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리드로 산다는 것
오늘 밤도 뒤뜰에서 맥주캔 따고 시가에 불 붙인다. 노트북 열고 생각나는 대로 생각일기를 써보려 한다.
옛날 영화나 뮤직비디오를 다시 꺼내 보면 대부분 유치하고 촌스럽다.
그때는 분명 멋있다고 느꼈던 장면과 대사들이 지금 보면 어색하다 못해 눈 뜨고 못 볼 정도로 괜히 피식 웃음이 나온다.
영화나 뮤직비디오는 시간이 지나면 그 시대의 감각 속에 남는다.
그래서 어느 순간 낡아 보인다.
하지만 글은 세대를 건너뛴다. 시대를 설명하기보다 인간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래 읽히는 글은 우연이 아니다.
시간이 대부분의 글을 낡게 만들 때, 어떤 글들은 시간을 통과해 남는다.
수백 년 전에 쓰였어도 지금도, 앞으로도 누군가의 마음을 계속 흔들 문장과 이야기들.
시대는 바뀌어도 감정은 같다.
아마 그게 글의 매력일 거다.
그래서 글을 쓰는 사람들은 결국 그 안으로 빠져들어가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그 매력을 느끼면서도 겁이 난다.
아마가 아니다. 분명 내 글도 언젠가 그렇게 보일 것이다.
지금은 영혼을 갈아 넣었다고 믿는 문장들이, 시간이 지나 다시 펼쳐보면 옛 영화나 뮤비를 보듯 유치하게 느껴질 거다.
지금은 “이만큼 썼으면 됐다” 싶은 대목조차, 나중엔 허술한 틈이 한눈에 보일 테고.
그때는 내용부터 표현, 문법까지—다 티가 날 거다.
매번 글을 쓸 때는 머릿속이 과열된다.
컴퓨터 CPU가 100°C가 넘을 때까지 치솟아서 과열되듯 생각이 계속 돌아간다.
나는 문학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다.
전공은 고작 해봐야 범죄학이고 대학 때 했던 글쓰기라곤 과제 에세이를 밤새 리서치해서 제출하던 게 전부였다. 그래서 내가 “글을 쓴다”라고 말하는 게 조금 조심스럽다.
나는 하이브리드다.
영어를 원어민처럼 쓰지도 못하고 한국어를 매끈하게 다루지도 못한다.
늘 중간 어딘가에서 어정쩡하게 서 있는 느낌이다.
처음에는 영어로 먼저 쓰고 번역기로 한국어로 옮겨 올렸다.
그런데 번역된 문장을 읽으면 뜻은 맞는데 이해가 안 되는 글이었다.
어려운 단어만 가득하고 정작 무슨 말을 하는지 나도 잘 모르는 문장들뿐이다.
그래서 다시 사전을 찾아가며 하나씩 뜻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가끔 헷갈린다.
나는 한국 사람인지, 미국 사람인지.
서류상은 미국인데 감각은 그 사이 어딘가다.
이런 수준으로 쓰고 있으니 좋은 글이 쉽게 나오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예전에 즐기던 취미는 시간상 맞지 않아서 그만둔 지 오래됐고 딱히 내 상황에 맞춰할 만한 것도 없었는데 옆에서 지켜보던 친구가 안쓰러웠는지 과부하 걸리기 전에 한번 글을 써보라고 해서 쓰기 시작한 것이다.
글을 쓰면 쓸수록 오히려 더 많이 읽어야 하고 더 배워야 한다는 걸 느낀다.
지금은 뭐 그냥 에라 모르겠다, 생각나는 대로 한글로 먼저 쓴다.
맞춤법이 틀리든 문장이 깨지든 일단 쏟아낸다.
그리고 마지막에 GPT로 다시 확인한다.
사람이 아니라 AI에게 내 문장을 보여주며 검증받는 셈이다.
요즘 친구들이나 선배들이 나를 불러도 잘 나오지 않고 글만 쓰는 걸 보더니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한다.
“너 국민 세금으로 월급 받으면서 할 일은 안 하고, 글이나 쓰면서 우리 피 같은 세금이랑 시간 낭비하는 거 아니냐?”
맞다. 나는 분명 국민 세금을 받는 공무원이다.
동시에 자영업을 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도 세금을 낸다!
그것도 너희들보다 더 많이 낸다!
일할 때는 쉬는 시간 빼고는 한눈을 판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직업이다.
적어도 근무 시간 동안만큼은 다른 생각을 끼워 넣을 틈조차 없다.
그래서 글은 일을 피해서 쓰는 게 아니라 쉬는 시간이나 일이 끝나고 남은 시간에 쓰게 된다.
피로가 빠지지 않은 상태에서 머리를 다시 켜는 일이다.
쉬려고 앉았다가 오히려 더 소모되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글 쓰는 게 좋아졌다.
아무튼 생각은 복잡해진다.
취미로 시작한 글쓰기가 어디까지 갈지 모르겠다.
아빠가 귀에 딱지가 앉도록 하던 말처럼,
남자가 칼을 뽑았으면 썩은 호박이라도 찔러야 한다고.
그 말처럼 끝까지 밀어붙일까.
아니면 그냥 내 일상과 헛소리만 주절거리다 끝나게 되어 버릴까.
적어도 작가 소리라도 들으려면 다시 학교를 가서 문학을 배워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든다.
지금 알코올까지 더해지니 결론은 나오지 않고 마음만 더 흐려진다.
어찌 보면 내 일은 큰 그림으로 보면 항상 위험은 따르지만 단순하다.
보이는 대로 법을 어기면 막아서고, 잡아내고, 검사 측에 전화해서 케이스가 성립되는지 확인하고 감옥으로 보낸다.
내 일은 딱 거기까지다.
나는 수사관도 아니다. 수사과로 갈 생각도 없다.
같이 일하는 파트너도 예전에 수사과에서 형사로 5년 버티다가 과부하가 걸려서 지금 나와 같이 있는 거고 그때로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한다.
내 포인트는 그거다.
나는 단순한 사람이고 글에서도 그 단순함이 그대로 묻어난다.
그래서 가끔 브런치에서 다른 작가님들 글을 천천히 읽다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분들 글과 내 글은 비교조차 할 수 없어서 부끄러워서 얼굴이 달아오를 때도 있다.
도대체 이런 사람들 머릿속엔 뭐가 들어 있길래 이렇게 표현이 나오고 설득력이 생기고 상상력이 다양하게 뻗어 나가는지 모르겠다.
어렸을 때 나는 장난감을 사면 먼저 가지고 놀지 않았다.
먼저 뜯었다.
뜯고 다시 조립하고 그러다 망가뜨렸다.
한 번은 집에 있던 고가 전축이랑 VCR까지 뜯어 놨다가 아빠한테 뒈지게 혼났었다.
호기심이 많아서 궁금한 걸 못 참았던 것이 매를 불렀다.
그래서 말인데 이렇게 글을 잘 쓰는 사람들 머릿속엔 뭐가 들어 있는지…
한 번만 현장 들어가듯 확인해 보고 싶다.
‘비유’, ‘리듬’, ‘설득력’, ‘상상력’… 도대체 그건 어디서 나오는 건데!
맥주 깡통은 늘어만 가고 지금은 방향은 모르겠는데 멈출 생각도 없다.
그리고 현실은 다시 바로 앞에 와 있다.
내일부터 중간선거가 끝날 때까지 받은 지시 사항들을 하나씩 훑어봐야 한다.
이 생각일기도 여기서 잠시 멈춘다.
다음 기록은 3월 3일 이후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