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Hold You in My Arms)
[PART 1/3] 너를 품에 안으면 [8장-1부] — 스팅비 아이디
(When I Hold You in My Arms — EP. 8-1)
(※ 본 편에는 온라인 집단 괴롭힘/욕설 표현이 등장합니다.)
스팅비 아이디가 만들어지던 밤, 그리고 판이 닫히던 밤
여러 날이 흘렀고, 그리고 그날 밤 역시, 그리 특별한 밤은 아니었다.
일이 끝난 뒤 샤워를 하고 나와 작은 책상 앞에 앉았다.
얼마 전, 친구들이 청년에게 물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야, 너 야후 채팅 아직도 안 해 봤어?”
그때는 ‘채팅’이 그냥 타이핑만 뜻하는 게 아니었다.
채팅방에 들어가면 각 나라에 흩어져 있던 한국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운이 좋으면 마이크를 켜고 진짜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었다.
“거기 한국 사람들 많아. 재밌어.”
“오늘 밤에 같이 들어가자. 우리 방 하나 잡아둘게.”
그 말이 이상하게 남았다.
바로 그 주말엔
볼 영화도, 할 게임도 딱히 없었다.
손에 잡히는 건 없는데
시간만 쓸데없이 많았다.
그래서 청년은 처음으로,
정말 처음으로—
야후 채팅을 켜 보기로 했다.
형광등 하나가 켜진 방.
의자는 오래 앉으면 허리가 아픈 싸구려였다.
머리카락 끝에서 물이 뚝뚝 떨어져 목덜미를 간질였다.
수건으로 대충 닦고 컴퓨터 전원 버튼을 눌렀다.
‘삑—’
모니터가 켜지기까지 몇 초의 공백이 있었다.
그 공백이 이상하게 길게 느껴지던 시절이었다.
검은 화면. 숨.
그리고 천천히 떠오르는 빛.
윈도우 로고.
익숙한 바탕화면. 아이콘 몇 개.
인터넷에 연결했다.
모뎀에서 나는 소리—
지금 세대는 흉내도 못 낼, 긁히고 울리고 이어붙이는 소리.
삐… 끼이익…
뚜-두두두…
딱.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묘하게 안심이 됐다.
아, 오늘도
세상 어딘가로 연결은 되는구나.
모뎀이 연결되고, 야후 채팅을 눌렀다.
야후 채팅 로고가 뜨는 순간—
채팅방에 접속되기 전까지 스피커에서 안내 음성이 흘러나왔다.
“야후 채팅입니다. 야후 채팅입니다.”
야후(Yahoo) 메신저를 눌렀다.
로그인 화면.
아이디가 없었다.
아니, 있었지만 쓰고 싶지 않았다.
실명에 가까운, 너무 ‘나’ 같은 이름들.
그 이름으로 들어가는 순간 내가 설명이 되어 버릴 것 같았다.
본명을 쓰면 묻는다.
어디서 왔냐, 왜 왔냐, 언제 왔냐.
발음이 왜 그러냐, 어느 나라 사람이냐.
나는 그 질문에 답하는 순간부터
내가 내 자리를 잃는 느낌이 싫었다.
그래서 그날은
새로운 이름이 필요했다.
Create New ID
(자막: 새 아이디 만들기)
커서가 깜빡였다.
아이디를 뭘로 할까.
본명을 쓰고 싶진 않았다.
미국 이름도 싫었다.
한국 이름은 더 싫었다.
이름이 붙는 순간,
사람들은 나를 하나의 설명 안에 묶어버리는 것 같았다.
어떤 이름이 좋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책상 위에 놓인 꿀통을 봤다.
그때 떠오른 단어가 Bee였다.
하지만 그냥 Bee는 너무 단순했다.
이미 누군가의 이름 같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떠올랐다.
벌은 쏜다.
작지만 빠르게 닿고,
크게 상처를 남기진 않아도
기억은 남기는 것.
그리고 Bee.
혼자 날아다니는 것 같아도
완전히 군집을 떠나진 않는 존재.
그래서 붙였다.
Sting + Bee.
StingBee.
작지만 잊히지 않는 것.
혼자인 듯 보여도
끝내 완전히 혼자는 아닌 것.
아이디 칸에 입력했다.
이미 사용 중이라는 표시가 떴다.
그래서 철자를 하나 바꿨다.
StingBee — 안 됐다.
Stingbees — 이상했다.
다시.
StinGBee77
77은 의미를 깊게 생각해서가 아니었다.
그냥… 숫자 7이 좋았고 나이를 묻지 않게 해주는 숫자였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게 해주는 숫자.
모니터에 사용 가능하다고 떴다.
그 순간,
엔터를 누르기 전 아주 잠깐 멈췄다.
이름을 만든다는 건
사람 하나를 만든다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눌렀다.
엔터.
로그인이 됐다.
내 이름이 아닌 이름.
화면 오른쪽 아래에
내가 만든 사람이 작게 떠 있었다.
StinGBee77
온라인.
그 글자가 왠지
내 심장보다 먼저 세상에 도착한 것 같았다.
로비라는 소음
야후 채팅.
검은 배경, 회색 글자, 깜빡이는 커서.
로비 화면은 마치
소음으로 가득 찬 역 대합실 같았다.
방 제목들이 미친 듯이 올라왔다.
— 한국사람만
— 미주교포방
— 외로움
— 30대 대화
— 성인
— 오늘도 혼자
— 그냥 수다
그 사이사이
눈을 피할 수 없게 덕지덕지 붙은 광고들.
번쩍이는 배너, 눈에 걸리는 문구,
손가락이 닿기만 하면
다른 세계로 튀어버릴 것 같은 링크들.
청년은
그 속을 헤집고 들어갔다.
그러다 한 곳이 눈에 들어왔다.
한국 사람만 입장.
화면이 바뀌자마자
말들이 쏟아졌다.
“하이”
“남자?”
“여자?”
“나이?”
“어디에 살아?”
“사진 있어?”
“마이크 돼?”
그 질문들은 관심이 아니라
통관 절차 같았다.
이 방에서 사람은
사람으로 먼저 시작하지 않았다.
정보로 시작했다.
청년은 말이 없었다.
그냥
아이디 옆 초록불만 조용히 유지했다.
StinGBee77 — 온라인
말에없으면 안전하다고 믿었다.
말이 없으면 연결이 없고,
연결이 없으면 책임도 없고,
책임이 없으면 후회도 없다고.
그렇게 믿었다.
선을 긋는 사람
그 믿음에는 이유가 있었다.
지나간 기억이
잠시 그의 머릿속을 스쳐 갔다.
그건 뉴욕의 어느 주말 밤이었다.
차이나타운 한복판의 클럽.
음악은 귀를 때릴 만큼 컸고,
공기는 땀과 술 냄새로 끈적했다.
사람들은 서로의 어깨를 밀쳤고,
욕설은 음악 사이를 비집고 날아다녔다.
처음엔 하찮은 시비 같았다.
하지만 그런 밤은 늘 그랬다.
작은 불씨 하나가
순식간에 패싸움으로 번져 버렸다.
그리고—
탕!
총성이 공간을 찢었다.
사람들이 놀라 흩어졌고,
끊긴 줄 알았던 소리는 다시 이어졌다.
탕! 탕!
당시 청년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화약 냄새가 코를 찔렀고
바닥에는 피가 번져 있었다.
그리고 자기 쪽으로 향하는
총구를 보았다.
뛰어야 하는데 뛰지 못했다.
목이 잠겨 소리도 안 나왔다.
그날 이후
그는 선을 만들었다.
• 모르는 사람을 쉽게 믿지 않는다.
• 만남을 약속하지 않는다.
• 내 이름을 주지 않는다.
• 내 사진을 주지 않는다.
• 감정을 먼저 내보이지 않는다.
• 무엇보다, 안전하다고 느끼는 순간을 믿지 않는다.
그래서 채팅에서도
그는 선을 만들었다.
말하지 않기.
개입하지 않기.
관찰자로 있기.
나는 바보가 아니다.
그 믿음은 단단했다.
너무 단단해서
의심할 틈조차 없었다.
일주일 동안,
눈에 익을 만큼 채팅방을 여기저기 떠돌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한 방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 방엔 늘—
익숙한 아이디들이 있었다.
늘 싸우는 사람.
늘 떠드는 사람.
늘 장난치다가 사라지는 사람.
늘 슬퍼서 우는 여자.
그리고—
늘 말 없는 아이디, ‘나만의 꿈’.
‘나만의 꿈’은 언제나 그들 사이에 끼어 있었다.
처음엔 흔한 닉네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그 아이디는 계속 있었다.
말이 없었다.
그냥 로그인 표시만
초록색으로 켜져 있었다.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나만의 꿈님 안녕하세요?”
“계세요?”
“잠수?”
“왜 말이 없냐 ㅋㅋ”
처음엔 장난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장난은 비웃음이 됐다.
“또 접속만 했네.”
“구경꾼이냐?”
“오늘도 또 무시야? 이 정도면… 개무시인데.”
“남자냐 여자냐도 못 말하냐.”
“저런 것들이 더 더러운 것들야.”
“응, 저것도 분명 존나… 눈 뜨고 못 볼 정도로 못생겼을 거야.”
“여자인데 남자 목소리가 나거나.”
“아니 씨발 졸라… 강적이다.”
또 다른 이는 코웃음치듯 말했다.
“아니, 저 아이디는 뭐냐?”
“내가 5개월 넘게 봤는데 한 번도 말하는 걸 못 봤어요.”
“계속 쳐들어오긴 하잖아.”
“근데 씨발, 말을 존나 말을 걸어도 절대 대꾸를 안 해요.”
“그게 더 이상한 거 아니냐?”
“저 정도면 그냥 눈팅도 아니고 감시지.”
“뭘 보려고 맨날 처 들어와 있는 건데.”
“야후가 처박아놓은 사람 아니냐 ㅋㅋ”
“우리 채팅하는 거 모니터링하는 간첩 같네 ㅋㅋ”
채팅창엔 웃음 표시가 몇 개 더 올라왔다.
하지만 청년은 웃을 수 없었다.
화면 구석에 떠 있는 그 아이디가,
갑자기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들 중엔,
자기가 무시당한다고 느꼈는지
몇 분씩 욕하다가 떠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남은 사람들은
말 없는 ‘나만의 꿈’을 제멋대로 상상했다.
“저런 애는 분명 이럴 거다.”
“아니야, 저럴걸?”
서로가 만들어낸 얼굴을 놓고
비웃고, 떠들고,
그걸로 방을 또 한 번 더럽혔다.
말 한마디 없는 아이디 하나가
사람들 입에서 제일 시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청년은 처음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고작 인터넷 채팅일 뿐인데—
왜 저렇게까지 분노하는지.
그런데도—
방의 공기는 계속 달아올랐다.
말 없는 아이디는
그 자체로 누군가의 신경을 긁는 모양이었다.
나만의 꿈.
초록불.
그리고 침묵.
누군가는 그 침묵을
무시로 받아들였고,
누군가는 그 침묵을
도발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때 바로 알았다.
여기서는 반응 없는 사람이, 결국 표적이 된다는 걸
—다음: 8장-2부에서…
그는 한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일부러 들리게 숨을 뺐다.
쓰읍— 하—
그리고 싸이월드...
[안내 — 모방 범죄 주의]
본 작품에는 범죄 수법·수사 절차·법정 장면이 현실적으로 묘사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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