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와 시가 한 대
오늘, 예전에 겪었던 잔인한 기억이 떠올랐다.
자세한 건 나중에 이야기하겠다.
오늘은 그 기억이 내 머리를 어디로 끌고 가는지부터 써본다.
맥주캔 하나.
칙—
시가 한 대.
오늘의 생각일기를 쓴다.
어릴 때 집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있다.
“남자는 칼을 한 번 뽑았으면 썩은 호박이라도 찔러야 한다.”
아빠는 군인 장교 출신이었다.
나는 평생 ‘아버지’라고 불러본 적이 없다.
그래서 이 글에서도 그냥 **‘아빠’**라고 쓰겠다.
집은 늘 먼지 하나 없이 정리돼 있어야 했고, 기준은 칼 같았다.
우리는 세 형제였고, 우리 아빠의 말은 곧 정답이었다.
어릴 때는 아빠가 하는 말이 무조건 맞는 말이라고 믿었다.
그걸 잔소리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크면서 같은 말을 수없이 반복해서 듣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그 말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
그냥 잔소리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지금 나는 경찰 일을 한다.
명백히 위험한 상황을 보면 멈춰 세워야 한다.
누군가 술에 취해 차를 몰고 가려하면 막아야 하고,
사고로 뛰어드는 게 보이면 개입해야 한다.
그건 감정이 아니라 책임이다.
그래서 한동안은
“잘못 가는 게 보이면 막는 게 맞다”
이게 내 기본값이었다.
무심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어떤 사람을 보면서 생각이 멈췄다.
지금은 어엿한 성인이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데도
주변에서는 계속 어린애 취급을 받는 사람.
“너는 아직 몰라.”
“그건 네가 감당 못 해.”
“그냥 내가 해 줄게.”
“너 보기 안쓰럽다.”
여기서부터 이상해진다.
**‘보기 안쓰럽다’**는 말은 얼핏 따뜻해 보이는데,
실제로는 상대를 한 단계 아래로 내려놓는 말이기도 하다.
안쓰럽고 연약해 보인다는 이유로, 그 사람의 선택을 대신해도 된다는 착각이 생긴다.
처음엔 배려처럼 들리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다.
같은 말을 해도
누군가는 걱정으로 듣고
누군가는 통제로 느낀다.
차이는 하나이다.
그에게 선택권이 남아 있느냐?
나는 경찰로서 개입의 필요를 안다.
하지만 개입이 선을 넘으면 사람을 무너뜨린다는 것도 안다.
“경찰의 개입은 ‘사람을 살리는 기술’이지만, 관계의 개입은 ‘사람을 망가뜨릴 수도 있는 힘’이다.”
관심 → 조언 → 간섭 → 통제
선을 넘는 배려는 때로 아주 위험한 방향으로 굴러간다.
나는 그 경계가 무너진 끝을 현장에서 본 적이 있다. “널 위해서”라는 말이 통제되고, 그 통제가 가정폭력으로 번지면서 최악의 결말로 이어진 사건이었다.
선을 넘는 순간, 배려는 폭력처럼 느껴진다.
좋은 의도라도 반복되면, 상대는 결국 이렇게 받아들인다.
“나는 내 인생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사람이구나.”
그래서 애정도 때로는 가스라이팅처럼 느껴질 수 있다.
…“널 위해서야”라는 말로 상대방의 선택을 빼앗는 순간부터.
그런데 이 경계는 남 얘기만이 아니다.
나는 나 자신에게도 똑같이 묻는다.
내가 지금 ‘결단’이라는 이름으로 고집을 부리고 있는 건 아닌지.
“나는 막는 법을 배웠고, 이제는 물러나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나 자신에게도 묻는다.
내가 지금 맞는 방향으로 가는지,
아니면 엉뚱한 길로 가고 있는지.
아빠 말처럼
“칼을 뽑았으면 끝을 봐라.”
맞는 말이다.
하지만 때로는
뽑았던 칼을 피에 묻히지 않고 다시 넣는 선택도 필요하다.
잘못된 길이라면
U턴해야 한다.
지구는 둥그러니까, 고집으로 직진하면
목적지에 가는 게 아니라 한 바퀴 돌 뿐이다.
그리고 이건 타인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여러 사람이 나에게 같은 지적을 한다면, 세상이 틀렸다고 하기 전에
내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 뭐가 문제지?”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뭐지?”
한 번쯤은 조용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그 조용한 생각 자체를 피한다.
남이 진심으로 걱정해서 건네는 조언이나 충고까지도 전부 “간섭”으로만 받아들이고,
듣기 싫다는 이유로 통째로 무시해 버린다.
물론 조언이 선을 넘으면 통제다.
하지만 선을 넘지 않은 말까지도, 내가 불편하다는 이유로 “통제”라고
규정해 버리면, 그건 상대의 문제가 아니라 내 고집이 만든 방어일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귀를 닫아버리면,
결국 남는 건 늘 같은 불안이고,
그 불안이 입 밖으로 나오면 불평이 된다.
상황은 바뀌지 않는데, 말만 반복된다.
사람들은 쉽게 이렇게 말한다.
“난 태어나서부터 원래 이래.”
“사람 천성은 못 고쳐.”
“난 왜 아무리 노력해도 이 모양일까?”
“세상이 날 이렇게 만들었어.”
“난 복이 없어. 운도 안 따라.”
근데 솔직히 말하면,
지구가 커다란 혜성 충돌로 한순간에 폭발해서
우주 먼지가 됐다가
어딘가 다른 행성에서 새로 태어난다 해도…
아니면 다음 생이 있어서 다시 부잣집에서 태어났어도...
예쁘고, 잘생기게 태어났어도...
자신을 돌아볼 수 없는 사람들은 결국 똑같은 질문을 할 거다.
시간이 흐르고 환경이 바뀌어도
같은 선택을 계속 반복하면서 자신을 돌아보지 못한다면
결과도 반복이 될 것이라는 건 팩트다.
나 또한 진절머리가 나게 엄한 아빠의 잔소리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한창 사춘기 때 동생과 가출도 해 봤고 멋모르고 세상 밖에 나온 뒤
누군가 나를 생각해서 조언을 해 주어도 잔소리처럼 들려서 듣기 싫었고
회피했었다.
그땐 누군가 나를 걱정해서 조언을 해줘도, 내 귀엔 잔소리로만 들렸고—열받으면
**“Leave me the f—k alone!”**이 먼저 나왔다.
(자막: 나 좀 씨발 내버려 둬!)
집안에서 이어지는 가정폭력과 잔소리, 그게 너무나도 싫어서 나왔더니
밖에 나와서까지 같은 잔소리처럼 들리는 소리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가면서 세상은 집안보다 더 냉혹하고 잔인하다는 것을
직접 보고 느꼈다.
지금 나이가 들고 보니 그때 그처럼 지긋지긋한 아빠의 잔소리가 문득 그리워진다.
이젠 듣고 싶어도 듣지 못하게 된 잔소리...
돌이켜 보니 이 모든 게 내가 작은 것부터 '감사'하지 못했던 거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숨 쉬고 있다는 것.
먹고 마실 수 있다는 것.
오늘 하루를 살아냈다는 것.
이 말은 내가 겪어 봐서 안다.
몸이 망가지고 죽음이 가까워졌을 때,
좋은 차도, 돈도, 집도 의미 없었다.
남는 건 하나였다.
살아 있는가 아닌가.
그때서야 알았다.
내가 얼마나 감사 없이 살았는지.
그 이후로
사람을 보는 기준도 조금 달라졌다.
조건보다 방향,
말보다 책임.
그리고 불평은… 시작하면 끝이 없다.
“저 사람도 저런데 나는 왜 안 되지?”
“난 이게 부족하고, 저게 안 되고…”
이런 말이 입에 붙기 시작하면
상황보다 먼저 내가 무너진다.
누가 “네가 현실을 몰라서 하는 소리다”라고 할지 모르지만,
나도 그땐 미친 지랄 한다고, 사서 고생한답시고 바닥을 꽤 오래 밟아봤다.
안 해 본 일이 없을 정도였고,
남의 집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던 때도 있었다.
그러니까 누굴 질책하려는 의도는 없다.
이해한다. 나도 앞이 안 보이고 어려웠을 땐 그랬으니까.
근데… 결국은 뛰어넘어야 한다.
벽이 나오면 넘고
또 나오면 또 넘고
높으면 방법을 찾으면 된다.
줄을 쓰든
사다리를 쓰든
도움을 구하든
남을 해치거나 속이는 것만 빼고
정직하게 넘어가면 된다.
그게 나만의 싸움이다.
결국 내가 배운 건 단순하다.
위험은 막아야 한다.
하지만 인생까지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개입은 필요할 때만,
나머지는 존중이다.
그리고 결국—
진짜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고 존중하고 싶으면, 그 사람의 핸들을 빼앗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스스로 방향을 잡을 수 있게
옆에서 안전하게 서 있는 거라고 나는 믿는다.
벌써 알딸딸해지네.
내일을 위해서 이만—여기서 멈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