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Perfect Storm

by 스팅비 StinGB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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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아침이었다.

이른 새들은 먹이를 찾느라 분주했고,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울음소리는 서로 겹쳐지며
조용한 합창처럼 이어졌다.

나비와 잠자리, 벌은 햇빛을 받아
느리게, 고요하게 움직였고,
작고 낮은 나무들,
그리고 높게 뻗은 나무들까지
모두 제자리에서 흔들림 없이 서 있었다.

바람은 거의 없었다.

너무 평온해서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이 고요가
곧 무너질 것이라는 걸.


인생도 그렇다.

무너지는 일은
늘 이렇게 시작된다.

평범한 하루,
아무 일도 없을 것 같은 얼굴,
익숙한 사람들,
익숙한 목소리,
익숙해서 더 의심하지 않게 되는 순간.

그리고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부드럽다.
몸을 식혀주는 바람처럼
가볍게 스쳐 지나간다.

사람들은 창문을 열고
그 바람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

이게 시작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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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1.

빗방울이 떨어진다.

하나,
그리고 또 하나.

도로가 젖고,
간판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처마 끝에서 물이 떨어지고,
화분의 흙이 젖고,
길바닥 위 작은 먼지들이 진흙처럼 달라붙는다.

사람들은 서둘러 문을 닫지만
여전히 마음속에는 여유가 남아 있다.

괜찮을 거라고 생각한다.
잠깐 지나가는 비라고 믿는다.
조금만 조심하면 된다고 여긴다.


인생도 그렇다.

이때까지는
사람이 아직 돌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조금 어긋난 말 한마디,
예전 같지 않은 표정 하나,
한 번 밀린 대금,
조금 줄어든 매출,
한 번 모른 척 넘어간 서운함.

그 모든 것이
아직은 작은 흔들림처럼 보인다.

그래서 사람은
지금 손보면 괜찮아질 거라고 믿는다.
조금만 버티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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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2.

바람이 방향을 바꾼다.

창문이 덜컹거리기 시작하고,
나뭇잎이 뒤집히며,
비가 옆으로 쏟아진다.

우산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평화롭게 들리던 새소리는 사라지고,
여유롭게 날고 있던 나비와 벌, 곤충들도
어느 순간부터는 보이지 않는다.

길 위의 사람들은 뛰기 시작한다.

방금 전까지 웃으며 걷던 얼굴에서
여유가 먼저 지워진다.


그때부터
눈빛이 달라진다.

이건 더 이상
낭만적인 비바람이 아니다.

이건 분명히
사람을 밀어붙이기 시작한 무언가다.

인생도 그렇다.

이쯤 되면
사람은 느낀다.

이건
생각보다 크다는 걸.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받을 것 같고,
가장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할 것 같고,
평생 모은 돈을 쏟아부은 사업이 무너질 것 같고,
하루아침에 거래처를 잃을 것 같고,
원하지 않던 소송에 휘말릴 것 같고,
어느 날 갑자기 해고 통보를 받을 것만 같다.

어제까지 내 편인 줄 알았던 사람이
오늘은 아무 말 없이 등을 돌릴 것 같고,
어제까지 가족이라 믿었던 관계가
이제는 서로의 상처와 약점을 계산하게 될 것만 같다.

아직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았는데,
이미 마음은 먼저 안다.

이건 그냥 지나갈 바람이 아니라
삶 전체를 흔드는 바람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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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3.

소리가 바뀐다.

더 이상
바람 소리가 아니다.

무언가 찢어지는 소리,
금속이 비틀리는 소리,
유리가 깨지는 소리,
멀리서 비명이 섞인 경보음,
철문이 미친 듯이 흔들리는 소리로 변한다.

간판 하나가
끝까지 버티다가
순간적으로 뜯겨 나가
도로 위로 떨어진다.

차 한 대가

그 밑에 그대로 눌린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른다.

누군가는 문을 붙잡고,
누군가는 아이를 끌어안고,
누군가는 바닥에 엎드린다.

바람이 사람을 밀어낸다.

한 걸음도
제대로 설 수가 없다.

비는 얼굴을 때리고,
숨은 짧아지고,
젖은 신발은 바닥에서 미끄러진다.

잡고 있던 손은 흔들리고,
붙들고 있던 문은 삐걱거리고,
눈앞의 세상은 점점 형태를 잃는다.


인생도 그렇다.

이때부터는
버티는 싸움이 된다.

이제는 실제로 아무 일도 없는 척할 수가 없다.

사랑은 금이 가기 시작하고,
신뢰는 흔들리기 시작하고,
사업은 버티는 척하면서도 속부터 썩어 들어가고,
가정은 말없는 식탁 위에서 이미 갈라지기 시작한다.


전화 한 통이 무섭고,
문자 한 줄이 불안하고,
은행 앱을 열어보는 일조차
겁이 나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런데도 사람은 붙잡는다.

무너지는 문틀을 붙잡듯,
미끄러지는 손을 붙잡듯,
넘어지는 몸을 벽에 기대듯,
어떻게든 지금 가진 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끝까지 안간힘을 쓴다.

희망이 커서 버티는 것이 아니다.

지금 놓치면
정말 끝날 것 같아서 버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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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4.

이제는 바람이 아니라
벽이다.

공기가 아니라
덩어리처럼 밀려온다.

몸 전체를 때리고,
숨을 막고,
서 있는 사람을 그대로 넘어뜨린다.

사람이
바람에 휩쓸려 넘어진다.

넘어진 몸은
젖은 도로 위를 미끄러지고,
붙잡던 손은
비에 젖어 미끄러지듯 떨어진다.


홍수가 올라온다.

하수구는 이미 제 기능을 잃었고,
검은 물이 도로를 삼킨다.

도로가 사라지고,
차가 떠오르고,
오토바이가 쓰러지고,
쓰레기통과 나뭇가지, 유리 조각, 간판 파편들이
한꺼번에 물살에 휩쓸려 간다.

사람도
물에 휩쓸린다.

누군가는 손을 뻗지만
닿지 않는다.

바로 눈앞인데도
잡지 못한다.

한 발짝만 더 가면 될 것 같은데

그 한 발짝조차 갈 수 없다.

그걸
그대로 보는 사람도 있다.

그 무력함은
비명보다 더 크게 사람을 찢는다.


인생도 그렇다.

가장 잔인한 순간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다.

끝까지 버텨왔던 믿음이 깨지고,
겨우 이어오던 관계가 무너지고,
사업은 넘어진 채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 같고,
직장은 손에서 빠져나갈 것 같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현실이 될 것 같고,
평생 지켜온 자리마저 더는 내 것이 아닐 것만 같다.

살려보려고 애쓴 것들이
하나씩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고,
해명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들어주는 사람은 없고,
버텨보려는 마음은 남아 있는데
상황은 사람보다 더 빠르게 무너져 내린다.

그때 사람은 안다.

세상이 무너지는 건
한 번의 큰 폭발 때문만이 아니라,
아무것도 막을 수 없는 순간이
계속 이어질 때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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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5.

나무가
버티다 버티다

결국
뿌리째 뽑힌다.

수십 년을 버틴 것이
한순간에
공중으로 들린다.

그리고
날아간다.

지붕이 뜯겨 나가고,
벽이 갈라지고,
건물이 무너진다.

오래된 건물도,
새로 지은 건물도
같이 찢기고 같이 부서진다.


시간은
아무 의미가 없다.

오래 버텼다고 안전한 것도 아니고,
새것이라고 강한 것도 아니다.

콘크리트 조각이 날아다니고,

철제 셔터는 종잇장처럼 휘어지고,

유리창은 한순간에 산산이 터지고,

전봇대마저 비틀리며 기울어진다.

농장에선 비닐하우스가 찢겨 날아가고,

애써 키운 가축들도 함께 휩쓸려 간다.


사람은
그 안에서 버틴다.

버티려 한다.

붙잡는다.

소리친다.

기도한다.

살려달라고,
무너지지 않게 해달라고,
지금 이것만은 가져가지 말아 달라고
속으로, 또는 입 밖으로
끝없이 빌게 된다.

하지만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어느 순간

모든 게 멈춘다.

언제 이런 일이 있어났냐는 듯

조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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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의 눈.

너무 조용해서
더 무섭다.

방금 전까지 세상을 찢어놓던 소리가 멎는다.
흔들리던 벽이 잠잠해지고,
유리를 때리던 비도 잠시 잦아든다.

사람들은 숨을 고르고,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찾고,
주저앉아 겨우 살아 있음을 확인한다.

살아남은 것처럼 느낀다.

끝난 것처럼 착각한다.


인생도 그렇다.

여기서 다 끝난 줄 알았는데
오히려 다시 시작될 수도 있을 것처럼 보이는 순간이 있다.

무너진 관계가 회복될 것 같고,
깨진 신뢰를 다시 찾을 수 있을 것 같고,
넘어진 사업도 다시 세울 수 있을 것 같고,
떠난 줄 알았던 사랑도 다시 돌아올 것 같고,
다 잃은 줄 알았던 삶도
어쩌면 다시 손에 잡힐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사람은 속는다.

이제 지나갔다고 믿는다.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이라고 믿는다.
조금만 정리하면 괜찮아질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끝이 아니다.


다시 온다.

더 세게.
더 깊게.
더 잔인하게.

이미 무너진 곳을
다시 찢어버리고,

이미 약해진 사람을
끝까지 밀어붙인다.

겨우 붙여놓은 관계가 다시 찢어지고,
간신히 세워놓은 신뢰가 다시 무너지고,
살아날 것 같던 사업이 마지막 숨까지 꺼져가고,
다시 잡은 손인 줄 알았던 것이
사실은 마지막 인사였다는 걸 깨닫게 된다.

여기서 다 끝난 줄 알았던 희망이
사실은 끝이 아니었다는 걸,
새로 시작될 줄 알았던 것이
오히려 더 깊은 공포의 시작이었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된다.

마지막 남은 기대,
마지막 남은 자존심,
마지막 남은 희망,
끝까지 손에 감고 있던 가느다란 줄이
결국 끊어진다.

끝까지 버텨오던 나무가 뽑힌다.
끝까지 서 있던 집과 건물이 찢겨 나간다.

사람도 그렇게 나뉜다.

누군가는
할 만큼 했다고 놓아버린다.

누군가는
결국 잡고 있던 줄을 놓아버린다.

누군가는
무너진 자리에서 주저앉아
더는 한 걸음도 못 움직인다.

그런데도
누군가는 끝까지 버틴다.

울면서도 버티고,
비틀거리면서도 버티고,
다 잃은 것 같은 얼굴로도
또 손을 뻗는다.


태풍은
그 마지막까지 시험한다.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 때도
그래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지를
끝까지 묻는다.

그리고
지나간다.

남은 건

조용함이 아니라
폐허다.

집이 사라지고,
가게가 무너지고,
도로는 진흙과 파편으로 뒤덮이고,
찢긴 천막과 부러진 나뭇가지와 깨진 유리들이
사방에 널려 있다.


누군가는
그 자리에서 흐느끼며 울고,
누군가는 목이 터져라 소리쳐 운다.

누군가는
이름을 부르며
끝까지 서 있다.

누군가는 잔해를 뒤지고,
누군가는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고,
누군가는 살아남았다는 안도보다
무엇을 잃었는지부터 확인한다.

세상이

여기서 끝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도
자연은 돌아온다.

태풍이 긁고 지나간 자리

맑은 하늘과 조용한 고요만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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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어디서 살아남았는지 모를
작은 새 한 마리가
부서진 전선 위에 내려앉는다.

잠시 뒤
벌 한 마리가
젖은 흙 위를 맴돌고,

나비가
꺾인 가지 끝에 앉았다가
다시 날아오른다.

사람도 버티기 힘들었던 그 태풍을
연약해 보이던 것들은
끝내 견디고
다시 돌아온다.


인생도 그렇다.

무너진 자리에서
누군가는 포기하고,
누군가는 사라지고,
누군가는 다시는 예전과 같은 얼굴로 돌아가지 못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눈물을 삼키며
다시 움직인다.

부서진 벽돌을 치우고,
젖은 사진을 말리고,
넘어진 간판을 다시 세우고,
닫힌 문 앞에서 다시 열쇠를 찾고,
떠나버린 것들 대신
남아 있는 하루를 붙잡는다.


완전히 괜찮아져서가 아니다.

아직도 아프고,
아직도 무섭고,
아직도 잃어버린 것들이 너무 크지만,
그래도 살아야 하기 때문에
다시 움직인다.

그래서 인생은

태풍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서

다시 서는 사람으로
결정된다.

무너지지 않은 사람이 강한 게 아니라,
무너진 뒤에도 다시 일어서는 사람이 강하다.

자연은
그걸 말없이 보여준다.

오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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