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부 인사도 누군가에겐...

인사 뒤에 남은 생각

by 스팅비 StinGB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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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던진 말(글) 하나가 내가 보지 못한 곳까지 닿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솔직히 말하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건 악의가 아니다.
악의는 티라도 난다.


진짜 무서운 건 “아무 뜻 없이” 던진 말이다.

무심코 던진 돌팔매질로 물속 개구리는 죽는다는 말처럼,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로 사람은 조용히 가라앉는다.


던진 사람은 기억도 못 한다.
근데 맞은 사람은 그 말이 계속 재생된다.
밤마다. 샤워할 때. 운전할 때.
별일 아닌 것처럼 가장 아픈 곳을 계속 찌른다.


나는 최근에야 이 속담이 일본에서 쓰이던 말이라는 걸 알았다.
출처가 어디든, 이상하게 더 무겁게 들렸다.
던진 쪽은 가볍지만, 맞는 쪽은 가볍지 않다는 뜻이니까.

우물 안에 있으면 하늘이 작게 보인다.
보이는 만큼만 세상이라고 믿게 된다.


글도 똑같다.

나는 내 자리에서, 내 경험으로 문장을 던지지만
그 문장이 떨어지는 곳은
내가 모르는 물속일 때가 많을 것이란 걸 알았다.


어려서부터 나는 남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편이었다.

가끔 주변 친구들이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난 직장 상사 중에도 서슴없이 누군가를 대놓고 깎아내리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걸 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다.


어려서부터 나는 나름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집 안은 늘 안전하지 않았다.
아버지로부터 폭언과 폭행을 일상처럼 보고 자랐다.
남자는 강하게 커야 한다는 말 아래, 어릴 적 나는 이유도 모르게 맞았다.
맞는 거엔 이력이 날 정도다.


그래서인지, 어렸을 때 이유 없이 집단 린치를 당했던 날도 맞은 게 아픈 건 아니었다.

비 오던 날, 먼지가 날 정도로 밟혔고 입술이 터지고 눈이 부어 시야가 제대로 뜨이지도 않았다.
그 와중에 옆에서 히히덕거리며 웃던 얼굴들이 보였다.


그때도 나는 몰랐다.
내가 왜 이렇게 맞으며 조롱거리가 됐는지.
그래서 더 무너졌다.

그때 알았다.
사람은 주먹보다 먼저 조롱으로 무너진다는 걸.


그리고 그날 이후로 더 또렷해졌다.

몸에 남는 상처보다 말이 남기는 상처가 더 오래 간다는 걸.
맞은 건 시간이 지나면 멍이 빠지지만,
그때의 웃음과 말투와 표정은 이상하게 지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무심코 던진 말이 더 깊게 박힌다.

의도가 없으면 설명도 없다.

설명이 없으면, 들은 사람은 이유를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이유는 대부분 자신을 향한다.


그 과정에서 말은 사실보다 커지고, 결국 기억 속에서 사건이 아니라 ‘판단’으로 남는다.

말 한마디로 사람은 상처받게 되고,

비웃음이 되고, 깎아내리고, 몰아붙이고—끝내 죽음으로까지 몰 수 있다.


나는 있는 그대로 사실대로 정직하게 썼다고 생각했지만, 누군가에겐 내 자랑거리로 들렸을지도 모른다.

“잘 지냈다”는 말 한마디가, 어떤 사람에게는 “나는 못 지내는데”라는 자책으로 돌아오고,
“괜찮다”는 문장이, 어떤 사람에게는 “너는 모른다”로 들릴 때가 있을 것이다.


소셜 미디어에서는 특히 그렇다.
글은 화면에 남지만, 감정은 각자 다르게 읽힌다.
표정도, 목소리도, 그날의 사정도 생략된 채로 문장만 도착하니까.

소셜 미디어는 그걸 더 쉽게 만든다.


내 앞에 없으니까, 표정도 안 보이니까,
말은 더 과감해지고 더 잔인해진다.

그리고 그건 “글”이 아니라 “목소리”로 들린다.

그래서 나는 내가 던진 말이 어디에 떨어질지 더 생각하게 됐다.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가 동시에 덮칠 때,
사람을 죽이는 건 손이 아니라 목소리다.

그래서 나는 말을 아끼는 사람이 됐다.
배려라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두려움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은 글을 쓴다.

근데 글도 결국 말이다.
내가 올리는 글이 의도치 않게 누군가에게 상처나 실망감을 줄 수도 있다는 걸
최근에야 제대로 깨달았다.

좋은 의도로 쓴 말도 읽는 사람의 하루에선 칼이 될 수 있고, 내 글도 예외가 아니었다.


어제 설 연휴 안부 인사를 올리는 글을 썼다.
이유는 간절히 안전하고 행복한 설 연휴를 가족들과 보내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의도는 좋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족이 없는 사람들, 어떤 이유에서든 돌아갈 곳이 없는 사람들이나
정말 큰 교통사고로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었던 사람들에겐
내가 올린 글이 아픈 기억을 꺼내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혹시라도 내 글로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면,
가볍게 넘기지 않고 마음에 담아두겠다.
그리고 그런 아픈 상처가 있는 마음을 건드리게 했다면,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의도’만 믿지 않으려고 한다.


경찰 일을 할 때는 상황에 따라 나는 평소의 나와 180도 달라진다.
누구 앞에서는 낮게 말하고, 누구 앞에서는 얼음처럼 차갑게 대처야 한다.
거기에 감정을 섞는 순간 내가 다치거나 다른 사람이 대신 다친다.


감정은 집에 두고 온다.
그래야 모두가 집에 간다.

그래서 오늘은…


나도 누군가에게 “별일 아닌 돌”을 던진 적이 있었는지,
그게 제일 먼저 떠오른다.

그리고 앞으로는 더 조심하려고 한다.
덜 말하려는 게 아니라, 덜 다치게 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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