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잃고 외양간, 브런치에서 고치는 중

한 캔이 몇 캔이 되면, 말도 글도 술술 나온다 ^^

by 스팅비 StinGBee


이번 글은 좀 덜 무거운 쪽으로 가보려 한다.
내가 그동안 올린 글이나 소설이 전반적으로 무겁고 어두운 편이었으니까.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

남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어제는 딱 내 이야기였다. (소는 이미 갔고, 나는 이제 외양간을 본다…)


어제 나는 혼자 조금 도취해서,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말을 꺼냈다.
한 캔으로 시작한 맥주가 어느새 몇 캔으로 늘어나면서, 혼자 분위기에 더 취해 버린 탓이다.
(요즘 이상하게 집에만 오면 “딱 한 캔만”이 제일 거짓말이 되어 버렸다.) 오랜만에 쉰다고 친구들이 보자고 전화가 왔다. 근데 그 전화가—귀찮아졌다. 맥주캔은 늘었고, 음주운전은 내 인생에서 말도 안 되는 선택이다.

그래서 우버를 부르면 되는데… 그 우버조차 귀찮아졌다.

결국 어젯밤은 혼자 취해버린 파티였고, 지금은 숙취가 머리를 흔든다.

사람을 피한 게 아니라, 그냥… 모든 걸 ‘부르는 것’이 싫어졌다.


사실 남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건 쉬운 일이 절대 아니다. 그걸 경찰 생활하면서 배웠다.
시민들이랑 대화할 때 늘 이렇게 배웠다. 90%는 듣고, 10%만 말하라.
그게 설득의 기술이기 전에, 사람을 다치게 하지 않는 최소한의 예의라는 것도.

그래서인지 나는 내 속마음을 쉽게 꺼내지 못했다.


그걸 가장 오래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 고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내 절친, 케빈(가명). 이 동네에선 나름 잘 살고 꽤 알려진 친구다. 무엇보다 내가 유일하게 속마음을 터놓는 사람이다.


어릴 때부터 내가 연애를 안 해 본 건 아니다.
근데 솔직히 여자를 만나는 것보다, 친구들이랑 어울려 술 마시면서 그냥 이런저런 의미 없는 수다 떠는 게 더 좋았다. 그래서인지 나는 내가 여자친구나 연애를 ‘많이’ 해 본 편은 아니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케빈이 가끔 내 약한 데를 콕 찔러서 말하곤 했다.


“야, 넌 다 좋은데 왜 여자들 앞에서 왜 그렇게 후까시 잡냐? 그럼 여자들이 싫어해. 난 진짜 이해가 안 된다.”

나는 사실 내가 후까시를 잡는다는 말 자체가 잘 와닿지 않았다.
내가 알고 있는 후까시는 허세, 폼 잡기, 잘난 척, 괜히 각 잡기… 그런 건데, 아무리 봐도 나는 그런 것 같지가 않았다.


아마 내가 사람을 잘 웃기는 편도 아니었고, 여자들 앞에만 서면 갑자기 말수가 줄어들었고 무뚝뚝해지면서… 거의 돌부처가 됐었다. 아니면 목석. 말 그대로 ‘철벽남’ 모드였다.

케빈의 말은 이거였다.
“여자들이 너한테 호감 갖다가도, 네 그 후까시 때문에 다 도망가는 거야. 그러니까 네 옆에 여자가 없는 거고.”


… 듣고 보니 억울했는데, 또 반박은 못 했었다 ^^

아마 내 성격 탓인지, 말수가 적어서인지—나는 속마음을 ‘제대로’ 터놓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다.
말로 풀려면 설명해야 하고, 설명하려면 감정이 따라오고, 감정이 나오면 괜히 내가 민망해지는 타입이라… 그냥 웃고 넘겨 버렸다.


근데 최근에 브런치를 알고 나서, 이상하게 고삐가 풀렸다.
글로 쓰기 시작하니까, 수년 동안 안에 쌓여 있던 것들이 고삐 풀린 말처럼 술술 튀어나왔다.
이게 내가 원래 말이 많아서가 아니라, 말로는 못 하던 걸 글이 대신해 주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어제, 브런치에서 꽤 잘 알려진 작가님의 글을 읽고 깨달았다.

https://brunch.co.kr/@onbyeori/414

나는 브런치를 처음부터 잘못 시작하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처음엔 이 공간이 어떤 곳인지 몰라서, 내 직업도 내 모습도—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최대한 숨긴 채 “두고 보고 결정하자” 쪽이었다.
솔직히 얼굴 공개가 부끄러워서가 아니다.

여기서 행사 같은 데 자주 가다 보면, 종종 어린아이들이나 사람들이 다가와서 같이 사진 찍자고 한다.
내가 특별히 잘나서가 아니다. 그냥 경찰 유니폼을 입고 있으니까 그럴 뿐이다.


사람들은 결국 ‘나’를 보고 찍는 게 아니라, 그 유니폼이 상징하는 어떤 안전함이나 든든함을 같이 담고 싶은 거겠지라고 생각한다. 이 일을 하면서 정치인 관련 경호 업무도 해봤고, 가끔은 미국 연예인 관련 업무도 하다 보니 사진 찍히는 건 거의 일상이 됐다. 종종 뉴스나 미디어에 나온 적도 있어서, 이 동네에선 얼굴이 좀 팔린 상태이기도 하고.


결국 문제는 “공개냐 비공개냐”가 아니라, 내가 나를 어떻게 쌓아 올리느냐였던 것 같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건 늦었지만—이제라도 처음부터 차근차근 고쳐 가보려 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브런치에서 생판 모르는 사람의 글을 끝까지 읽고, 거기다 공감까지 남기는 건 직접 대화하면서 들어주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대화는 눈빛도 표정도 분위기도 따라가지만, 글은 오로지 문장만 붙잡고 끝까지 같이 걸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내 글을 읽어 주고, 거기에 댓글까지 남겨 주는 분들한테는 늘 고맙다. 그 고마움 때문에—나는 또 브런치를 하게 된다.


속마음을 글로 토해내는 건 원래 쉽지 않았다.
근데 한 번 시작되고 나면, 맥주 한 캔이 문장을 하나 더 끌어낸다.

더 신기한 건, 그 문장들이 결국 모르는 분들에게로 간다는 거다.
얼굴도, 목소리도, 표정도 모르는데—글로 속이야기하고, 하고 싶던 말을 뱉어내다 보면, 안에 쌓여 있던 스트레스가 조금씩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후련함이… 솔직히 예상보다 훨씬 컸다.


케빈도 내 얘기를 듣고 “너, 이거 잘 시작한 것 같다”라고 했다.
… 아니면 내 투정 더 듣기 싫어서 브런치로 떠넘긴 걸지도 ^^

그래서 요즘은 일을 마치고 나면, 시원한 맥주 하나 따고 브런치를 켜는 게 거의 일상이 됐다.


내 하루가 끝나는 방식이 조용히 바뀐 느낌이다.

문제는… 맥주가 들어가면 마음속에 쌓여 있던 것들이 가끔 너무 쉽게 술술 나와 버린다는 거.

이러다 아직도 꽐라 모드 전원이 켜져 있는 상태로, 준비되지 않은 내 얼굴까지 내밀까 봐…

여기서 도망치듯 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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