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Hold You in My Arms)
[PART 2/3] 너를 품에 안으면 [10장-2부] — 절차
(When I Hold You in My Arms — EP10-2)
남편은 참 간사했다.
아프기 전엔,
오늘은 뭘 더 맛있는 걸 먹을까.
돈은 어떻게 해야 더 많이 벌 수 있을까.
어떤 좋은 집, 어떤 차를 살까.
여유가 생기면 욕심은 더 정교해졌다.
“필요”라는 얼굴을 하고,
“보상”이라는 핑계를 달고,
사람 마음속으로 슬금슬금 들어왔다.
근데 그 욕구와 소유가—
진짜 한순간에 무의미해지는 때가 있었다.
남편은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처절한 고통 속에서 싸웠던 병마...
남편이 죽을 고비를 넘겼을 때를 떠올렸다.
어느 날 갑자기 몸이 자기 몸이 아닌 것처럼 꺼졌을 때...
숨이 차고, 손끝이 저리고, 다리에 힘이 풀리고,
잠깐 앉아 있는 것조차 “버티는 일”이 됐었을 때를...
그때 남편이 처음으로 뼈저리게 느낀 건 딱 하나였다.
몸이 안 따라와 주면, 아무것도 필요 없다.
침대 옆 서랍에 넣어둔 카드도,
통장 잔고도,
차 키도,
“언젠가”를 위해 모아둔 계획들도.
통증 앞에서는 다 종이쪼가리였다.
남편은 어리고 젊었을 때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다.
트라우마를 겪던 시절엔—
그는 거의 하루살이처럼 살았다.
내일이 와도 상관없는 척,
오늘만 넘기면 된다는 얼굴로,
사실은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아서, 잃을 것도 없는 척.
그때의 그는 죽음이라는 단어를 가볍게 말했다.
“뭐, 사람은 어차피 죽는 거지.”
그 말이 멋있어서가 아니었다.
그때의 그는 정말로 잃을 게 없다고 믿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가정을 갖고,
돈과 시간에 약간의 여유가 생기자
오히려 없던 욕심이 생겨났다.
지켜야 할 것이 생기자,
이제는 잃고 싶지 않은 것들도 함께 늘어났다.
평범한 욕심.
남들도 다 하는 욕심.
좋은 집.
조금 더 안전한 동네.
조금 더 편한 차.
쌓아두면 언젠가 나를 지켜줄 것 같은 어떤 “여유”.
그게 나쁜 건 아니었다.
그저 인간답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인간답다는 건,
동시에 가장 약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 죽는다.
조금 일찍이냐,
조금 늦게냐,
어떤 모습으로 끝에 닿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인데—
이상하게도
막상 그 순간이 가까워지면,
사람은 머리카락보다 가느다란 희망이라도
어디선가 찾아 붙들고 싶어졌다.
일이 없고,
사람이 없고,
미련이 없을 땐
“지금 떠나도 된다”는 말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죽음 앞에 진짜로 맞닥뜨리면,
흔쾌히 받아들이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남편도 그랬다.
잃을 게 없다고 생각하며 살던 때도 있었고,
이젠 잃을 게 많아서 못 죽겠다고 느끼는 때도 있었다.
그런데 정작 몸이 아파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니까—
그는 다시 달라졌다.
고통 속에서 남편은—영화 장면처럼 선명한 환상을 보았다.
누가 들었으면 몸이 허해져 헛것을 봤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확신했다.
가장 위험한 순간, 두려운 장면이 현실처럼 덮쳐 왔고
그 공포가 그를 멈춰 세웠다.
그 뒤로는 극단적인 걸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버텨야 했다.
고통 속에 있을 땐, 버티는 이유가 가족이어서가 아니었다.
그냥… 이 아픔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였다.
그는 침대에 누워서,
눈을 뜨면 천장이었고,
눈을 감아도 통증이 따라왔다.
자존심? 의미 없었다.
체면? 의미 없었다.
돈? 그 순간엔 진짜 의미가 없었다.
남편은 그날 밤, 숨을 몰아쉬다가
마치 고장 난 사람처럼 중얼거렸던 것을 떠올렸다.
“그냥… 안 아프게만 해줘. 제발.”
그 말은 강한 척하려는 사람이 내뱉는 말이 아니었다.
끝까지 버티던 사람마저 완전히 무너졌을 때 나오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남편은 하나님을 찾았다.
기도했다.
살려달라고 했다.
제발 한 번만 살려달라고.
또 살려달라고.
끝없이, 무너진 목소리로 그렇게 빌었다.
어제까지는 하지 않던 말을
오늘은 남편이 하고 있었다.
그걸 옆에서 지켜보는 아내의 얼굴이
남편의 눈에도 보였다.
씁쓸함.
그리고 슬픔.
남편은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인간은 누구나
위선의 그림자를 달고 산다는 걸.
아프지 않을 때는
세상을 다 아는 것처럼 큰소리를 친다.
버틸 수 있을 것처럼 말하고,
믿지 않는 척하고,
끝까지 괜찮은 사람인 척한다.
그런데 막상 몸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결국 뭐라도 붙잡게 된다.
하지 않던 말도 하게 되고,
찾지 않던 것도 찾게 되고,
끝내는 손까지 뻗게 된다.
남편은 생각했다.
이게 위선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위선조차도
어쩌면 살아남으려는 본능이라면,
그걸 누가 함부로 비웃을 수 있을까.
회복은 드라마처럼 한 번에 오지 않았다.
아침엔 잠깐, 나아진 것 같았다.
몸이 가벼워진 착각이 들 만큼.
그런데 오후가 되면 다시 미끄러졌다.
바닥이 없는 곳으로, 조용히.
조금만 움직여도 코피가 터졌다.
식사하다가—숟가락을 들자마자.
샤워하다가—고개를 숙인 순간.
걷다가—두세 걸음 옮기고 숨을 고르려던 찰나.
예고도 없었다.
따뜻한 물줄기 사이로,
밥 냄새 사이로, 복도 한가운데서도.
그냥 갑자기, 코끝이 뜨거워지더니
숨을 들이마시는 순간 피가 목으로 넘어왔다.
휴지로 막아도 새는 건 막히지 않았다.
손바닥에 묻은 붉은색이
“아직 멀었다”는 신호처럼 자꾸 늘어났다.
입맛은 이미 사라졌는데도,
“살아야 한다”는 생각 하나로 밥을 억지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물 한 컵을 들고 화장실까지 걸어가는 일이
그날의 “업적”이던 날이 있었다.
사람이… 이렇게 작아질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계단 몇 칸을 오르고 내려온 뒤
땀범벅이 돼서 숨을 고르며
자기 자신이 너무 낯설어지는 날도 있었다.
남편은 점점 깨달았다.
인생은 ‘내 의지’로 굴러가는 게 아니라,
몸이라는 작은 토대 위에 겨우 서 있는 거라고.
그리고 그 토대가 흔들리면,
인생 전체가 같이 흔들린다는 걸.
그럼에도—
시간은 조금씩 남편 편으로 돌아왔다.
숨이 덜 가빠지고,
손에 힘이 돌아오고,
어느 순간부터는 통증이 잠깐씩 비켜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거의 회복”이라는 단어가 조심스럽게 붙을 즈음,
남편은 이상하게도 마음이 먼저 움직였다.
살아온 삶을 뒤돌아봤다.
트라우마로 버틴 시간.
무의미한 척하며 흘려보낸 날들.
가정을 이루고 나서야 뒤늦게 욕심이 자라난 과정.
그리고 그 욕심이 한 번에 무너져버린 병실의 밤들.
남편은 생각했다.
‘이대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면… 나는 또 똑같이 살 거야.’
다시 돈, 다시 욕심, 다시 바쁨.
그게 인생의 전부가 되는 순간이 다시 올 거다.
그래서 그는 결심했다.
회복이 끝나기 전에, 결심부터 먼저 붙잡기로.
대학에 가기로.
그 결심은 멋있어 보이려고 만든 게 아니었다.
상처를 포장하려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살아남은 사람으로서
남은 시간을 허투루 쓰기 싫었다.
문제는 현실이었다.
4년 제로 갈지,
2년 제로 갈지.
남편은 둘 다 알아봤다.
4년제는 이름이 컸다.
사람들이 “오—” 하고 반응할 만한 타이틀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과 돈이 부담이었다.
체력도 아직 완전히 돌아오지 않았고,
가정과 생활을 유지하면서 풀타임 학업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2년제는 현실적이었다.
단계가 있었다.
숨을 고르면서 갈 수 있었다.
기초부터 다지고,
리듬을 만들고,
가능하면 그다음에 편입도 생각할 수 있었다.
남편은 며칠을 고민했다.
아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남편… 너무 무리하려는 건 아니지?”
남편은 잠깐 웃었다.
그 웃음은 예전처럼 큰소리치는 웃음이 아니었다.
조금 더 낮고, 조금 더 솔직한 웃음이었다.
“무리는 안 할 거야.”
"나… 이번에 알았잖아. 몸이 무너지면 다 끝이라는 거.”
“그러니까 이번엔… 오래가는 걸로 할래.”
그 말이 끝나고,
남편은 결론을 냈다.
2년 제로 시작한다.
커뮤니티 칼리지든, 지역 대학이든—
일단 현실적인 길로 발을 디딘다.
그리고 그 발걸음을 꾸준히 이어간다.
그날 남편은 침대 옆에 앉아
입학 준비 체크리스트를 적었다.
원서.
성적표.
신분증.
학자금 관련 서류.
학업 계획.
시간표 시뮬레이션.
종이 위의 글자들이
오랜만에 “미래”처럼 보였다.
예전엔 미래가 욕심의 목록이었다면,
이제 미래는—살아있다는 증거가 됐다.
남편은 속으로, 아주 작게 말했다.
‘이번엔… 내가 나를 속이지 말자.’
욕심이 올라오면 올라오는 대로 인정하되,
몸이 무너질 때의 그 밤을 잊지 말자.
죽음 앞에서 떨리던 자신을 잊지 말자.
그럼에도 살려달라고 손을 뻗던 자신도 잊지 말자.
위선이든 뭐든,
그건 그냥 인간이니까.
다만—
그 인간이, 이번엔 조금 더 제대로 살아보자는 거였다.
회복이 늘 “거의”라는 단어를 달고 다니던 시기였다.
몸은 살아났는데, 마음은 자꾸 확인이 필요했다.
살아 있다는 감각.
내가 아직 뭔가를 시작할 수 있다는 증거.
그래서 대학이었다.
문제는… 입학이 낭만이 아니라 절차라는 거였다.
그는 컴퓨터 앞에 앉아 지원서를 열었다.
이름, 주소, 전화번호, 거주지 증빙.
체크박스들. 질문들. 사소한 칸들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지원 버튼을 누르자마자 메일이 날아왔다.
학생 아이디, 포털 로그인, 다음 단계 안내.
문장들이 너무 매끈해서 오히려 등골이 서늘했다.
마치 이런 말 같았다.
‘자, 이제 도망 못 가.’
며칠 뒤, 그는 학교에 직접 갔다.
캠퍼스는 넓었다.
주차장부터 압도적이었다.
라인도 넓고, 간격도 넓고, 표지판도 큼직했다.
“대충”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 공간.
행정동에 들어가자
공기가 확 바뀌었다.
에어컨 바람 때문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는 사람들의 공기 때문이었다.
카운터 직원이 무심하게 말했다.
“ID, please.”
(자막: [신분증 주세요.] (업무 톤))
그는 순간 멈칫했다.
그 한마디가 뭐라고, 심장이 괜히 한 번 튀었다.
신분증을 내밀었다.
사진을 찍고, 서류에 사인하고, 학생증을 받았다.
얇은 플라스틱 카드 하나가… 생각보다 묵직했다.
그다음도 절차였다.
오리엔테이션 예약.
어드바이징 상담.
배치 시험 안내.
예방접종 기록 제출.
재정지원 링크.
이름 적고, 주소 적고, 체크하고, 사인하고—끝도 없었다.
근데 이상하게, 그 과정이 버겁기만 하진 않았다.
‘나… 끝까지 하고 있네.’
오리엔테이션 날, 강당엔 다양한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고등학교 갓 졸업한 애들,
군대 갔다 온 것 같은 사람,
아이 둘 데리고 온 엄마,
직장 점퍼 입고 온 아저씨.
그는 그 사이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여긴 “천재들의 세계”도 아니고 “낭만의 세계”도 아니었다.
그냥 살아가는 사람들이 다시 시작하는 곳이었다.
상담실에서 어드바이저가 물었다.
“What’s your major?”
(자막: [전공은 뭐로 생각하세요?] (상담 질문))
그는 대답을 바로 못 했다.
생각은 있었는데, 말로 꺼내는 순간
갑자기 진짜가 될 것 같아서.
어드바이저는 화면을 넘기며 선택지를 보여줬다.
Business, IT, Nursing… 소위 “괜찮다”는 전공들이 지나갔다.
머릿속에도 비슷한 목록이 돌았다.
‘비즈니스면 돈 벌겠지.’
‘IT면 요즘 잘 나간다며.’
‘간호는 안정적이긴 한데… 내가 할 수 있나.’
그때, 병실의 장면이 끼어들었다.
숨이 찼던 밤.
통증이 몸을 잡아 찢던 느낌.
그 와중에 “그냥 안 아프게만 해줘”라고 빌던 자기 목소리.
그때 무너진 건 돈 때문이 아니었다.
몸이 먼저 무너졌고, 인생이 같이 무너졌다.
그는 천천히 말했다.
“Criminal Justice.”
(자막: 형사사법 전공이요.)
어드바이저가 고개를 끄덕였다.
“Okay. We’ll set you up on that track.”
(자막: 좋아요. 그 트랙으로 학업 계획 잡아드릴게요.)
그리고 익숙하지 않은 말들을 쭉 던졌다.
배치시험, 상담, 수강신청—절차의 리스트.
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속으로 웃었다.
‘아… 나 진짜 학생 되네.’
첫 학기 시작.
캠퍼스는 여전히 넓었고, 그는 여전히 길을 헷갈렸다.
건물 앞에서 한 번 멈췄다가,
자기 강의실이 다른 건물인 걸 깨닫고 또 뛰었다.
근데 그 사소한 실수들이, 이상하게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내가 지금… 정상적인 고민을 하고 있네.’
첫 수업에서 교수는 규정을 설명했다.
“Attendance matters.”
(자막: [출석 중요합니다.] (경고))
“Plagiarism will get you a zero.”
(자막: [표절하면 0점입니다.] (규정))
그는 노트에 꼼꼼히 적었다.
옆자리 학생은 대충 듣고, 뒤쪽 애들은 폰을 만졌다.
그걸 보며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래… 여긴 전쟁터가 아니라 학교지.’
근데 형사사법 수업에서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This is not just about laws. It’s about people.”
(자막: [이건 법만 배우는 게 아니에요. 사람을 보는 겁니다.] (강조))
“Why people break. How systems shape them.”
(자막: [사람이 왜 무너지는지, 시스템이 사람을 어떻게 바꾸는지요.] (핵심))
그 말이 가슴을 톡— 하고 쳤다.
그날 집에 가서 그는 아내에게 말했다.
“나… 이거 재밌어.”
그리고 더 솔직하게 덧붙였다.
“재밌다기보다… 맞는 느낌이야.”
학기가 지나고, 1년이 지나고, 2년이 가까워졌다.
이제 캠퍼스는 덜 낯설었다.
주차장 자리도 잘 찾았고,
학생 포털도 익숙해졌고,
교수에게 이메일 보내는 것도 자연스러워졌다.
에세이를 쓰면 대충 안 썼다.
오히려 너무 진지하게 썼다.
어느 날 교수 피드백이 달렸다.
“Good insight. Keep going.”
(자막: [통찰이 좋아요. 계속 밀고 가세요.] (짧지만 강한 칭찬))
짧은 문장이었는데, 그는 그걸 휴대폰으로 찍어두었다.
웃기지.
근데 그때 그는 그게 필요했다.
‘누군가 내가 제대로 가고 있다고 말해주는 거.’
시간은 흘렀고—졸업이 가까워졌다.
캡이랑 가운을 상상하면 뿌듯했다.
2년을 버틴 거니까.
근데 바로 그다음 질문이 따라왔다.
“그래서, 그다음은?”
4년 제로 전환할까?
편입하면 더 탄탄해 보인다.
“대졸”이라는 단어가 붙으면 삶이 달라질 것 같기도 했다.
근데 현실은 또 계산을 요구했다.
등록금. 시간. 체력. 가정.
그리고… 혹시라도 다시 몸이 무너지면?
그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며 생각했다.
‘2년제 졸업장으로… 내가 뭘 할 수 있지?’
너무 솔직한 질문이라, 오히려 목이 조여왔다.
그때 아내가 말했다.
“당신, 요즘 그 표정이야.”
“뭔가… 또 혼자 싸우는 표정.”
그는 웃으려다가 말았다.
며칠 뒤, 캠퍼스 게시판 앞에서 발이 멈췄다.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경찰 아카데미 모집.
—다음: 10장-3부 에서…
[안내 — 모방 범죄 주의]
본 작품에는 범죄 수법·수사 절차·법정 장면이 현실적으로 묘사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범죄를 미화하거나 정당화하기 위함이 아니며, 현실에서의 모방을 강력히 금합니다.
작품 속 사건은 허구 또는 각색이며, 어떠한 범죄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저작권 안내]
본 작품 **『너를 품에 안으면』**은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되는 창작물입니다.
작품에 포함된 모든 문장, 구성, 장면 연출, 대사, 설정 및 아이디어의 표현 방식은
저작자의 사전 허가 없이 무단으로 전재, 복제, 배포, 각색, 2차 가공,
또는 AI 학습 데이터로 사용하는 행위를 금합니다.
본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무단으로 사용하는 경우
관련 법률에 따른 민·형사상 책임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 StinGBee. 무단 전재·복제·배포·2차 가공 금지.