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이 부서지던 밤
내가 극도로 혐오하는 것 중 하나가 있다.
가정폭력이다.
앞서 쓴 소설 너를 품에 안으면 이나 생각일기에서도
아버지로 인해 겪었던 어린 시절의 가정폭력을 몇 번 묘사한 적이 있다.
가정폭력은
사람으로 태어나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짓이다.
솔직히 말하면,
그 피해의 중심에는 항상 엄마가 있었다.
엄마는 젊은 시절, 메이저급 화장품 모델이었다고 했다.
그 시절 기준으로도 남자들이 몇 번이고 뒤돌아보는 얼굴이었다고 주변 사람들이 말해줬다.
색이 바랜 사진 속 엄마를 보면
자식인 내 눈에도 ‘보통 이상’은 분명했다.
그렇게 가냘프고 예뻤던 얼굴.
바람만 불어도 흔들릴 것 같던 가느다란 가지 같던 사람.
그 얼굴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맞아 터지고 짓밟여서 엄마의 얼굴과 모습을 어디에도 찾아볼 수가 없을 만큼 망가진 모습을 나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그때 우리는 너무 어렸다.
아빠 앞에서는 그저 벌벌 떠는 병아리였다.
아빠는 체격이 컸다.
그 당시 기준으로도 큰 키에,
군복무 시절 전부터 유도, 태권도, 합기도로 단련된
돌덩이 같은 몸을 가지고 있었다.
경희대 체육과를 거치고 ROTC 장교 출신.
돈도 있었고, 빽도 있었고,
서울에만 메이저급 화장품 대리점을 열 곳 넘게 운영했고
경기도 포천에는 규모가 꽤 큰 농장까지 가지고 있었다.
겉으로 보면
누가 봐도 성공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지옥이었다.
방학이 되면 가끔 그 농장에 갔다.
사람들은 “놀러 간다”라고 했지만
엄마와 우리 3형제에게 그건
지옥으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서울에서는 그나마 아빠가 집에 없으면 숨을 쉴 수 있었다.
그래서 더 싫었다.
아빠를 보러 가야 하는 날이.
서울 집은 컸다.
잔디가 깔린 마당, 연못까지 있는 2층 단독주택.
동네 아이들이 놀러 와
연못 속 잉어와 금붕어를 구경하던 그때—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2층 창문에서
엄마가 우리를 내려다보던 영혼이 빠져나간 그 표정을.
웃고 있지 않았다.
그냥… 무너진 얼굴이었다.
그리고 아빠가 집에 오는 날이면
그 집은 늘 부서졌다.
대문이 깨지고,
창문이 부서지고,
집 안의 물건들이 산산이 흩어졌다.
그 소리와 함께
우리의 숨도 같이 깨졌다.
어릴 적 내가 기억하는 우리 집 대문은
강철로 만든 커다란 대문이었다.
그렇게 단단해 보이던 문이
다들 잠들어 있어야 할 고요한 밤이면
쾅쾅 울리는 소리와 함께 부서지고 깨져 나갔다.
문을 따고 들어오면 될 것을
왜 굳이 매번 그렇게 때려 부수며 들어왔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기억으로는
우리 집에 경찰이 오는 꼴은 한 번도 못 봤다.
와 봐야 어쩔 수 없다는 듯,
알고도 모른 척했던 것 같기도 하다.
매번 들려왔던 그 부서지는 소리는
어린 내 귀에는 마치 지옥에서 울리는 천둥소리처럼 들렸다.
아빠가 유난히 심하게 폭주하던 날이면
엄마는 죽을힘을 다해
우리 삼 형제를 데리고
이리저리 도망쳤다.
근처 여관으로 숨어들기도 했고,
친척집으로 피신해 있기도 했다.
그런데도
엄마와 우리는 단 한순간도 편히 있지 못했다.
혹시라도 아빠에게 들킬까 봐.
혹시라도 우리가 숨어 있는 곳을 알아낼까 봐.
그 불안 속에서 엄마와 우리는 늘 떨어야 했다.
그리고 예상했던 것처럼
아빠는 귀신같이 우리를 찾아냈다.
그럴 때마다 아빠는
엄마 앞에서 미안하다고 했다.
잘못했다고 했다.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했다.
술은 이제 입에도 대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 말들은
지켜진 적이 없었다.
우리는 그 지키지도 못할 변명들을
지겹도록, 질리도록 들어야 했다.
사랑?
나는 한동안
사랑이라는 말을 제일 듣기 싫어했다.
아빠가 그 난리를 쳐놓고도
늘 뒤따라하던 말이 바로 그거였기 때문이다.
“난 너희 엄마 사랑한다.”
“너희들도 사랑한다.”
그래서였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살면서
누구에게 먼저 사랑한다고 말해본 기억이 없는 것 같다.
옛 여자친구가
“오빠, 나 사랑해?”
그렇게 물어도
내 대답은 늘 짧았다.
“어.”
그게 끝이었다.
Do you love me?
그러면 나는 그냥 말했다.
“Yes.”
That was it.
지금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는 사랑을 몰라서 그 말을 아꼈던 게 아니라,
너무 어릴 때부터
사랑이라는 말이 망가지는 모습을 먼저 봐버렸던 것 같다.
어쩌면 그래서 나는
지금도 사랑이라는 말보다
그 말 뒤에 따라오는 얼굴부터 먼저 보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2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