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살아남아라
오늘 밤도 뒤뜰이다.
맥주 캔들이랑 시가랑, 같이 놀아보려고 한다.
지난 며칠 동안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도 모르겠다.
지긋지긋한 중간선거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3월 3일까지 선거 투표 쪽에 있어야 했는데, 어제 위에서 급하게 지시가 내려왔다.
County Public Health로 바로 이동하라는 거였다.
거기는 난민들이 미국에 오면 무료로 기본 건강진단을 받는 곳이다. 그런데 거기서 일하는 한 여성 직원이 스토킹을 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스토킹한 사람은 같이 일하던 남성이었고, 11월에 해고된 인간이었다.
그 인간이 여성에게 문자를 보내고, 카운티 빌딩을 대상으로 테러를 하겠다는 말까지 했다는 얘기를 듣고 바로 출동하게 된 거다.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선거 투표 현장에서 빠져나왔다.
다행히 당분간 내가 앞으로 여기(County Public Health)에 쭉 있게 됐다.
선거 기간엔 머리가 복잡했다기보다 그냥 잠만 자고 싶었다.
아침 8시에 일어나 준비하고, 가게는 10시에 열어 놓고, 11시에 부서로 가서 저녁 7시에 퇴근. 그리고 바로 투표장으로 이동해서 9시부터 새벽 3시까지 지켰다. 교대조가 도착하면 그제야 집으로 향했다.
정상근무 외 24시간을 4조로 나눠 6시간씩 지킨다는 게 말이 쉽지, 몸이 진짜 갈린다. 공정한 투표를 위해서라지만, 솔직히 자부심은 오래 전에 사라졌고 그냥 사고 없이 끝내는 것만 생각하게 된다.
선거 기간 동안 하루 종일 신고 있는 군화는 시간이 갈수록 더 무거워졌다. 양쪽 새끼발가락이—
조그만한 새끼 '게'들이 집게로 살을 잡아 천천히 비틀어대는 느낌이었다.
통증은 한 점에서 시작해 발바닥으로 번졌고, 저리다 못해 감각이 서서히 꺼지는 느낌이었다. 입고 있는 방탄복은 어깨랑 허리를 계속 짓눌렀고, 여러 장비 무게가 한꺼번에 몸 위로 얹히는 것 같아서, 순간 진짜로— “야… 좀 봐줘라. 그만 좀 눌러라.” 속으로 장비한테 빌고 싶어졌다.
예전에 멋모르고 선거 활동에 참여했다가 “다시는 안 한다”라고 다짐했는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러버렸다.
이번엔 다행히 선거 보안 업무라 나름 견딜 만하긴 했지만, 그래도 선거의 ‘선’ 자도 듣기 싫었다.
그나마 폭탄 수색견 K9 멍멍이들이 친구가 되어 줘서 그럭저럭 버틸 수 있었다.
나는 동물들을 좋아한다. 특히 개와 고양이.
순수한 애들 보고 있으면 잠시나마 과부하에 걸린 뇌의 온도가 조금 내려가는 느낌이 든다.
근데 동시에 떠오르는 장면들도 있다.
현장에서 Animal Cruelty
(자막: 동물 학대)
케이스를 몇 번 접했었다.
불법 닭싸움 현장도 있었다.
닭발 한쪽에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칼날이 붙어 있는 걸 본 적이 있다.
그 순간 확실해졌다. 이건 단순한 오락거리나 ‘그냥 싸움’이 아니었다. 돈을 위해 고통을 설계한, 사람이 만든 잔혹한 폭력이었다. 개만도 못한 이기적인 인간들이, 생명을 게임판 위에 올려놓고 피로 계산하는 짓이었다.
또 어떤 곳은 책임도 관리도 없이 방치된 애완동물들부터 가축들이 수십 마리씩 죽어,
뼈와 가죽만 남아 있는 현장이었다.
당시 기온은 98°F를 웃돌았다.
습한 공기 때문에 숨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땀은 방탄복 안에서 고였고, 열기는 빠져나갈 곳이 없었다.
그 틈 사이로 악취가 흘러들어왔다.
바닥은 오물로 질척였고, 구더기가 들끓고, 파리가 까맣게 달라붙어 있었다.
지독한 악취가 공간을 꽉 채워 숨 쉬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다.
군화 속에서부터 시작한 벼룩들은
바지 안쪽을 타고 올라와 방탄복 사이까지 파고들었다.
간질거림이 아니라, 집요하게 살을 물어뜯는 느낌이었다.
벼룩이 물어뜯는 자리마다 피부가 따끔거리기 시작했다.
순간 온몸의 털이 삐쭉 서고, 소름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덥지만 몸 안쪽이 싸늘해졌다.
그 순간, 몸에 걸친 모든 걸 벗어던지고
알몸으로라도 차가운 물속에 뛰어들고 싶었다.
열기와 냄새, 벼룩의 이빨 자국 같은 감각까지
한 번에 씻겨 내려가 버렸으면 했다.
그런데도 그곳에 남겨진 생명들은—
그 속에서, 그 상태로도,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끝까지 발버둥치고 있었다.
지금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아직도 지금부터 하려는 얘기를 꺼내도 되는지 망설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내 노트북 옆엔 빈 맥주 캔만 늘어가고,
화면은 켜져 있는데 손은 자꾸 멈춘다.
한숨만 조용히 새어 나오고 있다.
...
난 한국을 그리며 사랑한다. 너무 가고 싶고, 언젠가 꼭 돌아갈 거다.
그런 선진국인 한국이, 안타깝게도 OECD 비교 통계에선 자살률이 가장 높은 수준으로 계속 지적돼 왔다.
그래서 언젠간 이 무거운 주제를 제대로 마주하고, 내 속에 쌓인 상처와 아픈 경험까지 꺼내서—글로 한번 써보고 싶었다. 하지만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망설여졌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잘못을 하면 숨지 않았다. 먼저 찾아가 매를 맞는 쪽을 택했다.
어차피 혼날 거라면 미리 맞고 끝내는 게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글도 그렇게 하기로 했다.
어차피 이 어려운 주제를 언젠가 담을 거라면—
알코올의 힘과, 얼마 전 알게 된—
겉으론 여리고 약해 보이지만, 누구보다 대담하고 용기 있는 한 작가님의 힘을 조금 빌려—
나도 한 번 써 보려고 한다.
얼마 전, 한 달 남짓한 시간 동안 경찰관 4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중 한 명은 내 소속은 아니었다. 근처 다른 경찰서 사람이었지만, 큰 행사 때 같이 붙어서 일하면서 몇 번 얼굴을 봤다.
일하다가 마주치면 얼굴로만 인사하던 사이였다. 고개 한 번 끄덕이면 서로 알아보던—낯익은 얼굴이었다.
그리고 같은 동양계라서인지, 멀리서도 더 쉽게 알아보게 되었다.
그 숫자와 그 얼굴이 자꾸 머릿속에 남아서, 오늘은 가볍게 쓰기가 어렵다.
그래서 이번 글은 조금 무겁게 시작한다.
※[콘텐츠 안내]
본 글에는 자살 및 사망에 대한 언급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관련 경험이 있으신 분들께는 읽기를 권하기 어렵습니다.
불편함이 느껴지시면 중단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죽음을 많이 보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보게 될 것이다.
경찰이 되기 전부터 죽음을 봐 왔고, 겪어 왔고, 지금은 직업상 여러 형태의 죽음을 마주해 왔다.
처음에는 고독사를 접했고, 시간이 지나 자살 현장을 보게 되었다.
내가 위험 속에서 죽음을 맞닥뜨리거나 또 다른 죽음을 보았을 때, 두려움이 전혀 없다고 말하면 거짓말이다.
다만 그 순간에는 Adrenaline(자막: 아드레날린)이 과도하게 올라와서인지, 두려움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다.
그런데 집요하고 잔인무도하게 두려움을 들고 다니는 이 놈은 늘 시간이 흐른 뒤에 찾아온다.
그때의 실감은 천천히 올라오다가, 어느 순간 뒤늦게 숨통을 틀어막는다.
그때 자살 현장에서는—나는 순간 들어서지 못했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앞서 말했듯이 여러 죽음을 봐 왔고 겪어 봤음에도, 그날은 현장 안으로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무전으로 도착하기 전 젊은 백인 청년이 Shotgun(자막:산탄총)으로 자신의 입에 넣고 발사된 상태라고 알고 있어서 대충 어떤 상황인지는 머릿속으로 그려지고는 있었다.
그렇게 이미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진 만큼, 글로 더 깊게 옮기는 건 또 다른 일이다.
현실적으로는 더 적나라하게 쓸 수도 있지만, 일부 장면은 너무 충격적일 수 있어 이 정도에서 멈추겠다.
말로 옮기는 순간 그때의 공기와 냄새, 소리가 다시 살아나 나에게도, 읽는 분들께도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누군가 자살한 현장에 가면,
그 장면을 마주할 때마다...
아빠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아빠는 내가 예전에 여러 번 글에서 언급했듯이, 젊었을 때는 한 사람의 직업군인으로서 터프했고 절대 흔들릴 것 같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오만함과 지나치게 견고한 성격, 그리고 자존심이 아빠를 흔들었다.
거기에 술까지 더해지면서, 아빠의 고통은 커졌고 그 고통을 함께 떠안는
가족들의 나날도 징그럽게 괴로워졌었다.
잇따른 폭력과 폭언, 그리고 뒤따르는 자책감…
끝이 보이지 않는, 반복의 반복이었다.
결국 아빠의 형제자매들마저 하나둘 등을 돌렸다.
남은 건 우리뿐이었다.
그리고 우리도—
끝내 등을 돌리게 됐다.
어느 날 아빠를 찾아갔을 때, 아빠는 혼자 소파에 앉아 있었다.
아빠는 한참 말없이 있다가 “미안하다… 외롭다”라고 말했다.
나는 괜찮다고, 그래도 조금만 참고 기다려 보자고 했다.
조금만 있으면 큰형이 결혼할 것이고, 그러면 아빠도 손주를 볼 수 있고, 처음으로 할아버지가 되어 “할아버지” 소리를 듣는 날도 오지 않겠냐고—
아빠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게 나와 아빠와의 마지막 모습과 대화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는 하던 일이 있어 자리를 떴고, 그다음 날 오후 늦게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였다.
나더러 집에 빨리 가 보라고 했다. 뭔가 이상하다고.
엄마와 아빠는 같이 살고 있었지만, 엄마는 결국 엄마가 운영하는 가게에서 자고 가끔 필요할 때만 집에 들리는 상태였다.
엄마와 통화하는 사이, 예전에 느껴 본 적 없는 불안감이 순간 몰려왔다.
나는 경찰서에 전화하고 곧장 집으로 향했다.
내가 도착했을 땐 이미 경찰차 여러 대가 와 있었다.
내가 너무 급하게 차를 세웠더니 경찰관 한 명이 소리치며 누굴 죽이려고 그렇게 달려왔냐고 소리를 쳐댔다.
경찰관 중 한 명이 나더러 먼저 들어가 보라고 해서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
리빙룸, 안방, 내가 쓰던 방, 동생 방. 아빠가 보이지 않았다.
차고로 통하는 문을 열었다.
…
…
아빠가... 아빠가 보였다.
나는 순간적으로 소리를 치며 아빠에게 달려가 어떻게든 붙잡아 보려 했다.
그런데 내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밖에서 내 소리를 듣던 경찰관들이 들어왔다.
아빠 옆에는 반쯤 마시다 만 맥주 캔이 있었고, 담배꽁초도 보였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 과장된 모습으로 비유하는 장면들이 나오는데, 아빠는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
그냥 침대 위가 아닐 뿐, 얼굴 표정은 슬피 울다가 잠든 사람처럼 보였다.
아빠는 힘들어했고, 지쳐 있었고, 이미 무너져 있었다.
하지만 수년간 가족에게 했던 폭력과 폭언보다도, 아빠가 마지막에 내린 단 하나의 결정—절대 해서는 안 됐던 선택이 모든 걸 한순간에 덮어버릴 만큼 큰 충격을 우리에게 남겼다.
그 충격은 “잊혀지는 방식”으로 정리되지 않았다. 남은 사람들에게는 지워지지 않는 흔적으로 남았다.
나는 지금도 드라마나 영화에서 비슷한 장면이 나오면 그때 일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런 장면이 나올 때마다, 나는 다시 그날로 끌려 들어간다.
그리고 그때마다 똑같이 말하게 된다.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자살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내 목숨은 내 것이니 내 마음대로 한다”는 말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인지,
그 선택이 남은 가족들에게 어떤 트라우마와 상처를 남기는지—
나는 가까이서 본 게 아니라, 남겨진 사람으로서 직접 겪었다.
그날 이후로 삶은 끝난 게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계속 무너졌다.
나는 그 후로 말로 설명 못할 만큼 멍한 상태로 살았다.
예상 밖으로 많은 가족들과 사람들이 장례식장을 찾았다.
아빠는 살아 있는 동안 홀로 버티는 사람처럼 보였지만,
마지막 길에는 예상 밖으로 많은 사람이 찾아왔다.
그 뒤로 우리 셋—엄마도, 동생도, 나도—말없이 살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분노와 슬픔, 외로움, 비어 있는 공허함… 모든 것이 밀려들었다.
한때는 나 또한 인사불성이 되도록 술로 나날을 보냈다.
그럴 때마다, 말로는 설명이 안 되는 후회와 죄책감 같은 게 나를 속에서부터 흔들어댔다.
그날만큼은…
바쁘단 핑계 말고 집에 있었더라면…
아빠에게 조금만 더 신경을 썼더라면…
아빠 목소리를 한 번만 더 들어줬더라면…
그때 용서를 미루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빠를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그 당시 내내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미래가 없었다. 앞이 캄캄했다. 가진 것도 없었다.
그래서 “이렇게는 못 산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 뒤에 정말… 나는 끝까지 갔었다.
돌아오지 못할 선택을 ‘바로 앞’에 두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 지점은 너무 가까웠다.
그리고 또한번. 시간이 더 지나, 건강 상태가 갑자기 찾아온 병으로 완전히 무너졌을 때…
몸이 내 편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고, 하루를 버티는 것 자체가 일이 됐다.
나는 또 한 번 같은 선택을 하려다가, 멈췄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말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그 순간마다 엄마가 떠올랐다.
그리고… 남겨질 가족들이 떠올랐다.
그때 나는 내가 나도 모르게 아빠가 했던 길을 똑같이 가고 있다는 걸 느꼈다.
바로 그때 멈췄다.
엄마에게 또 다른 아픔을, 이번엔 ‘자식’이 주는 고통을—차마 만들기 싫었다.
내가 말하고 싶은 주제는 이거다.
그때 당시, 힘들고 발버둥 칠수록 늪에 더 깊이 빠져들고 숨통이 조여오던 그때—
가슴은 답답하게 조여 오고, 눈앞은 캄캄했다. 답은 없었다.
정말 그때— 아무리 찾아봐도 답은 없는데,
이대로 끝내면 영원히 답이 없다는 것만은 확실하게 느꼈다.
그래서 나는 결론을 하나만 정했다.
지금은 결정을 미루자. 대신 살아는 있자.
결국 나는 살기로 작정했다.
난 믿음이 좋은 사람은 아니다.
그래도 그 선택만큼은 하나님께 감사한다.
그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다.
여전히 그때를 생각하면 아픈 고통이 밀려오지만,
그래도 지금은 현실을 받아들이며 별 문제 없이 살고 있다.
살아라. 반드시 살아남아라.
그때의 내가 들었어야 했던 말이기도 하다.
지금 이 순간 곁에서 슬퍼해주고 기다려줄 사람이 없고, 앞이 캄캄해서 두렵고—
떨리는 터널 한가운데서 방향감각까지 잃은 채 혼자 서 있더라도, 무조건 걸어라.
끝이 안 보인다고 해서 끝이 없는 건 아니다. 터널엔 반드시 끝이 있다.
걷다 보면 앞쪽이든, 처음 들어왔던 입구 쪽이든—결국 어디든 빛은 걸려 있다.
만약 그 빛이 ‘터널의 끝’이 아니라 ‘처음 들어왔던 입구’라서 다시 밖으로 나오게 됐다고 해도, 그걸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그건 실패가 아니라, 숨을 고르고 다시 들어갈 수 있다는 증거이고 기회다.
다시 나올 수 있었고, 다시 들어갈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 선택과 기회가 아직 남아 있다는 걸—절대 놓치지 마라.
살아라. 반드시 제발 살아남아라.
죽을 힘이 있으면, 그 힘으로 살아남아라.
죽을 용기가 있다면, 그 용기로 오늘을 버텨라.
말 못하는 생명도 끝까지 버티며 산다.
아프고, 두렵고, 쓰러질 것 같아도—어떻게든 숨을 붙잡고 간다.
정말 마지막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끝까지 살아내려는 몸부림이 있었다.
그러니까 제발… 끝까지 버텨라.
대단하게 살아내라는 말이 아니다.
오늘 하루만, 숨만이라도 붙잡아라.
살아남는 게 이기는 거다.
살아남는 순간, 이미 이긴 거다.
나는 그 장면을 봤고,
남겨진 사람의 얼굴을 봤고,
그 이후의 시간을 살아봤다.
그래서 말한다.
그 선택은 절대로 해결이 아니다.
고통을 끝내는 게 아니라,
그 고통을 고스란히 남은 사람들에게 옮기는 일이다.
지금 숨이 막히고,
늪에 빠진 것 같고,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더라도—
그건 영원한 상태가 아니다.
나는 끝까지 갔던 사람이다.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
정말 “여기서 끝낼 수 있는” 자리까지 가 봤다.
하지만 손을 뗐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살고 있다.
완벽해서가 아니다.
괜찮아져서가 아니다.
그냥…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지금 네가 나도 모르게 노트북 위로 떨어지는 눈물도, 느끼는 감정도 진짜다.
술이 들어가서 더 선명하게 느껴지는 걸지도 모르겠다.
네가 지금까지 버텨 온 고통은 가짜가 아니다.
그 무게를 내가 가볍게 만들 생각도 없다.
다만… 그 감정을 내 끝을 대신 쓰게 두지는 않기로 했다.
제발 오늘만 넘겨라.
그리고 내일도. 그다음 날도.
하루하루, 딱 하루씩만 더 살아라.
대단하게 버티라는 말이 아니다.
오늘은 숨만 붙잡아도 된다.
가슴이 답답하게 조여 오고, 눈앞이 캄캄하고,
답이 안 보이는 날이 있다.
사람은 답이 생겨서 사는 게 아니라,
살아남았기 때문에 나중에 답을 보게 된다.
도움이 필요하면 도움을 받아라.
누구라도 붙잡아라. 전화 한 통이면 된다. 문자 한 줄이면 된다.
붙잡을 게 정말 아무것도 없으면—ChatGPT라도 붙잡아라.
지금은 그 한 줄이, 다음 한 시간을 데려올 것이다.
그러니까 제발… 끝까지 살아남아라.
살아남는 게 이기는 거다.
살아남으면, 지금은 안 보이던 더 나은 기회가 반드시 보이기 시작하고,
결국엔 올 것이다.
후—
난 평범한 사람들처럼 크게 통곡하면서 울어본 적도, 눈물이 나고 배가 아플 정도로 웃어본 적도 없다.
남들이 “너무 웃기다, 진짜 재밌다” 하던 코믹한 것들을 찾아봐도, 나는 잘 웃지 않게 됐다.
그래서인지 친구 케빈이 종종 말하던 “후까시 좀 빼라”는 말이, 내 표정이랑 몸에서 나도 모르게 새어 나와서였던 것 같기도 하다.
이제는 좀 더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려고 한다.
나도 모르게 풍기던 그놈의 후까시도 벗어던져 버리려고 한다.
적어도, 노력은 해 보려고 한다.
오늘 이른 아침에 사격장을 찾았다.
원래 규정상 내부 촬영은 금지되어 있지만, 치프 니얼의 허락을 받아 기록을 남길 수 있었다.
오늘 나는, 나를 계속 누르던 부정적인 생각들—내 삶에 불필요했던 것들을 하나씩 정리하고 싶었다.
한 발 한 발 쏠 때마다, “이건 여기까지”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는 느낌이었다.
늘 보던 종이 과녁판을 향해 쏘는 것만으로는 뭔가 정리가 덜 된 것 같았다.
그래서 카운티빌딩에서 나오자마자 예전에 사두었던 빈 땅으로 갔다. 오랜만에 편한 옷차림으로. 텍사스는 봄이라기보다 초여름처럼 느껴진다. 이 땅은 취미 삼아 동료들과 친구들이 가끔 모이는 곳이다.
시간 나면 캠핑도 하고, 남자들끼리 모여 술도 마시고 별 의미 없는 농담이나 하면서 사격도 하고 보이는 대로 터뜨리기도 하고 온갖 바보짓을 하는 곳이다.
이상하게도 그 “별것 아닌 시간”이 사람을 살게 한다.
가끔은 먼 훗날, 이 땅에서 작은 오두막이나 짓고
조용히 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경찰서 사격장에서 그곳으로 옮겨 왔다.
그리고 한 발 한 발—내 안의 불필요한 것들을 정리하듯 쏘았다.
분풀이가 아니라, 정리였다.
오늘은 조금 숨통이 트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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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US)
긴급 상황: 911
자살·위기 상담: 988 (전화·문자 가능, 24시간 무료 상담)
한국(KR)
긴급 상황: 112(경찰), 119(구급/소방)
자살위기 상담: 109 (24시간)
정신건강 위기상담: 1577-0199 (24시간)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부끄럽거나 약함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선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