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ng 2

그냥 잡히기만이라도 해라

by 스팅비 StinGB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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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늦은 밤부터 토요일 아침까지는 이상하게 긴장감보다는 약간 들뜬 마음으로 잠을 설쳤다.

시카고에서 텍사스로 내려오는 그 Thing(띵)을 오늘은 어쩌면 제대로 엮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평소 같으면 그냥 또 하나의 업무라고 넘겼을 텐데, 이상하게 어제는 조금 달랐다. 오랜만에 VICE 쪽 사람들과 다시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는 것도 있었고, 그 띵을 향해 뭔가 실제로 움직일 수도 있겠다는 기대도 있었고, 무엇보다 한동안 잊고 있던 예전 감각이 아주 잠깐 다시 살아나는 느낌이 있었다.

“Maybe today is the day.”(자막: 어쩌면 오늘이 바로 그날일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들뜬 건 아니라고 스스로를 달래 봤지만, 몸은 솔직했다. 잠은 깊지 않았고, 머릿속은 괜히 먼저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우습다. 막상 기대를 조금 품고 나가면, 꼭 그런 날 더 황당한 소식을 먼저 맞게 된다. 원래는 처음부터 우리 쪽은 현장 투입이 없을 거라고 했다. 그래서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또 중간에 말이 바뀌었다. 시카고에서 텍사스로 내려오는 그 띵이 근처에 들어오면 나와 파트너가 뒤에 붙으라는 말이 나왔다. 내 개인차를 쓰는 것까지 어렵게 승인받았고, 나도 그에 맞춰 준비를 했다.


처음엔 안 된다더니, 그다음엔 또 하라고 한다. 그 순간부터 사람 마음은 달라진다. 아, 오늘은 진짜 뭔가 있나 보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다. 오랜만에 VICE 시절 함께 일했던 동료들도 만났다. 반가웠다.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듯 한동안 못 했던 얘기들을 웃으며 나눴다. 예전에는 같은 방향을 보고 뛰던 사람들이었고, 그 시절의 피로와 욕과 웃음이 섞인 공기를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아주 잠깐, 다시 VICE로 들어갈까 하는 충동까지 스쳤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예전 내가 알던 그 팀과 지금의 팀은 이미 많이 달라져 있었다. 위 사람들도 바뀌었고, VICE 안에도 새로운 얼굴들이 대부분이었다. 반가운 사람은 몇 남아 있었지만, 전체 분위기는 이미 내가 기억하던 그 조직이 아니었다. 내가 그리워했던 건 예전의 VICE였지, 지금의 VICE는 이미 다른 팀이 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황당한 말이 툭 떨어졌다.


“You guys are relieved.” (자막: 너희는 빠져.)

W T F!


그게 끝이었다. 설명도 없었다. 왜 바뀌었는지, 누가 뒤집었는지, 이제 우리는 뭘 하면 되는지 그런 말도 없었다. 그냥 재수없게 툭, 마치 땡처리하듯 던져졌다. 원래는 투입이 없다고 했다가, 뒤에 붙으라고 했다가, 막상 준비가 끝나니 또 하지 말라고 한다. 결국 나와 파트너가 한 일이라고는 공식 통신망으로 여기저기 전화만 돌리는 것뿐이었다. 그 짧은 한마디가 오늘 하루를 전부 도루묵으로 만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못 한 게 아니라 못하게 된 것이다. 준비는 하게 해 놓고, 기대는 품게 해 놓고, 막판에는 손을 떼게 만든다.


그렇게 끝나고 나면 몸은 분명 출근해서 일했는데도 이상하게 손에 잡히는 게 없다. 현장에 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빠진 것도 아니고, 책임은 애매하게 흐려지고, 기운만 빠진 채 남는다. 이런 날의 피로는 육체적인 피로랑은 조금 다르다. 사람을 허탈하게 만드는 피로다. 솔직히 말하면, 그 순간 기분이 꼭 껌 같았다. 필요할 때는 질겅질겅 씹다가, 단물 빠지니까 퉤 하고 뱉어버린 껌 같은 느낌.


조금 전까지는 같이 움직일 것처럼 해 놓고, 막상 결정적인 순간이 오자 너무 가볍게 잘라낸다. 그 짧은 한마디 안에 내가 오늘 느낀 모멸감과 허탈함이 다 들어 있었다. 내가 신참이었다면 몰라서 그냥 이러려니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나도 나름 베테랑 위치에 있다 보니 안다. 이건 단순히 변수가 생긴 게 아니라, 애초에 정리가 안 된 채 현장에 던져진 혼선이라는 걸 안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이런 식의 말 바꾸기를 볼 때마다 슬슬 짜증이 올라온다.


오늘 제일 묘했던 건 그 일 자체보다도 그 일 앞에서 내가 느낀 감정이었다. 조금 전까지는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순간적으로는 다시 그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이 오자 분위기는 달라졌다. 말로 대놓고 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느낌은 너무 분명했다.
"넌 예전에는 VICE였지. 지금은 아니잖아."


필요할 때는 부를 수 있어도, 중요한 순간에는 선을 긋는 사람. 그 짧은 순간, 나는 꼭 왕따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잠깐 환영받는 척하다가, 정작 문 안쪽으로는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 같은 기분. 반가운 얼굴들 사이에 앉아 있었지만, 동시에 분명히 바깥 사람이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당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나만 그랬던 것도 아니다. 파트너 K도 옆에서 씨부렁 씨부렁거렸다. 걔는 클래식 차와 트럭을 모으고, 직접 고치고, 손보고, 만드는 게 주말의 거의 유일한 낙인 사람이다.


그 아까운 시간을 빼서 나왔는데 결국 남은 건 전화 몇 통 돌린 것뿐이니, 털털대며 불평이 안 나올 수가 없었다. 옆에서 K가 툴툴대는 걸 들으니 더 웃기고 더 허무했다. 결국 둘 다 주말만 날린 셈이었다. 현실적으로 이런 일이 생기는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할 수도 있다. 누가 특별히 나를 싫어해서라기보다, 큰 조직일수록 지휘선과 책임선이 따로 노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현장에서는 필요하다고 보고 붙이라고 한다. 하지만 위에서는 liability와 책임 문제를 다시 계산한다. 거기에 부서가 다르고, 정식 팀이 아니고, 자원 투입이 애매하고, 혹시라도 사고가 나면 누가 책임질지 분명하지 않으면 그 순간부터 말이 갈라진다. 현장 입장에서는 하라고 들었고, 위에서는 하지 말라고 바뀐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제일 먼저 소모되는 건 늘 현장 사람들이다. 경찰서가 크고 인원이 많을수록 이런 일은 더 잘 생긴다.

사람이 많으면 체계가 더 정교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중간 단계가 많아진다. 결정권자는 많아지고, 말은 여러 군데서 내려오고, 최종 책임은 누구도 확실히 안 지려고 한다.


게다가 specialized unit은 자기 작전과 자기 사람들에 대한 소유의식이 강하다. 도움이 필요할 때는 손이 급하니까 외부 인력도 쓴다. 하지만 막상 일이 커지거나 책임 문제가 떠오르면 그때부터는 이건 우리 라인이다.공식 팀이 아니다, 누가 책임질 거냐는 말이 나온다. 그 과정에서 나와 파트너 같은 사람들은 가장 애매한 위치에 놓인다. 필요할 때는 가까이 불려오고, 결정적 순간에는 가장 먼저 밀려난다.


그래서 오늘 내가 느낀 허탈함은 단순히 그 Thing(띵)을 못 따라붙어서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원래는 현장 투입이 없다고 했다가, 다시 따라붙으라고 했다가, 결국 아무것도 못 하게 만들고, 마지막에는 공식 통신망 전화만 돌리게 만든 그 방식 때문이었다. 준비는 우리가 했고, 혼선은 위에서 만들었고, 허탈함은 우리 몫이 됐다.그리고 무엇보다 아까운 내 주말이 완전히 새돼 버렸다는 생각이 마지막에 더 허무하게 남았다.


긴장이라기보다는 약간 익사이팅한 마음으로 잠까지 설쳐가며 나왔는데, 막상 남은 건 공식 통신망 안에서 전화 몇 통 돌린 기록과 애매하게 흐려진 지시뿐이었다. 이럴 거였으면 차라리 집에서 시원한 맥주나 한 캔 따고, 시가 하나 물고, 브런치 작가님들이 올린 글이나 하나 더 읽으면서 댓글이나 달 걸 그랬다. 적어도 그 시간은 오늘처럼 사람 마음을 들뜨게 해 놓고 도루묵으로 끝나지는 않았을 테니까. 이렇게까지 사람 마음을 들뜨게 해 놓고 결국 도루묵이라니. 정말 허탈했다.


오늘은 특히 더 선명했다. 오랜만에 만난 동료들의 반가움도 있었고, 예전 내가 알던 공기의 잔상도 있었고, 다시 들어가 볼까 하는 충동까지 아주 잠깐 스쳐 지나갔다. 그런데 하루가 끝날 무렵 내 손에 남은 건, 그때의 반가움이 아니라 내가 이미 그 팀의 사람이 아니라는 감각이었다. 사람들은 바뀌었고, 위도 바뀌었고, 팀도 바뀌었다. 반가운 얼굴 몇이 남아 있다는 사실과 내가 더 이상 그 안의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은 동시에 성립할 수 있다는 걸 오늘 다시 느꼈다.


“It is what it is.”(자막: 결국 현실은 현실일 뿐이다.)그 말을 쿨하게 넘길 만큼 나는 아직 그렇게 무뎌지지는 못했다. 아마 그래서 더 피곤한지도 모른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렇게 피곤하고 거슬리고 불쾌하다는 감정 자체가 아직 내가 이 일을 대충 보지 않는다는 뜻일 수도 있다. 아무 생각이 없었다면 화도 안 났을 것이다.

기대도 안 했을 것이다. 잠도 설칠 일이 없었을 것이다. 결국 오늘 나와 파트너는 공식 통신망 안에서 전화만 돌리다가 끝났다.


이런 식으로 한 번씩 쌓이는 지휘 혼선은 사람 안에서 조직에 대한 신뢰를 조금씩 갉아먹는다. 그리고 그런 균열은 보고서에 잘 남지 않는다. 대신 사람들 표정 안에, 농담처럼 던지는 불만 속에, 또 저러네 하고 넘기는 체념 속에 남는다. 가만히 보면 요즘 서 안에서 우리들의 불만이 점점 커지고 있는 이유도 아마 거기 있을 것이다. 그저 Thing이 무사히 잡히기만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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