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 도로 위에서

몸이 기억하는 소리

by 스팅비 StinGB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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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안내]

본 글에는 사고·사망 묘사와 실제 교통사고 현장 사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민감한 부분은 흐릿하게(블러) 처리되어 있으나, 정서적으로 부담이 될 수 있으니 읽기에 주의해 주세요.

불편함이 느껴지면 즉시 중단하시기 바랍니다.


처음엔 이 얘기부터 해야 한다.

내 서사, 『너를 품에 안으면』에 나오는 인물은 어린 유년기부터 청년기, 경찰이 되기까지의 시간을 소설로 변형해 쓴 것이다. 완전히 허구는 아니다. 내 기준으로 현실 50, 변형 50이다.

난 겉으로는 정상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속은 평범한 사람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찢겨 있고 상처투성이다.


어릴 때부터 잊히지 않는 게 있다.

피도 아니다. 공기에 떠다니는 냄새도 아니다.

소리다.

그다음은 절규하는 비명. 사건 일어나기 전후 들리는 비명. 잡혀가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비명. 자식을 잃은 부모의 비명.

그리고 그 모든 걸 합쳐도 덮이지 않는 비명이 있다.

설명보다 먼저 몸이 기억하는 소리.


총성이 울린 날도 여러 번 있었다.

지금도 손가락이 아플 정도로 검지손가락이 화약으로 시커멓게 물들 정도로 사격 연습을 하며 총소리를 듣고 산다. 그래도 내가 어렸을 때 뉴욕에서 처음으로 들었던 총소리는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내가 총구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긴 순간도 있었다. 다행히 그중 죽은 사람들은 없다.

그러나 쓰러진 사람의 가족 중 누군가는 내가 살인미수를 저질렀고,

법을 지키는 선에서 쐈어도 나를 범죄자라고 불렀을 것이다.

네가 뭔데 판사도 아니면서 처리했냐는 식으로.


인간이 살인자가 되고 피해자를 만드는 건 다양한 형태를 띠며 한순간에 벌어지기도 한다.

여러 총상도 봤고 자해부터 심한 구타로 눈 뜨고 볼 수 없을 만큼 만신창이가 된 모습으로 초점을 잃은 눈들도 봤다.

그런데 내가 오늘 적으려는 건 총성도 아니고 여러 범죄로 인해서 벌어진 사건도 아니다.

더 흔하고, 더 쉽게 반복되는 죽음이다.

도로 위에서 벌어지는 죽음.


사람들은 총을 무서워한다.

근데 내가 더 자주 본 건 도로 위의 “선택”이었다. 누군가의 잘못된 선택으로 본인은 물론 전혀 상관없는 무고한 생명이 꺼지는 모습을 여러 번 봤다.

한순간 나의 무지함과 이기적인 선택으로 살인자가 될 수 있다는 소리다.


오늘은 이전과 다르다. 내가 올려온 글들 중, 가장 무거운 이야기를 꺼낸다.

다양한 이유로 대형 참사로 이어지는 교통사고를 접해봤다. 일일이 말하자면 일 년이 걸려도 모자란다.

크게 그냥 세 가지로 나눠서 써 내려가려 한다.


첫째, 음주운전.

술이 들어가면 판단이 흐려진다. 그건 다 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나는 괜찮다”라는 거짓말이 핸들을 잡는 순간, 타인의 생명을 끌고 들어간다.

무고한 사람은 아무 준비도 없이 그 거짓말과 마주친다.

그게 가장 비열하다.


둘째는 과속.

조급함은 생각보다 잔인하다.

몇 초를 아끼려던 선택이 누군가의 남은 시간을 통째로 가져간다.

속도가 올라갈수록 선택지는 줄어든다.

브레이크가 아니라 운이 결과를 결정하기 시작한다.

운에 맡기는 운전은 결국 타인의 목숨을 담보로 거는 도박이다.


마지막으로 운전 중 텍스팅.

나는 물리학자가 아니다.

정확히 세심히 계산하는 법도 잘 모르고, 솔직히 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이 정도는 안다.

80마일은 1초에 약 36미터를 간다.

문자 하나 확인하는 2초면 70미터가 넘어간다.

고개가 아래로 꺾이는 그 몇 초 사이에, 도로는 결정을 끝낸다.

휴대폰은 총처럼 소리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교통사고 난 다음 현장은 잔인하고 자비가 없다. 마치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전쟁터 같아 보인다.

마치 폭탄에 맞아 완전 산산조각 난 상태로 대형 교통사고는 그와 비슷한 상황을 그려낸다.

새 차를 사든가 내가 꼭 가지고 싶었던 드림카 운전대를 잡았을 때 그 성취감, 아니 짜릿함, 기분 좋아지는 건 당연하다.

이렇게 멋있고 보기 좋은 차가 잘못된 선택으로 순간 잔인한 살인도구로 돌변하는 건 시간문제다.


나는 아직도 그 참사의 장면과 소리를 완전히 지우지 못했다.

살인자는 꼭 계획범죄나 우발적인 폭력으로만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우리 중 누구도, 될 수 있다.

칼도 총도 없이.

그저 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그날도 그랬다.


에스코트 임무를 끝내고 복귀하던 길이었다.

오토바이 다섯 대가 일렬로 흐르듯 달렸고, 그중 두 대는 중간 지점에서 다른 방향으로 빠져나갔다.

남은 건 나, 치프 니얼, 그리고 쟈니 경사 — 셋이었다.


남은 셋, 그중 쟈니 경사는 예순을 훌쩍 넘긴 흑인 베테랑이었다.

키는 6피트를 훨씬 넘겼고, 내 키가 5'11"인 데 비하면 난 어린아이처럼 작아 보이는 정도이다. 또한 그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몸이 단단했다.

마른 근육이 아니라, 오래 버틴 사람 특유의 묵직한 단단함.

그리고 눈.

사람을 위협하는 눈이 아니라, 상황을 재단하는 눈이었다.


치프 니얼도, 쟈니 경사도 군에 다녀온 사람들이었다.

그건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티가 났다.

위기에서 말이 짧아지고, 동작이 줄어들고, 판단이 빨라지는—

세월이 증명해 버린 방식이 그들의 일 처리에서 묻어났다.


우리가 톨로드를 타고 돌아오던 중이었다.

톨로드로 얼마 안 가서 차량이 막히기 시작했다. 우리 셋은 서로 헬멧에 장착된 블루투스로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달렸다.

무전기는 오프듀티였기 때문에 켜놓은 상태가 아니어서, 앞에서 어떤 일과 마주할지는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지역을 지날 때는 우리가 관할하는 지역이 아니었기도 해서 무전기를 켰다 해도 주파수가 서로 달라 상황을 못 들었다.


치프 니얼이 먼저 막혀 있는 차 사이로 피해 가며 달렸고 우리는 그 뒤를 쫓았다. 얼마 가지 않아 앞에서 대형 교통사고가 벌어졌다는 건 직감할 수 있었다.

검은 연기가 멀리서 보이기 시작했다.


가까이 다가갔을 땐 그 지역 경찰차와 소방차, 구급대원들이 와 있는 상황이었고 우리 셋은 그 지역 순찰차가 차들을 막고 서 있는 지점에 오토바이를 세워두고 내렸다.

불을 끄려는 소방대원 외 경찰들이나 구급대원들은 불이 꺼지기 전까지 멀리서 바라만 보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펑!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불길과 먼지, 파편이 사방으로 날렸다.

좀 더 있다 펑! 펑! 타이어가 터지는 소리였다.


열기와 고무와 플라스틱이 타는 냄새, 검은 연기.

다른 소방차 여러 대가 도착했고 불길이 사라진 뒤 그 지역 경찰관들이 사고 차량에 다가갔다.

치프 니얼과 쟈니, 나도 뒤따라가 보았다.

먼저 본 그 지역 경찰관 한 명이 옆으로 쓰러진, 완전히 불길에 전소된 화물트럭 앞을 보더니 곧바로 뒤돌아서 구토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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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서 무전 치는 소리가 섞여서 흘러나왔고 난 어떤 광경이 내 앞에 펼쳐질지 대충은 짐작하고 있었다.

전소된 화물트럭 바로 앞쪽엔 중형 SUV 또한 완전히 차 지붕이 찌그러져 눌린 상태에서 차 안에 사람이 있는지 알아볼 수 없는 상태였다.


참혹했다.

뉴스로 전쟁터에서 폭탄에 맞아 부서진 차량과 다른 게 없었다.

운전자는 사람 형체는 보였는데 온몸이 숯덩이처럼 변해 있었고 심하게 탄 몸 양팔은 찾아볼 수가 없었고 다리는 심하게 타다 못해 뼈가 드러나 있는 상태였다.

검게 탄 몸 외 내장들만 붉은색을 띠며 몸 밖으로 흘러나온 상태였다.


결과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다.

중형 SUV에 탄 사람들 둘도 같은 운명을 맞이하였고 원인은 트럭 운전자가 졸음운전으로 생긴 참사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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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이 정리되고, 우리도 철수하라는 지시가 치프 니얼로부터 내려왔다.

그제야 나는 내 손이 계속 떨리고 있다는 걸 느꼈다.

손바닥은 땀으로 젖어 있었고, 장갑 안쪽이 축축했다.

치프 니얼의 집에 도착해서야

나는 땀에 젖은 헬멧을 벗었다.

헬멧 안에 고여 있던 열기와 땀 냄새가 빠져나왔지만

사고 현장의 검은 연기 냄새는 아직도 코에 남아 있었다.


치프 니얼과 쟈니 경사, 그리고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이 없어도 서로 같은 심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조금 전까지 분명 살아 있던 사람들이

이제는 사람의 형체조차 알아보기 어려운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


그 침묵을 쟈니 경사가 먼저 깼다.

오늘 본 일은 앞으로도 평생 잊히지 않을 것이며

앞으로 더한 장면들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정신을 놓으면 이 일을 계속하기 어려워지니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쟈니 경사는 잠시 숨을 고른 뒤

마치 스스로에게도 들리게 하려는 듯

낮고 단단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유니폼 오른팔 소매를 걷어 올렸다.

그의 팔에는 오래전에 생긴 큰 상처가 있었다.

심한 화상과 깊게 파인 흉터가 남아 있었다.

쟈니 경사는 그 흉터를 보여주며

과거의 일을 떠올리듯 이야기하였다.


그날도 근무를 마치고 오토바이를 타고 귀가하던 길이었다고 하였다.

앞에서 SUV 차량과 F-150 트럭이 충돌하였고

트럭은 뒤집혀 오른쪽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멈추었으며

SUV는 여러 번 회전하다가 반대편 가드레일에 부딪혀 멈추었다고 말하였다.


뒤집힌 트럭 운전자는 약간 정신이 없는 것처럼 보였을 뿐

기적처럼 크게 다친 모습은 아니었다고 했다.

문제는 SUV 운전자였다고 말했다.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들렸고

쟈니는 즉시 상황실에 무전을 한 뒤 곧바로 차량으로 달려갔다고 하였다.


가까이에서 확인해 보니

운전자의 몸 절반이 밀려 들어온 엔진과 대시보드로 인해 핸들 사이에 끼어 있었고

심한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고 하였다.

쟈니경사는 문을 열기 위해 힘껏 당겼지만 전혀 움직이지 않았으며

그때 엔진 앞쪽에서 불이 붙기 시작하였다고 말했다.


불길은 빠르게 번졌고

운전자의 비명은 점점 더 처절해졌다고 하였다.

운전자는 자신을 바라보며 살려달라고, 죽기 싫다고 호소하였고

운전석 아래에서 연기와 불길이 올라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쟈니 경사는 말을 이어가다 운전자의 두려움과 간절함이 섞인 눈빛을 설명할 때 약간 멈칫거리는 걸 느꼈다.

불길이 그의 발밑부터 타오르면서 운전자의 몸을 태우기 시작할 때, 그의 눈빛, 고통으로 울부짖는 소리가

내가 들어도 선명하게 그려질 정도로 자세하게 쟈니 경사가 토해내기 시작했다.


뜨거운 열기, 자욱한 연기와 독한 냄새로 숨도 쉬기 어려웠고 차 안은 연기로 가려 찌그러진 운전석 문 쪽으로 내민 얼굴 빼곤 연기로 가려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쟈니는 그를 잡아당기려 손을 뻗었지만

손을 대는 순간 자신의 피부부터 타들어갔다고 하였다.


운전자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린 듯 고통을 호소하며

아내와 딸에게 사랑한다고 전해 달라고 울면서 말하였다고 했다.

그때 도움은 도착해도 늦는다는 것을 판단하였고

더 이상의 고통을 느끼게 할 수 없었다고 말하였다.


그래서 쟈니 경사는 울면서 있는 힘껏 운전자의 얼굴을 가격하여

기절시켰다고 했다.

비명은 멈추었고

남은 것은 불길뿐이었다고 이야기하였다.


이야기를 마칠 때까지

전혀 흔들리지 않을 것 같던 쟈니 경사의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이 참사를 부른 건 F-150 트럭 운전자가 음주운전으로 밝혀졌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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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필요한 물건을 사면 매뉴얼을 읽으면서도

정작 인생에서는 매뉴얼을 제대로 읽으려 하지 않고 지키지도 않는다.

법 또한 우리가 살아가면서 지켜야 될 매뉴얼이다. 교통법은 그중 하나이고

교통법과 속도 제한은 표식은 장식이 아니다. **속도 제한 표지판(사인판)**은 장난으로 세워둔 게 아니다.

도로에 붙어 있는 경고문, 속도 제한 표지 등등 다 그만한 이유가 있으니 붙여놓은 것이다.

최소한 남을 죽이지 말고 죽지 말라고 만든 기본 규칙이다.


새로 멋진 차 구입했다면 축하한다. 관리 잘하면서 타라. 고가의 차 구입해서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으면 질리도록 해라. 그러나 운전대를 잡는 순간부터 운전자는 자신과 상대방의 안전을 매번 책임을 생각해야 한다.

좋은 차든 똥차든 상관없으며 술을 마셨든 마시지 않았든, 순간 잘못된 판단으로 돌이킬 수 없는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고 평범했던 삶이 살인자가 되고 누군가 이유 없이 당신의 피해자가 된다는 걸 운전하면서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


술을 마셨다면 꼭 택시를 부르거나 대리를 불러야 하고, 차를 두고 가는 것이 최소한 나 외에 다른 무고한 사람을 위하는 배려다. 택시비를 아끼려다, 아니면 귀찮아서 사람의 목숨을 계산해서는 안 된다.

그 한 번의 잘못된 선택이 누군가를 한순간에 장례식으로 몰고 갈 수 있고 남겨진 가족들은 사랑하는 사람의 형체도 알아보지 못한 상태로 장례식을 치러야 된다.


쟈니 경사가 말해준 이 일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었다.

누군가 술을 마시고 "설마 내가? 난 괜찮아" 하는 이기적인 생각으로 운전대를 잡는 순간

이미 선택된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한 것이었다.

내가 경찰이 된 후 얼마 되지 않아 나랑 몇 달을 앞서 경찰관이 된 여경 또한 음주운전자로 인해서 목숨을 잃었다.

그녀의 순찰차는 시속 100마일 넘게 돌진하는 차와 부딪혀 순간 폭발했다고 한다.

그녀는 2살짜리 아이가 있었고 또한 가족들이 장례식에서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여러 경찰관이 같은 이유로 같은 운명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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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교통사고의 잔혹함은 피가 아니었다.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

충돌은 순간인데 이후는 끝이 없다.

구급차가 떠난 뒤에야 진짜 시간이 시작된다.

남겨진 사람들의 시간.

뒤늦게 깨달은 사람들의 시간.

돌아오지 않는 사람의 시간.


나는 이 글로 누굴 가르치려는 게 아니다.

나도 완벽한 사람 아니다.

다만 말할 수 있다.

사고는 운이 나빠서 생기지 않는다.

대부분 선택이 쌓여서 생긴다.

술 한 잔.

몇 초의 조급함.

문자 한 통.


그게 어떤 날에는 누군가의 삶을 끝내는 버튼이 된다.

그리고 무너지는 건 한 사람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가족,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기억한 사람들까지 이어진다.

그게 내가 본 교통사고의 잔혹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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