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Hold You in My Arms)
[PART 2/3] 너를 품에 안으면 [9화-2부] — 떠나버린 친구
(When I Hold You in My Arms — EP.9-2)
그런데 어느 날부터 진수의 얼굴빛이 달라졌다.
평소와 달리 창백했고, 말수가 줄었다.
“요즘 소화가 잘 안 돼. 답답해.”
“잠만 자고 싶다.”
“야, 날 좀 내버려 둬 너무 피곤해 나중에 연락할게...”
처음엔 그냥 피곤한 줄 알았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자 진수는 허리까지 제대로 못 쓰게 됐고,
혼자 거동도 힘들 정도가 됐다.
검사 결과는 너무 잔인했다.
뇌종양 판정을 받았다...
수술도 불가능한 말기.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서 “아, 그럴 리가”라는 문장이 그냥 증발했다.
믿고 싶다 같은 감정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재능도 많고,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아야 할 친구가—왜 하필.
항암치료를 시작하면서, 진수가 길게 기르던 머리도 사라졌다.
그가 스스로 잘라낸 건 아니었다.
치료가—조용히 가져갔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청년은 숨이 막혔다.
목구멍이 먼저 좁아지고, 가슴이 뒤늦게 따라왔다.
병실 문이 아주 조심스럽게 열렸다.
진수를 평소 멀리서 바라보며 좋아하던 여자가 들어왔다.
그녀는 사람들이 그녀의 이름을 들으면,
“아… 그 애? 예쁘장하게 생긴 애.”
하고 떠올릴 만큼—그런 얼굴이었다.
딱히 화려하진 않은데, 이상하게 시선이 한 번 더 가는 타입.
그런데 그녀는 한 발 들어오자마자 멈췄다.
진수는 누워 있었고,
머리카락은 사라져 있었고,
몸은 예전의 진수가 아니었다.
살아 있다는 사실만 남아 있는 것처럼—가늘고, 조용했다.
여자는 입술을 한 번 열었다가, 아무 말도 못 했다.
눈이 먼저 흔들렸다.
그리고 다리가 풀렸다.
툭.
무릎이 바닥을 못 버텼고, 몸이 옆으로 기울었다.
누가 부축할 틈도 없이—그녀는 그대로 쓰러졌다.
청년이 황급히 다가갔을 때,
그녀의 얼굴에는 이미 눈물이 흘러 있었다.
소리 없는 눈물이었다.
울음이 나오기 전, 사람이 먼저 무너질 때 나오는 눈물.
그날 이후, 병실의 공기는 바뀌었다.
아무도 크게 말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알고 있었다.
결국 진수는 세상을 떠났다.
원망할 대상도 없고, 이유도 없고, 답도 없었다.
그저—한 사람의 삶이 너무 쉽게 꺼져 버렸다.
그리고 청년의 머릿속에는, 이상하게도 그 장면들이 먼저 남았다.
술 냄새.
진수 집 거실 바닥에 늘어져 웃던 얼굴들.
노래방에서 마이크를 서로 빼앗듯이 잡고, 목이 쉬도록 노래 부르던 밤.
가끔은—술이 과해져서, 아무 이유도 없이 같이 껴안고 울어버리던 순간.
다음 날 기억도 흐릿한데, 그때의 웃음만큼은 또렷하게 남아 있던 시간들.
진수는 늘 그랬다.
어제처럼 굴다가도, 갑자기 진심을 툭 던지고,
또 아무 일 없다는 듯 웃어 버렸다.
그런 사람이, 그런 절친이—이제 없다.
청년은 가끔, 노래방에서 흘러나오던 그 멜로디를 우연히 들으면
손이 먼저 멈췄다.
그리고 아주 잠깐,
진수가 혀를 차며 웃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감히 이 형님 말을 못 믿고… 쯧쯧.”
그 한마디가—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그리고 그때부터였다.
뉴욕에서 느꼈던 그 불길함.
완전히 잊었다고 믿었던 트라우마가,
다시 표면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진영이와 술을 마시며, 얼마 전 안타깝게 먼저 가버린
진수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죽이던 어느 날이었다.
“참… 진수는 어떻게 그렇게 허망하게 갈 수가 있냐.”
청년이 잔을 내려놓고 잠깐 고개를 숙였다.
“참 아까운 녀석이었는데… 친구였는데…”
진영이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위로하는 말은 길게 하지 않았다.
그 애는 슬픈 얘기를 오래 못 했다.
금방—다른 얘기로 넘어가야 마음이 편해지는 타입이었다.
청년이 다시 말했다.
이번엔 장난이 아니었다.
“야, 진영이. 너 인마 조심해.”
“사람 일… 그렇게 허망하게 끝나는 거, 생각보다 한순간이야.”
그리고 말을 낮췄다.
“너 여자 아무나 가지고 놀지 마라. 그러다 너 좃된다.”
진영이는 웃었다.
세상이 다 자기 컨트롤 안에 있는 것처럼, 자신만만하게.
“야, 걱정 마. 다 내 손바닥이야.”
이틀 뒤, 친구들은 클럽에 가기로 했다.
진영이가 청년에게 전화를 했다.
“야, 10시쯤에 데리러 갈 거니까 준비하고 있어.
오늘 새로 온 동생들 두 명 소개해 줄게.”
시간 맞춰서 대형 승용차 한 대와, 뒤에는 스포츠카 한 대.
이렇게 차 두 대로 나눠 타고 출발했다.
운전자와 운전자 뒷좌석에 처음 보는
어려 보이는 친구들이 인사를 했다.
대형 승용차를 운전하던 동생은 딱 봐도—
부모님 차를 끌고 나온 것처럼 보였다.
청년은 앞차 조수석 뒷자리에 탔고,
진영이가 앞 조수석에 타고 있었다.
운전은 처음 보는, 나이 어린 동생이 잡고 있었다.
뒤차에 다른 친구들이 따라왔다.
진영이가 나이가 어린 두 동생들에게 말했다.
“야, 니들 인사해. 내가 말한 내 친구야.”
동생들은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아, 안녕하세요. 형님 이야기 오래전부터 많이 들었습니다.
저희들 앞으로 귀엽게 봐주십시오.”
순간 청년은 조금 으쓱해진 기분이었지만,
내 이름이 입소문을 타고 돈다는 것에—오히려 신경이 쓰였다.
차 안의 공기는 이미 클럽이었다.
음악은 아직 안 나왔는데, 말이 먼저 흔들렸다.
뒤차에서 누군가 창문을 내렸다.
찬 공기가 들어오자 사람들은 더 들떴다.
한 명은 차량 내 거울을 확인하며 머리를 만졌고,
또 누군가는 향수를 손목에 톡톡 찍었다.
“야, 오늘은 어떻게 놀 건데.”
“일단 들어가서 한 바퀴 돌고, 자리 잡고.”
“누가 올까? 오늘 사람 많겠다.”
“토요일이잖아. 무조건 많지.”
진영이는 앞에서 계속 웃었다.
괜히 크게 웃고, 괜히 크게 말하고—
세상이 자기 편이라는 얼굴로.
“오늘 새로 온 애들 있다니까. 둘.”
“또?”
“응. 그중 하나는 스물넷.”
진영이가 말끝을 살짝 올렸다.
그 ‘살짝’이—자랑이었다.
“베트남계인데, 조용한 스타일 아니야. 정말 핫해.”
“핫 이래ㅋㅋ”
“야, 너 또 시작하냐.”
“아니, 진짜로. 딱 보면 알걸. 다들 한 번씩 쳐다보는 그런—”
차 안이 한 번 더 들떴다.
“오—” 하는 소리, 짧은 웃음, 농담들이 굴러갔다.
“야, 그럼 오늘 누구 꼬실 건데?”
“일단 분위기 보고.”
“너는?” 누가 청년에게 묻자, 청년은 대답이 늦었다.
청년은 웃어야 할 타이밍을 알고 있었지만, 웃음이 조금 늦었다.
괜히 그랬다.
들뜬 밤의 공기에는, 이유 없이 불편한 구석이 있을 때가 있었다.
진영이가 다시 폰을 만지작거렸다.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답장이 늦는 걸 못 참는 사람처럼.
화면을 보고 피식 웃는 표정이, 너무 익숙했다.
“뭐 왔냐?”
“별거 아냐.”
진영이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는 듯 말했지만,
그때 폰 화면에 뜬 문장이 청년의 눈에 잠깐 걸렸다.
‘오빠한테 말할 거야.’
진영이는 바로 화면을 꺼버렸다.
그리고 아무 일 없다는 듯 웃었다.
“야, 너는 오늘 뭐 할 건데.”
“너나 조심해.” 청년이 낮게 말하자, 진영이가 피식 웃었다.
“걱정 마. 다 내 손바닥이야.”
그리고 밤 10시 반쯤.
클럽까지 얼마 안 남았을 때였다.
—다음: 9화-3부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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