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품에 안으면 8장-3부

(When I Hold You in My Arms)

by 스팅비 StinGBee

커버포스터 1 최종.png 내가 감당 못 할 만큼 큰 사람’으로 보이는 순간이 있었다

[PART 3/4] 너를 품에 안으면 [8장-3부] — 싸이월드 와 노래

(When I Hold You in My Arms — EP. 8-3)

그 말이 인사처럼 느껴졌다.

처음으로 ‘문이 조금 열리는’ 소리.

그다음도 조심스러웠다.

사는 곳, 나이, 이름 같은 건 피해 갔다.

그냥 밤이 길다는 얘기, 일 때문에 피곤하다는 얘기.


그런데 그게 며칠 반복되자

청년은 자기도 모르게

으쓱해졌다.

방에 사람은 많은데

그녀는 남들이랑은 대화 안 하고
나랑만 1:1로 한다.


그 사실이

청년을 ‘특별한 쪽’으로 밀었다.

나만의 꿈과 매일 더 가까워지는 것에

청년은 괜히 뿌듯해하고 있었다.


자기로 인해 얼음처럼 차갑게 얼어 있던 나만의 꿈의 마음이
조금씩 움직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접 보는 사이는 아니었어도

서로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더 깊이 빠져들고 있었다.

청년이 먼저 물었다.

“지금 뭐 해요?”


“아이스커피 마시고 있어요.”


마이크 너머로 아주 작은 소리가 났다.
컵 안에서 얼음이 부딪히며 딸깍 하고 흔들리는 소리.
빨대가 한 번 긁히는 소리.

그녀가 작게 말했다.

“얼음 부딪히소리… 들리죠?”


“네. 들려요.”

별것도 아닌데, 그 소리 하나로

청년은 순간 착각했다.

상대가 정말 옆 방에 있는 것처럼.


잔은 안 부딪히는데
소리만 부딪혔다.

그 뒤로 둘은 자주 그런 걸 공유했다.

지금 켜둔 조명, 창문을 조금 열어둔 정도,
밖에서 지나가는 차 소리,

그리고 말 끝에 묻어나는 피곤함까지.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그녀가 처음으로 자기 쪽을 한 조각 내줬다.

“스팅비님… 싸이월드… 알아요?”


청년은 멈칫했다.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있었다.

누가 한 번 웃으며 말했던,

‘요즘에 그런 게 있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청년은 그쪽을 따로 신경 쓴 적이 없었다.

“아… 이름만 들어봤어요. 정확히는 몰라요.”


그녀는 잠깐 웃었다.
아주 짧게—숨으로만.

“그럼… 더 설명해 줘야겠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얼마 전부터 해놓은 미니홈피가 있어요.”

“들어가 보면… 좀 이상할 거예요.

요즘 내가 거기 살고 있는 것 같아서요.”


잠깐의 침묵.
그녀는 다음 말을 고르듯 숨을 골랐다.

“아이디… 알려드려도 돼요?”


그 한마디가
친해졌다는 증거처럼 들렸다.

동시에—선을 하나 넘는 소리처럼도 들렸다.

채팅은 만질 수 없는데,

링크 하나는 현실 쪽으로 손을 뻗는 것처럼 느껴졌다.


청년은 그걸 알고도
“네”라고 말해버릴 것 같았다.


그녀가 먼저 말했다.

“스팅비님… 지금 링크 보냈어요. 눌러봐요.”

“가입은 금방 돼요. 어렵지 않아요.”


청년은 모니터를 한 번 더 가까이 당겼다.

클릭.

로딩.

낯선 화면이 열렸다.

아이디를 만들고, 비밀번호를 만들고,

동의 체크박스를 몇 번 누르는 사이—
청년은 자기 손이 생각보다 빨라졌다는 걸 느꼈다.


그녀가 다시 말을 꺼냈다.

“스팅비님, 아까 말했던 거… 있죠.”

“우리 1:1 하는 거—당분간 비밀로 해요.”

“스팅비님 친구 쟈니워커에게도 요.”


청년은 고개를 끄덕이듯 키보드를 눌렀다.

“알겠어요. 말 안 할게요.”


잠깐의 침묵 뒤, 그녀가 이어 말했다.

“그리고… 싸이월드도.”

“겉은 보여도, 안쪽은 안 보이게 해 놨어요.”


청년은 화면을 다시 봤다.
미니룸이랑 배경음악은 보이는데,
어떤 메뉴는 잠긴 것처럼 막혀 있었다.

딱 봐도 “선”이 있는 느낌이었다.


청년이 물었다.

“이건… 제가 못 보는 거예요?”

“응. 공개 범위를 걸어놨어요.”


그녀는 화면을 보는 듯 천천히 덧붙였다.

“전체공개도 되고, 일촌공개도 되고, 비공개도 돼요.”

“나는… 일촌만 보이게 해 둔 게 많아요.”

“그러니까… 들어오려면 일촌 신청을 해야 해요.”


청년의 손가락이 잠깐 멈췄다.

일촌.

그게 단순한 버튼 하나가 아니라는 걸
이상하게도 바로 알 것 같았다.


“지금… 신청하면 돼요?”


“응. 근데 부담되면 안 해도 돼요.”

그 말이 더 부담이었다.


청년은 결국 눌렀다.

일촌 신청.

딸깍.


그 순간, 나만의 꿈이 곧바로 받지 않았다.
타이핑 표시가 떴다가 사라졌다.


마치—
‘지금 받아도 되나’를 한 번 더 확인하는 사람처럼.

그리고 몇 초 뒤.

“됐어요.”


짧은 말.

그 말과 동시에, 청년 화면에서

잠겨 있던 게 아주 조금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가 낮게 웃었다.

“일촌 되면… 일촌명도 정하잖아요.”

“스팅비님, 뭐로 할래요?”


청년은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이름보다 더 가까운 이름을 정하라는 말 같아서였다.

그녀가 또 한 번, 아주 짧게 웃었다.

“그건… 제가 정해주고 싶은데요.”

“그럼… ‘스팅비님’ 계속할래요?”

“그냥 그게 편하니까요.”


청년은 그 한마디에
기분이 좋아지는 걸 숨기지 못했다.

그녀가 다시 물었다.

“일촌평도 남길래요?”

“딱 한 줄만.”


청년은 키보드 위에서 망설였다.
한 줄이면 가벼워야 하는데,
가볍게 쓰면 마음이 없어 보일 것 같고,
마음이 보이면 너무 진지해질 것 같았다.

결국 그는 가장 안전한 문장을 골랐다.


[일촌평]
“잘 부탁해요.”


나만의 꿈이 한참 뒤에 답했다.
마치, 그 한 줄을 그대로 믿어도 되는지 확인하듯.

그리고 그녀가 남겼다.


[일촌평]
“천천히요.”


청년은 그 한 줄을 보고
이상하게 숨이 내려앉는 걸 느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규칙을 하나 더 박았다.

“그리고 진짜.”

“공개방에서는… 우리 아는 척하지 말아요.”


청년이 물었다.

“왜요?”


그녀는 짧게 답했다.

“시끄러워져요.”

“쓸데없는 사람들이… 끼어들어서요.”

“난 그런 게 싫어요.”


청년은 바로 이해했다.
그녀가 원한 건 ‘대화’가 아니라
틈이었다.

남들이 못 들어오는 틈.


“알겠어요.”

“공개방에선 모르는 척하는 것으로 할게요.”


그녀가 아주 짧게 답했다.

“고마워요.”


그리고 그다음 문장이 이어졌다.

“스팅비님.”

“이제… 진짜로, 우리만 아는 거예요.”

“이제 들어왔죠?”


그녀 목소리가 웃음을 머금었다.
누군가 내 어깨너머에서 화면을 같이 보는 느낌.

이상하게—안심이 됐다.


그녀가 말했다.

“여기서 ‘미니룸’ 들어가요.”

“아… 스팅비님, 지금은 기본 세팅이니까 놀라지 말고.”


청년이 ‘입장’을 눌렀다.

화면이 바뀌면서, 작은 방이 하나 떴다.

너무 비어 있었다.

가운데엔 남자 캐릭터 하나가 덩그러니 서서,

홀로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상체는 맨몸,
하체는 빤스 한 장 걸친 모습이었다.

그게 전부였다.


속옷 차림의 남자 캐릭터.
표정도 눈만 깜박이고 있었다.

방은 바닥도, 벽도, 가구도—아무것도 없었다.

청년은 얼굴이 확 달아오르는 걸 느꼈다.

이상했다.


실제로는 혼자였고, 화면 속 건 픽셀 덩어리뿐인데도—몸이 먼저 반응했다.

창피라는 건

‘진짜 내 몸을 들켰을 때’가 아니라,
누가 내 쪽을 보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에 생긴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그녀가 마이크 너머에 있다는 사실.

지금 이 화면을, 같은 타이밍에 보고 있다는 사실.

그게 청년의 머릿속에선

“같은 방”으로 계산됐다.


아바타는 남의 캐릭터가 아니었다.

가입하자마자 자동으로 뜬 기본 세팅인데도,

이상하게 ‘내’ 쪽이었다.

내 이름으로 들어온 방,

내 계정으로 서 있는 몸.


그래서 더 민망했다.

옷이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보인다는 느낌 때문처럼 느껴졌다.


청년은 무의식적으로
의자에 등을 더 붙이고,
모니터를 한 뼘 뒤로 밀었다.

그래봐야 소용도 없는데,

그런 동작이라도 해야 덜 드러난 기분이 들 것 같아서였을까...


그가 겨우 물었다.

“… 이게… 기본이에요?”


“응. 처음엔 다 그래요.”

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짧게 웃었다.

“괜찮아요. 내가 도와줄게요.”

“스팅비님, 여기서 옷부터 입혀야지.”


그녀가 하나하나 눌러줬다.
메뉴 위치, 버튼, 구매 창, 적용.
마치 튜토리얼처럼 차근차근.

그때 청년은 알았다.

‘싸이월드’는 글을 쓰는 곳이 아니라

자기를 꾸미는 곳이라는 걸.


그녀가 물었다.

“도토리 있어요?”


청년은 바로 되물었다.

“도토리… 그게 뭐예요?”


“아… 진짜 처음이구나.”

그녀는 재미있다는 듯,

하지만 더 조심스럽게 말했다.

“도토리는… 여기 화폐 같은 거예요.”

“옷도 사고, 방도 꾸미고, 노래도 깔고.”


청년이 막 “그럼 결제…”를 말하려는 순간,
그녀가 먼저 끊듯 말했다.

“스팅비님, 잠깐만요.”

“처음은 내가 사줄게요.”


청년은 반사적으로 거절하려다 멈췄다.
거절하면 멋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보다 먼저—
‘받아도 되는 걸까’ 하는 기분 좋은 떨림이 올라왔다.


선택받는 느낌.

그녀가 도토리 선물 창을 눌렀다.

짧은 알림음.

청년 화면에 “선물이 도착했습니다”가 떴다.


“됐죠?”

“이제 옷 골라요. 너무 튀는 거 말고… 음, 이게 깔끔해.”


청년의 캐릭터가 옷을 입었다.
바지가 생기고, 셔츠가 생기고, 신발이 생겼다.

그 순간, 이상하게 마음이 놓였다.

현실에서 옷을 입은 것처럼.


그녀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방도 꾸며야지.”

“아무것도 없으면… 너무 외로워 보여요.”


청년은 그 말에 걸렸다.

‘외로워 보여요—’


그건 방이 아니라, 자신 얘기 같아서.

그녀가 몇 개를 골랐다.

작은 소파, 스탠드 조명, 테이블, 액자.

정돈된 색감.
딱 “남자 방”처럼 깔끔하게 맞춰진 조합.


“이건 어떠세요?”


“좋아요.”

청년은 진짜로 좋다고 느끼기 전에

먼저 대답하고 있었다.


그녀의 방에도 청년을 초대했다.

입장하자마자, 차이가 났다.

그녀의 캐릭터는 예쁘게 차려입고 있었다.

헤어, 표정, 작은 액세서리까지.

방은 정돈되어 있었고,

무엇보다—노래가 흘렀다.

최신 유행하는 곡들.

듣기 좋은 멜로디.


방 자체가 향기처럼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청년은 그 방에 들어서는 순간

이상하게 목소리까지 조심해졌다.

그녀가 웃으며 물었다.

“어때요?”


“좋네요.”

청년은 말했다.


사실—취향이 완전히 맞진 않았다.

어떤 곡은 너무 달았고,

어떤 곡은 청년이 평소엔 건너뛰는 스타일이었다.

그런데도 청년은

노래가 바뀔 때마다
괜히 한 마디씩 덧붙였다.


그때,

**‘모노 — 넌 언제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 노래 괜찮은데요.”

“이런 느낌… 괜찮네요.”

그 말이 거짓말인 걸 스스로도 알았다.

근데 이상하게,

그 거짓말이 싫지 않았다.

그녀와 “잘 통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었다.

그 방에서만큼은.


그때부터였다.

청년은 더 자주 접속했고,

더 빨리 답했고,
더 오래 머물렀다.


채팅은 만질 수 없는데도,

직접 볼 수 없는데도,
그녀가 골라준 옷과
그녀가 틀어둔 노래와
그녀가 정리해 둔 방이—

어느새 청년에게

“관계의 증거”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증거가 쌓일수록

청년은 더 쉽게 마음을 열었다.

나만의 꿈 또한

청년에게 마음을 열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녀가 천천히 말했다.

“스팅비님은 참 좋은 분 같아요.”

“상황만 정리되면… 꼭 한번 만나고 싶어요.”

“사실 저, 많이 힘들었어요.

뜻하지 않게 혼자 지내게 되면서
외롭고 버티기 힘든 날이 많았고요.”


“예전에 알던 사람들은
언제 봤냐는 듯 하나둘씩 떠났어요.”

“근데 스팅비님은—

제가 제일 외롭고 힘들 때
응원해 주고, 따뜻하게 옆에 있어줬잖아요.”

“그게… 정말 고마워요.”


청년은 잠깐 말을 잃었다.
가볍게 흘려야 할 말이 아니었다.

그녀가 지금, 단순한 감사가 아니라

자기 쪽으로 마음을 내놓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런데도 큰 말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큰 말은 대체로
나중에 책임이 되는 게 은근히 두려워졌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확실한 문장으로 답했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요.”

“내가 뭘 대단히 한 건 아닌데,

그래도 내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다면
그걸로 충분해요.”


“힘든 날엔…

혼자서 다 버티려고 하지 말고,
말해줘요.”

“나도—

상황이 정리되면 나만의 꿈님 꼭 만나고 싶어요.”


그리고 마지막에,
조금 더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진짜로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계속 옆에 있을게요.”


짧은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이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방금 말들이 서로의 마음속에서
자리를 잡는 시간 같았다.


청년은 그 틈을 타
괜히 숨을 한 번 골랐다.

지금이면 물어도 될 것 같았다.

지금이 아니라면
다시는 못 물을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최대한 가볍게,
근데 가볍지 않게
말을 꺼냈다.

“저… 근데.”

“혹시—”


입안에서 단어가 한 번 굴렀다.
괜히 조심스러웠다.

그런 걸 묻는 순간,

대화가 다른 종류로 바뀐다는 걸 느껴서였을까...

청년은 결국

조금 낮춘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사진으로라도…
나만의 꿈님, 볼 수 있을까요?”

“보고 싶네요.”


나만의 꿈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타이핑 표시도, 숨소리도 없었다.

청년은

그 침묵이 길어질수록
자기 말이 무례였나 싶어졌다.


그가 급히 덧붙였다.

“아… 부담되면 괜찮아요.”

“그냥… 궁금해서요.”


그제야
마이크 너머로 아주 작은 웃음이 섞였다.
진짜 웃음인지,
웃는 척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정도로.


그녀가 말했다.

“그것도… 상황이 잘 정리되고 나면요.”


그리고 한 박자 뒤,
장난처럼—
아주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놀라지 마세요.”

“남들이 저, 어렸을 때부터

한 인물 하겠다고 칭찬할 정도예요.”

“오늘은… 이렇게만 알고 계세요.”


말끝에 웃음이 살짝 붙었다.
농담 섞인 톤.

근데 이상하게

청년은 그게 농담으로만 들리지 않았다.

‘조건이 있다.’

보여주겠다는 말보다,

먼저 나온 건 ‘나중에’였다.


그 ‘나중에’가
청년을 더 묶었다.

청년은 웃는 척 숨을 한번 섞었다.

“알겠어요.”

“기다릴게요.”


그 말이 끝나자
그녀가 아주 짧게 답했다.

“응.”

짧은 한 글자.

근데 그날 밤,
청년은 그 한 글자를
괜히 여러 번 떠올렸다.


사진 얘기가 지나고,
둘 사이 분위기가 조금 더 올라왔을 때였다.

그날도 둘은 각자

맥주 한 캔씩을 따고 있었다.


칙—


가상공간인데
현실 소리만큼은 똑같이 찍혔다.

그 소리 하나로

밤이 더 진짜처럼 굳어졌다.


그녀가 먼저 말했다.

“건배.”


“건배.”

그리고 나만의 꿈이 웃으며 말했다.

“사진 말고… 오늘은 노래 들려줄게요.”


“마이크 켤게요.”


(탁)


마이크가 켜지자,
먼저 음악이 들렸다.

잔잔한 발라드 같은 걸 틀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뒤에서 신나고 상쾌한 반주가

훅 들어왔다.

리듬이 신나게 튀고,

첫 전주부터 공기가 바뀌었다.


그런데도 소리는 ‘깨끗’ 하지 않았다.
파일처럼 또렷한 음원이 아니라,
그녀 쪽 방에서 실제로 흘러나오는 음악이
마이크를 타고 넘어오는 느낌.


작게 울리는 잔향,
스피커가 살짝 떨리는 소리,
그리고 그 위로 섞이는—

아주 얇은 숨.

청년은 그걸 듣는 순간

등이 곧게 펴졌다.


캔을 쥔 손이
그대로 멈췄다.

방 안에 혼자인데도

괜히 자세가 반듯해졌다.


초록불도, 채팅창도
순간 시야에서 사라졌다.

화면은 그냥 배경이 됐고,

귀 안에는
오직 그 음악만 남았다.


그리고
그 반주 위에 그녀 목소리가 얹혔다.


“파파야… 〈사랑 만들기〉.”


그녀는 노래를 시작했다.
첫 소절부터, 예상이 깨졌다.

신나고 밝은 리듬인데

목소리는 장난스럽지 않았다.

웃음 섞인 “흘림”도 없었다.


음이 정확했다.

호흡이 길었다.

박자를 놓치지 않았다.

무엇보다—

처음부터 끝까지
흔들리지 않았다.


청년은 무의식적으로
모니터를 한 뼘 더 당겼다.

귀를 가까이 가져가듯.


가수가 부르는 것처럼—


아니, 진짜 가수가
바로 뒤에서 부르는 것처럼 들렸다.


온라인에서만 존재하던 사람이
목소리 하나로
갑자기 현실의 공기를 만들었다.


좋아서가 아니라,
놀라서.

청년은

자기 입이 살짝 벌어진 것도 몰랐다.


노래가 흐르다가
그 구절이 나왔다.


✨♪ 영화 속의 그녀처럼~
나~ 하나~ 네가 가진 걸로 행복할 거야~♪✨


그 한 줄이 떨어지는 순간,
청년의 가슴이 툭 내려앉았다.

원래는 그냥 가사인데,

그날은 달랐다.


그녀가 누구에게든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지금—
나한테 들려주는 말처럼 들렸다.


청년은 숨을 죽였다.
혹시라도
자기 숨소리가 섞여
그 순간을 망칠까 봐 조심스러워졌다.


노래가 끝으로 갈수록
그녀의 목소리는 더 단단해졌다.

마지막 음을 길게 잡고,

조금만 더—
기분 좋게 끌었다.


노래가 끝난 뒤의 조용함처럼

그 정적이 방 안에 남았다.

청년은 한 박자 늦게

숨을 내쉬었다.

자기가 숨을 참고 있었다는 것도

그제야 알았다.


그의 입에서 탄식이 흘렀다.

“와…”

웃음이 아니라

탄식에 가까운 소리였다.


청년은 그 순간
완전히 반해버렸다는 걸
스스로도 부정할 수 없었다.

예뻐서가 아니었다.

착해서도 아니었다.


‘나만 알고 있던 사람’이
갑자기
‘내가 감당 못 할 만큼 큰 사람’으로 보이는 순간이 있었다.

방금이 딱 그랬다.

청년은 바로 질세라 말했다.

“저도… 하나 불러도 돼요?”


나만의 꿈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네, 그러세요”


청년은 잠깐 망설였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제목을 꺼냈다.


“‘너를 품에 안으면’…”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자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노래 제목인데도

고백처럼 들려서.


그녀가 짧게 말했다.

“응. 불러봐요.”


그 한마디가
청년을 완전히 밀었다.

청년은 있는 감정 없는 감정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잘 부르려는 게 아니었다.


지금 이 밤을,
지금 이 사람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더 진심으로

목소리를 꺼냈다.


✨♪“너를~
품에~ 안으면~”♪✨


음은 흔들렸고
호흡도 완벽하진 않았다.

근데 청년은 멈추지 않았다.

그녀처럼

끝까지 가고 싶었다.

그녀가 만든 그 “진짜”에

자기도 닿고 싶었다.


조금이라도
그녀와 같은 높이로 올라가고 싶었다.

노래가 끝나자

잠깐 정적이 왔다.


...


청년은 숨을 죽였다.
이번엔
평가가 무서웠다.

그리고 그녀가 말했다.


“… 노래.”


한 박자 뒤,
아주 작게 덧붙였다.

“좋네요. 쉬운 노래가 아닌데 잘하네요.”

그 한마디에

청년은 확신 비슷한 걸 느꼈다.


봐.
괜찮아지고 있잖아.


그날 밤,
사진은 없었는데도
청년은 이상하게
더 가까워졌다고 믿었다.


노래가 끝났는데도
청년은 한동안 말을 못 했다.

좋아서가 아니라—

자기 마음이 너무 빨리 앞질러 가는 게
무서워서였다.


근데 무서운 건 늘
늦게 온다.

그 밤, 청년은

컴퓨터를 꺼도
귀에서 음악이 꺼지지 않았다.


파파야의 전주.
그녀 목소리의 마지막 잔향.

그리고 “좋네요”라는 짧은 한 마디.

그게 계속

머릿속에서 반복됐다.


청년은 자꾸 생각했다.

‘사진은 안 보여줬는데…

왜 더 가까워진 것 같지?’

그래서 더 접속했다.

더 빨리 들어갔고,
더 오래 머물렀다.


초록불 하나가
그 사람의 ‘존재’처럼 느껴졌고,
그 사람의 부재는
바로 현실의 추위처럼 느껴졌다.


그때부터였다.

청년은

대화를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의 “등장”을 기다리는 사람이 됐다.

그리고 그 기다림이

습관처럼 굳어지고 있었다.


—다음: 8장-4부에서…


[안내 — 모방 범죄 주의]
본 작품에는 범죄 수법·수사 절차·법정 장면이 현실적으로 묘사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범죄를 미화하거나 정당화하기 위함이 아니며, 현실에서의 모방을 강력히 금합니다.
작품 속 사건은 허구 또는 각색이며, 어떠한 범죄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저작권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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