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품에 안으면 7장-3부

(When I Hold You in My Arms)

by 스팅비 StinGBee

커버포스터 1 최종.png 청년은처음으로 준비하게 된다.사람이 아니라다른 무언가와 대화할 준비를...

[PART 3/3] 너를 품에 안으면 [7장-3부] — 하나, 그리고 붕괴
(When I Hold You in My Arms — EP7-3)

몇 주가 흐르고 난 그날도 평소와 다르지 않은 밤이었다.

시계는 밤 열 시를 조금 넘기고 있었고,
가게 안에는 형광등 불빛만 묵묵히 켜져 있었다.

청년은 카운터 안에 서 있었다.

커피 머신의 낮은 소음,
냉장고에서 새어 나오는 진동,


자동문이 열릴 때 나는 짧은 알림음을.

문이 열렸다.


딩—


청년은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말했다.

“Hello.”
(자막: 어서 오세요.)


신발 소리가 들렸고,
천천히 다가오는 기척.

고개를 들었을 때

그녀가 서 있었다.

동양 여자였다.

검은 머리,
정돈되지 않은 듯한 자연스러운 스타일.

화장은 옅었고,

옷차림은 튀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눈에 걸렸다.


이유는… 얼굴이 아니라 향이었다.

가까이 오자,
처음 맡아보는 향수가 아주 얇게 스쳤다.

나쁘지 않았다.

달지도 않았고, 독하지도 않았다.

그냥 “정돈된 사람” 같은 냄새.

청년은 그 향을 굳이 기억하려 한 건 아니었다.


다만 한 번 맡으면 잊기 어려운 종류라는 걸
몸이 먼저 알아차렸을 뿐이었다.

그녀는 잠깐 진열대를 훑어보다가

곧장 카운터로 시선을 옮겼다.


담배 진열대로 그녀의 시선이 집중되는 걸 알았다.

청년은 그 시선을 보는 순간
이미 알았다.

“Which one?”

(자막: 어떤 걸로 드릴까요?)


그녀가 잠깐 망설이다가 말했다.

“Uh… Marlboro Lights.”
(자막: 말보로 라이트요.)


청년은 고개를 끄덕이고 뒤돌아 담배를 꺼냈다.
카운터 위에 담배를 올려놓는 순간

그녀가 다시 말했다.

“Can I get a lighter too?”

(자막: 라이터도 하나 주세요.)


청년은 서랍을 열어 라이터를 꺼냈다.

“Sure.”
(자막: 네.)


지폐가 오가고 잔돈이 내려놓아졌다.
그 과정 내내 둘은
굳이 눈을 오래 마주치지 않았다.

그저 손님과 점원.

담배와 라이터를 집어 든 그녀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Thanks.”
(자막: 고마워요.)

청년은 짧게 대답했다.

“Have a good night.”
(자막: 좋은 밤 보내세요.)


그녀는 문 쪽으로 향했다.
자동문이 열리고
밤공기가 잠깐 스며들었다가
곧 닫혔다.


딩—


가게 안은 다시 원래의 리듬으로 돌아갔다.
청년은 담배 진열대를 한 번 더 바라봤다가
고개를 숙였다.

손님이네.

그 정도였다.

아직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


어느 날 밤,

청년은 친구들과 함께 늘 가던 노래방으로 향했다.

건물은 낡았고

입구 계단에는 언제 닦았는지 모를 끈적한 자국들이 남아 있었다.

문을 열자 익숙한 공기가 얼굴을 덮쳤다.

술 냄새, 담배 냄새,
여기저기서 새어 나오는 노래들.


문 하나를 열면 80년대 발라드가 새어 나왔고,

다른 문에서는 90년대와 2000년대 댄스곡이 쿵쿵거렸다.

복도 끝에서는 박자를 놓친 고음이

서로 싸우기라도 하듯 튀어나왔다.


방 안에서 웃음이 터졌다.

“야야, 돼지 멱 따는 소리 좀 그만해!”

남자들끼리 모이면 이야기는 늘 그쪽으로 흘렀다.

“야, 요즘 만나는 애 있냐?”

“없어. 귀찮아.”
“에이, 또 그러네.”


청년은 말없이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아무도 주유소 얘기를 하지 않았다.

아무도 총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누군가 툭 던지듯 말했다.

“근데… 너 괜찮냐?”
“아직 살아 있네.”


그게 전부였다.

청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다는 말도,
아니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청년은 떨어진 술과 담배를 더 사러 로비로 나왔다.

로비는 방 안보다 더 시끄러웠다.

사람들이 섞였고, 연기가 섞였고,
웃음과 욕설이 벽에 튕겨 다녔다.

그때였다.

로비 한쪽에서
익숙한 향이 스쳤다.


청년은 본능처럼 고개를 들었다.

처음 맡아보는 듯했는데,
분명히 기억나는 향.

나쁘지 않았고—

그래서 더 오래 남았던 향.

그리고 그 향의 끝에

그녀가 서 있었다.


주유소에서 보았던 여자.

청년은 본능처럼 고개를 들었다.

그녀였다.
주유소에서 보았던 여자.

같은 얼굴, 같은 머리, 같은 향수 냄새.

청년은 잠깐 멈췄다.


이명...


늘 귓속을 채우고 있던 삐— 하는 소리가
그 순간만큼은 조금 멀어졌다.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하지만 뒤로 물러난 느낌이었다.

그녀가 청년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어…?”


그리고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혹시… 그때 그 주유소… 맞죠?”


청년은 그제야 말했다.


“아… 네. “향수 냄새… 그때랑 같은 거 쓰셨네요.”


그녀가 웃었다.


“거기서 봤던 분 맞죠?”


그 목소리는 이상할 만큼 선명했다.
주변의 소음이 순간 낮아진 것처럼
그녀의 말만 또렷하게 들어왔다.


그녀의 친구가 물었다.


“아는 사람이야?”


그녀가 대답했다.


“아니, 그냥… 본 적 있어.”


그때 옆에서 누가 불렀다.


“야, 하나야.”


짧은 침묵.

그녀가 덧붙였다.


“응… 며칠 전에 다리 건너에 있는 주유소에서…”


그 옆에서 청년의 친구가 능숙하게 말을 붙였다.


“우리 방 넓은데, 같이 들어가요. 안에 남자 둘 더 있어요.”


여자들은 서로 눈치를 봤다.
속닥, 히히덕.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방 안.

처음엔 존댓말이었다.

이름을 말하고, 나이를 말하고,
술이 오르자 말은 존댓말과 반말이 섞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반말이 됐다.

노래가 이어졌다.

몇 곡 뒤,

청년은 마이크를 잡았다.

이문세〈Solo예찬〉

반주가 흐르고 첫 소절이 나왔다.


✨♪ 밤새워 안아~ 줄 그~녀~~ ♪✨

✨♪ 내~앞에 나타날 거라고 난!~ 믿어 의심치 않아~ ♪✨


그때 귀 안의 소리가 사라졌다.


삐——


그 소리가 완전히.

그녀는 청년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노래가 끝나고

말없이 이어진 침묵.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오빠… 노래 잘하네요.”


청년은 그제야
숨을 쉬는 느낌이 들었다.

술이 더 오르고,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를 비웠다.

문이 닫히고

방 안에는 둘만 남았다.

노래는 끝났고,

말도 끊겼다.


잠깐의 공백.

그녀가 청년 옆자리로 자연스럽게 이동했다.

어깨가 닿고

손등이 살짝 스쳤다.

둘 다 피하지 않았다.

청년은 그 손의 온도를 느꼈다.

총도, 싸움도, 이명도 아닌—

전혀 다른 종류의 긴장만이 흐르고 있었다.


그녀가 아주 작게 말했다.


“아까… 노래할 때.”


청년은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얼굴이 너무 가까웠다.

숨이 섞였다.

아직 입술은 닿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 순간 청년은 알았다.
이 밤이 자신의 인생을
다시 다른 방향으로 돌려놓고 있다는 걸.

그리고 그 시작이 총성이 아니라—

한 사람의 목소리였다는 걸.


붕괴는 — 조용히 이어졌고, 조용히 무너졌다

그 사랑은 조용히 시작됐고
조용히 이어졌다.

그녀는 청년의 과거를 깊게 묻지 않았다.

청년도 굳이 말하지 않았다.

그 침묵은 평화처럼 보였다.

하지만 침묵은 쌓이는 것이었다.


처음엔
그녀의 말이 귀엽게 들렸다.


“오빠 오늘도 바빠. 빨리”


청년은 웃었다.
애교로 받아줬다.


“잠깐만. 나 늦게 끝나.”


그녀는 말했다.


“괜찮아. 나 기다릴게.”


그때까진
그 말이 진짜 같았다.

미인상은 아니었는데 매력이 있었고

노래도 이것저것 가림 없이 잘 불렀다.

발라드부터 빠른 댄스곡까지, 특히 춤을 아주 자연스럽게 잘 췄다.

처음엔 거기에 매료됐었는데
알고 보니 하나는 놀자판 쉬지 않고 놀러 다니는...


그리고 그녀는 남자가 필요한 게
그녀와 밤새 술 마시고
그녀 옆에서 즐겨줄 남자를 찾고 있었던 것이었다.

도저히 청년이 밤늦게까지 일하는데
젊은 체력에도 따라갈 수가 없었다.

마치 그녀는
밤이 길어질수록 더 멀쩡해지는 사람 같았다.


시간이 지나자
말끝이 조금씩 달라졌다.


“오빠 오늘도...”


그 말에
짜증이 섞여 나왔다.


“오늘도...”
“오늘도 바빠?”
“오늘도 일?”


청년은 변명하지 않았다.
그냥 피곤했다.

일은 계속됐고

삶은 앞으로만 흘러갔다.

이명은 다시 돌아왔다.

조금씩, 확실하게.


그러다 어느 날.

아무 일도 없던 날,
모든 것이 무너졌다.

그녀가 말했다.


“그렇게 일만 하다 죽을래?”


청년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는 이어서 말했다.


“즐길 수 있을 때 즐겨야지”


그 말은
조언처럼 들렸지만
청년에게는
통보처럼 들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말은 그녀의 배신으로 이어졌다.

설명도, 변명도 길지 않았다.


청년은 화내지 않았다.
소리도 지르지 않았다.

그저 안쪽에서

무언가가 툭, 하고 끊어졌다.

그날 이후 귀의 소리는 더 커졌다.

이번에는
그녀의 목소리로도 덮을 수 없었다.


그리고 청년은
처음으로 준비하게 된다.

사람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와 대화할 준비를.


—다음: 8장-1부에서…


[안내 — 모방 범죄 주의]
본 작품에는 범죄 수법·수사 절차·법정 장면이 현실적으로 묘사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범죄를 미화하거나 정당화하기 위함이 아니며, 현실에서의 모방을 강력히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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