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 4

더러운 피

by 스팅비 StinGB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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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이어 다른 백업 유닛들이 들이닥쳤다. 문을 열고 들어온 경찰관들은 안에 펼쳐진 처참한 광경을 보자마자 욕부터 내뱉었다. 누군가는 바닥을 보고 욕했고, 누군가는 피범벅이 된 내 모습을 보고 바로 내 쪽으로 달려왔다. “Hey, are you okay?” (자막: 괜찮아?) “Where are you hurt?” (자막: 어디 다쳤어?) “You hit?” (자막: 너 맞은 거야?) 질문이 연달아 쏟아졌다. 그럴 만도 했다. 내 유니폼 바지와 셔츠, 방탄복, 그리고 벨트에 찬 장비들까지 여기저기 피가 잔뜩 튀어 있었다. 얼핏 보면 누가 봐도 내가 크게 다친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나는 숨을 고르며 그 말만 했다. “It’s not my blood.” (자막: 이건 내 피가 아니다.) 한 번으로는 부족했다. “It’s not my blood.” (자막: 내 피 아니야.) 그 새끼 머리에서 피가 터지듯 사방으로 튀며 그대로 고꾸라졌고, 나는 지체할 틈도 없이 달려들어 그 위에 올라타 수갑을 채웠다. 그 짧은 몇 초 사이에 그 피가 내 손에, 손등에, 팔에, 유니폼에, 장비에, 얼굴에까지 튀었다. 옆에서 본 경찰관들이 그걸 내 피로 착각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건 전부 그 새끼 피였다.


더럽고, 끈적하고, 뜨겁고, 역겨운 피였다. 그 순간 나는 그 피가 단순히 묻었다고 느낀 게 아니었다. 내 몸이 그 새끼한테 더럽혀졌다고 느꼈다. 유니폼에 번진 피가 미칠 듯이 싫었고, 손등에 묻은 자국도, 얼굴에 튄 흔적도, 장비 틈새에 스며든 피도 전부 다 역겨웠다. 마치 그 새끼가 마지막까지 내 몸 어딘가를 붙잡고 남아 있는 것 같았다. 현장은 멈추지 않았다. 누군가는 만신창이가 된 피해자를 살피고 있었고, 누군가는 현장을 통제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바닥에 널브러진 그 새끼 상태를 보며 구급대를 재촉했다.


무전은 계속 울렸고 사이렌 소리는 사방에서 겹쳐 들렸다. 수도 없이 들어온 소리였는데, 그날은 유난히 더 시끄럽고 더 차갑게 들렸다.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건 여기서 안 끝난다. 이건 그냥 한 번 몸싸움으로 끝나는 현장이 아니다.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리포트, 진술, 검토, 바디캠, 무력 사용 검토. 현장에서는 몇 초였던 일이 끝나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전부 설명의 시간이 된다.


나는 삼단봉으로 그 새끼 머리를 있는 힘 것 내려쳤다.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다. 아니, 그 순간엔 그거 말고는 답이 없었다. 가정폭력 현장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눈이 뒤집힌 놈이 멈출 생각 없이 폭력을 밀어붙일 때다. 말이 안 먹히고, 잡아도 제압이 안 되고, 몇 초만 더 지나도 피해자는 목숨을 잃을 수도 더 크게 다칠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는 하나뿐이었다. 이 새끼를 지금 당장 멈춰 세운다. 현장에서는 생각할 시간이 없다. 나중에 밖에서 보는 사람들은 프레임 단위로 끊어서 판단하겠지만, 그 몇 초 안에 있는 사람은 그렇게 못 한다. 눈앞에서 연약한 사람이 맞고 있고, 상대는 멈추지 않고 있고, 지금 아니면 늦는다는 판단이 들면 그냥 움직이는 거다. 그게 그날 내가 한 일이었다.


필요한 절차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나는 곧장 샤워실로 들어갔다. 유니폼을 벗어던지고 물을 틀었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박박 문질렀다. 얼굴, 손등, 목, 팔, 가슴, 머리까지 계속 문질렀다. 이미 씻겨 내려갔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는데도 몸이 멈추질 않았다. 비누와 샴푸를 다시 짜고 또 문질렀고, 뜨거운 물을 맞으면서도 계속 문질렀다. 마치 살갗 안쪽까지 그 새끼 피가 스며든 것처럼. 솔직히 말하면 피를 씻는 느낌이 아니라 그 새끼 흔적을 벗겨내는 느낌이었다.


그날 물은 유난히 뜨거웠다. 아니, 내가 일부러 그렇게 틀었을 것이다. 그래야 더러워진 뭔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한참을 그렇게 씻고 나서야 겨우 멈췄다. 그런데도 깨끗해진 느낌은 없었다. 몸은 씻겼는데 기분은 안 씻겼다. 그게 더 싫었다. 샤워를 끝내고도 손등을 괜히 다시 보고, 손톱 밑을 보고, 얼굴을 만져봤다. 이미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데도 어딘가엔 아직 그 새끼가 묻어 있는 기분이 계속 들었다. 삼일을 쉬는 동안 그제야 현실이 밀려왔다. 현장에서는 아드레날린이 다 덮어버린다. 그런데 조용해지고, 혼자 있고, 시간까지 생기면 그때부터 다른 생각들이 올라온다.


그 새끼 혹시 뇌사로 빠지는 거 아냐. 혹시 평생 불구 되는 거 아냐. 혹시 병원에서 상태 나빠졌다고 연락 오는 거 아냐. 그런 생각들이 하나씩 올라왔다. 그리고 그다음은 뻔했다. 법적인 문제였다. 그 순간엔 최선이었지만, 현실은 늘 그다음부터 시작된다. 현장이 끝나는 순간 이제부터는 내가 그 몇 초를 설명해야 한다. 왜 그렇게 했는지, 왜 그 타이밍이었는지, 왜 다른 선택이 없었는지, 정말 그 정도 힘이 필요했는지. 그 몇 초 안에 있었던 피 냄새와 비명과 몸부림과 공포와 급박함은 다 빠져나가고 나면 결국 영상 몇 장면과 문장 몇 줄, 그리고 누군가의 판단만 남는다. 그게 제일 답답했다.


나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움직였고, 폭력을 멈추기 위해 움직였고, 늦으면 안 된다고 판단해서 움직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그다음부터는 내 의도보다 결과가 먼저 사람을 조른다. 만약 저 새끼가 크게 다쳤으면, 만약 후유증이 남으면, 만약 누군가 몇 초만 잘라서 판단하면.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이미 뭔가 시작된 것처럼 느껴졌다. 현장에서는 분명했던 판단이 시간이 지나면 가장 먼저 의심받는다. 그게 이 일이다.


그날 나는 분명 최선을 다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바뀌지 않는다. 그런데도 혼자 앉아 있으면 법과 절차와 결과라는 현실은 그 몇 초의 절박함까지는 절대 같이 봐주지 않는다는 걸 안다. 그건 늘 나중에 차갑게 다시 본다. 그리고 그 시간은 총 맞는 순간보다 느리게 사람을 조인다. 솔직히 삼일 동안 쉬면서 마음이 한시도 편한 적이 없었다. 내사는 진행 중이었고,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날지 전혀 모르는 상황 때문이었다. 옆에서 나더러 넌 잘했다, 걱정 말라고 격려해 주는 말은 들었어도 고맙지만 그건 그냥 안면 있는 동료들이 위로차 건네는 말이지 앞으로 어떤 결과를 결정해 주는 말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삼일째 되던 날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끊고 한동안 정말 멍하게 앉아 있었다. 돌아온 말은 짧았다. “She does not want to press charges.” (자막: 피해자는 처벌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솔직히 오히려 내가 머리를 망치로 몇 번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분노가 먼저 올라왔고, 그다음엔 허탈함이 밀려왔고, 마지막엔 설명하기 힘든 공허함이 남았다. 아니 저렇게까지 맞았는데도? 얼굴이 거의 묵사발이 날 정도로 터지고, 피가 흐르고, 눈앞에서 공포에 질려 있던 사람이 끝내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고? 내가 온몸에 그 새끼 피를 뒤집어쓰고 겨우 멈춰 세운 그 현장이, 결국 아무 의미 없이 다시 제자리로 미끄러져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그 여자는 영어를 전혀 못했다. 스패니시만 썼고, 통역자가 붙어야만 겨우 말이 오갔다. 그래서 더 답답했다. 눈앞에서는 얼굴이 거의 뭉개질 정도로 터져 있었고, 피는 이미 말라붙고 있었고, 숨조차 고르게 못 쉬고 있는데 정작 그 모든 걸 설명하는 말은 통역자를 한 번 거쳐야만 나왔다. 한 사람 인생이 눈앞에서 처참하게 두들겨 맞고 무너져 내렸는데도, 그 현실이 언어 하나 때문에 한 겹 더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더 역겨운 건,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런 말이 아주 낯선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현장에 오래 있으면 알게 된다. 저 말은 의외로 자주 나온다. 그리고 대부분 자유롭게 내린 선택처럼 들리지 않는다. 그 여자에겐 주변에 의지할 사람도 거의 없었다. 돈을 버는 인간도 그 새끼였을 가능성이 컸고, 생활은 이미 그놈 손아귀에 묶여 있었을 것이다. 영어도 안 되고, 가족도 곁에 없고, 바깥세상과 연결된 끈도 약한 사람에게 경찰서와 병원과 법원은 보호가 아니라 더 큰 공포로 먼저 다가올 수 있다. 오늘 진술했다가 내일 당장 집에서 쫓겨나면 어쩌나. 아이들과 길바닥에 나앉으면 어쩌나. 신고했다는 이유로 더 심하게 맞으면 어쩌나. 말도 안 통하는 곳에서 내가 무슨 설명을 할 수 있나. 그런 두려움 앞에서는 상식이 무너진다.


밖에서 보면 왜 저러나 싶지만, 안에 갇혀 있는 사람은 이미 오래전부터 맞는 것만이 아니라 판단하는 힘, 도망치는 힘, 스스로를 믿는 힘까지 같이 부서져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 말을 듣는 순간 더럽게 씁쓸했다. 그 새끼가 그 여자 얼굴만 망가뜨린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인간은 이미 그 여자의 머릿속도 오래전부터 같이 두들겨 패고 있었던 거다. 네가 잘못했다, 네가 날 화나게 했다, 네가 없으면 난 끝이다, 그래도 결국 나밖에 없지 않냐는 식의 말로 사람을 오래 눌러놓으면, 나중에는 맞고도 자기가 잘못한 줄 안다.


도망칠 수 있는데도 못 도망친다. 도움을 청할 수 있는데도 입이 안 떨어진다. 그래서 “No charges.” (자막: 처벌 원치 않습니다.)라는 말이 들렸을 때, 그건 나한테 피해자의 의사라기보다 가스라이팅이 끝까지 먹혀 들어간 흔적처럼 들렸다. 피는 분명히 흘렀는데, 그 피보다 더 진득하고 역겨운 게 이미 그 사람 안쪽에 들러붙어 있는 느낌이었다. 그때 내가 느낀 건 단순한 허탈함이 아니었다. 정말 더러운 기분이었다. 현장에서 내 손등에, 팔에, 얼굴에까지 튀었던 그 새끼 피를 뜨거운 물로 박박 문질러 씻어낼 때도 역겨웠지만, 이 말을 듣고 나서는 다른 종류의 역겨움이 올라왔다.


몸에 묻은 피보다, 사람 하나를 저 지경으로 망가뜨려 놓고도 끝내 입까지 막아버리는 그 구조가 더 더러웠다. 내가 씻어낸 건 피부 위에 튄 피였지, 그 집 안에 오래 고여 있던 공포와 체념과 종속까지 씻어낸 건 아니었다. 오히려 전화를 끊고 나니 더 선명해졌다. 현장에서 흘린 피는 물로라도 씻긴다. 하지만 저런 식으로 사람 안에 들어앉은 공포는 그렇게 안 떨어진다.


그리고 그건, 나에게도 아주 낯선 감정은 아니었다. 나와 엄마, 내 형제 역시 어릴 때부터 비슷한 것을 겪어왔으니까. 그래서 나는 안다. 사람을 무너뜨리는 건 눈에 보이는 상처만이 아니라, 오래 반복되어 몸 안에 눌어붙은 공포라는 걸, 나는 그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느낄 수 있다. 그래서 그 피해 여성의 안타까운 심정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왜 끝내 그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었는지도 머리로는 알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그녀가 불구속 의사를 밝혔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순간 확 올라오는 감정을 쉽게 눌러 담을 수가 없었다.


다행인 건, 피해자가 진술을 거부하고 불구속 의사까지 밝혔는데도 텍사스는 그 새끼를 그냥 놔두지 않고 결국 구속시켜 버렸다는 거였다. 여기서 잠깐, 어떤 독자들에게는 이 부분이 조금 낯설 수 있다. 피해자가 원하지 않는데 왜 사건이 끝나지 않느냐고, 왜 주정부가 계속 밀고 가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텍사스에서 이런 사건은 단순히 피해자와 가해자 개인 사이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구조 자체가 “State of Texas versus the defendant.” (자막: 텍사스주 대 피고인)으로 가기 때문이다. 즉, 피해자가 너무 무서워 입을 닫거나, 생계 때문에 물러서거나, 언어의 장벽과 고립 때문에 진술을 포기한다고 해서 그 폭력 자체까지 함께 사라지는 방식이 아니라는 뜻이다.


특히 가정폭력은 피해자가 자유롭게 판단할 수 없는 상태까지 이미 오래 무너져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텍사스 쪽에서는 애초에 그 가능성까지 포함해서 본다. 현장 사진, 얼굴 부상, 집 안 상태, 바디캠, 신고 녹취, 경찰이 직접 본 상처, 병원 기록, 그날의 분위기와 흔적들이 남아 있으면 피해자가 물러서도 사건이 그냥 같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다행인 건 적어도 그날만큼은 텍사스주가 그 새끼를 가볍게 보내줄 생각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피해자가 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얼굴에 남은 상처까지 같이 지워지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새끼는 전과도 있었고, 현장에 남은 것들도 너무 선명했다. 그날 일은 더 이상 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 순간부터 그건 “just a family matter.” (자막: 그냥 집안일)가 아니었다. 주정부가 끼어들어야 하는 폭력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 말을 듣고서야 겨우 숨이 조금 돌아왔다. 적어도 이번만큼은, 저 더러운 피와 비명과 공포가 전부 아무 일도 아니었던 것처럼 묻히지는 않겠구나 싶어서였다. 그나마 이 사건은 시간이 꽤 흐른 옛 케이스다. 그래서 아직은 지금보다 덜 숨던 시절의 사건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내 체감상 더 심하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 이후 불법체류자 추방 정책과 이민 단속 공포가 더 세게 깔리면서, 불법체류 신분인 사람들, 혹은 그렇게 의심받는 것 자체가 무서운 사람들은 더 깊이 숨어든다. 더 맞고도 신고를 안 하고, 더 크게 다쳐도 병원을 피하고, 더 울고도 경찰 앞에서 아무 일 없다는 쪽을 택한다. “Please… just let him go.” (자막: 제발… 그냥 그 사람 보내주세요.) 같은 말이 예전보다 더 무겁게 들리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 말이 정말 용서라서가 아니라, 자칫 잘못하면 내가 먼저 사라질 수 있다는 공포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은 사건이 줄었다기보다, 더 조용히 묻히고 더 깊숙이 숨는다는 느낌이 훨씬 강하다. 겉으로는 아무 일 없는 집처럼 보여도, 안에서는 피 냄새도, 울음도, 협박도, 체념도 그대로 썩고 있는데 밖으로만 안 새어 나오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안도감조차 완전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건의 진짜 끔찍함은, 가해자를 한 번 잡아넣는다고 해서 끝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진짜 더러운 건 피가 아니라, 사람 하나를 오래 눌러서 스스로 입을 닫게 만드는 방식이고, 진짜 무서운 건 주먹이 아니라 그 뒤에 남는 체념이라는 걸. 그래서 가정폭력 현장은 늘 비슷해 보여도, 끝에 남는 기분은 이상하게 늘 더럽다. 뭔가를 막긴 막았는데 정작 가장 깊은 데 박힌 건 아직 그대로 남아 있는 느낌. 그게 사람을 더 허탈하게 만든다.


다음 화는 내가 직접 겪은 일이 아니다. 예전에 내 파트너가 가정폭력 현장에서 직접 맞이했던 사건이다. 그때는 그냥 심한 케이스 하나 정도로 넘겼던 이야기였다. 하지만 지금 와서 다시 떠올려보면, 그건 그렇게 가볍게 꺼낼 일이 아니었다. 가정폭력은 겉으로 보면 비슷해 보여도 안으로 들어가면 전부 다르고, 이상하게도 마지막에는 늘 비슷한 냄새가 남는다. 통제, 공포, 체념, 그리고 사람이 사람을 오래 망가뜨린 냄새. 그리고 그 사건도 결국은 거기서 시작됐다. 끔찍하다는 말도, 잔인하다는 말도 다 모자라게 느껴질 쪽으로.


다음 5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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