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지지 않는 눈빛
앞에서 말했듯이 우리 경찰서는 나름 모든 것을 갖춘 규모가 큰 경찰서다. VICE(자막: 풍속·특수 수사팀)만 해도 여러 개의 팀으로 나뉘어 있을 정도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안에 내가 전혀 들어보지 못한 팀이 두어 개 더 있다는 말을 듣고 적잖이 놀랐다. 솔직히 내가 일하고 있는 하나의 경찰서가 담당하는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감이 잘 오지 않아 GPT에도 물어봤다. 서울 면적과 비교하면 거의 여덟 배에 가까운 넓은 구역을 다시 여러 구역으로 나눠 맡고 있다고 하니, 그제야 왜 이런 팀들이 따로 존재하는지 조금은 실감이 갔다.
그만큼 우리 경찰서는 거의 다 갖추고 있는데, 딱 하나만 없다. 바로 homicide(자막: 살인 전담 수사)를 직접 맡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정도 규모의 경찰서가 homicide를 하지 않는다는 건 지금 생각해도 꽤 의외다. 이유는 살인사건이 발생하면 시경찰이나 우리와 다른 jurisdiction(자막: 관할권)을 가진 기관이 사건을 맡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살인 현장에 아예 가지 않는 건 아니다. 우리 관할 구역에서 사건이 발생하면, 담당 기관의 homicide unit(자막: 살인사건 전담팀)이 도착할 때까지 먼저 현장을 확보하고 보존한다. 그 사이 scene perimeter(자막: 현장 통제선)를 유지하고, 출입을 통제하면서 오염 방지에 신경 쓴다. 쉽게 말해, 불필요한 사람이나 움직임이 현장 안으로 들어와 증거나 흔적을 흐트러뜨리지 않게 버티는 일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직접 보고 확인한 내용들은 initial report(자막: 최초 사건 보고서)로 먼저 정리하고, 이후 추가로 확인되거나 확보된 내용들은 supplement report(자막: 추가 보충 보고서)에 최대한 정확하게 담는다. 그렇게 현장에서 확보한 증거와 관련 자료, 그리고 사건 흐름을 정리한 리포트들을 담당 homicide 부서에 인계한 뒤에야 비로소 현장을 떠난다.
나는 처음 VICE팀에 합류했을 때 잠깐 credit card fraud나 bank fraud 같은 금융사기 관련 파트를 맡았었다. 그런데 그쪽 일은 내 성향과는 잘 맞지 않았다. 결국 나는 불법 도박 급습을 보조해 주는 역할 쪽으로 옮겼고, 그러다 Animal Cruelty(자막: 동물학대 수사) 쪽으로도 가게 됐다. 그 이후에는 인신매매와 불법 성매매 업소 단속도 여러 곳을 맡게 됐다.
텍사스는 오래전부터 인신매매 범죄가 끊이지 않는 곳이었다. 넓은 도로망과 국경, 끝없이 이어지는 도시와 물류의 흐름 속에서 사람은 너무 쉽게 사라졌고, 흔적은 믿기 어려울 만큼 빨리 지워졌다. 이 땅에서 인신매매는 특별히 드문 일이 아니었다. 국경과 고속도로, 물류와 유흥, 이민과 돈이 뒤엉킨 구조 안에서 사람을 옮기고 숨기고 팔아넘기는 일은 늘 생각보다 더 조직적이었고, 더 조용했으며, 그래서 더 오래 숨어 움직이고있다.
보통 불법 성매매로 이어지는 곳들은 겉으로는 멀쩡한 업소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들어가 보면 남미계가 운영하는 스트립클럽과 맞물려 있거나 동양인들이 운영하는 마사지 업계에서 은밀하게 돌아가는 경우가 많았다. 스트립클럽의 경우, 외부에서는 일반적인 영업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내부에 별도로 마련된 공간에서 은밀한 성행위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마사지 업계 역시 겉으로는 정상적인 업소처럼 운영되지만, 실제로는 마사지를 가장해 이루어지거나 영업 종료 이후에도 비공식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비교적 소규모로 돌아가는 곳들은 대개 빨리 끝난다. 업주와 종업원 몇 명을 체포하는 일도 대부분 큰 저항 없이 마무리된다. 하지만 그날 들어간 곳은 달랐다. 여러 주에 걸쳐 조직적으로 굴러가던 판이었고, 윗선에는 멕시코 쪽 라인과 중국계 돈줄이 얽혀 있었다. 그 밑에서는 한국에서 건너온 양아치 새끼들이 사람을 옮기고, 감시하고, 돈을 챙기며 뛰고 있었다. 오랜 시간 접수된 첩보와 제보를 분석하고, 필요한 절차를 하나씩 밟아 영장을 받아낸 뒤에야 비로소 급습이 진행됐다.
저녁 7시쯤, 우리는 근처 주차장에 모였다. 마지막 브리핑을 마친 뒤 팀은 세 개로 나뉘었다. 정문, 뒷문, 그리고 혹시 모를 비상구까지. 미리 잠복하며 파악해 둔 출입 지점을 차단하고 들어갈 준비를 모두 끝낸 상태였다. 나는 체포 이후 신문을 맡는 팀이었다. 곧바로 브리치 팀(자막: 강제 진입 팀)이 앞문과 뒷문, 각 출입문 앞에 붙었다. 숨이 잠깐 멎는 정적 뒤로, 귀에 꽂혀 있던 무전 이어피스로 명령이 떨어졌다.
앞문은 그냥 열렸다. 반면 뒷문 쪽에서는 깨지는 소리와 함께 문이 뜯겨 나가는 소리가 났다. 그와 동시에 앞문, 뒷문, 모든 출입문이 일제히 열렸다. 안으로 진입하면서 선두 쪽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그 소리와 거의 동시에 여기저기서 여자들의 비명 소리가 뒤섞여 들렸다. 어둑어둑한 네온 불빛 사이로 놀란 얼굴들이 보였다. 대부분 동양인 여자들이었고, 손님으로 온 남자들도 많았다. 그중에는 속옷 차림이나 아예 알몸 상태로 뛰쳐나오는 남자와 여자들도 있었다. 보이는 대로 제압했고, 수갑 대신 Tri-Fold Restraint
(자막: 플라스틱 결박끈)로 결박했다.
안에는 부스 형태로 나뉜 방이 열두어 개쯤 있었다. 각 방마다 마사지 침대와 소파, 그리고 바 스툴이 놓여 있었다. 그중 세 곳에서는 마약이나 술에 찌든 모습으로, 반쯤 벗은 채 혹은 적나라하게 완전한 나체 상태로 누워 있는 젊은 여성들도 있었다. 순식간에 모두 제압이 끝났고, 구급차도 이미 도착해 있었다. 이후 작전은 순차적으로 진행됐다.
알고 보니 그 안에는 젊은 한국 여성 두 명과 중년으로 보이는 한국 여성 한 명, 총 세 명의 한국 여성들이 있었다. 나머지는 멕시코부터 시작해서 필리핀, 중국, 베트남, 라오스 등 다양한 아시아권 여성들이었다. 순간 잡혀 꿇어앉혀 있던 감시자들과 성욕을 채우기 위해 즐기려 온 변태 새끼들을 보는 순간, 문득 고등학교 때까지 골키퍼를 했던 내 발이 먼저 떠올랐다. 저 새끼들 대갈통을 축구공 차듯 걷어차고 싶다는 충동이 정말 순간적으로 치밀어 올랐다.
잡혀 있던 여성들 중에서도 유독 한국 여성들에게 눈이 갔다. 그리고 유독 그들의 사정을 더 집중해서 듣게 됐다. 물론 여러 명이 각자 따로 신문을 진행했고, 원칙대로라면 모두를 똑같이, 동등하게 대했어야 했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나는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무슨 이유로 한국에서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 체포 당시에는 다 알지 못했다. 하지만 나중에 들은 이야기들을 종합해 보면 이유는 하나로 설명되지 않았다.
누군가는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넘어왔고, 누군가는 한국에서 진 빚 때문에 억지로 끌려왔다고 했다. 처음에는 마사지나 유흥 쪽에서 얼마만 일하면 금방 빚을 정리하고 나갈 수 있다는 식의 말을 믿었을 수도 있다. 또 어떤 이들은 한국에서는 막혀 있던 삶이 미국에 오면 풀릴 수 있을 거라고, 여기서 버는 돈이 자기 나라 돈과는 비교도 안 되게 크다는 말에 기대를 걸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판에서는 자진과 강요가 처음부터 깔끔하게 나뉘지 않는다. 스스로 걸어 들어온 것처럼 보여도,막상 안으로 들어오면 빚이 족쇄가 되고, 체류 불안이 목줄이 되고,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입을 막아 버린다.
그리고 늘 따라붙는 건 협박이었다.
국적을 떠나 피해 여성들이 공통적으로 하던 말들 속에는 이런 종류의 협박이 빠지지 않았다. 도망가면 끝이라는 말, 신고하면 더 큰일 난다는 말, 경찰에 가도 너만 잡혀 간다는 말. 그런 말들은 몸보다 먼저 사람의 마음을 묶어 놓는다.
나는 한국 여성들을 신문할 때 겉으로는 최대한 멀쩡한 척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분노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 분노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감정도 함께 올라왔다. 같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내 시선이 더 오래 머물렀다는 사실도 불편했고, 그들의 모습을 본 후 처지를 듣고 있는 내 자신도 왠지 모르게 부끄럽고 민망해졌다. 경찰로서 나는 침착해야 했고, 동등해야 했고, 감정을 드러내지 말아야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순간만큼은, 분노보다 수치심이 더 깊이 남았다. 아마 그런 일들이 하나둘씩 쌓였기 때문일 것이다.
일이 끝난 뒤 동료들이 잡혀 있던 여자들과 남자들 이야기를 농담처럼 꺼내고, 이 여자는 몸상태가 저랬고 저 여자는 이랬고, 어떤 놈은 놀라던 얼굴이 어땠고, 심지어 몸의 신체부이 일부까지 상세히 입에 올리며 웃어됬다. 우리는 속살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인간들의 취약함을 봤다. 그렇게 서로 모여서 웃으며 넘기던 이유를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은 알 것도 같다.
그건 단순히 가벼워서도, 원래부터 잔인해서도 아니었다. 방금 전까지 본 장면이 너무 날것이고 너무 불편해서, 그걸 있는 그대로 “충격이었다, 역겨웠다, 마음이 불편하다”라고 말하는 순간 자기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올 수 있으니, 일부러 농담으로 바꾸고 품평으로 바꾸면서 장면의 무게를 약하게 만들려 했던 것 같다.
사람을 끝까지 사람으로 보면 버티기 힘드니까, 어느 순간부터는 한 명의 인간이 아니라 현장에서 본 장면의 일부처럼 잘라 말하게 되고, 그게 반복되면 공감은 닳고 감각은 무뎌진다. 게다가 경찰 조직 안에서는 흔들리지 않는 척하는 것이 일종의 강함처럼 여겨지고, 솔직히 힘들었다고 말하는 데는 아직도 낙인이 남아 있으니, 누가 “나 좀 충격받았다”라고 털어놓는 대신 농담을 던지고 외모를 품평하면서 “나는 괜찮다”는 신호를 보내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어쩌면 그건 진짜 감정을 말할 언어가 없어서 더 쉬운 말로 하는 것이기도 하다. 역겨움, 분노, 무력감, 수치심, 혼란 같은 감정을 정직하게 꺼낼 준비가 안 되어 있으니, 가장 쉬운 방식인 농담과 비하와 품평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이해는 간다. 실제로 그런 방식은 잠깐 긴장을 낮추고 동료들끼리 버티게 해 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건강한 방식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누군가는 웃으며 털어냈을지 몰라도, 누군가에게는 그 장면이 오래 남고, 결국 그런 차이가 사람을 조금씩 다르게 바꿔 놓는 것 같았다.
나는 더 이상 VICE를 하지 않는다. 지금은 카운티 빌딩에 와 있다. 남들이 보기엔 잠시 쉬러 온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내게는 그 표현이 아주 틀린 말도 아니다. 너무 많은 장면들이 머릿속에 남아 있었고, 나는 그곳에서 조금 멀어질 시간이 필요했다.
여태껏 경찰이라는 신분으로 이런 민감한 감정을 이토록 솔직하게 꺼내 적은 적은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건 이제 더는 미룰 수가 없었다. 눈을 감으면 내가 수없이 겪고 들었던 총성보다도, 붉은 피와 찢겨 나간 신체의 일부들보다도, 정작 더 또렷하게 떠오르는 것은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었다. 어둑한 네온빛 아래에서 놀라 굳어 있던 얼굴들, 지쳐 버린 표정들, 차마 말로 다 옮길 수 없는 몸의 상태들. 어떤 눈빛은 유난히 오래 남아 있고, 어떤 장면은 시간이 지나도 끝내 흐려지지 않고 있다.
나는 이것들이 왜 아직도 남아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분노 때문인지, 수치심 때문인지, 같은 한국인이었다는 이유 때문인지, 아니면 그날의 내가 경찰이기 전에 그냥 한 인간으로 먼저 흔들렸기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 분명 나는 지침 안에서 움직였고, 맡은 역할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음까지 편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현장을 통제하던 내 모습보다, 그 안에서 끝내 지워지지 않던 사람들의 얼굴이 더 오래 남고 있다. 그래서 나는 다시 같은 질문 앞에 서게 된다. 눈을 감으면 가끔 그때 그런 장면이 생각나는 나, 과연 정상적이고 좋은 경찰일까?
다음 주말에도 또 잡아야 할 놈이 있다. 시카고에서 텍사스까지 직접 차를 몰고 내려오는 놈이다. 미성년자를 보겠다고 그 긴 길을 내려오는 인간. 지금은 진행 중인 사건이라 지침상 자세한 이야기를 할 수는 없다. 다만 시간이 허락한다면, 언젠가 다음 생각일기에서는 고위직에 있고 번듯한 직장을 가진 멀쩡한 얼굴의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또 얼마나 상상을 뛰어넘을 만큼 더럽고 추악해질 수 있는지에 대해 써 보려 한다.
결국 경찰이라는 일은, 아직 답을 찾지 못한 질문 하나를 가슴에 품은 채 또 다른 문 앞에 다시 서는 일인지도 모른다.
— 다음 화에서—
답답한 마음에 GPT에게 말을 걸었다.
생각보다 친절한 답이 돌아왔다.
사람을 붙잡고 상담을 받는 일은, 경찰들 사이에서 생각보다 쉽게 선택되지 않는다. 약해 보일 수 있다는 시선이 있고, 한 번 꺼낸 말은 기록으로 남을 수 있으며, 그 기록이 언젠가 어떤 평가와 판단 앞에서 자신에게 불리하게 돌아올지 모른다는 불안도 있다. 그래서인지 나 역시 사람 대신 AI에게 말을 걸고 있다. 그리고 문득, 이런 내가 정상인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