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위 속에서, 나무를 보다가
어제 마신 술기운이 아직 다 빠지지 않았는지
오늘은 몸도 무겁고 머리도 더 복잡하다.
숙취라는 게 꼭 머리만 아픈 건 아닌 것 같다.
몸이 둔해지고 속이 불편한 것보다,
평소에는 마음 한구석에 눌러두고 있던 생각들까지
괜히 같이 떠오르게 만들 때가 있다.
오늘이 딱 그렇다.
피곤하고,
공허하고,
멍하고,
생각은 많은데 정리는 안 되고,
마음은 자꾸 한 곳에 가라앉았다가 또 엉뚱한 데로 흩어진다.
여기 텍사스는
오늘 바람 한 점 없다.
공기조차 멈춰 있는 것 같고,
뜨거운 햇빛은 말없이 내려앉아
사람을 천천히 지치게 만든다.
바람이라도 좀 불면
몸에 붙은 더위도,
가슴 안에 들러붙은 답답함도
조금은 흩어질 것 같은데
오늘은 그것조차 없다.
그냥 덥고,
그냥 방탄복은 무겁고,
그냥 답답하다.
가만히 밖을 보다가
문득 나무들 쪽으로 눈이 갔다.
바람이 없으니
나무들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저 가만히 서 있다.
말없이,
움직임 없이,
각자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더위를 견디고 있다.
그 모습을 한참 보고 있으니
이상하게도
우리 삼 형제가 떠올랐다.
같은 땅에서 시작했지만
결국은 서로 다른 모양으로 자라난
세 그루의 나무처럼 느껴졌다.
먼저 떠오른 건 형이다.
형은 내게 늘
나무 같은 사람이었다.
말이 많지 않았고,
쉽게 흔들리는 사람도 아니었다.
집안이 시끄럽고 어지러울 때도
형은 큰소리로 자기 억울함을 말하기보다
말없이 자기 할 일을 하던 사람이었다.
아빠가 술에 젖어
집안을 전쟁터처럼 만들던 날들 속에서도
형은 묵묵했다.
그 묵묵함이
그땐 답답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왜 저렇게까지 말이 없을까 싶었고,
왜 저렇게 혼자 버티기만 할까 싶었던 적도 있었다.
형은 집을 떠나
대학을 가고, 대학원을 가고,
길고 긴 의대 과정을 견디며
자기 길을 가고 있었다.
그 사이
집에 남아 있는 우리는
매일 현실과 부딪히며 살아야 했다.
돈은 늘 문제였고,
생활은 팍팍했고,
엄마는 버텨야 했고,
우리도 죽어라 일해서 번 돈을 엄마에게 드리면
그 돈은 형에게 보내지곤 했다.
특히 동생은
그게 서운하다고,
왜 늘 우리가 버틴 돈이
형에게 가야 하느냐고
속에 담아두던 불만을 꺼낼 때가 있었다.
나도 아주 이해 못 한 건 아니었다.
그때의 우리는
눈앞의 현실이 너무 고단했고
형의 시간은 너무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졌으니까.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다.
형이라고 왜 안 힘들었겠나.
그 시끄럽고 불안한 집안에서
마음을 붙잡고 공부를 이어간다는 게
얼마나 외롭고 고된 일이었겠나.
장학금을 받았다고 해도
긴 시간과 비싼 학비와 생활비를 견디며
끝까지 자기 길을 가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아빠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더더욱 형의 마음이 보였다.
형도 결국
그 우리 집의 자식이었고,
형도 우리와 같은 시간을
자기 방식으로 버텨낸 사람이었다.
다만
형은 소리 내어 흔들리기보다
속으로 뿌리를 더 깊이 내리는 쪽이었던 것 같다.
지금 형은
형수와 함께
치과 원장으로 살아가고 있다.
신앙심도 좋고,
자기 자리를 지키며
사람을 돕는 삶을 산다.
못 사는 나라,
심지어 마약 카르텔 때문에
근처에서 총성과 폭탄 소식이 들릴 수 있는 위험한 곳에서도
무료로 치료를 해주고
선교도 꾸준히 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나는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형은 아마
작은 나무에서 큰 나무가 되는 동안
수없이 흔들렸을 것이다.
비바람에 뿌리가 뽑힐 것 같던 날도 있었을 것이고,
메마른 계절도 있었을 것이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시간도 길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형은
끝내 자기 자리를 버리지 않았고,
이제는 사람들을 돕는
열매를 맺는 나무가 되었다.
그걸 생각하면
대단하고,
고맙고,
조금 미안해지기도 한다.
그리고 또 한 그루의 나무가 떠오른다.
내 동생이다.
동생나무는
참 정이 많은 나무다.
문제는
정이 너무 많다는 거다.
누군가를 만나면
적당히 주는 법을 잘 모른다.
마음을 주면 깊이 주고,
사람을 믿으면 끝까지 믿고,
자기가 줄 수 있는 건
다 내어주려 한다.
좋게 말하면 뜨거운 나무고,
냉정하게 말하면
바보 같을 만큼 다 퍼주고 마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다.
그래서인지
여자를 만날 때마다
동생은 자꾸 자기 쪽을 먼저 비워낸다.
너무 잘해주고,
너무 깊이 빠지고,
너무 끝까지 책임지려 한다.
나는 옆에서 보며
답답할 때가 많았다.
사람을 그렇게 다 믿지 말라고,
세상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고,
좋은 마음만 가지고는 안 된다고
뜯어말리고 또 말려도
동생은 늘 끝까지 가보는 쪽이었다.
이번도 그랬다.
그만하라고 했는데도
자기가 한 말에는 책임을 져야 한다며
끝까지 갔고,
결국은 빚더미에 올라앉고
좋은 집까지 날아갔다.
그런데도 끝이 아니었다.
며칠 전,
그 여자가 동생에게 전화해서
이제 애 둘 있는 이혼남과 약혼도 했고 결혼해야 하니
얼마 전까지 동거했던 사실은
비밀로 해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한동안 말이 안 나왔다.
사람이 어떻게 저럴 수 있나 싶었고,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고 이럴 수도 있고,
돈이야 다시 벌면 된다고 스스로 달래보려 해도,
동생은 왜 늘 이런 식으로 자기 마음을 다쳐가며 끝을 보게 되나 싶었다.
서글프기도 했고,
열이 받는 걸 넘어
속에서 천불이 올라왔다.
동생은 별 대꾸 없이
걱정할 필요 없다고 했다지만,
나는 안다.
저런 말이
사람 마음을 그냥 스쳐 지나가지는 않는다는 걸.
겉으로는 담담한 척해도
속에서는 또 한 번
뿌리 근처가 흔들렸을 것이다.
동생나무는
약한 나무는 아니다.
그런데 자꾸
잘못된 흙에 뿌리를 내려보려 한다.
처음엔 따뜻해 보였던 땅이
시간이 지나면
오래 붙들고 있을 자리가 아니었고,
믿어도 될 것 같았던 가지는
어느 날 갑자기 부러져 버린다.
그래서 동생나무는
늘 다른 나무보다 더 크게 상한다.
더 많이 주고,
더 깊이 믿고,
더 오래 버티다가
결국 자기 쪽이 더 크게 꺾인다.
보고 있으면 안쓰럽다.
답답하다.
화도 난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안다.
정이 많은 나무는
쉽게 계산하지 못한다는 걸.
사람을 대할 때
먼저 의심하고 재는 법보다
먼저 믿고 내어주는 쪽에 가깝다는 걸.
그래서 세상은
그런 나무에게 유난히 더 잔인한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를 생각하게 된다.
나는 어떤 나무일까.
형처럼
오랜 시간 흔들린 끝에
자기 몫의 열매를 맺는
튼튼한 나무도 아니고,
동생처럼
바보 같을 만큼 다 퍼주고 마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도
조금은 다르다.
그런데 그렇다고
내가 단단한 나무냐 하면
그것도 잘 모르겠다.
나는 아직
피곤과 공허와 멍함 속에서
내 그림자조차 또렷하게 못 보는 나무 같다.
겉으로는 서 있는 것 같아도
속으로는
내가 어디를 향해 자라고 있는지
가끔 잘 모르겠다.
열매를 맺기엔 아직 부족한 것 같고,
그렇다고 완전히 포기한 나무도 아니고,
그저 이 더위 속에서
말없이 버티고 있는 나무.
어제 오랜만에 술이 과했던 탓인지
숙취로 몸도 머리도 더 복잡해진 오늘,
가만히 서 있는 나무들을 보며
이상하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삼형제는
이제 정말
서로 다른 나무가 되어 있구나.
형은
오랜 시간의 어려움과 외로움과 책임을 견디며
끝내 자기 자리를 지켜낸
튼튼한 나무다.
그리고 지금은
사람을 돕는 열매를 맺고 있는 나무다.
동생은
바보 같을 만큼 다 퍼주고 마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다.
그래서 더 많이 상하고,
그래서 더 많이 흔들리지만,
그래도 아직
마음이 마르지 않은 나무다.
그리고 나는,
아직 모르겠다.
나는 지금
어떤 나무가 되어가고 있는지.
지금 이 자리에 서서
그저 버티고 있는 나무인지,
아니면 언젠가
나도 내 몫의 열매를 맺게 될 나무인지.
다만 오늘
이 더위 속에서 가만히 서 있는 나무들을 보며
한 가지는 생각했다.
모든 나무가
같은 속도로 자라는 건 아니라는 것.
어떤 나무는
빨리 그늘을 만들고,
어떤 나무는
늦게 열매를 맺고,
어떤 나무는
오래 흔들린 뒤에야
비로소 자기 뿌리를 찾는다.
그러니 지금
내 가지 끝이 비어 있다고 해서
내가 끝난 나무는 아닐 것이다.
아직은
계절을 지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형은
긴 시간의 어려움 속에서도
끝내 잘 버텨내고
자기 몫의 열매를 맺어낸
튼튼한 나무가 되었고
동생은
바보 같을 만큼 다 퍼주고 마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다.
그리고 나는 아직 모르겠다.
나는 과연,
어떤 열매를 맺는 나무가 될까.
2026년 3월 27일 오후 6:45
바람 없는 텍사스의 저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