손을 잡고, 이름을 부르고, 그가 원하고 계획한 판을 만들어 갈 것이다.


나는… 그 옆에서 경호를 서면서
그 “뭉침”이라는 게
얼마나 큰 힘인지 또 한 번 볼 것이고...



매거진의 이전글소 잃고 외양간, 브런치에서 고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